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15평짜리 고깃집 차림표에 삼겹살이 없다. 대신 앞다릿살 한 부위를 흑돼지 세 품종으로 나눠 판다. 30년을 식품 MD로 산 사람이 첫 가게를 내면서 부위표부터 다시 짠 결과다. 도매 시세로 삼겹살은 kg당 2만 3,000원대, 앞다리는 1만 1,000원대. 그 차이가 이 가게의 손익표 첫 줄이다.
1.서울 강서구 등촌동 화곡로66길, 지하철 9호선 가양역에서 걸어 3분 거리의 1층이다. 길 건너에 대형마트가 있고 영화관도 걸어서 몇 분 거리다. 검은 외벽에 흰 획으로 「ㅊ」을 크게 붙였고 그 위 간판이 흑돼지 구이 & 곰탕 전문점이다. 상호는 칠흑. 문을 연 것은 2025년 3월.
2.주방에 서는 사람은 김진영. 식품 MD로 30년을 일했고 신문에 시장과 제철 재료 이야기를 5년 연재한 뒤 이 가게를 첫 식당으로 냈다. 본인이 붙인 이름은 흑돼지 편집숍. 고기를 부위로 고르는 가게가 아니라 품종으로 고르는 가게라고 설명한다.

3.저녁 차림표에 오르는 흑돼지는 셋. 제주 재래종을 바탕으로 만든 난축맛돈, 지리산에서 기르는 버크셔K(Berkshire K), 국내 재래돼지와 개량종을 붙여 만든 우리흑돈이다. 셋을 한 접시에 나란히 담아 내는 것이 이 집의 기본 차림. 올라가는 부위는 앞다릿살 하나뿐. 1인분 170g에 1만 4,000원이고 혼자 한 접시만 시켜도 받는다.

4.불판은 부탄 버너 위에 올린 무쇠 사각판이다. 얇게 저민 앞다릿살을 얹으면 가장자리 지방이 먼저 투명해지고 가운데 살은 뒤늦게 색을 잃는다. 그 시점을 지나면 앞다릿살은 금세 뻣뻣해진다. 고기를 바싹 익혀야 한다는 건 옛날 얘기라고 그는 말한다. 인분을 밭에 뿌리던 시절에 생긴 습관이라는 것.

5.점심은 국물이다. 뒷사태를 한 시간 20분 끓이고 굳은 라드를 걷어 낸다고 매체는 전한다. 그릇에 담기면 설렁탕처럼 뽀얗지 않고 닭 육수에 가깝게 맑다. 파 몇 조각 말고는 손댄 자국이 없어서 짠맛은 손님이 새우젓으로 맞춘다. 1년 6개월 숙성한 국내산 새우젓.

6.홀 한쪽 벽이 통째로 주방 창구다. 창구 위에 「칠흑 같이 깊은 풍미」를 붙여 놓았고, 그 아래로 대표가 고기를 손질하는 손이 손님 자리에서 그대로 보인다. 좌석은 20개, 홀은 15평. 주방을 감출 자리가 애초에 없다. 온장고를 두지 않아 밥은 주문을 받고 나서 짓고 공깃밥에 값을 따로 매기지 않는다.

7.흑돼지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팔렸다. 그런데 그게 어떤 돼지인지 알려 주는 가게가 얼마나 있었을까. 산지 표시가 품종 표시 자리를 오래 대신 채워 왔다. 손님은 접시 위 고기가 무슨 돼지인지 모른 채 값을 더 냈고,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비싼 이유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빈칸이 이 가게의 상품이 됐다.
8.품종을 골라 먹게 하려면 부위가 하나로 묶여야 한다. 삼겹살과 목살까지 세 품종씩 깔면 아홉 칸이 되고 15평 냉장고가 감당하지 못한다. 앞다릿살로 고정하는 순간 재고는 셋으로 줄고 손님이 견주는 축도 품종 하나만 남는다. 좁아서 어쩔 수 없이 고른 조건인데, 그게 그대로 상품 설계가 됐다.

