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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을 통째로 무대에 올렸다 · 웨스트엔드 공연 장면. 세트는 펍 하나뿐이고 장면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Mark Douet / 1883 Magazine
술집을 통째로 무대에 올렸다웨스트엔드 공연 장면. 세트는 펍 하나뿐이고 장면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Mark Douet / 1883 Magazine
데일리 컬처

객석 대신 카운터에 앉히고, 맥주는 공짜로 준다 (콰이어 오브 맨)

2026.08.08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The Choir of Man)이 9월 18일 대학로에서 개막한다. 무대는 '더 정글(The Jungle)'이라는 이름의 펍 하나. 객석 문보다 술집 문이 먼저 열린다. 공연 한 시간 전에 관객이 무대 위 바로 올라가 생맥주를 받고, 값은 이미 티켓에 들어 있다. 490석짜리 중극장에서 파는 100분.

1.신시컴퍼니가 들여왔다. 9월 18일부터 2027년 1월 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 오른다. 객석 490석, 러닝타임 100분, 인터미션 없음. 곡은 열여섯 곡 안팎이고 처음 듣는 노래가 거의 없다. 다섯 차례 공개 오디션으로 배우 19명을 뽑았고 이충주·김지철·임준혁이 이름을 올렸다. 이 제작사가 마틸다 이후 8년 만에 들여온 라이선스 신작.
2.원작은 2017년 8월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출발했다. Nic Doodson과 Andrew Kay가 만들었고, 무대에는 실제로 술을 따를 수 있는 바가 붙어 있다. 개막 한 시간 전에 그 펍이 문을 열면 관객이 무대로 올라가 배우들과 섞여 파인트를 받는다. 시작한 뒤에도 배우들이 맥주와 과자를 객석으로 계속 건넨다고 제작사는 안내한다.
바텐더로 시작해 배우가 된다 · 웨스트엔드 무대의 한 장면. 배우들은 개막 전 한 시간 동안 바텐더로 먼저 관객을 맞는다. ⓒMark Douet / West End Theatre
바텐더로 시작해 배우가 된다웨스트엔드 무대의 한 장면. 배우들은 개막 전 한 시간 동안 바텐더로 먼저 관객을 맞는다. ⓒMark Douet / West End Theatre
3.도면으로 보면 이 작품은 놀랄 만큼 가볍다. 회전무대가 없고 플라이 시스템으로 내리는 배경도 없다. 장면이 바뀌어도 세트는 그대로 서 있고 조명과 사람의 위치만 움직인다. 배우 아홉이 노래하면서 기타와 드럼, 바이올린까지 직접 연주하고 라이브 밴드가 붙는다.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이 세트 전환에 쏟아붓는 돈. 이 작품 예산에는 그 항목이 아예 없다.
'더 정글'의 원본 · 영국 그레이트야머스(Great Yarmouth)의 오래된 펍 바. 이런 술집을 그대로 무대 위에 세운다. ⓒWikimedia Commons
'더 정글'의 원본영국 그레이트야머스(Great Yarmouth)의 오래된 펍 바. 이런 술집을 그대로 무대 위에 세운다. ⓒWikimedia Commons
4.개막 한 시간 전 극장에 들어서면 로비가 비어 있다. 사람이 전부 무대 위에 서 있기 때문. 플라스틱 파인트 컵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고, 아직 조명이 다 켜지지 않은 무대 바닥에서 발소리가 울린다. 배우는 아직 배역이 아니라 바텐더고, 관객은 아직 관객이 아니라 손님이다. 그러다 손님 중 하나가 노래를 시작한다. 극장이 관객에게 오래 요구해 온 것, 조용히 앉아 기다리기. 그 한 시간을 통째로 들어낸 자리.
술을 파는 창을 뒤에서 앞으로 옮겼다
회색이 극장이 술을 파는 시간대다 보통의 대극장 뮤지컬 로비 30분 1막 인터미션 2막 술은 20분짜리 인터미션에서 판다 콰이어 오브 맨 무대 위 바 60분 100분 · 인터미션 없음 술은 개막 전 한 시간에 몰리고, 값은 티켓에 들어 있다
F&B가 사라진 게 아니라 앞으로 당겨졌다. 그 한 시간에 관객은 이미 무대 위에 올라가 있다.
