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헨트의 디자인 미술관이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옛 건물 세 채 사이 빈터에 새 동을 세웠고, 공사비는 2,180만 유로. 표가 필요한 건 옛 건물 쪽 전시실뿐이다. 새 동과 안마당은 누구나 그냥 들어간다.
1.2026년 10월 3일, 벨기에 헨트(Gent)의 Design Museum Gent가 4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옛 건물 세 채 사이에 새 동 하나를 세웠는데, 이름은 딩(DING), 연면적 2,135㎡. 옛 건물까지 합친 연면적은 8,632㎡로, 벨기에에서 가장 큰 디자인 미술관이 됐다.
2.리노베이션과 신축을 합친 비용은 2,180만 유로, 1유로 1,600원으로 치면 약 349억 원. 헨트시가 1,380만 유로, 플랑드르 정부가 800만 유로를 냈다. 설계자를 고른 건 2018년 플랑드르 정부 건축가(Vlaams Bouwmeester)가 연 공모였고, 2019년 5월 23일 런던의 Carmody Groarke와 벨기에의 RE-ST, ATAMA가 낸 안이 뽑혔다. 공모 때 적어 둔 새 동 공사비 예산은 551만 5,000유로(부가세 별도)였다.
3.이 미술관은 원래 흩어진 건물 묶음이었다. 길가의 18세기 저택 호텔 드 코닝크(Hotel de Coninck)에 전시실 480㎡, 1992년 건축가 빌리 페르스트라터(Willy Verstraete)가 붙인 현대 동에 1,900㎡, 그리고 사무동 레텐 하우스(Huis Leten). 그 사이에는 무너져 가는 남쪽 복도와 빈터가 있었다. 새 동이 앉은 대지는 372㎡. 설계팀은 도심 한가운데 남은 빈 땅 한 조각에 세 건물을 잇는 길을 전부 몰아넣었다.


4.좁은 땅이라 기능을 층으로 쌓았다. 지하는 작품 반입과 보관, 1층은 매표소와 상점을 겸한 도시의 방(Stadskamer), 그 위로 강연장, 공방 두 칸, 임시 전시실과 테라스, 꼭대기에 도시를 내려다보는 로프트가 차례로 앉는다. 옛 저택 처마선 위로 올라간 건 두 개 층뿐이다. 길에서 보면 옆집 지붕 높이에서 한 번 물러선 탑.


5.겉은 하얀 벽돌이다. 헨트의 옛 군수 창고 Het Arsenaal에 공장을 차리고 8만 2,000장을 찍었는데, 재료의 63%가 반경 8km 안에서 나온 폐기물이다. 부순 콘크리트와 도자기, 유리, 차 앞유리까지 섞었다. 가마에 굽지 않고 석회로 천천히 굳혀서, 흔한 벨기에 점토 벽돌보다 생산 과정의 탄소가 3분의 1이라고 설계팀은 밝힌다. 벽돌 크기는 옆 저택 벽돌 치수 그대로.

6.정문은 앤트워프 스튜디오 Unfold가 3D 프린터로 뽑은 알루미늄 문. 표면이 커튼처럼 주름져 있어서 흰 벽돌 벽 한가운데 천을 걸어 둔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CLT(구조용 집성판)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고, 벽은 희고 바닥은 나무다. 단열재는 대마, 1층 계단 옆 굵은 흙기둥은 이 현장에서 나온 공사 폐기물을 다져 세웠다.


7.표가 필요한 곳은 옛 건물 쪽 전시실뿐이다. 26세 이상 15유로, 19~25세 7.5유로, 헨트 주민 10.5유로, 18세 이하는 무료. 새 동 전체와 안마당은 표가 필요 없다. 1층 도시의 방에서 열리는 워크숍과 임시 전시, 상점과 카페는 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미술관이 1층을 거리에 내준 구조다.
8.왜 굳이 비싼 새 동을 무료로 열었을까. 문을 닫기 전 이 미술관의 관람객은 2019년 7만 2,749명, 그 전 몇 해 평균이 7만 5,000명이었다. 같은 해 몇 블록 떨어진 중세 성 그라벤스테인(Gravensteen)에는 45만 4,693명이 들었다. 관광객은 미술관 앞 골목을 지나 성으로 간다. 무료 1층은 그 행인을 한 번 안으로 들이는 문턱이다.

