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3스타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9월 17일 파리 방돔 광장 옆 호텔에 첫 식당을 열었다. 코스 대신 작은 접시와 갈비 쌈을 팔고, 문은 저녁에만 연다.
1.9월 17일, 파리 2구 라 페 거리(rue de la Paix) 5번지의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Park Hyatt Paris-Vendôme)에 한식당 SEOK이 문을 열었다. 서울 청담동 밍글스를 이끄는 강민구 셰프가 파리에 낸 첫 식당. 밍글스는 2025년 미쉐린 3스타를 받았고, 같은 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5위에 올랐다. 가게 이름은 셰프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왔다.
2.객실 156개 가운데 45개가 스위트인 호텔. 이 건물에는 이미 미쉐린 1스타 프렌치 PUR'가 있다. 장프랑수아 루케트(Jean-François Rouquette) 셰프의 식당이고, 두 식당의 실내를 모두 프랑스·멕시코 출신 건축가 겸 작가 위고 토로(Hugo Toro)가 맡았다. 예약 전화번호도 같다. SEOK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5시 30분에 열어 10시에 닫고, 점심 영업은 없다.

3.문을 들어서면 오픈 키친이 다이닝 바로 이어지고, 그 앞에 카운터 자리가 줄을 선다. 안쪽은 호박색 조명을 켠 홀, 따로 10명이 앉는 별실이 하나. 벽과 가구는 검고 갈색인 나무로 짜고 그 사이를 붉은 회벽으로 메웠으며, 천장에는 양피지 판을 곡선으로 휘어 걸었다. 두드린 구리와 잔금이 간 칠, 도자기가 나머지 재료다. 좌석 수는 아직 공개 전.


4.빛은 위에서 내리꽂지 않는다. 양피지 판을 거친 빛이 천장 곡선을 따라 번지고, 테이블마다 갓을 씌운 스탠드가 손 닿는 높이에서 접시를 비춘다. 카운터에 앉으면 오픈 키친의 불이 정면에 온다. 어두운 방에서 밝은 곳은 식탁과 주방 둘뿐이고, 손님의 눈은 그 둘 사이를 오간다.


5.차림은 코스가 아니다. 작은 접시와 나눠 먹는 큰 접시, 반찬과 양념을 손님이 골라 한 상을 짠다. 메인을 하나 시키면 반찬 셋이 따라 나오는데, 계절 반찬 둘에 김치와 절임 채소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간판은 길거리 음식에서 가져온 바삭한 마전, 두 번 튀긴 치킨 듀오, 간장에 재워 구운 앵거스 소갈비. 갈비를 싸는 건 상추나 깻잎.

6.메뉴 전체의 바탕은 간장·된장·고추장, 세 가지 장이다. 쌈은 손이 하는 요리라서 잎을 펴고 고기를 얹고 반찬을 올려 입에 넣기까지 순서를 손님이 정하고, 깻잎을 쥔 손끝에 향이 남는다. 술은 샴페인과, 한국 쌀 증류주 화요(HWAYO)의 X Premium을 쓴 칵테일. 미국 참나무통에서 5년, 옹기에서 6개월을 묵힌 술.


7.강민구가 한식을 들고 바다를 건넌 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홍콩 라인드허스트 테라스(Lyndhurst Terrace)에 연 한식구(Hansik Goo)는 편하게 나눠 먹는 식당으로 기획했지만, 손님은 홍콩 첫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받아들였다. 1년 만에 센트럴의 The Wellington으로 옮겨 51석으로 다시 열었다. 지금은 미쉐린 1스타, 저녁에는 테이스팅 메뉴 두 가지만 낸다.
8.파리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서울 밍글스의 저녁 코스는 40만 원을 넘고, 같은 호텔 안에는 이미 프렌치 테이스팅을 파는 별 하나짜리 식당이 있다. 며칠씩 묵는 투숙객이 이틀 연속 긴 코스에 앉을까. SEOK은 테이스팅을 내려놓고, 접시를 가운데 놓고 여럿이 나눠 먹는 한국 식탁을 판다. 셰프는 퓨전을 노리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 제철 재료를 쓰되 발효와 맛의 균형, 식감과 온도는 한국식 그대로.
9.SEOK이 불을 켜는 시간은 하루 4시간 30분, 일주일에 22시간 30분. 168시간의 13%. PUR'는 같은 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15분까지 손님을 받는다. 한 호텔 안의 두 식당이 모두 점심을 비우고, 저녁 몇 시간에 손님을 모은다.
10.프랑스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35시간. 저녁만, 주 5일 여는 시간표라면 준비와 마감을 붙여도 주방 한 조가 한 주를 맡을 만한 길이가 된다. 점심을 열면 조가 하나 더 붙고, 파리 호텔 주방의 인건비는 그만큼 곧장 이익에서 빠진다. 영업시간은 결국 사람 수를 정하는 숫자.
11.가격도 비공개. 파리 5성 호텔에서 작은 접시 서너 개와 갈비, 술 한 잔이면 1인 150유로 안팎으로 잡을 수 있다. 좌석 하나가 저녁에 한 번 돌고 한 달에 22일 연다고 치면 좌석당 월 3,300유로쯤 된다. 이른 손님과 늦은 손님을 나눠 받으면 한 바퀴 반까지 바라볼 수 있다. 회사가 밝힌 숫자가 아닌 추정.
12.테이스팅 메뉴는 좌석마다 정해진 재료가 정해진 만큼 나간다. 나눠 먹는 차림은 테이블이 접시를 더 시킬수록 객단가가 오르고, 접시마다 설명하며 치우는 서버를 코스처럼 붙이지 않아도 된다. 반찬 셋을 메인에 묶은 것도 원가 쪽에서 보면 이유가 있다. 계절 채소와 김치, 장은 미리 한꺼번에 담가 두는 음식이라 한 종지의 원가가 낮고, 원가가 높은 앵거스 갈비 옆에서 상을 넓게 채운다.
13.호텔은 이 식당에서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 스타 셰프의 식당을 들일 때는 셰프 쪽에 이름값과 자문료를 주고 직원과 주방은 호텔이 직접 굴리는 계약이 흔한데, SEOK의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호텔이 얻는 건 식당 매출만이 아니다. 객실 156개의 손님이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지 않게 붙잡고, 방돔 광장 근처에서 한식 예약을 찾는 바깥 손님을 로비로 들인다.

14.밍글스는 2014년 청담동에서 문을 열어 2017년 서울 미쉐린 첫해에 별을 받았고, 2019년 같은 동네의 더 넓은 자리로 옮겼다. 장을 가운데 둔 코스로 11년 만에 별 셋까지 오른 셰프가, 긴 코스 요리의 본고장 파리에서는 코스를 내려놨다. 프랑스식 긴 저녁은 같은 호텔 PUR'의 몫.
15.서울에서 40만 원이 넘는 코스로 별 셋을 받은 셰프가 파리 호텔에서는 반찬 셋과 쌈을 내놓고 저녁에만 문을 연다. 국내 호텔이 같은 식당을 들이면 먼저 걸리는 건 주방의 근무시간이다. 5인 이상 사업장은 연장근로까지 합쳐 주 52시간이 상한이라, 점심과 저녁을 모두 여는 호텔 식당은 주방을 두 조로 짠다. 저녁만 여는 시간표라면 그 주방을 한 조로 꾸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