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244에 덴마크 가구 브랜드의 단독 매장이 열렸다. 지상 3층인데 1층에는 팔 가구가 없다. 그 자리에 차와 커피와 그릇이 놓였고, 층을 운영하는 곳은 가구 회사가 아니라 코스닥 상장사의 자회사다. 파는 것은 음료인데 돈이 도는 길은 카페와 다르다.
1.이름은 프리츠한센 녹사평. 주소는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244이고 3월 25일에 열었다. 지상 3층 단독 매장에서 가구는 2층과 3층에 있다. 1층은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브랜드 에디션덴마크(Edition Denmark)가 쓴다. 음료와 디저트, 그리고 그릇.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고 월요일은 쉰다.
2.프리츠한센(Fritz Hansen)은 1872년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가구 회사다. 한국 지사가 생긴 건 2019년. 2024년 3월에는 제주에 국내 최대 규모 매장을 냈다. 서울에서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단독 매장은 이번이 처음. 그 첫 매장의 1층에 의자가 상품으로 놓여 있지 않다.

3.위층은 쇼룸보다 집에 가깝게 짰다. 제품을 벽을 따라 늘어놓는 대신 주택 크기의 방과 동선 안에 앉혀서, 내 거실에 들이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 자리에서 그려 보게 한다. 같은 의자를 패브릭과 가죽으로 나눠 여러 점 세워 둔 구역도 있다. 디자인이 같아도 재질이 바뀌면 다른 물건이 된다는 걸 말로 설명하지 않는 방식.
4.2층과 3층을 잇는 계단은 연두색. 녹사평이라는 지명이 푸른 풀이 우거진 들판을 뜻한다는 데서 가져왔다. 창으로 들어온 빛이 그 색을 타고 위로 끌려 올라가고, 아래에서 보면 계단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5.1층에 서면 순서가 뒤집힌다. 주문대 옆으로 차 틴이 늘어서 있고, 잔을 내려놓는 테이블과 앉는 의자가 곧 위층 상품이다. 손님은 가구를 보러 온 게 아닌데 앉는 순간 앉는 각도와 등받이 높이를 시험하게 된다. 매장에서 의자에 앉아 보라고 권하는 것과, 커피를 손에 쥔 채 30분을 앉아 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6.잔에 담기는 건 두 브랜드다. 커피는 커피콜렉티브(Coffee Collective). 2007년 코펜하겐에서 로스터리로 출발해 이듬해 예게르스보르가데(Jægersborggade)에 첫 카페를 냈고, 공동 창업자 클라우스 톰센(Klaus Thomsen)은 2006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라는 말을 상표로 등록해 두고 농가에 지불한 값을 공개해 왔다. 지금 코펜하겐에 여덟 곳, 오르후스에 한 곳.

7.차는 A.C. 퍼치스 티핸들(A.C. Perch's Thehandel)이다. 1835년 니엘스 브록 퍼치(Niels Brock Perch)가 코펜하겐 크론프린센스가데(Kronprinsensgade) 5번지에 열고 셋째 아들 이름을 간판에 걸었다. 1894년부터는 힌셸데이 라운 가문이 이었고, 2002년 마르그레테 2세가 왕실 조달로 지정했다. 2005년에는 2층에 영국식 티룸을 냈다. 코펜하겐에서 여덟 번째로 오래된 가게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8.두 음료가 입에서 어떻게 굴러갈지는 짐작이 간다. 북유럽 로스팅은 얕게 볶아서, 뜨거울 때 눌려 있던 산이 잔이 식는 동안 앞으로 올라오고 단맛은 그 뒤에 붙는다. 잎차는 반대로 간다. 우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떫은 기운이 혀 옆을 조인다. 둘 다 앉아서 마셔야 값을 하는 음료이고,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나가면 반쯤 버리는 셈이 된다. 위층에 팔 물건이 있는 층에서는 그게 결함이 아니다.
9.1층을 쓰는 회사부터 보자. 에디션덴마크는 2018년 덴마크인 요한 풀스비야(Johan S. Fuglsbjerg)와 이지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세웠고 2019년 4월에 브랜드를 열었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피오의 자회사다.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덴프스(Denps)로 지난해 연결 매출 2,408억 원을 올린 회사. 이 회사가 한국에 들여오는 덴마크 물건이 차와 꿀과 커피이고, 그 셋이 그대로 1층 메뉴가 됐다.

