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언주로168길, 한 건물 지하 1층의 레스토랑 산(SAN)은 지금 점심 코스와 저녁 코스를 똑같이 38만 원에 판다. 지난해 6월 방문기에 적힌 가격은 점심 18만 원, 저녁 30만 원. 그 사이 이 지하층에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의 원 투 워치(One To Watch) 상과 미쉐린 별 하나가 붙었다.
1.문을 연 건 2024년 중반이고, 이름 「산」은 셰프 조승현의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저녁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고 점심은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연다. 마지막 주문은 저녁 7시, 낮 1시. 코스는 하나뿐이고 따로 더하는 메뉴는 없다.

2.상은 빨리 왔다. 올해 2월 아시아 50 베스트가 주목할 새 식당에 주는 원 투 워치 상을 산에 줬는데, 서울 식당이 이 상을 받은 건 2017년 이후 처음이었다. 3월 12일 공개된 51~100위 명단에서는 54위에 올랐고,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6에서도 별 하나를 받았다. 문을 연 지 2년이 안 된 식당이 올해 명단 세 곳에 올랐다.
3.주소는 지하인데 방은 어둡지 않다. 아시아 50 베스트는 이 방을 부드러운 돌과 중간 톤의 색으로 설명하고, 공개된 사진에서도 벽과 천장이 모래색 한 톤으로 이어진다. 방 가운데를 긴 원목 테이블 하나가 차지하고, 그 끝 창 너머 회색 벽 앞에는 이끼 덮인 바위를 앉혔다. 창 옆 벽은 검은 격자 유리라 옆 칸이 어른거린다. 개별실은 4~6인이 기준이고 7~10인은 전화로 따로 잡는다.

4.홀과 주방 사이에는 벽이 없다. 부주방장은 영국 출신 마이클 추(Michael Chwu)로, 에든버러의 The Kitchin과 더블린의 Chapter One, 그리고 Benu를 거쳤다. 영양사이자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나온 조현아가 개업 팀에 있었고, 소믈리에 주재민이 5잔과 8잔 두 가지 와인 페어링을 짠다. 조승현이 기본으로 꼽는 건 세 가지.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손님이 흡족한 서비스, 늘 같은 품질.

5.코스는 13가지. 올해 초 소개된 접시를 보면 재료가 낯익다. 새우는 머리를 졸여 낸 진한 육수와 고추장으로 받치고, 오징어는 숙회로 데쳐 흰 접시 위에 먹물 비네그레트를 검은 선으로 긋는다. 셰프가 부산에서 자라며 먹던 밀면은 호박색 국물 위에 면을 네모지게 접어 올리고 캐비아로 마무리한다. 돼지국밥과 참외 동치미도 코스 안에 들었다.


6.겨울에 소개된 접시는 결이 또 다르다. 대게에 캐비아와 달걀노른자 푸딩을 곁들이고, 소고기 위에는 검은 송로를 얹었다. 디저트는 구운 쌀 아이스크림에 감. 방문기에 따르면 은식기는 허유정 작가, 옻칠 젓가락은 박미경 작가의 작품. 코스가 하나뿐이니 그날 들일 재료의 양을 정하는 건 예약 수.

7.한국 손님은 원래 맛을 안다. 밀면이나 국밥은 부산 골목에서 만 원 안팎이면 한 그릇 먹는 음식이고, 그 이름이 38만 원짜리 코스에 들어오면 손님은 먹는 내내 자기가 아는 그릇과 견준다. 손님이 기준을 들고 들어오는 식당. 맛이 원래 그릇보다 못하면 곧바로 들키고, 나으면 설명이 필요 없다.
8.비싼 자리를 혼자 잡는 손님도 늘었다. 캐치테이블이 이달 낸 자료를 보면 올해 1~7월 1인 예약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1% 늘었고, 객단가 20만 원이 넘는 식당의 1인 예약은 38.7% 늘어 가격대 가운데 가장 많이 올랐다. 아시아 50 베스트 명단은 서울로 먹으러 오는 해외 손님이 먼저 찾아보는 목록이기도 하다.
9.가격표가 그 사이 바뀌었다. 지난해 6월 방문기와 예약 플랫폼 소개에는 점심 18만 원, 저녁 30만 원이 남아 있고, 지금 공식 사이트에는 「테이스팅 메뉴 380,000원, 런치·디너 동일」 한 줄뿐이다. 점심은 두 배 넘게, 저녁은 27% 올랐다. 점심을 저녁보다 싸게 파는 칸이 사라진 것.
10.좌석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예약 플랫폼 안내로는 한 회차에 8~9테이블을 받으니 20석 안팎으로 잡았다(추정). 한 주 일곱 번 영업에 회차마다 한 번씩만 받고 자리가 다 찬다고 치면, 한 주 코스 매출은 가격을 바꾸기 전보다 43% 늘어난다(추정).
11.한 달로 치면 코스만 2억 3,000만 원 가까이 된다(추정). 와인 페어링과 병당 10만 원인 콜키지는 그 위에 따로 붙는다.
12.나가는 쪽도 무겁다. 요리사와 서버, 소믈리에를 합쳐 15명 안팎이 붙는다고 보면(추정) 인건비만 한 달 6,000만 원쯤 되고, 파인다이닝은 재료비를 매출의 30% 넘게 잡는 업종이다. 여기에 강남 지하 1층 임대료와 관리비, 식기와 잔 파손까지 빼고 나면 얼마가 남을까.
13.서울 파인다이닝은 보통 점심 코스를 저녁보다 싸게 판다. 처음 오는 손님이 들어오는 입구라서. 그런데 주방이 하는 일은 점심이라고 크게 줄지 않고, 산은 지금 점심에도 저녁과 같은 코스를 낸다. 같은 사람이 같은 준비를 하는데 가격이 저녁의 60%면 금요일과 토요일 점심 두 번은 품이 매출보다 먼저 드는 영업이 되고 만다. 상이 붙어 예약이 먼저 차는 식당이라면 그 입구를 싸게 둘 까닭이 없다.

14.조승현이 8년 동안 주방을 맡은 Benu는 코리 리(Corey Lee)가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 연 식당으로, 미쉐린 별 셋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토머스 켈러(Thomas Keller)의 The French Laundry 출신. Benu는 한국과 중국의 맛을 프랑스 기술로 풀어 미국 손님 앞에 냈고, 안뜰에 감을 매달아 말리는 식당으로도 알려졌다.


15.샌프란시스코의 손님에게는 견줄 원래 그릇이 없었다. 신사동의 손님은 부산 밀면집과 국밥집을 안다. 같은 손으로 요리해도 채점표는 손님 쪽에 있고, 그 채점을 받는 음식에 38만 원이 붙는다. 먼저 점수를 매긴 쪽은 국내 손님이 아니라 해외 명단과 미쉐린.

16.산은 문을 연 지 2년 만에 점심 할인을 걷어 내고 점심과 저녁을 38만 원 한 가격으로 묶었다. 자리가 다 찬다고 치면 한 주 코스 매출은 5,320만 원(추정). 국내에서 이 가격의 점심을 평일로 넓히려 하면 청탁금지법에 먼저 걸린다. 공직자와 언론인, 교직원이 끼는 자리는 식사 한도가 5만 원이라, 그들을 대접하는 데 38만 원 코스를 쓸 수 없다. 평일 점심을 채울 손님층 하나가 처음부터 빠진 채로 시작하는 계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