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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세종문화회관 · 1978년에 문을 연 이 건물의 대극장이 객석 3,022석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DtSeoul · CC0
밤의 세종문화회관1978년에 문을 연 이 건물의 대극장이 객석 3,022석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DtSeoul · CC0
데일리 컬처

대구에서 3만 원 받던 연주를 나흘 뒤 서울에선 1,000원에 판다 (누구나 클래식)

2026.09.07

다음 주 화요일 저녁, 국내에서 객석이 가장 많은 공연장에 지방 시립교향악단이 오른다. 표를 사는 사람은 가격표를 받지 않는다. 넷 중 하나를 자기가 고른다. 얼마를 고르든 앉는 자리는 같다.

1.세종문화회관이 9월 15일 저녁 7시 30분에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세종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객석 3,022석으로 국내 공연장 가운데 가장 크다. 한 해 9회 여는 「누구나 클래식」의 9월 회차이고, 이번 공연의 관람료는 관객이 정한다.
2.고를 수 있는 금액은 1,000원·3,000원·5,000원·1만 원 넷. 어느 쪽을 골라도 좌석 배정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안내한다. 1,000원을 낸 사람이 1만 원을 낸 사람 옆자리에 앉는 구조다.
낮의 같은 건물 · 세종대로에 면한 정면. 다목적홀이라 뮤지컬·콘서트·오케스트라를 번갈아 받는다. ⓒYellowTurtle9 · CC BY-SA 4.0
낮의 같은 건물세종대로에 면한 정면. 다목적홀이라 뮤지컬·콘서트·오케스트라를 번갈아 받는다. ⓒYellowTurtle9 · CC BY-SA 4.0
3.연주할 곡은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영혼의 지배자》 서곡,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의 《교향곡 제5번》. 지휘는 백진현 음악감독, 협연은 클라리넷의 김한. 공연 시간은 130분이라고 안내한다.
이날의 협연 악기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프로그램 가운데에 놓인다. ⓒHorst J. Meuter · CC BY-SA 4.0
이날의 협연 악기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프로그램 가운데에 놓인다. ⓒHorst J. Meuter · CC BY-SA 4.0
4.같은 오케스트라가 나흘 전 대구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9월 11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R석 3만 원에 S석 1만 6천 원, 제일 싼 H석이 1만 원. 지휘자도 같고 곡목도 같으며 대구 쪽 협연자만 프랑스 연주자로 다르다. 대구에서 가장 싼 자리가 서울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비싼 금액과 같은 값.
같은 곡, 나흘 사이 두 도시
대구시립교향악단이 나흘 간격으로 같은 곡을 두 번 연주한다 대구 9.11 서울 9.15 공연장 대구콘서트하우스 세종대극장 제일 비싼 자리 30,000원 10,000원 제일 싼 자리 10,000원 1,000원 가격을 정하는 쪽 공연장 관객 지휘 백진현 백진현 협연 프랑스 연주자 김한 곡목은 베버·모차르트·쇼스타코비치로 두 도시가 같다. 대구 공연이 프리뷰다.
바뀌는 것은 곡도 지휘자도 아니고 가격을 정하는 쪽이다.
5.세종대극장은 3층까지 객석이 올라간다. 3층 뒷줄에 앉으면 지휘자의 등이 손톱만 하게 보이고, 무대에서 올라온 소리가 천장을 한 번 돌아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큰 홀은 위층부터 빈다. 여기서는 그 자리와 1층 앞줄의 가격이 같다.
무대 위의 한 사람 · 2009년 이 회관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한윤정. ⓒEcarg532 · CC BY-SA 4.0
무대 위의 한 사람2009년 이 회관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한윤정. ⓒEcarg532 · CC BY-SA 4.0
6.클래식에 처음 가는 사람을 막는 건 가격표가 아니라 그 가격이 맞는지 모른다는 사정이다. 8만 원이 비싼 건지 싼 건지 판단할 근거가 없고, 판단이 안 서면 사지 않는다. 옷이나 밥은 실패해도 몇 만 원이지만, 두 시간짜리 공연은 지루해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손해가 더 크게 느껴진다.
협주곡을 쓴 사람 · 모차르트가 세상을 뜬 해에 쓴 협주곡이 이날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Barbara Krafft · 퍼블릭 도메인
협주곡을 쓴 사람모차르트가 세상을 뜬 해에 쓴 협주곡이 이날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Barbara Krafft · 퍼블릭 도메인
7.관람료 선택제는 그 판단을 통째로 없앤다. 1,000원을 고르면 잘못 산 게 아니고, 1만 원을 고르면 손해 본 게 아니다. 좌석이 금액을 따라가지 않으니 얼마를 냈는지가 옆 사람에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 · 지휘자를 보고 활을 드는 순간. 사진은 뮌헨의 다른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 ⓒJorge Royan · CC BY-SA 3.0
무대에 오르기 전지휘자를 보고 활을 드는 순간. 사진은 뮌헨의 다른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 ⓒJorge Royan · CC BY-SA 3.0
