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서리힐스(Surry Hills)의 뒷길에 9월 10일 커피집 하나가 열렸다. 손님이 앉는 자리는 스프레이를 뿌린 이케아 스툴과 빨간 플라스틱 음료 상자, 그리고 인도에 놓인 콘크리트 턱이다. 그런데 커피는 장수 문양을 두른 중국 도자기 잔에 담겨 은쟁반에 실려 나온다. 음료는 22종. 돈을 어디에 쓰고 어디에 안 썼는지가 한눈에 보이는 가게다.
1.가게 이름은 Kiddo Coffee, 주소는 메리 스트리트 84-86번지. 정식 개점 행사는 9월 20일 일요일로 잡혀 있고, DJ를 부르고 파인애플 번을 공짜로 돌린다고 안내했다. 문은 이미 열흘 전부터 열려 있었다.
2.영업은 평일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3시에 끝나고 주말은 30분 늦게 연다. 저녁 장사가 없는 시간표. 주인은 파카싯 와웡문(Pakasit Wawongmoon)이고 주변에서는 젠(Zen)이라 부른다. 2년 전까지 본다이(Bondi)에서 같은 이름의 가게를 동업으로 했는데, 그곳에서 나온 뒤 이번에는 혼자 차렸다. 예산이 빠듯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했다는 게 본인 설명.

3.외벽은 파스텔 노란색, 창틀은 짙은 초록. 유리에 붙은 글씨는 「COOL KIDS NEVER SLEEP」이고 그 아래에 커피·말차·번을 영어와 한자로 나란히 적었다. 가게 앞은 인도가 좁아 테라스를 놓을 자리가 없다. 대신 도로 공사용 콘크리트 턱이 길게 놓여 있고, 손님들은 그 턱을 등받이 삼아 스툴에 앉는다. 무릎 앞에 놓인 빨간 음료 상자가 탁자다.

4.안으로 들어가면 톤이 갑자기 바뀐다. 벽 한 면은 검은 타일, 그 위로 붉은 목재 선반이 천장까지 올라가고 칸마다 원두 봉지와 도자기, 화분이 들어차 있다. 왕가위(王家衛)의 「타락천사(墮落天使)」 포스터가 나무 액자에 눌려 벽에 걸렸고, 선반 가운데에는 빨간 Crosley 턴테이블과 LP 몇 장이 세워져 있다. 홍콩 영화의 화면, 그리고 그 도시의 오래된 다방. 주인이 밝힌 출처는 그 둘이다.


5.음료는 22종이다. 한쪽 끝에는 서머힐(Summer Hill)의 로스터 Headlands에서 받아 배치브루로 내리는 기본 커피가 있고, 반대쪽 끝에 손이 많이 가는 잔들이 붙는다. 「Fly Me To the Moon」은 몽블랑을 커피로 옮긴 것이고, 「Momokawa」는 에스프레소에 유제품이 아닌 크림과 겐마이차를 얹는다. 아인슈페너도 있고 태국식 아이스커피도 있다. 잔은 장수 문양을 두른 중국 도자기, 받침은 은쟁반.


6.먹을 것은 두 가지뿐. 홍콩식 파인애플 번인 폴로바오(菠蘿包)와, 코코넛을 채운 판단 번. 주문이 들어오면 작은 오븐에 데워 내고 Pepe Saya 버터 한 조각을 옆에 놓는다. 노란 크러스트가 갈라진 자리로 김이 오르고, 초록 판단 번은 손으로 가르면 안쪽 코코넛 속이 따뜻하게 늘어붙는다. 이 번은 홍콩에 사는 친구 남매 얀센 리(Jansen Li)와 조이스 리(Joyce Li)가 집안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 만든다.

