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도쿄 황궁 동원에 213만 6,978명이 들어왔다. 그중 58.3%가 외국인. 오테몬(大手門)을 지나 잔디밭과 성터를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반쯤 걸리는데, 그 안에서 앉아 마실 수 있는 자리는 자판기 옆 벤치가 전부였다. 궁내청(宮内庁)이 그 자리에 목조 단층 건물 하나를 새로 지었고, 공모를 붙여 카페 운영자를 골랐다. 붙은 곳은 사루타히코 커피(猿田彦珈琲). 문 여는 날은 11월 3일이고 술은 한 방울도 못 판다.
1.주소는 도쿄 지요다구 지요다 1-9, 황궁 동원 오테휴게소(大手休憩所) 안이다. 영어 이름은 Imperial Palace Visitor Center. 오테몬으로 들어와 왼쪽으로 몇 걸음 가면 나오는 자리에 목조 단층으로 2,800㎡를 깔았고 지붕 위에는 테라스를 얹었다. 매점이 붙고, 일본의 사계를 트는 대형 LED 화면과 황실 활동을 소개하는 모니터가 들어간다. 카페 자리는 46석에 서서 마시는 자리 10개.
2.공사비는 약 75억 엔. 우리 돈으로 700억 원이 넘는 금액. 재원이 특이한데 국제관광여객세, 그러니까 일본을 떠날 때 1인당 걷는 출국세다.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 정원이 붐비고 앉을 데가 모자란다는 게 짓는 이유였다. 돈을 낸 사람과 그 건물을 쓸 사람이 대체로 같다. 사루타히코 커피는 지난 4월 3일 우선협상권을 받았고, 9월 4일에 개점을 공식으로 알렸다.

3.같은 날 옆 건물도 문을 연다. 황궁 산노마루 쇼조칸(皇居三の丸尚蔵館)은 황실이 물려온 미술품을 보관해 온 곳인데, 2023년 11월에 1기 건물만 먼저 열고 2025년 5월 7일부터 공사로 닫아 뒀다. 11월 3일에 전면 개관하면 전시 면적이 옛 시설 160㎡에서 1,300㎡로 늘어난다. 입관료는 1,000엔. 관람을 마친 사람이 그대로 흘러드는 자리.

4.동원은 에도성 본성 자리다. 남은 건 천수대와 돌담, 마쓰노오로카(松の大廊下) 터. 니노마루에는 연못을 낀 정원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햐쿠닌반쇼(百人番所)의 긴 처마가 이어지고, 그 지붕 너머로 마루노우치 사무실 건물들이 겹쳐 선다. 기와지붕과 유리 외벽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이 정원을 찍은 사진은 보통 이 구도다.

5.사루타히코 커피의 라테는 두 갈래로 나뉜다. 진한 쪽은 작은 잔에 550엔, 연한 쪽은 큰 잔에 650엔. 잔이 커지면 우유가 늘고 맛이 연해지니, 같은 이름 아래 농도를 손님이 고르는 구조다. 진한 쪽은 입에 대는 순간 볶은 향이 먼저 오고 우유가 뒤를 받친다. 연한 쪽은 순서가 뒤집혀 우유의 단맛이 앞에 서고 커피가 여운으로 남는다. 드립은 680엔, 귀리 우유를 쓰면 780엔.

6.정원이 문을 여는 시각은 9시. 그 시각의 정원은 조용하고, 여름이면 니노마루 정원 연못 쪽에서 물비린내 섞인 풀냄새가 올라온다. 커피 향이 그 위에 얹히는 자리는 지금까지 없었다. 궁내청이 노리는 게 커피 매출만은 아니다. 앉을 데가 생기면 관람객이 한 바퀴 돌고 바로 나가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 늘면 매점 매출도 같이 붙는다.

7.손님을 데려올 필요가 없는 자리를 어디서 구하나. 카페 장사의 절반은 사람을 문 앞까지 오게 하는 일인데, 여기는 표를 사서 들어온 사람이 이미 안에 있다. 광고비 0원, 상권 분석 0원. 그 대신 사람들이 언제 오고 언제 나가는지를 카페가 하나도 못 정한다.