9.앞다릿살이 그 자리를 맡을 수 있는 건 품종 덕이다. 난축맛돈은 근내지방이 10% 안팎까지 올라와 저지방 부위도 구워 먹을 만하고, 우리흑돈은 4.3%로 일반 돼지의 3%보다 높다. 삼겹살이 지방으로 덮어 주던 구간을 품종이 대신 채운다. 부위만 바꿔서는 이 차림표가 서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10."110㎏짜리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삼겹살은 16~20㎏밖에 안 나오니 원가 비중이 되게 높아요." 대표가 부위를 바꾼 이유로 든 말이다. 적게 나오는 살에 온 나라의 수요가 몰려 있으니 값이 그쪽으로 쏠린다. 고깃집 손익표의 첫 줄이 정해지는 자리.
11.170g으로 환산하면 앞다릿살 원육이 1,900원대, 삼겹살은 3,900원대. 여기에 흑돼지 품종값을 얹고 산지 직거래로 중간 유통을 뺀 상태에서 한 접시의 원육 원가를 3,000원 안팎으로 잡으면(추정) 판매가 대비 원가율이 20%대로 떨어진다. 같은 접시를 삼겹살로 채우면 그 두 배로 올라가고, 그래서는 이 가격표가 서지 않는다.
12.임대료도 같은 쪽으로 눌러 놓았다. 이 가게의 계약 조건은 공개돼 있지 않지만 인근 화곡동 1층 매물이 보증금 2,500만 원에 월세 170만 원으로 나와 있다. 역세권 조건을 얹어 월 200만 원대로 잡으면(추정) 임차료는 매출의 7% 안쪽. 강남대로 1층이었다면 이 계산은 시작조차 안 된다.
13.점심 곰탕이 하루 40그릇쯤 나가고, 저녁에 20석이 한 번 반 돌면서 인당 2만 7,000원을 쓴다고 놓아 본다(추정). 월 3,200만 원 언저리. 15평으로 나누면 평당 월 200만 원을 조금 넘는다.
14.남는 자리를 만든 것은 매출이 아니라 원가표다. 국내 음식점의 식재료비 비중은 40.7%까지 올라왔고 영업이익률은 8.7%로 내려앉았다. 재료비를 20%대로 눌러 둔 가게가 그 평균 안에 있을 리 없다. 부위를 내린 것과 상권을 내린 것, 둘이 같은 칸에서 값을 한다.

15.맑은 돼지 국물로 먼저 이름을 얻은 가게가 있다. 옥동식은 서교동에서 돼지곰탕 한 그릇으로 시작해 뉴욕에 2호점을 냈고 하와이와 도쿄까지 갔다. 국물만 남기고 나머지를 덜어 낸 방식. 칠흑은 그 국물을 점심에 두고 저녁 자리에 구이를 놓았다. 한 주방을 하루 두 번 다르게 쓰는 구성. 약한 곳은 그 뒤에 있다. 난축맛돈과 버크셔K, 우리흑돈은 기르는 농가가 적어 물량이 흔들리기 쉽고, 세 품종을 나란히 놓는 것이 상품이라 한 칸이 비면 상품 자체가 무너진다.

16.30년 동안 남의 물건을 골라 팔던 사람이 15평에 좌석 20개를 놓고 삼겹살을 뺐고, 그 자리를 앞다릿살 세 품종으로 채워 재료비를 20%대로 내렸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고기보다 사람에서 먼저 걸린다. 품종별 원육을 직거래로 받아 상태를 보고 손질하는 일은 매장마다 그걸 아는 사람이 한 명씩 붙어 있어야 돌아가고, 그 한 명이 빠지는 순간 앞다릿살은 그냥 값싼 고기로 되돌아간다. 사장이 주방에 서 있는 15평에서만 서는 원가표인지 사람을 붙여도 남는 구조인지는 2호점 앞에서 판가름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