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화요일 저녁, 국내에서 객석이 가장 많은 공연장에 지방 시립교향악단이 오른다. 표를 사는 사람은 가격표를 받지 않는다. 넷 중 하나를 자기가 고른다. 얼마를 고르든 앉는 자리는 같다.
1.세종문화회관이 9월 15일 저녁 7시 30분에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세종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객석 3,022석으로 국내 공연장 가운데 가장 크다. 한 해 9회 여는 「누구나 클래식」의 9월 회차이고, 이번 공연의 관람료는 관객이 정한다.
2.고를 수 있는 금액은 1,000원·3,000원·5,000원·1만 원 넷. 어느 쪽을 골라도 좌석 배정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안내한다. 1,000원을 낸 사람이 1만 원을 낸 사람 옆자리에 앉는 구조다.

3.연주할 곡은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영혼의 지배자》 서곡,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의 《교향곡 제5번》. 지휘는 백진현 음악감독, 협연은 클라리넷의 김한. 공연 시간은 130분이라고 안내한다.

4.같은 오케스트라가 나흘 전 대구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9월 11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R석 3만 원에 S석 1만 6천 원, 제일 싼 H석이 1만 원. 지휘자도 같고 곡목도 같으며 대구 쪽 협연자만 프랑스 연주자로 다르다. 대구에서 가장 싼 자리가 서울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비싼 금액과 같은 값.
같은 곡, 나흘 사이 두 도시
5.세종대극장은 3층까지 객석이 올라간다. 3층 뒷줄에 앉으면 지휘자의 등이 손톱만 하게 보이고, 무대에서 올라온 소리가 천장을 한 번 돌아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큰 홀은 위층부터 빈다. 여기서는 그 자리와 1층 앞줄의 가격이 같다.

6.클래식에 처음 가는 사람을 막는 건 가격표가 아니라 그 가격이 맞는지 모른다는 사정이다. 8만 원이 비싼 건지 싼 건지 판단할 근거가 없고, 판단이 안 서면 사지 않는다. 옷이나 밥은 실패해도 몇 만 원이지만, 두 시간짜리 공연은 지루해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손해가 더 크게 느껴진다.

7.관람료 선택제는 그 판단을 통째로 없앤다. 1,000원을 고르면 잘못 산 게 아니고, 1만 원을 고르면 손해 본 게 아니다. 좌석이 금액을 따라가지 않으니 얼마를 냈는지가 옆 사람에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8.더 흥미로운 건 관객이 실제로 낸 금액이다. 2024년에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17,000명이었고, 그중 20%가 넘게 최저 금액보다 높은 쪽을 골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다섯에 하나가 더 낸 것. 1만 원을 고른 관객 100명을 뽑아 커피 쿠폰을 주는 이벤트가 붙어 있긴 하다.
9.그래서 표를 팔아 들어오는 돈은 크지 않다. 2024년과 2025년 두 해 동안 15회 공연에 35,000명이 왔으니 회당 2,333명, 객석 대비 77%. 열 명 중 여덟이 1,000원을 내고 나머지가 평균 5,000원을 냈다고 잡으면 1인당 1,800원, 회당 420만 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필자가 잡은 추정이며 금액별 선택 비율은 공개돼 있지 않다.
회당 표값을 어디에 견주나
10.대관료를 놓고 보면 이 숫자의 자리가 잡힌다. 세종대극장을 공연 목적으로 5시간 빌리는 값이 630만 원이고, 준비와 철수로 4시간을 더 쓰면 315만 원이 붙는다(VAT 별도). 남에게 빌려줄 때는 그만큼을 받는 홀이다. 하루를 통째로 쓰고 걷는 표값이 420만 원.

11.그러면 이 회관은 표 대신 무엇을 사는가. 자체 수입은 2023년에 219억 원이었고 최근 3년 재정자립도는 32.3%. 예산 1,000억 원이 넘는 국내 문화예술기관 11곳 평균이 10.7%니 높은 축에 들지만, 나머지 68%는 서울시 출연금으로 채운다. 그 출연금을 설명하는 건 얼마에 팔았느냐가 아니라 몇 명이 들어왔느냐.

12.3,022석을 채우는 일이 그 좌석을 비싸게 파는 일보다 값이 나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홀의 클래식 공연은 보통 B석 3만 원에서 VIP 12만 원 사이에 걸린다. 평균 5만 원으로 잡고 같은 인원이 들어오면 1억 1,700만 원이니, 표값의 96%를 포기하고 객석을 산 계산.

13.남는 자리를 놀리지도 않는다. 이번 회차에는 행복동행석 90석이 따로 걸려 있었다. 다자녀 가정에 30석, 보훈 대상자·군 복무 중인 청년·북한이탈주민에게 각 20석. 신청은 8월 초에 닫혔고, 당첨자는 공연 당일 대극장 로비에서 증빙을 보이고 표를 받는다.
14.곡을 고른 것도 관객이다. 2026년 시즌 곡목은 관객 약 4,000명을 상대로 한 선호도 조사를 반영해 베토벤·브람스·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 쪽으로 짰다고 회관은 설명한다. 1월 신년음악회에서 12월 원주시립교향악단까지 9회, 무대에 서는 국공립 교향악단이 8곳.

15.다음 주 화요일 3,022석짜리 홀에서 나흘 전 대구에서 3만 원 받고 연주한 곡이 다시 울리고, 서울 관객은 그 가격을 1,000원부터 직접 고른다. 회당 걷히는 표값은 420만 원 안팎으로 추정되니 같은 홀 하루 대관료의 절반에 못 미친다. 국내에서 이 방식을 따라 하려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손님의 양심이 아니라 건물이다. 임차료를 밖으로 내는 공간에서는 표값 대부분을 버리는 계산이 애초에 세워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