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홍대에서 사흘짜리 음악 축제가 시작한다. 밴드 64팀이 서고, 무대는 새로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골목에 이미 있던 지하 클럽 열 곳을 사흘만 빌렸다. 3일권은 119,000원인데 이 축제가 실제로 파는 건 표가 아니다. 앞자리에 무료로 앉는 69명이 있고, 그들이 들고 나가는 건 밴드다.
1.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가 9월 4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6일 일요일까지 사흘. 2012년 서교동에서 시작했으니 올해가 14년째. 잔다리는 서교동의 옛 이름이자 작은 다리를 가리키는 말.
2.무대는 여섯 곳. 무신사 개러지·Club FF·FREEBIRD·SPACE BRICK·PRISM HALL·VEL.R이 공식 쇼케이스를 나눠 맡는다. 밤이 늦으면 SENGGI STUDIO·CHANNEL 1969·DEPARTMENT.EN·STRANGE FRUIT 네 곳이 애프터파티를 받아 열 곳이 된다. 전부 걸어서 오간다.

3.라인업은 64팀. 국내가 37팀이고 나머지 27팀이 해외에서 온다. 국적은 16개국으로, 대만·태국·인도네시아에서 포르투갈·에스토니아·세르비아까지 흩어져 있다. 이름을 아는 팀이 몇이나 될까.

4.첫날 밤 무신사 개러지 무대는 프랑스 팀 셋이 두 시간을 채운다. 크리스털 머리(Crystal Murray)와 Treaks, Meule.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40년 되는 해다. 주최는 잔다리 페스타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5.그 무신사 개러지는 잔다리로 32번지 서문빌딩 지하 1층에 있다. 계단을 내려가 방음문을 밀면 소리가 몸에 먼저 닿고, 한 팀이 끝나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다음 골목으로 걷는다. 관객을 한 자리에 묶어 두지 않는 것이 이 축제의 설계. 여섯 무대가 같은 시간에 돌아가도 객석이 통째로 비지 않는 이유가 그 걷는 거리에 있다.

6.이 동네에서 무대를 유지하는 값은 싸지 않다. 2021년 한 매체가 홍대 일대 공연장 임대료를 월 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사이로 적었다. 같은 기사에 나온 브이홀은 임대료와 관리비로 매달 1,600만 원을 냈고, 그 무렵 이 일대에서 문을 닫은 공연장이 열 곳쯤 된다.
7.축제는 그 값을 내지 않는다. 사흘만 빌린다. 위 임대료의 가운데를 잡아 하루치로 나누면 한 곳에 40만 원 남짓이고, 여섯 곳을 사흘 쓰면 750만 원어치의 공간. 500석짜리 공연장 하나를 1년 유지하는 값의 5%가 안 된다.
사흘을 빌리는 값과 1년을 버티는 값
8.표값은 3일권 119,000원에 1일권 66,000원, 청소년 1일권은 10,000원. 지난해 기준이고 파는 데는 29CM와 티켓투더문. 경기도가 여는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이 1일권을 5만 원에 파니 싼 표는 아니다.
9.그런데 이 표를 다 팔아도 64팀이 안 채워진다. 여섯 무대가 같은 시간에 돌아가니 한 시간대에 앉을 수 있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는데, 여섯 곳의 좌석 수는 공개돼 있지 않다. 홍대에서 큰 축에 드는 롤링홀이 500석이니 나머지는 보통 그 아래다. 사흘을 다 합쳐도 티켓 매출은 억 단위 초반에서 멈추는데, 해외 27팀의 항공료와 숙박, 국내외 개런티, 음향과 통역이 전부 그 안에서 나와야 한다.

10.그래서 이 축제의 장부에는 표 말고 다른 줄이 있다. 프랑스대사관 문화과가 올해 프렌치 나이트를 함께 열듯, 해마다 여러 나라의 문화원과 진흥기관이 자국 팀을 실어 보낸다. 자기 나라 밴드를 아시아 시장에 데뷔시키는 값을 그쪽이 내는 구조. 파는 쪽이 아니라 보내는 쪽이 돈을 낸다.

11.표를 산 관객 말고 앞자리에 무료로 앉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공식 사이트에 얼굴을 올린 델리게이트가 69명. 지난해에는 KEXP와 BBC 6 Music의 진행자 잼즈 수퍼노바(Jamz Supernova), Summer Sonic·Clockenflap·Sziget Festival의 부킹 담당자가 왔다. 이 사람들이 사 가는 건 표가 아니라 밴드다.
64팀을 69명에게 보여 주는 사흘
12.실제로 그렇게 됐다. 2024년 이 무대를 거친 이승윤이 체코 Colours of Ostrava에 초청됐다. 재키와 힙노시스 테라피, 팻햄스터 앤 캉뉴는 영국·체코·스페인 페스티벌 무대로 갔다.

13.관객 쪽 계산도 나쁘지 않다. 3일권 119,000원으로 64팀을 보면 한 팀에 1,860원. 아는 이름이 거의 없다는 게 이 표의 약점이면서 값이 이만큼인 이유이기도 하다. 모르는 밴드를 여섯 무대에 흩어 놓고 관객이 직접 골라 다니게 만든 것.

14.표가 아니라 만남을 파는 축제는 오래된 형식이다. South by Southwest가 1987년 오스틴에서 700명으로 시작했고, 업계 사람들이 배지를 사서 들어와 클럽을 돌며 무명 밴드를 봤다. 지금 그 뮤직 배지 한 장은 945달러.

15.오스틴이 그 며칠로 벌어들인 돈은 2024년 3억 7,73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그 행사는 올해 기간을 줄이고 프로그램을 흩었다. 잔다리는 반대로 갔다. 지난해보다 한 달 반을 앞당겨 서울에 미술과 패션 행사가 몰린 주에 붙였고, 해외에서 오는 업계 사람의 비행기표 한 장에 일정이 하나 더 붙는다.

16.오늘부터 사흘, 홍대에서 64팀이 선다. 표를 산 관객이 객석을 채우지만 앞줄에서 수첩을 여는 건 무료로 들어온 델리게이트들이고, 그들이 들고 나가는 건 다음 시즌 라인업. 국내에서 이런 걸 하려 하면 축제 예산보다 평상시가 먼저 걸린다. 여섯 곳을 사흘 빌리는 값은 750만 원인데 그 여섯 곳이 나머지 1년을 버티는 값은 한 곳에 1억 원대다. 그 돈을 대는 건 축제가 아니라 클럽이고, 빌릴 무대가 남아 있어야 사흘짜리 축제가 성립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