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칼턴(Carlton)의 주유소를 지나 자갈 골목을 한 번 꺾으면 헛간문이 나온다. 밀고 들어가면 커피를 만드는 소리가 없다. 원두 갈리는 소리도, 포터필터를 두드려 찌꺼기를 터는 소리도, 스팀완드가 우유를 찢는 소리도 빠져 있고 클래식 기타만 낮게 깔린다. 그 소리를 전부 가져간 건 스위스제 초자동 머신 한 대. 주 5일만 열고 오후 3시 30분에 닫는 이 집은 아직 소프트 오픈인데 정오면 문밖까지 줄이 선다.
1.상호는 Atelier Ensō. 주소는 8 Raffa Place, 멜버른 칼턴이다. 큰길인 라이곤 스트리트(Lygon Street)에서 한 블록 들어와야 하고 그것도 셸 주유소 뒤 골목이라 지나다 들르는 손님은 없다. 원래 Vertue Coffee Roasters가 옛 마구간 건물을 고쳐 쓰던 자리인데 그 로스터리가 나가면서 비었다. 자리를 받은 게 지난해 말, 문을 연 게 올해 7월.
2.차린 사람은 앨리샤 펑(Alicia Feng). 커피 대회 감각 심사위원이고 호주 브루어스컵 수석 심사위원이며 Q그레이더 자격을 갖고 있다. 2019년 피츠로이에 Calēre Coffee를 냈고 2023년에는 콜링우드의 Chiaki를 공동으로 열었다. 여기가 세 번째 가게. 본인은 불교 신자라고 밝히면서 요 몇 해 수행을 더 하게 됐고 조용한 자리가 자기한테도 주변 사람한테도 더 필요해졌다고 말한다. 상호의 엔소(円相)는 붓으로 한 번에 돌려 그리는 선(禪)의 원을 가리킨다.

3.안은 흰 페인트를 칠한 벽돌과 호두나무, 스테인리스로 짰다. 천장 가운데에 종이를 씌운 커다란 사각 등이 낮게 걸리고 그 아래로 긴 카운터가 지난다. 뒷벽은 격자로 짠 목재 선반이라 칸마다 원두 봉투가 서 있고, 유리 진열장에는 Gaea 주방에서 만들어 오는 롤케이크와 쿠키가 들어간다. 안쪽 한 칸은 검은 프레임 유리로 통째로 둘러 로스터를 넣은 방.

4.가장 먼저 걸리는 건 없는 소리. 카페 소음의 대부분은 커피를 만드는 동작에서 나온다. 그라인더, 탬핑, 찌꺼기 터는 소리, 스팀완드. 그게 다 빠지면 남는 건 사람 목소리, 그리고 잔이 접시에 닿는 소리. 카운터 상판을 낮추면서 머신 높이도 함께 내렸고, 손님과 만드는 사람의 눈이 기계 위에서 마주친다.

5.에스프레소는 흰색으로 특별 도장한 Eversys Cameo가 뽑는다. 매장에서 볶은 시즌 블렌드와 디카페인 두 가지. 뽑힌 샷은 LinkBar라는 꼭지로 넘어가고, 버튼 한 번에 미리 정해 둔 물 양과 온도로 롱블랙이 떨어진다. 물이 지나며 아주 작은 거품이 섞여서 롱블랙 특유의 날 선 끝이 눌리고 입 안에 크림 같은 감촉이 남는다고 이 집은 설명한다. 옆 꼭지에서는 카카오 껍질을 우린 맑은 차가 나온다.

6.우유를 못 마시거나 안 마시는 손님은 카페 매출이 늘 새는 자리다. 이 집은 그 자리를 원두를 볶고 남은 껍질로 메웠다. 제대로 내리는 필터는 카운터에 심은 Modbar 에스프레소·푸어오버 스테이션이 맡고, 시즌 블렌드를 뽑을 때는 일반 에스프레소 머신을 따로 쓴다. 시즌 블렌드는 파나마와 에티오피아. 리테일 선반 옆에는 xBloom 푸어오버 브루어가 놓였는데, 문 연 첫 주말에 여기서만 70잔 넘게 나갔고 두 대를 더 주문할 참이라고 한다.

7.초자동 머신을 들이는 이유는 보통 하나. 같은 시간에 잔을 더 뽑으려고. 여기서는 반대로 썼다. 기계를 처음 켠 날 직원들이 너무 쉬워서 이상하다고, 갑자기 할 일이 없다고 했다는데 그 빈 시간을 손님과 이야기하는 데 돌렸다. 사람을 줄인 게 아니라 사람이 하던 일 가운데 손님이 보지 않는 부분만 걷어 냈다.