10.이 층을 카페 손익으로만 재면 작다. 면적도 좌석 수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3층 단독 매장 한 층을 40~60평으로 잡고 좌석을 25석 안팎으로 보는 게 이 정도 브랜드 매장의 보통이다. 직수입 원두와 왕실 조달 차를 쓰는 가격대라 객단가를 8,000원으로 두면, 하루 120잔에 월 25일 영업으로 월 2,400만 원. 50평 기준 평당 월 48만 원. 서울 스페셜티 카페가 평당 월 6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를 오가는 것과 견주면 아래쪽. 전부 공개 자료와 업계 통상치로 세운 추정이고 업소가 밝힌 숫자가 아니다.
11.이 회사가 파는 건 잔이 아니다. 차 틴과 원두 봉지와 그릇이 같은 층에 있고, 그것들은 좌석을 쓰지 않고 팔린다. 수입 유통사에게 매장은 소매 창구이자 시음장. 같은 물건에서 마진이 두 번 붙는다. 수입해 도매로 넘길 때 한 번, 잔에 담아 팔 때 또 한 번.
12.더 큰 손님은 카운터 앞에 없을 수도 있다. 이 회사의 차는 올리브영이 운영하는 올리브베러에도 들어갔다. 백화점 바이어와 호텔 구매 담당이 브랜드를 확인하는 자리로 매장이 쓰이면, 이 층의 성과는 하루 몇 잔이 아니라 그해 도매 계약으로 잰다. 그럼 이 층의 정직한 비교 대상은 옆 골목 카페일까.
13.가구 회사 쪽 셈도 같이 봐야 한다. 1층을 음료에 내주면 진열 한 층이 사라지는데, 대신 오는 게 방문 사유다. 가구는 한 번에 큰 금액이 오가고 사는 사람은 1년에 몇 번 오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은 만 원이 안 되고, 살 마음이 없어도 온다. 그 손님이 앉는 의자가 위층 가격표를 달고 있고, 계단은 그 뒤에 있다.

14.가구 매장에 카페를 붙이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보통은 브랜드가 직영으로 돌리고 음료에서 나는 적자를 마케팅비로 처리한다. 여기서 갈린다. 1층 운영자가 다른 회사이고, 그 회사는 남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대신 자기가 수입한 물건을 판다. 두 회사가 한 동선을 나눠 쓰면서 각자 다른 상품에서 이익을 거두는 구조인데, 임대료를 얼마로 정했는지, 아니면 임대료 대신 무엇이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15.자리는 이태원과 경리단길 사이, 녹사평역에서 걸어 닿는 대로변이다. 이 상권은 대형 브랜드가 빠져나간 대로변 자리가 아직 다 차지 않았고 골목 쪽이 먼저 살아났다는 게 올해 현지 보도. 한국부동산원 2026년 1분기 조사에서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8.3%, 일반상가 1층은 6.5%였다. 대로변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고 그중 한 층을 음료에 내주는 결정은, 임대차 조건이 무를 때 나온다.

16.덴마크 가구 회사가 서울 첫 단독 매장의 1층을 통째로 음료에 내줬고, 그 층은 차와 커피를 수입하는 다른 회사가 굴린다. 잔만 세면 평당 월 48만 원 남짓으로 추정되니 이 층은 카페로 설명되지 않고, 소매와 도매와 위층 상담까지 넣어야 숫자가 선다. 국내에서 먼저 걸리는 건 계약서다. 한 공간에서 두 사업자가 각자 등록을 내고 다른 물건을 팔려면 영업 신고 단위와 위생 구획, 매출 귀속과 카드 단말 분리를 미리 적어 둬야 한다. 안 적으면 이 구조는 임대인의 호의로만 굴러가고, 호의는 계약서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