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가 「점거」다. 주인이 안 쓰는 건물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방식으로 알려진 팀이, 지금은 JR 고가 아래에 복수년 계약으로 앉아 있다. 그 자리에서 한 달짜리 레코드 장이 열리는 중이고 입장료는 없다.
1.도쿄 가쓰시카구 니시가메아리 3-26-4, JR 조반선(常磐線) 고가 아래에서 「아날로그 마켓(Analog Market)」이 9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린다. 주최는 오디오테크니카(オーディオテクニカ)이고, 기획과 제작은 이 회사에 레코드숍 VDS와 SKWAT가 함께 붙었다. 입장은 무료. 월·화요일을 쉬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2.장소는 SKAC(SKWAT KAMEARI ART CENTRE). 가메아리역에서 걸어 12분, 조반선 가메아리~아야세 구간 고가 아래에 2024년 11월 2일 문을 열었다. 9월 12일과 13일에 레코드 마켓이 서고 20곳 넘는 가게가 들어온다. 19일에는 런던의 Church of Sound가 오고, 26일과 27일에는 필드 레코딩 워크숍과 벼룩시장이 붙는다.

3.고가 아래는 폭을 내가 못 정하는 땅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방의 너비를 결정하고, 천장 위로는 열차가 지난다. 보도가 전하는 SKAC의 연면적은 3,500제곱미터 남짓, 평으로 바꾸면 1,059평. 다만 이 넓이는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선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띠.

4.안을 채운 마감은 공사장 비계. 강관 파이프를 세워 선반을 걸고 책을 꽂았고, 조명 기구도 파이프에 그대로 매달았다. 아트북 유통사 twelvebooks가 해외 출판사에서 들여온 책 8만 권을 창고 겸 서점 모양으로 여기 쌓아 뒀다. 통로는 끝이 잘 안 보일 만큼 길고, 몇 분에 한 번 머리 위로 열차가 지나면 바닥이 낮게 떤다.

5.서가 끝 벽에 네온으로 THE MUSEUM IS NOT ENOUGH가 걸려 있다. 미술관으로는 모자란다는 뜻이고, 여기를 미술관이 아니라 아트센터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닥에는 팔레트째 들어온 책 묶음이 그대로 놓여 있다. 파는 물건과 보는 물건을 나누지 않았다.

6.임차인은 넷. 설계사무소 DAIKEI MILLS가 사무실을 여기 뒀고, twelvebooks가 서가를 맡았다. 레코드숍 VDS(Vinyl Delivery Service)는 런던 본점에 이어 일본에 처음 낸 가게. 카페 tawks는 공원 비슷한 자유 공간을 함께 열어 뒀다. 넷 중 둘은 소매를 하던 곳이 아니라 설계와 책 유통을 하던 회사다.

7.SKWAT는 영어 squat에서 왔다. 나카무라 게이스케(中村圭佑)가 런던에서 본 1970년대 점거 운동이 출발점이고, 철자만 한 글자 바꿨다. 1983년 시즈오카현 하마마쓰(浜松) 출생. 2009년 스물넷에 우라하라주쿠에서 다섯이 프리스페이스 VACANT를 만들어 10년을 돌렸고, 2011년 설계사무소 DAIKEI MILLS를 세웠다. SKWAT는 2019년 12월 하라주쿠의 빈 목조 가옥에서 시작했다.

8.그 다음 자리가 2020년 5월 미나미아오야마(南青山)의 상업시설 1·2층 200제곱미터. 미유키도리에 면한 자리를 몇 달만 쓰고 나오는 방식. 임대인 입장에서는 다음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 비워 둘 층을 잠깐 채워 준 셈이고, 쓰는 쪽은 아오야마 주소를 공짜에 가까운 값으로 얻었다. 빈 층이 늘어난 시기에만 성립하는 거래.