7.태국식 아이스커피에는 태국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사람들이 이 커피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길 바랐다는 게 주인의 설명. 태국의 오래된 커피 오리앙(โอเลี้ยง)은 로부스타에 옥수수와 콩, 참깨를 섞어 태우듯 볶은 가루로 내린다. 전쟁으로 원두가 끊겼을 때 곡물을 섞어 양을 늘리던 습관, 그게 그대로 맛이 됐다.
8.그 커피가 지금은 공급난의 흔적이 아니라 메뉴판의 한 줄로 서 있다. 음료 22종을 늘어놓은 구성도 같은 방향을 본다. 사진이 찍히는 잔 하나를 보고 들어온 사람에게 다음번에는 배치브루 한 잔을 팔 수 있어야 가게가 굴러가니까. 벽의 LP와 턴테이블은 그 다음 방문을 위한 장치.

9.길에 내놓은 스툴은 취향의 결과일까. 계산 쪽에 가깝다. 실내에 30석을 깔려면 그만큼 넓은 점포를 빌려야 하고, 손님이 앉는 면적에는 화장실과 통로와 냉난방이 따라붙는다. 인도에 스툴을 놓으면 그 면적은 임차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지방정부 허가가 필요한 부분이라 자리 수를 마음대로 늘릴 수는 없다.
10.호주에서 작은 카페 하나를 여는 데 보통 8만에서 20만 호주달러가 든다고 업계 안내서들은 적는다. 우리 돈 7,700만 원에서 1억 9,000만 원. 좌석 30~50개를 놓고 주방까지 갖추면 15만에서 35만 달러로 올라간다. 이 가게가 쓴 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스프레이를 뿌린 이케아 스툴과 음료 상자가 좌석이라면 그 항목에서 아낀 몫은 짐작할 만하다.
11.가격은 시드니 평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도시의 작은 플랫화이트는 5.5에서 6.5달러 선이고, 크림을 올린 시그니처 잔은 9달러 안팎으로 본다(추정). 커피에 번 하나가 붙으면 손님 한 사람이 쓰는 돈은 15달러 가까이 올라간다. 8시간 영업에 하루 220잔을 판다고 가정하면 월 매출은 5만 달러 남짓, 우리 돈 5,000만 원 선(추정).

12.문제는 인건비다. 호주의 음식점 임금 기준으로 가장 낮은 등급의 캐주얼 시급이 33.05달러, 우리 돈 3만 원이 넘고 올해 7월에 4.75%가 또 올랐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여기에 할증이 붙는다. 하루 3인 체제를 전부 고용으로 채우면 인건비가 매출의 38%까지 차오르는데, 주인이 한 자리를 직접 메우면 25% 근처로 내려간다(추정). 오후 3시에 문을 닫는 결정도 저 계산에서 나온다.
13.이런 가게가 시드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홍콩의 다방 형식을 빌린 커피집, 베트남 연유 커피를 파는 스탠드, 태국 디저트를 붙인 브런치집이 지난 몇 해 사이 줄지어 열렸다. 이민 2세가 부모 세대의 음식을 도시 중심가의 가격표에 올려놓는 흐름. 그런 가게는 보통 한 나라를 골라 거기에 맞춰 메뉴를 짠다. 이 집은 홍콩의 형식에 태국의 커피를 넣고 원두는 호주 로스터에서 받았다.

14.본다이는 바다를 낀 관광 상권이고, 서리힐스 메리 스트리트는 오피스 뒤편의 조용한 길이다. 관광객이 흘러드는 자리에서 나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로 옮긴 것.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가게에는 그쪽이 맞는다. 취재 당시 진열장은 아직 조립 중이었고 직원들은 주문을 받으며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15.좌석에 거의 돈을 쓰지 않은 커피집이 잔과 접시에는 도자기를 골랐고, 음료를 22종까지 벌려 놓았다. 인건비를 25%에 묶을 수 있느냐가 이 구조의 전부이고, 그 숫자는 주인이 바에 몇 시간 서 있느냐로 정해진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먼저 걸리는 건 길이다. 인도에 의자를 내놓는 행위는 도로점용 허가 대상이고, 허가가 나오는 곳도 폭과 개수가 정해져 있어 손님 수를 늘리는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 실내 면적을 줄여 임대료를 낮추겠다는 계산이 거기서 막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