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의 문구 회사 하이타이드가 진구마에에 세 개 층짜리 매장을 열었다. 자사 상품 옆에 남의 회사 문구를 놓고, 출시 전 시제품을 먼저 꺼내 보이고, 도쿄 사무실을 그 건물 지하로 옮겼다. 매장이 판매대이면서 개발실 노릇까지 하는 구조다.
1.후쿠오카(福岡)의 문구 회사 하이타이드(HIGHTIDE)가 8월 29일 도쿄 시부야구 진구마에(神宮前) 5초메에 플래그십 HIGHTIDE LAB-TYO를 열었다. 시부야와 하라주쿠, 아오야마 사이 골목에 선 건물로, 판매층 둘 위에 워크숍 층 하나를 얹었다. 영업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 회사가 도쿄에 처음 낸 플래그십.
2.하이타이드의 시작은 1994년 후쿠오카, 수첩 한 권. 지금은 2,500개가 넘는 상품을 만들어 일본 전국 1,000곳 넘는 매장에 도매로 낸다. 생활잡화 체인 로프트(ロフト)와 핸즈(ハンズ), 서점 마루젠 준쿠도(丸善ジュンク堂)가 주요 거래처로 이름을 올린다.
3.설계는 Landscape Products. 길에서 보면 회색 콘크리트 벽에 큰 유리창이 하나 뚫려 있고, 아트디렉터 히라바야시 나오미(平林奈緒美)가 그린 원형 로고가 그 유리에 흰 선으로 붙었다. 안에서는 층이 반 층씩 엇갈려 올라간다. 계단 몇 단을 오르면 다음 바닥이 나오고, 위아래 진열대가 비스듬히 함께 눈에 들어온다.

4.바닥은 짙은 나무, 벽 한 면은 검은 철제 선반이 천장까지 칸을 나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녹색 커팅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가위와 커터 칼, 마커를 눕혀 놨다. 매트마다 자 눈금이 찍혀 있어, 물건이 진열품이라기보다 쓰다 만 공구처럼 놓인다. 손님이 먼저 들여다보는 건 상품이 아니라 남의 작업대.


5.입구 쪽 층에는 자사 브랜드 셋, Penco와 nähe, New Retro를 모았다. Penco는 미국에서 찾은 펜 한 자루에서 출발한 브랜드로, 알루미늄 몸통의 일본산 드래프팅 펜슬이 2,970엔, A4 클립보드가 770엔. 다른 층에는 남의 회사가 오래 만들어 온 문구가 섞이고, 요요기하치만(代々木八幡)의 헌책방 Hi Bridge Books가 고른 책도 꽂혔다.

6.회사가 꼽은 새 시도는 셋. 자사 제품 옆에 다른 회사 제품을 나란히 놓고, 출시 전 시제품과 샘플을 이 매장에서 먼저 보여 주고, 매장에서 들은 말을 곧장 상품 개발로 돌린다. 그 말을 가까이서 들으려는 듯 에비스(恵比寿)에 있던 도쿄 사무실도 이 건물 지하로 내려왔다. 손님이 시제품을 만지는 층 바로 아래가 상품을 짜는 직원들의 책상.

7.맨 위 3층은 판매층이 아니다. 창작자와 미술가가 워크숍과 팝업을 여는 방이고, 회사는 이곳을 「창작과 발상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소개한다. 개점에 맞춰 DIGAWEL의 디자이너 니시무라 고헤이(西村浩平)가 노트 괘선을 옮긴 Penco 협업 셔츠 3가지를 만들었고 직원 제복도 그가 맡았다. 셔츠는 이 매장 한정이고 가격은 모두 2만 9,700엔.
8.문구는 큰돈 없이 좋은 물건을 손에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이다. 하이타이드는 인터뷰에서 비싸지 않은 물건을 손에 들고 마음이 들뜨는 순간을 이 일의 재미로 꼽았다. 3,000엔이 안 되는 펜 한 자루는 큰 결심 없이 사는 물건이면서, 매일 손에 쥐는 물건이기도 하다.
9.후쿠오카 본점 손님의 8할은 관광객. 해외 여행 안내서에 실릴 만큼 알려진 덕인데, 회사는 진구마에 매장도 동네 손님만이 아니라 일본을 찾는 외국인을 겨냥한다고 밝혔다. 짐 부피를 거의 안 먹고 돌아가서도 매일 꺼내 쓰는 기념품으로 펜과 노트만 한 게 있을까.

