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더 플라자 호텔이 개관 50년을 맞아 9월 말 영업을 멈춘다. 그 호텔이 1986년에 연 한식당 아사달은 20여 년 만에 이름을 되찾아 광화문 오피스 빌딩 15층에 다시 문을 열었고, 점심과 저녁이 10월 말까지 찼다.
1.4월 24일, 서울 광화문 KT광화문빌딩 웨스트 15층에 더 플라자 다이닝이 문을 열었다. 450평(1,486㎡)에 232석, 단독 룸 13개. 한 층에 식당 셋을 들였는데 한식 아사달, 중식 도원·S, 새로 만든 파블로 그릴 앤 바다. 운영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외식 계열사 한화푸드테크.
2.9월 15일 한화푸드테크는 아사달의 8월 방문객이 개점 첫 달의 20배를 넘었고, 점심과 저녁 코스가 10월 말까지 모든 시간대 마감됐다고 밝혔다. 같은 달 30일에는 아사달과 도원이 처음 문을 연 시청 앞 더 플라자 호텔이 영업을 멈춘다. 내년부터 3년가량 전면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때문.
3.테이블을 창 쪽으로 붙여 대부분의 자리에서 경복궁과 청와대, 북악산이 보인다. 입구에는 도원·S의 대형 수조가 있고, 가운데에는 와인 1,000여 종을 쌓은 와인 타워가 섰다. 파블로 쪽에서는 부위별로 고기를 걸어 둔 숙성실이 유리 너머로 들여다보이고, 아사달은 오픈키친을 뒀다. 식당 셋이 저마다 보여 줄 물건을 하나씩 입구에 세운 배치.


4.232석 가운데 106석이 도원·S 몫이고, 아사달과 파블로가 나머지를 나눠 쓴다. 450평에 이 좌석이면 평당 반 석꼴로, 테이블 사이를 넓게 벌린 호텔 식당의 간격 그대로. 도원·S에는 열두 명이 앉는 VIP 룸이 있고, 룸 두 개를 이어 잔칫상을 차릴 수 있게 벽을 튼 방도 있다.


5.아사달의 식사는 젓가락을 고르는 데서 시작한다. 청·백·황·적·흑 다섯 색 가운데 하나를 집게 하고, 색마다 오복의 뜻을 붙였다. 첫 접시는 작은 한입들로, 발효 떡 위에 성게알을 얹고 한우 타르타르를 양파칩으로 감쌌다. 그다음이 옛 아사달의 간판이던 신선로. 가운데 통에 숯을 넣어 식탁 위에서 국물을 끓이던 궁중 그릇으로, 둘레에 전과 채소를 돌려 담는다. 여름에는 민어, 9월 15일부터는 갈치.

6.보김치는 낙지와 한우 양지를 김치 잎으로 싸서 한 달쯤 익힌 조선 궁중 음식. 한 달 익은 김치는 신맛이 먼저 혀에 닿고, 안쪽의 양지와 낙지가 씹을 거리를 맡는다. 권숙수(미쉐린 2스타)와 이타닉 가든(1스타)을 거친 김정환 셰프는 자극적인 맛보다 재료 맛이 남게 하는 데 힘을 줬다고 말한다. 식사가 끝나면 다식 세 가지를 상자에 담아 들려 보낸다. 젓가락으로 열고 과자 상자로 닫는 순서라, 접대 자리에서 꺼낼 이야깃거리가 처음과 끝에 하나씩 생긴다.
7.광화문은 정부청사와 대기업 본사, 대사관이 모인 동네고, 이 동네의 점심과 저녁은 보통 접대 자리다. 그 수요를 받는 게 룸 13개. 창밖의 경복궁은 외국 손님 앞에서 설명이 필요 없는 풍경이고, 식탁에는 조선 궁중에서 먹던 신선로와 보김치가 오른다.
8.이름도 한몫한다. 아사달은 1986년 서울 프라자호텔, 지금의 더 플라자에서 문을 연 한식당이고, 2002년 방한한 로라 부시(Laura Bush) 여사가 들른 곳으로 알려졌다. 20여 년 전 사라진 이름을 다시 걸면서 신선로 같은 옛 메뉴를 함께 되살렸다. 새 식당 이름을 알리는 데 들 돈을 옛 손님들의 기억이 대신 치른다.

9.20배는 작은 기준에서 나온 숫자이기도 하다. 개점일이 4월 24일이라 첫 달을 4월로 잡으면 영업한 날은 이레뿐. 하루 평균으로 바꾸면 8월 방문객은 첫 달의 4.5배쯤. 그래도 점심과 저녁이 두 달 치 찼다는 사실은 기준을 바꿔도 그대로 남는다.
10.코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 특급호텔 한식 코스가 보통 점심 10만 원대, 저녁 20만~30만 원대에 걸려 있으니 아사달의 1인 객단가도 그 범위로 추정된다. 그럼 계산서는 무엇이 키울까. 와인. 음식에 맞춘 유료 시그니처 페어링을 따로 팔고, 와인 타워에는 한 병에 2,0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11.15층은 1층 상가가 아니라 오피스 층이라 임대료 셈법이 다르다. KT와의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도심 오피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쳐 평당 월 20만 원으로 잡으면 450평에 월 9,000만 원이고, 좌석 하나가 한 달에 39만 원꼴을 낸다. 저녁 코스를 20만 원으로 치면 한 좌석에 한 달 동안 손님 둘만 앉아도 그 자리의 임대료는 나온다.
12.더 무거운 쪽은 인건비. 코스 식당은 테이블마다 설명하고 접시를 바꾸는 사람이 붙어서, 좌석 수보다 사람이 먼저 늘어난다. 한 층에 식당 셋을 모은 데서 그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보인다. 2025년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배성민 헤드 소믈리에의 팀 하나와 와인 셀러 하나가 세 식당의 와인을 모두 받는다.

13.서울 프라자호텔은 1976년 시청 앞에 문을 열었고, 도원은 그해부터 이 호텔의 중식당이었다. 한화는 호텔 식음 부문을 외주로 돌리고 외식 사업을 따로 떼어 한화푸드테크를 세웠다. 호텔 투숙객을 기다리던 식당 이름이 이번에는 호텔 밖 오피스 빌딩에서 직접 손님을 받는다.
14.리모델링을 마친 호텔의 목표는 글로벌 VIP를 겨냥한 '7성급'이고, 객실을 스위트 위주로 바꾸고 미쉐린 스타 식당을 들이겠다는 계획이 나와 있다. 아사달과 도원이 그때 호텔로 돌아갈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건 건물이 멈춰 있는 동안에도 두 이름은 광화문에서 영업한다는 것. 호텔을 고치는 3년 동안 단골을 잃지 않는 길을 식당이 먼저 찾아 나섰다.

15.개관 50년 된 호텔이 문을 닫는 달에, 그 호텔이 1986년에 연 한식당은 오피스 빌딩 15층에서 10월 말까지 자리를 다 팔았다. 450평 232석을 사무실 층에 펼쳐 놓고, 옛 이름과 창밖의 궁궐로 두 달 치 예약을 채웠다. 다른 도심 오피스에서 같은 걸 하려면 주방에서 먼저 막힌다. 사무실 층을 음식점으로 쓰려면 용도를 바꿔야 하고, 불을 쓰는 주방의 배기를 옥상까지 끌어올릴 샤프트가 있는지부터 도면에서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