5.세트가 하나라서 이 작품은 어디든 들어갔다. 에든버러의 작은 방에서 시작해 이듬해 애들레이드 프린지에서 음악 부문 상을 받았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워싱턴 케네디센터를 거쳤다. 2018년 노르웨이지안 크루즈 라인의 Norwegian Escape에 상설로 올라갔고 이듬해 Norwegian Encore가 이어받았다. 2021년 6월에는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처음 투어를 재개한 뮤지컬이 됐고, 클리블랜드 Playhouse Square의 재개관작으로 섰다.
출발점은 거리 축제였다 ·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2017년 8월 이 축제의 작은 공연장 하나에서 시작했다. ⓒWikimedia Commons
출발점은 거리 축제였다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2017년 8월 이 축제의 작은 공연장 하나에서 시작했다. ⓒWikimedia Commons
배에 실리는 뮤지컬 · 노르웨이지안 앙코르(Norwegian Encore). 세트가 가벼운 덕에 이 작품은 크루즈선 극장에 상설로 들어갔다. ⓒWikimedia Commons
배에 실리는 뮤지컬노르웨이지안 앙코르(Norwegian Encore). 세트가 가벼운 덕에 이 작품은 크루즈선 극장에 상설로 들어갔다. ⓒWikimedia Commons
6.뮤지컬을 안 보던 사람이 이 표를 산다.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은 관객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낯선 이야기를 따라올 것, 그리고 두 시간 반을 앉아 있을 것. 콰이어 오브 맨은 둘 다 요구하지 않는다. 줄거리는 펍에 모인 아홉 남자의 신변잡기고, 노래는 이미 아는 곡이다. 극장에 처음 오는 사람이 겁먹을 자리. 설계 단계에서 지웠다.
7.술집이 파는 건 술이 아니라 자리다. 같은 맥주를 편의점에서 반값에 사서 집에서 마실 수 있는데도 사람이 펍에 가는 이유가 그것. 이 작품은 그 자리를 무대 위에 옮겨 놓고 표를 받는다. 무대에 올라가 배우와 잔을 부딪친 관객은 그날 밤의 이야깃거리를 하나 들고 나가고, 그 이야기가 다음 관객을 데려온다.
아홉 명이 노래하고 연주한다 ·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잡는다. 아카펠라와 합창, 라이브 밴드가 한 무대에서 섞인다. ⓒMark Douet / 1883 Magazine
아홉 명이 노래하고 연주한다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잡는다. 아카펠라와 합창, 라이브 밴드가 한 무대에서 섞인다. ⓒMark Douet / 1883 Magazine
8.100분을 인터미션 없이 밀어붙이는 것도 계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식음료 매출은 대부분 20분짜리 인터미션에서 나온다. 이 작품은 그 창을 없애고 개막 전 한 시간으로 옮겼다. 술을 팔 시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앞으로 당겨진 것이고, 그 사이 관객은 이미 무대 위에 서 있다.
350석에서 3년을 돌았다 · 런던 Arts Theatre. 1927년 문을 연 지하 객석 구조의 웨스트엔드 소극장으로, 2021년 10월부터 이 작품의 상주 극장이 됐다. ⓒWikimedia Commons
350석에서 3년을 돌았다런던 Arts Theatre. 1927년 문을 연 지하 객석 구조의 웨스트엔드 소극장으로, 2021년 10월부터 이 작품의 상주 극장이 됐다. ⓒWikimedia Commons
9.490석, 9월 18일부터 1월 3일까지 108일. 주 8회로 잡으면 120회 안팎, 만석 기준 좌석은 6만 석 정도가 나온다. 대학로 중극장 라이선스 작품의 유료 점유율을 65~70%로 보면 관객 4만 명 선. 객단가를 6만 5천 원으로 치면 티켓 매출 26억 원 안팎이 된다. 제작사는 국내 좌석 가격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위 숫자는 대학로 중극장 벤치마크로 잡은 추정.
10.공짜 맥주의 값은 그 옆에서 초라해진다. 생맥주 한 잔의 원가는 국내 도매가로 1,500원에서 2,000원 사이. 회당 백 잔을 따른다 쳐도 하루 20만 원이고 120회면 2,400만 원이다. 티켓 매출 26억의 1%가 안 된다. 관객 한 사람이 다음 날 친구에게 "무대에 올라가서 맥주를 받았다"고 말하게 만드는 값이 이 정도.
11.보통 라이선스 뮤지컬은 세트와 개런티를 회수하려고 1,200석 이상 대극장으로 간다. 이 작품은 회수할 세트가 거의 없으니 작은 극장에서도 셈이 선다. 웨스트엔드에서도 350석 안팎의 소극장 Arts Theatre에 들어앉아 2021년 10월부터 3년 넘게 돌았고, 티켓은 43파운드부터 시작하되 당일 남는 좌석은 25파운드까지 내려간다. 350석에서 3년을 버틴 작품이 490석에서 못 버틸 이유가 있을까.