10.시장 전체는 줄고 있다. 야노경제연구소(矢野経済研究所)에 따르면 2024년도 일본 문구·사무용품 시장은 3,885억 엔으로 1년 전보다 0.9% 작아졌다. 종이 제품과 사무용품이 빠지는 동안 늘어난 건 필기구 하나. 회사가 사 주던 소모품은 줄고 개인이 골라 사는 펜은 버틴 그림.
11.하이타이드의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다. 도매로 넘기면 회사가 받는 돈은 보통 소매가의 50~60% 선이다(업계에서 흔한 납품 비율로 잡은 추정). 세금을 뺀 2,700엔짜리 드래프팅 펜슬이면 도매로는 1,350~1,620엔이 들어오고, 직영점에서 팔면 2,700엔이 다 회사 몫이다. 한 자루에 1,080~1,350엔이 더 들어온다(추정).
12.그 차액으로 매장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음식점 점포 중개 사이트 飲食店ドットコム가 집계한 메이지진구마에역 주변 점포 평균 임대료는 한 평에 월 4만 8,569엔. 펜슬 한 자루 차액을 1,200엔으로 잡으면 한 평 월세에 40자루가 든다(추정). 매장 면적은 공개되지 않았고, 3층은 처음부터 파는 층이 아니다.

13.사무실을 지하로 들인 건 그 계산의 다른 쪽. 에비스 사무실 임대료가 장부에서 빠지고, 위층 일손이 모자라면 계단 하나 아래에 직원이 있다는 것도 덤. 저녁 6시에 끝나는 영업시간도 사무실의 하루와 겹친다. 2만 9,700엔짜리 셔츠는 펜슬 10자루 값이라, 한정품 몇 장이 팔리는 날은 객단가가 크게 뛴다.

14.문구를 만드는 회사가 매장을 모임 자리로 쓴 앞선 예는 있다. 트래블러스 노트를 만드는 회사는 2013년 나카메구로(中目黒)에 TRAVELER'S FACTORY를 열고 노트 한 권을 중심으로 손님을 모았다. 긴자의 이토야(伊東屋)는 반대로 2015년 12개 층짜리 G.Itoya로 다시 지어 남의 회사 문구를 층마다 판다. 하나는 자기 물건만, 다른 하나는 남의 물건만.
15.하이타이드는 그 둘 사이에 섰다. 자사 브랜드를 앞에 걸되 남의 문구와 헌책을 같이 꽂고, 아직 나오지 않은 물건은 팔지 않고 보여 준다. 매장 이름에 붙인 LAB는 그 일을 가리키는 말. 시제품 앞에서 손님이 보인 반응이 다음 해 1,000곳 거래처 매대에 오를 상품을 정한다면, 이 매장의 값은 하루 매출보다 개발비 쪽에서 매겨진다. 대신 거래처 입장에서는 신상품을 직영점보다 늦게 보는 구조가 생긴다.

16.도매처 1,000곳을 둔 후쿠오카 문구 회사가 진구마에에 세 개 층 매장을 열고 도쿄 사무실까지 그 지하로 옮겼다. 세금 뺀 2,700엔 펜슬 한 자루를 직접 팔면 도매로 넘길 때보다 1,000엔 남짓 더 들어온다(추정). 국내 문구 회사가 같은 매장을 내면 어디서 먼저 걸릴까. 거래처다. 국내 디자인 문구는 대형 서점 문구 매장과 온라인 편집숍에 판매를 기대는 경우가 많아, 시제품을 자기 매장에서 먼저 꺼내는 순간 납품처와 출시 순서를 다시 맞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