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오사카에서 그림 12점짜리 전시가 문을 열었다. 표는 전 회차를 추첨으로 팔았고 지금은 살 방법이 없다. 관람료 3,000엔, 우리 돈 2만 8,000원쯤 된다. 그림 한 점당 250엔꼴이니 같은 그림이 왔던 2012년 전시의 여덟 배. 그런데 줄이 가장 긴 곳은 그림 앞이 아니라 계산대다.
1.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大阪中之島美術館) 5층 전시실. 회기는 8월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38일이고 그 사이 쉬는 날은 없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에서 온 17세기 회화 12점이 걸렸고, 그중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는 2점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초기작 《디아나와 님프들》.
2.관람료는 일반 3,000엔, 고교·대학생 1,500엔, 초중생 500엔. 전 회차가 시간지정 추첨제이고 미술관 창구에서는 당일권을 아예 팔지 않는다. 6월 1일 선행 추첨을 시작으로 8월까지 추가 추첨을 네 번 더 돌렸다. 순회도 없이 오사카에서만 연다.

3.동선을 따라가 보면 12점을 어떻게 38일치 전시로 부풀렸는지가 보인다. 1장부터 6장까지가 역사화·초상화·풍속화·교회 내부·풍경·정물 여섯 갈래로 10점을 나눠 걸고, 거기서 4점이 일본 첫 공개. 그다음이 페르메이르 시어터다. 가로 20m 스크린에 화가의 생애와 시대 배경을 튼다.
4.영상관을 나오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존이 이어진다. 현존하는 페르메이르 37점을 실물 크기 사진으로 뽑아 벽에 붙였다. 진품 2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나머지 35점을 사진으로 먼저 보여주는 구성. 여기서 파는 물건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앞에 서기까지 쌓아 올린 시간이다.

5.마지막 방은 완만한 3단 경사로 바닥을 깎았다. 앞줄이 낮고 뒷줄이 높으니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눈높이를 얻는다. 촬영은 페르메이르 2점에 한해 허용하고 플래시만 막았다. 관람객 후기에 반복해서 나오는 숫자가 하나 있는데, 그림 정면에 서기까지 걸린 한 시간.
6.바닥은 1,700㎡, 천장고 6m. 514평짜리 한 층에 그림이 12점이니 한 점에 140㎡가 돌아간다. 회화 전시치고는 벽이 남아도는 구성이고, 그 남는 벽을 영상과 사진 패널이 메운다. 작품을 적게 빌리고 공간을 넓게 쓰는 쪽이 요즘 대형 순회전의 기본형이 됐다.

7.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그림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이 그림이 일본에 마지막으로 온 해는 2012년, 14년 전. 그때는 도쿄와 고베 두 도시를 돌았지만 이번엔 한 도시에서 38일만 걸린다. 다음이 언제일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태가 그대로 판매 조건이 됐다.
8.문턱은 반대 방향으로 낮췄다. 공식 앰배서더가 미피(Miffy)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림책 토끼를 세워 두고, 어린이용 해설 패널까지 그 얼굴로 붙였다. 입구 앞에는 만화 《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ーレン)》 협업 전시를 따로 세웠다. 서양 회화를 모르는 사람이 표를 살 이유를 두 개 더 만든 것.

9.표값을 과거와 나란히 놓으면 이번 값이 얼마나 센지 보인다. 2012년 마우리츠하위스전은 약 50점에 1,600엔, 2018년 페르메이르전은 약 50점에 2,500엔, 2022년 페르메이르전은 71점에 2,100엔. 한 점당 30엔 안팎에서 움직이던 값이 이번에 250엔으로 올라섰다.
그림 한 점당 관람료
10.그래도 표가 남지 않는다. 주간 입장은 9시 30분부터 16시까지 30분 간격 14회, 야간 연장일은 19시까지 회차를 더 연다. 정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하루 4,500명 선으로 잡으면 회기 전체가 17만 명 안팎. 할인권을 섞은 실효 단가를 2,800엔으로 보면 입장 수입만 4억 8,000만 엔, 우리 돈 45억 원 규모가 된다. 정원이 공개된 적 없으니 어디까지나 어림.

11.더 흥미로운 쪽은 물건이다. 굿즈숍은 전시실 출구에 따로 차렸다. 들어가려면 당일 유효한 숍 입장권이 있어야 하고, 계산은 관람을 마친 뒤 한 번뿐이다. 도록 2,600엔에 170쪽, 미피 봉제인형 5,500엔, 네덜란드에서 짠 손뜨개 인형이 4,180엔과 1만 780엔. 티셔츠 1만 8,700엔, 리버서블 재킷 8만 8,000엔까지 올라간다.
12.그래서 이 전시에서 가장 긴 줄은 그림 앞이 아니다. 방문 후기가 전하는 계산 대기는 한 시간 반, 오후에는 세 시간을 넘긴다. 관람 자체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니 물건 사는 시간이 그림 보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1인당 2,000엔만 써도 굿즈 매출이 3억 4,000만 엔, 32억 원. 계산대에서 입장 수입의 3분의 2가 더 나온다.
한 사람이 서 있는 시간
13.표와 물건으로 그만큼 벌면서도 주최 측은 기업 29곳에서 따로 돈을 받았다. 주최가 미술관과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아사히방송TV, 특별협찬이 간사이전력·게이한홀딩스(京阪ホールディングス)·JR서일본·다케나카공무점(竹中工務店) 등 7곳, 일반 협찬이 18곳. 협력에는 KLM네덜란드항공이 들어 있다. 그림을 실어 온 항공사가 곧 협력사라는 뜻. 특별협찬에서 눈에 걸리는 이름은 미키모토(ミキモト)로, 진주 양식으로 시작한 회사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전시에 돈을 댔다.

14.2012년 숫자를 보면 이번 설계의 의도가 더 선명해진다. 2012년 도쿄도미술관의 마우리츠하위스전은 80일 동안 709,260명을 받았다. 하루 8,800명 넘는 규모인데, 그때는 관람료가 1,600엔이었고 회장도 훨씬 컸다. 사람을 더 넣어 돈을 버는 방식에서 사람을 덜 넣고 한 사람에게 더 받는 방식으로 갈아탄 것이다.

15.빌려준 쪽 계산도 함께 봐야 한다. 마우리츠하위스가 가진 페르메이르는 3점인데 이번에 보낸 것은 2점. 가장 유명한 《델프트 풍경》은 헤이그에 남았다. 대표작을 전부 비우면 본관을 찾을 이유가 사라지니, 대여는 언제나 절반만 내주는 거래가 된다.


16.38일 동안 그림 12점을 걸어 두고 입장으로 45억 원, 물건으로 32억 원을 만드는 판이 지금 오사카에서 돌아가고 있다. 국내에서 이런 전시를 열 때 돈이 새는 자리는 대여료도 보험료도 아니고 계산대다. 계산 대기가 세 시간이 되는 순간 그 줄은 관람 만족도를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전시장은 출구 옆 열 평 남짓한 자리를 굿즈숍에 내주고 끝낸다. 매장 면적과 계산대 수를 관람객 수에서 역산해 잡지 않으면, 가장 돈이 잘 붙는 구간이 그날의 가장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