8.이름도 자리에 맞았다. 사루타히코라는 상호는 일본 신화의 사루타히코 오카미(猿田彦大神)에서 왔고, 길을 여는 신이라고 한다. 미에현에는 그 이름을 쓰는 신사도 있다. 창업자 오쓰카 도모유키(大塚朝之)는 배우를 그만두고 원두 가게 점원으로 들어갔다가 2011년 6월 에비스에 8.7평짜리 가게를 냈다. 그 이름을 걸고 궁 안으로 들어간다.

9.지난해 입원자 213만 6,978명을 공개일 260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8,219명이 이 정원을 지났다. 관광시설 안 카페가 방문객의 10~15%를 받는다는 업계 통설을 그대로 대면 하루 820명에서 1,230명. 가운데를 잡아 1,000명, 음료 한 잔에 곁들이 하나를 900엔으로 보면 하루 90만 엔(이하 추정).
10.문제는 파는 시간. 카페 영업이 정원 개원 시각에 묶여 있어서, 3월에서 4월 중순까지는 9시부터 17시, 4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18시, 10월은 16시 30분, 11월부터 2월까지는 16시에 닫는다. 겨울 하루 7시간. 저녁 장사가 아예 없고 술도 못 파니, 객단가가 가장 높은 두 줄이 처음부터 빠진 채로 계산을 시작한다.
11.쉬는 날도 두 겹. 정원은 월요일과 금요일에 닫고 12월 28일부터 1월 3일까지 문을 잠근다. 카페는 그보다 조금 낫다. 쇼조칸이 여는 날에는 관람객에 한해 휴게소를 쓸 수 있어서 정기 휴일이 월요일 하나로 줄어든다. 하루 90만 엔에 260일을 곱하면 연 2억 3,000만 엔, 우리 돈 22억 원쯤 된다.
12.그 숫자를 회사 안에 놓으면 크기가 드러난다. 사루타히코 커피는 매장이 17곳이던 시절 연매출 20억 엔을 넘겼다고 알려졌으니 한 곳당 1억 2,000만 엔 남짓. 지금은 33개. 동원점 하나가 앞의 추정대로만 나와도 회사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좌석 하나당 1년 410만 엔.

13.건물 쪽 숫자는 성격이 다르다. 75억 엔을 2,800㎡로 나누면 ㎡당 268만 엔이 나온다. 목조 단층 상업건물의 통상 공사비를 여러 배 웃도는 값이다. 전시 설비와 매점이 같은 지붕 아래 들어간다는 걸 생각해도 높다. 이 돈은 카페가 내지 않았다. 국가가 지은 건물에 운영자로 들어가는 구조이고, 사용료 조건은 공표되지 않았다.

14.문화시설의 식음 공간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 자체는 오래됐다. 파리 루브르의 카페들, 도쿄 국립박물관과 국립서양미술관의 카페가 그렇게 굴러간다. 일본에서는 스타벅스가 교토 니넨자카(二寧坂)의 마치야와 우에노 공원에 들어가 앞선 사례를 만들었다. 그 자리들은 박물관이거나 공원이었고, 궁의 담장 안쪽은 처음이다.
15.이 회사가 해외에서는 이겨 본 적이 없다는 것도 같이 봐야 한다. 2018년 9월 타이베이에 나갔다가 2022년 대만 매장을 전부 접었고, 코로나 때는 미쓰비시상사의 자본을 받았다가 주식을 되사 독립했다. 2024년 10월에는 소속 바리스타가 일본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세계 대회에서 5위에 올랐다. 밖에 나가서 못 얻은 것을 국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지나는 자리로 대신하게 됐다.

16.매년 213만 명이 지나는 동안 커피 한 잔 살 데가 없던 정원에, 출국세 75억 엔으로 지은 목조 건물과 46석짜리 카페가 11월 3일 함께 문을 연다. 손님을 부르는 비용이 0원이라는 조건 하나로 저녁도 술도 없는 하루 7시간 영업을 버티는 구조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고궁 담장 안에 상업시설을 들이는 일부터 걸린다. 궁과 능은 국가유산청이 직접 관리하고 관람 시간도 짧아서, 이 계산이 서는 자리는 담장 안이 아니라 바로 바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