이 작품이 들어앉은 객석 크기
단위 = 석. 아래로 갈수록 큰 극장이다 런던 Arts Theatre 약 350 우리투자증권홀 (이번 공연) 490 우리카드홀 (같은 건물 대극장) 935 국내 대극장 라이선스 통상 1,200+
세트 전환이 없으니 회수해야 할 고정비가 작다. 같은 건물의 935석 대극장을 놔두고 490석에 들어간 이유.
12.들어가는 극장에도 사연이 있다. NOL 씨어터 대학로는 원래 대학로뮤지컬센터라는 이름으로 2014년에 문을 열었다가, 공사비 분쟁에 걸려 10년 넘게 불이 꺼져 있던 건물이다. 놀유니버스가 이걸 임대해 올해 1월 30일 다시 열었다. 지하 3층 지상 5층에 연면적 1,584평. 원래 세 개였던 극장을 두 개로 줄이고 좌석 간격을 넓혀 935석과 490석으로 다시 짰다.
12년 만에 불이 들어왔다 · NOL 씨어터 대학로. 공사비 분쟁으로 방치됐던 옛 대학로뮤지컬센터를 고쳐 올해 1월 30일 개관했다. ⓒ뉴시스
12년 만에 불이 들어왔다NOL 씨어터 대학로. 공사비 분쟁으로 방치됐던 옛 대학로뮤지컬센터를 고쳐 올해 1월 30일 개관했다. ⓒ뉴시스
13.두 홀의 이름이 우리카드홀과 우리투자증권홀이다. 극장 이름을 금융사에 판 것. 그리고 이 극장을 운영하는 놀유니버스는 NOL티켓, 옛 인터파크 티켓을 쥔 회사다. 예매 수수료만 받던 플랫폼이 극장을 직접 빌려 매출 전체가 지나가는 자리로 내려왔다. 2026년 상반기 국내 공연 티켓 판매액은 8,094억 원, 그중 뮤지컬과 대중음악이 80%를 넘는다.
소극장이 밀집한 동네 · 서울 대학로. 소극장 밀도가 국내에서 가장 높지만, 1,000석급 대극장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Wikimedia Commons
소극장이 밀집한 동네서울 대학로. 소극장 밀도가 국내에서 가장 높지만, 1,000석급 대극장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Wikimedia Commons
14.다만 소극장 롱런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웨스트엔드 공연은 2024년 12월 31일 한 번 닫았다가 이듬해 3월 다시 열었고, 올해 3월부터는 38주짜리 영국 순회로 나갔다. 한자리에서 계속 파는 대신 도시를 옮겨 가며 파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같은 관객에게 두 번 팔기가 쉽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잔을 부딪치고 나간 관객이 다음 관객을 부른다 · 2025년 3월 웨스트엔드 재개막에 맞춰 공개된 무대 사진. 이 작품의 장치 하나가 입소문의 재료가 된다. ⓒMark Douet / West End Theatre
잔을 부딪치고 나간 관객이 다음 관객을 부른다2025년 3월 웨스트엔드 재개막에 맞춰 공개된 무대 사진. 이 작품의 장치 하나가 입소문의 재료가 된다. ⓒMark Douet / West End Theatre
15.세트 하나짜리 쇼가 에든버러의 작은 방에서 출발해 크루즈선과 웨스트엔드를 돌아 대학로 490석에 앉았다. 회전무대와 전환에 안 쓴 돈을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리는 데 썼고, 그 값은 회당 20만 원 남짓이다. 국내에서 먼저 걸리는 건 그 맥주다. 공연장에서 술을 따르려면 휴게음식점 영업신고가 따로 필요하고, 객석 안 음식물 반입을 막아 온 관행도 있다. 무대 위 바가 어디까지 그대로 살아남는지는 개막 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데일리 컬처 #023 · 2026.08.08 ·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The Choir of Man)은 2026년 9월 18일부터 2027년 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공연한다. 제작 신시컴퍼니, 러닝타임 100분, 인터미션 없음. 예매는 7월 14일 시작됐다. 티켓 매출과 맥주 원가는 공개 수치가 없어 대학로 중극장 벤치마크로 잡은 추정이며, 국내 좌석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 출처는 각 캡션에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