극장판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이 8월 5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 첫날 오전 예매만 12만 장을 넘겼고, 예매율 1위로 출발했다. 2년 전 1편이 124만 명을 모은 그 티니핑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를 만든 회사의 손익계산서는 오래 빨간색이었다.
1.먼저 성적표부터 보자. 8월 5일 개봉, 개봉일 오전 8시 기준 예매 관객 12만4422명, 예매 점유율 10.4%로 1위. 같은 여름 극장가에는 트로이 전쟁을 그린 할리우드 대작 '오디세이'(The Odyssey)가 걸려 있었다. 어른 표를 노린 대작들 틈에서, 아동 관객을 앞세운 국산 애니가 예매 1위로 치고 나왔다.
2.근거는 2년 전에 이미 나왔다. 2024년 여름 1편 '사랑의 하츄핑'이 누적 124만 명을 모았다. 국산 애니가 100만 관객을 넘긴 건 12년 만이었고,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3위권. 부모 지갑을 털어 간다고 '파산핑'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번 2편에 새로 나오는 얼굴은 바다소년 카이트, 그리고 티니핑 세 마리. 방울핑과 찰랑핑과 소라핑.


3.90분짜리 영화이면서, 동시에 90분짜리 신제품 발표회다. 새로 나온 카이트와 바다 티니핑 세 마리는 스크린에서 처음 소개되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 완구 매대에서 실물로 기다린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굴러가지만, 그 이야기의 부품 하나하나가 곧 팔 물건이다. 콘텐츠와 상품 카탈로그가 한 필름 안에 포개진 형태.

4.극장 로비를 떠올리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상영관 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온다. 방금 스크린에서 반짝이던 캐릭터가 로비 매대 위에 그대로 서 있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부모의 손을 당긴다. 이 동선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 영화가 욕망을 심고, 로비가 그 욕망을 받아 계산대로 넘긴다. 아이를 조용하게 만드는 90분과, 그 90분이 끝나는 지점에 놓인 매대가 한 세트로 움직인다.

5.수집이 이 세계의 문법이다. 티니핑 캐릭터는 140종을 넘는다. 하츄핑은 '사랑의 티니핑', 나머지는 저마다 다른 감정과 역할을 맡는다. 하나를 사면 다음 하나가 비어 보이도록 짜여 있다. 시리즈 제목부터가 '캐치! 티니핑', 잡으라는 명령형. 포켓몬(Pokémon)이 30년 전에 완성한 '다 모아라'의 문법을, 감정 이름을 붙인 분홍 캐릭터로 다시 깐 것.

6.그럼 왜 이게 먹히나. 이 콘텐츠가 파는 건 아이의 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다. 여름방학, 집에서 아이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부모에게 90분의 정적은 값이 매겨지는 상품. 어른 표 두 장에 아이 표를 더해도 대작 한 편 값이고, 그 사이 부모는 냉방이 되는 어둠 속에 앉아 쉰다. 티켓값은 보육의 시급으로 환산되는 순간 싸진다.
7.아이 쪽 욕망은 다른 데서 온다. 화면 속 캐릭터가 손에 잡히는 물건이 될 때, 아이는 이야기를 소유했다고 느낀다. 감정마다 이름이 붙어 있으니 '사랑'을 갖고 싶으면 하츄핑을 사야 한다. 브랜드가 감정을 캐릭터로 상표화하면, 그 감정을 원하는 마음이 곧 구매 동기로 바뀐다. 아이는 인형을 사는 게 아니라 스크린에서 본 장면을 사 온다.

8.티켓은 미끼에 가깝다. 아동 관람가 애니 표는 보통 1만 원 안팎, 극장과 배급사가 이를 나눠 갖고 나면 제작사 몫은 얇다. 진짜 매출은 완구에서 난다. 피규어 하나가 8000원에서 1만 원, 여기에 궁전 세트는 5만 원, 현대차와 손잡은 콜라보 자동차 세트는 소비자가 6만2500원이다. 표 한 장 값으로는 캐릭터 하나를 겨우 사고, 세계를 채우려면 계속 사야 한다.
표 한 장 vs 완구 한 세트 · 어디서 회수하나
9.완구 옆에는 로열티가 붙는다. 캐릭터를 빌려주고 받는 수수료다. 티니핑은 유통과 식음료, 패션과 게임, 공간까지 손을 뻗쳤다. 현대차와 자동차 굿즈를 냈고, 걸그룹 에스파(aespa)와 손잡아 어른 지갑도 겨눴다. 캐릭터 하나를 잘 키우면, 그 캐릭터가 남의 상품 위에 얹혀 돈을 벌어 온다. 완구는 직접 만들어 팔고, 로열티는 남이 만든 물건에서 떼 온다.

10.여기서 반전이 나온다. 캐릭터는 이렇게 잘 팔리는데, 이걸 만든 SAMG엔터테인먼트의 손익은 오래 적자였다. 회사는 2020년 이후 영업적자를 냈고, 2023년 9월 분기 뒤로도 적자가 이어졌다. 완구를 남의 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팔겠다며 직접 유통으로 돌린 물류비, 오프라인 사업을 벌이며 늘어난 인건비와 광고비가 이익을 갉았다. 한 분기에 잡힌 파생금융상품 평가손실만 47억 원.
캐릭터는 대박, 손익은 적자 · 왜 갈리나 (개념)
11.그래서 극장판은 손익을 되돌리는 지렛대이기도 하다. 1편이 124만을 모은 뒤, 회사의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쌓여 있던 완구 재고가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분기 실적에서는 매출이 크게 뛰고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선 신호도 잡혔다. 영화가 새 캐릭터를 광고하고, 그 광고가 창고의 완구를 밖으로 밀어낸다. 90분짜리 필름이 창고의 재고를 실어 나른다. 신제품 발표회이자 재고 처리장.

12.이 모델이 선 자리는 낯설지 않다. 캐릭터로 세계를 짓고, 그 세계의 조각을 완구로 파는 방식은 포켓몬과 디즈니(Disney)가 수십 년 앞서 닦아 놨다. 영화는 광고이고 완구는 매출인 구조, 이야기는 무료 샘플이고 굿즈가 본품인 구조. 국산 캐릭터가 이 문법을 제 것으로 소화해 극장 흥행과 완구 매대를 함께 돌린 사례는 흔치 않았다. 티니핑은 그 드문 성공에 든 이름.
13.다만 그 그늘도 같이 왔다. 디즈니가 큰돈을 버는 자리가 어디였나. 완구 공장이 아니라 캐릭터를 빌려주는 라이선스 창구다. 만드는 쪽은 원가와 재고와 물류를 짊어지고, 빌려주는 쪽은 위험 없이 수수료만 챙긴다. 캐릭터는 대박인데 회사가 적자였던 그 간극이 정확히 여기다. IP 사업의 돈은 물건을 만드는 손이 아니라, 그 물건 위에 이름을 얹는 권리에서 더 크게 난다.

14.극장판 한 편이 예매 1위로 문을 열었고, 2년 전 형은 124만을 모았다. 그런데 그 캐릭터를 만든 회사의 장부는 오래 빨간색이었다. 완구가 벌어들인 돈을, 그 완구를 직접 팔겠다고 쥔 유통 비용이 덮었기 때문. 캐릭터 하나로 사업을 세울 때 먼저 걸리는 건 캐릭터가 뜨느냐가 아니다. 뜬 다음에 그 물건을 누가 만들고 누가 파느냐, 그 길목의 어디를 쥐느냐다. 콘텐츠는 앞에서 빛나고, 손익은 뒤의 물류에서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