8.메뉴에 시그니처 음료가 없다. 그것도 정해 놓고 안 만든 것. 새 음료를 계속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이 가게의 목적과 자주 어긋난다는 게 이 집 판단이고, 직원이 자기가 파는 음료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 하나로 목록을 줄였다. 주 1회 푸어오버 모임과 일반·업계용 감각 훈련 과정을 열 계획인데, 시그니처가 앉을 자리에 그걸 놓겠다는 이야기.

9.동네도 거들었다. 칼턴은 2차 대전 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들어와 1950년대에 이 도시에 에스프레소를 처음 들여온 곳이다. 그 동네 노년층이 초자동 머신 앞으로 다가와 플랫화이트 거품이 왜 이렇게 곱냐고 묻고, 20대는 봉투를 들고 컵노트를 따진다. 업계 반응은 다르다. 주인 본인이 「99%는 회의적이고 1%는 해 보고 싶어 하지만 확신이 없다」고 전한다.

10.호주 접객업 시급은 올해 7월부터 캐주얼 1급이 33.05호주달러로 올랐다. 이 집이 여는 주 40시간을 한 사람이 채우면 1년 인건비가 6만 8천 호주달러를 넘고, 주말 할증까지 붙으면 더 올라간다. 지난 1년 사이 호주 카페와 식당은 8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11.Eversys Cameo의 판매 시작가는 2만 5,344호주달러다. 바리스타 한 사람을 넉 달 반 쓰는 값. 여기에 LinkBar와 xBloom, Modbar 스테이션까지 더해도 설비 총액은 사람 한 명 1년치 인건비 언저리로 본다(이하 추정). 설비는 한 번 내고 끝나지만 인건비는 매년 다시 나간다.
12.대신 파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멜버른 독립 카페는 보통 주 7일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여는데 이 집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8시간이다. 주간으로 3분의 1을 안 판다. 3분의 1을 안 파는 가게가 어떻게 같은 돈을 버나. 시간당으로 1.6배를 벌면 된다.
13.손님을 더 밀어 넣어 그 1.6배를 채우지는 않는다. 정원의 80%까지만 앉히고 그 위로는 테이크아웃으로 받는다고 밝힌다. 마진은 커피 아닌 줄에서 만든다. 카카오 껍질 차는 볶고 남은 부산물이라 원가가 거의 안 붙는데 값은 음료 값을 받고, 리테일 선반은 원두와 추출 레시피에 가정용 브루어까지 묶어 판다. 위층에는 교육실, 주문한 만큼만 볶아 찾아가게 하는 방식도 준비 중.

14.주인이 반복해서 하는 말은 값을 올리라는 것이다. 첫 가게 Calēre Coffee는 거트루드 스트리트에서 가장 작은 카페인데 값은 그 길에서 가장 먼저 올렸다고 한다. 「임금도 오르고 다 오르는데 값 올리기를 무서워한다. 이대로 가면 우리 숫자가 줄어든다」. 손님들이 버블티에 10달러, 하우스 와인에 15달러를 쓴다는 말도 덧붙인다. 원가대로 받아야 직원한테 제대로 줄 수 있다는 것.

15.초자동 머신이 원래 서던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호주에서는 주유소와 셀프 매장에 들어가 있고, 뉴욕의 한 커피 체인은 이 스위스제 머신으로 숙련 바리스타를 뽑지 않고도 5년 만에 매장을 90개까지 늘렸다. 시드니의 Beta Coffee는 문 열기 전 에스프레소를 미리 뽑아 두는 데 쓴다. 전부 규모와 속도 쪽이다. 주문을 받고 한 잔씩 뽑는 데 이 기계를 쓰는 독립 카페는 이 집이 처음이라고 Broadsheet는 적었다.
16.주유소 뒤 골목에서 주 5일만 여는 카페가 커피 만드는 소리를 지우고 그 시간을 손님과 이야기하는 데 돌렸다. 기계값은 그 나라 바리스타 한 사람의 넉 달 반 인건비다. 국내에서 같은 계산을 하면 답이 뒤집힌다. 최저시급이 1만 320원이라 같은 기계 한 대가 사람 1년치 인건비를 넘어서고, 초자동으로 뽑은 잔을 커피로 안 쳐 주는 손님도 아직 많다. 사람을 빼려고 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손님 앞에 세우려고 쓴다는 순서가 먼저 서지 않으면, 국내에서 이 설비는 비싼 기계로만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