9.가메아리는 관광지가 아니다. 도쿄 동쪽 끝의 오래된 주거지고, 도심에서 사람을 끌어오기에는 멀다. 대신 도심에 없는 것이 여기 세 개 있다. 넓이, 층고, 그리고 소리를 크게 틀어도 되는 조건. 앞의 둘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셋째는 자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고가 아래는 이미 몇 분마다 열차가 지나는 곳이라 소음의 기준선 자체가 높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 셋을 한꺼번에 갖춘 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10.돈 이야기로 들어가면 이 자리의 성질이 분명해진다. 가메아리 일대 주택지 공시지가는 2026년 기준 평당 135만엔. 1,059평을 새로 사려면 14억 3,000만엔, 우리 돈 124억 원쯤 든다. 그런데 철도회사는 이 땅을 선로를 놓을 때 이미 샀다. 고가 아래는 취득비가 0인 상태에서 임대수입만 새로 생기는 면적이다.

11.그 면적을 빌려주는 회사가 제이알동일본도시개발(ジェイアール東日本都市開発)이다. 1989년 4월에 「JR동일본고가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자본금 14억 5,000만엔, 직원 699명, 2025년 3월기 매출 101억 3,500만엔. 가메아리~아야세 구간 800미터를 「포치카메(ぽちかめ)」라는 이름으로 순차 개발 중이고 2026년도에 마무리한다.
고가 아래 800미터에 들어간 것들
12.주최 쪽 셈은 또 다르다. 오디오테크니카의 2025년 3월기 연결매출은 677억엔으로 4기 연속 최고 기록. 반면 일본 아날로그 레코드의 1년 생산금액은 2025년에 겨우 80억엔을 넘겼다. 37년 만의 기록이라며 업계가 반긴 숫자. 회사 매출은 전 세계 기준이라 그대로 견줄 건 아니지만, 자릿수가 여덟 배 벌어진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런 회사가 레코드에 33일을 쓰는 까닭은 레코드를 팔려는 게 아니어서다.
레코드는 작고 바늘 파는 회사는 크다
13.그래서 회장 한가운데에 놓인 게 리스닝 스테이션. 헤드폰 재질과 카트리지 바늘 모양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갈리는지 그 자리에서 견줘 듣게 해 놓았다. 표를 안 팔아도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무료로 들여보내고 한 달 내내 자기 바늘을 귀에 대 보게 하는 편이, 입장료 몇천엔을 받고 사흘 만에 접는 것보다 회수가 크다고 본 것이다.
14.고가 아래를 상업시설로 바꾸는 일은 이 회사가 오래 해 왔다. 아키하바라와 오카치마치 사이를 공예 상가로 바꾼 2k540 AKI-OKA ARTISAN이 2010년, 료고쿠역 아래 에도노렌이 2016년, 벽돌 아치를 살린 히비야 오쿠로지가 그 뒤. 다만 앞선 것들은 처음부터 상가로 기획한 시설이었고, 가메아리는 무엇을 넣을지 정하기 전에 임차인부터 들어왔다는 점이 다르다.

15.한 해 사이의 변화가 이 자리의 값을 보여 준다. 지난해 아날로그 마켓은 쓰키지혼간지(築地本願寺) 앞마당에서 11월 2일과 3일 이틀만 열렸다. 출점자 80팀, 레코드숍 20곳, 입장 무료. 같은 행사가 올해는 33일이 됐다. 절 마당은 이틀 뒤에 비워 줘야 하지만 고가 아래는 안 비워도 된다. SKAC 자체도 처음엔 몇 달짜리 단기 공모로 들어왔다가 복수년 계약으로 바뀌었다. 옆 건물까지 넓혀 규모를 두 배 가까이 키우는 일이 올해 이어지고, 건축 자재를 다루는 구역 「Material Matters」가 이번 가을 열린다.
16.정식으로 계약해 쓰는 팀이 이름만 「점거」로 남겨 둔 채, 취득비가 0인 1,059평에서 33일짜리 장을 무료로 연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 하면 먼저 걸리는 건 임대료가 아니라 기간이다. 철도와 고속도로 고가 아래는 거의 다 국가나 공사가 쥔 재산이라 임대차가 아니라 점용허가·사용허가로 쓰고, 그 허가는 몇 년 단위로 끊어 갱신한다. 5년짜리 허가를 받아 놓고 10년 쓸 서가를 세우는 사람은 없다. 자투리 땅의 값을 결정하는 건 넓이가 아니라 몇 년을 보장받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