8.더 흥미로운 건 관객이 실제로 낸 금액이다. 2024년에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17,000명이었고, 그중 20%가 넘게 최저 금액보다 높은 쪽을 골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다섯에 하나가 더 낸 것. 1만 원을 고른 관객 100명을 뽑아 커피 쿠폰을 주는 이벤트가 붙어 있긴 하다.
9.그래서 표를 팔아 들어오는 돈은 크지 않다. 2024년과 2025년 두 해 동안 15회 공연에 35,000명이 왔으니 회당 2,333명, 객석 대비 77%. 열 명 중 여덟이 1,000원을 내고 나머지가 평균 5,000원을 냈다고 잡으면 1인당 1,800원, 회당 420만 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필자가 잡은 추정이며 금액별 선택 비율은 공개돼 있지 않다.
회당 표값을 어디에 견주나
회당 관객 2,333명으로 잡은 추정치 관람료 선택제 표값 420만 원 이 홀 하루 대관료 945만 원 정가로 팔았다면 1억 1,700만 원 · 평균 5만 원으로 잡은 값 최근 3년 재정자립도 32.3% 예산 1,000억 이상 기관 11곳 평균 10.7% 대관료는 공연 5시간에 준비·철수 4시간을 더한 값이고 VAT는 뺐다.
표를 다 팔아도 자기 건물 하루 대관료의 절반이다.
10.대관료를 놓고 보면 이 숫자의 자리가 잡힌다. 세종대극장을 공연 목적으로 5시간 빌리는 값이 630만 원이고, 준비와 철수로 4시간을 더 쓰면 315만 원이 붙는다(VAT 별도). 남에게 빌려줄 때는 그만큼을 받는 홀이다. 하루를 통째로 쓰고 걷는 표값이 420만 원.
2부의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 후반부에 놓인다. ⓒDeutsche Fotothek · CC BY-SA 3.0 de
2부의 교향곡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 후반부에 놓인다. ⓒDeutsche Fotothek · CC BY-SA 3.0 de
11.그러면 이 회관은 표 대신 무엇을 사는가. 자체 수입은 2023년에 219억 원이었고 최근 3년 재정자립도는 32.3%. 예산 1,000억 원이 넘는 국내 문화예술기관 11곳 평균이 10.7%니 높은 축에 들지만, 나머지 68%는 서울시 출연금으로 채운다. 그 출연금을 설명하는 건 얼마에 팔았느냐가 아니라 몇 명이 들어왔느냐.
길 건너편 · 2022년에 다시 꾸민 광화문광장 너머로 본 정부서울청사. 회관은 이 광장에 면해 있다.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길 건너편2022년에 다시 꾸민 광화문광장 너머로 본 정부서울청사. 회관은 이 광장에 면해 있다.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12.3,022석을 채우는 일이 그 좌석을 비싸게 파는 일보다 값이 나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홀의 클래식 공연은 보통 B석 3만 원에서 VIP 12만 원 사이에 걸린다. 평균 5만 원으로 잡고 같은 인원이 들어오면 1억 1,700만 원이니, 표값의 96%를 포기하고 객석을 산 계산.
세종대로 · 회관은 이 길에 면한 자리에 있다. 퇴근길 동선 위에 놓인 공연장. ⓒTristan Surtel · CC BY-SA 4.0
세종대로회관은 이 길에 면한 자리에 있다. 퇴근길 동선 위에 놓인 공연장. ⓒTristan Surtel · CC BY-SA 4.0
13.남는 자리를 놀리지도 않는다. 이번 회차에는 행복동행석 90석이 따로 걸려 있었다. 다자녀 가정에 30석, 보훈 대상자·군 복무 중인 청년·북한이탈주민에게 각 20석. 신청은 8월 초에 닫혔고, 당첨자는 공연 당일 대극장 로비에서 증빙을 보이고 표를 받는다.
14.곡을 고른 것도 관객이다. 2026년 시즌 곡목은 관객 약 4,000명을 상대로 한 선호도 조사를 반영해 베토벤·브람스·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 쪽으로 짰다고 회관은 설명한다. 1월 신년음악회에서 12월 원주시립교향악단까지 9회, 무대에 서는 국공립 교향악단이 8곳.
왼쪽 줄의 건물 · 광장 왼편에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가 나란히 선다. ⓒ서울관광재단 · KOGL 제1유형
왼쪽 줄의 건물광장 왼편에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가 나란히 선다. ⓒ서울관광재단 · KOGL 제1유형
15.다음 주 화요일 3,022석짜리 홀에서 나흘 전 대구에서 3만 원 받고 연주한 곡이 다시 울리고, 서울 관객은 그 가격을 1,000원부터 직접 고른다. 회당 걷히는 표값은 420만 원 안팎으로 추정되니 같은 홀 하루 대관료의 절반에 못 미친다. 국내에서 이 방식을 따라 하려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손님의 양심이 아니라 건물이다. 임차료를 밖으로 내는 공간에서는 표값 대부분을 버리는 계산이 애초에 세워지지 않는다.
데일리 컬처 #042 · 2026.09.07
출처. 서울특별시 「[세종문화회관] 2026년 9월 누구나 클래식 with 대구시립교향악단」 · 세종문화회관 「누구나 클래식 연간공연일정」 ·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 대관료」 · 서울경제 「'만원의 행복' 누구나 클래식 2026시즌 개막」 · 비욘드포스트 「세종문화회관, 관객의 선택이 최고의 무대로 '누구나 클래식' 2026 시즌 개막」 · SBS 「"1천 원~1만 원, 원하는 관람료 내세요" 세종문화회관 '누구나 클래식'」 · 매일신문 「대구시향, 쇼스타코비치 5번으로 '시대의 자화상' 그린다」 · 헤럴드경제 「세종문화회관, 법인화 이후 24년 만에 자체 수입 200억원 돌파」
회당 관객 2,333명은 2024~2025년 15회 공연 누적 35,000명을 나눈 값이다. 회당 표값 420만 원과 정가 판매 시 1억 1,700만 원은 필자가 잡은 추정이며, 금액별 선택 비율과 좌석 등급 구성은 공개돼 있지 않다. 대관료는 VAT 별도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