9.예전 미술관은 들어가면 길을 잃는 곳이었다. 1992년 동 안에는 층 사이 빈 공간과 장애인용 승강 발판이 남아 있었고, 세 건물을 잇는 길이 끊겨 있었다. 이번 공사는 1992년 동의 빈 공간을 층마다 CLT 판으로 메웠고, 새 동의 중앙 승강기가 모든 층을 묶는다. 케빈 카모디(Kevin Carmody)는 이것을 안마당을 둘러싼 네 건물의 앙상블이라고 불렀다.
10.표로 이 돈을 갚을 수 있을까. 관람객 7만 5,000명이 전부 정가 15유로를 낸다고 쳐도 1년에 112만 5,000유로, 약 18억 원. 투자액 2,180만 유로를 갚으려면 19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 실제로는 18세 이하 무료와 할인이 있으니 표 수입은 이 상한보다 한참 아래에서 멈춘다.
11.연면적으로 나누면 ㎡당 2,525유로, 약 404만 원. 옛 건물 6,400㎡를 고친 비용과 새 동 2,135㎡를 지은 비용이 섞인 평균이다. 전시 면적은 2,380㎡에서 3,700㎡로 55% 늘었다. 늘어난 1,320㎡로만 나누면 ㎡당 1만 6,500유로. 새 동 여섯 개 층 가운데 전시만 하는 층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길과 강연장, 공방이다.
12.눈에 안 보이는 데도 돈이 들었다. 기술 설계를 맡은 Sweco는 난방과 냉방을 한 번에 돌리는 저소음 4방향 공기열 히트펌프를 넣고 화석연료를 걷어 냈다. 온도와 습도를 예전보다 고르게 잡게 되면서, 그동안 조건이 안 맞아 못 빌려 오던 예민한 작품을 빌릴 수 있게 됐다고 Sweco는 설명한다. 대여전을 열 수 있는 미술관과 못 여는 미술관은 전시 일정표의 길이가 다르다.
13.이 미술관의 뿌리는 1903년 산업디자인과 장식미술 애호가들이 만든 단체. 1922년 지금의 저택으로 들어왔고, 1992년 현대 동을 붙였다. 미술관은 새 동을 1993년부터 기다려 온 마지막 조각이라고 소개한다. 2018년 공모에는 다섯 팀이 올랐고, 그중에는 Office Kersten Geers David Van Severen과 런던의 Assemble도 있었다.

14.새로 지은 건 전체 연면적의 4분의 1뿐. Carmody Groarke는 탄소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남기고, 고치고, 필요한 만큼만 덧붙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옛 건물 쪽에서는 큰 전시실을 작은 방 여러 개로 쪼갰다. 미술관 전체는 커졌는데, 옛 전시실 하나하나는 더 작아졌다.
15.소장품 2만 4,000점 가운데 상설 전시에 나온 건 500점이고, 그중 40%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물건. 10월 3일부터 11일까지 헨트 시내 곳곳에서 행사 120개가 열리고, 상점과 호텔 33곳이 쇼윈도를 내준다. 개막을 미술관 담 안에 가두지 않고 시내로 흩어 놓은 일정.
16.헨트시와 플랑드르 정부는 2,180만 유로로 372㎡ 빈터에 새 동을 쌓고 옛 건물 세 채를 고친 뒤, 새 동은 표 없이 열었다. 표 수입을 정가로 꽉 채워도 1년 112만 5,000유로라, 이 돈은 처음부터 표로 갚을 계산이 아니었다. 국내 구도심에서 같은 일을 하면 먼저 걸리는 건 높이다. 국가유산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는 증축 높이가 앙각 기준에 묶인다. 그 기준을 넘겨 처마선 위로 두 개 층을 올리는 결정은 지자체 손을 떠나 국가유산청의 현상변경 허가로 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