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bes가 9월 초 서울 커피를 다루면서 마포구 망원동의 파란 3층 건물 하나를 지목했다. 국내 커피·음료점은 9만 5,337곳, 인구 540명에 한 곳꼴. 아메리카노가 1,500원부터 시작하는 시장에서 이 집은 원두 한 봉지에 1만 7,000원을 받는다.
1.자리는 마포구 포은로6길 11, 망원시장에서 몇 걸음 들어간 주택가 골목. 벽돌을 파랗게 칠한 3층 건물 한 채를 딥블루레이크(Deep Blue Lake)가 통으로 쓴다. 1층에 바와 로스팅 랩이 들어가고 2층과 3층이 앉는 자리인데, 면적과 좌석 수는 공개돼 있지 않다. 간판에 적힌 건 카페가 아니라 coffee roasters다.

2.커피·음료점은 7년 사이 두 배로 늘어 9만 5,337곳이 됐고, 인구 540명에 한 곳꼴이라는 게 국세청 집계다. 늘어나는 속도는 2024년을 지나며 꺾였다고 한다. 아메리카노 가격의 바닥은 1,500원까지 내려갔다. 그 바닥과 겨루지 않는 것이 이 집의 출발점.
3.골목에서 보면 1층 유리창 너머 작업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문을 밀면 왼쪽이 커피 바, 오른쪽이 바리스타가 서는 자리고, 스테인리스 상판에는 원두 봉지가 줄지어 선다. 봉지 사이마다 손으로 쓴 종이가 꽂혀 있는데 거기 적힌 건 산지와 농장, 가공 방식.

4.위층은 색으로 나뉜다. 계단 난간이 파랗고 층계참에는 액자가 세워져 있다. 2층은 화분과 거울을 놓아 초록 쪽으로 몰았고, 3층에 올라서면 파란 쿠션과 노란 갓 조명이 창가를 차지한다. 건물을 통째로 칠한 파랑이 이 골목에서 가장 싼 광고다.


5.1층 안쪽에는 Loring 로스터기가 놓여 있다. 배기 열을 되돌려 쓰는 구조라 연료를 60%쯤 아낀다는 게 제조사 설명. 이철원 대표는 볶기 전에 생두에서 돌과 이물을 골라내고 수분 함량에 따라 볶는 정도를 바꾼다. 볶고 나면 원두 색을 재서 목표치와 맞는지 확인한다.

6.라이트 로스팅이라 잔에서 먼저 올라오는 건 탄 향이 아니라 과일 쪽. 에티오피아 구지 라로 보다 워시드는 감귤과 꽃, 콜롬비아 엘 플레이서 게이샤 허니는 단맛이 길게 남는 쪽으로 간다. 이 대표는 내린 커피를 10분과 20분, 40분에 다시 맛본다고 한다. 식어 가면서 무너지는 커피와 버티는 커피가 갈리는 게 그 시간.


7.계산대 메뉴판에는 한 줄이 따로 붙어 있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두 가지 원두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안내. 고르는 순간 손님은 마시는 사람에서 고르는 사람으로 바뀐다. 딥 블렌딩은 인도와 과테말라, 에티오피아를 섞고 블루 블렌딩은 에티오피아 비중을 60%까지 올렸는데, 어느 쪽을 골랐는지 기억하는 손님이 다음에 봉지를 든다.

8.Forbes는 9월 초 기사에서 누구나 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 수 있는 시장이라면 남다른 커피를 만드는 것이 생존 전략이라고 썼다. 서울경제가 옮긴 그 기사에 오른 이름이 이 로스터리다. 외국인이 지하철을 갈아타고 망원동까지 오는 이유는 넓은 자리도 유명한 디저트도 아니다.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잔 하나.

9.이철원 대표는 최근 생두를 들일 때 샘플 23개를 맛보고 4개만 샀다. 경매에 나오는 희귀 마이크로랏은 1kg에 150만 원을 넘기기도 한다고 서울경제 영문판은 전한다. 주문을 받고 나서 볶는 것이 이 집의 원칙.

10.마시는 값은 에스프레소가 5,000원, 아메리카노가 5,500원이고 브루잉 커피는 7,000원까지 간다. 저가 체인 아메리카노의 서너 배. 우유를 귀리 음료로 바꿔도 가격은 그대로. 국내에서 Oatly를 가장 먼저 들인 매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11.원두는 220g 한 봉지에 1만 7,000원부터 시작해 3만 원까지 올라간다. 메뉴판에는 원두를 사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드린다고 적혀 있다. 5,500원짜리 잔을 내주고 1만 7,000원짜리 봉지를 받는 교환.
12.액수만 보면 잔 쪽이 네 배 가까이 크다. 그 열두 잔에는 자리와 시간, 우유와 설거지가 따라붙는다. 봉지에 드는 건 종이와 라벨뿐이고 손님은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 원두 손님에게 잔을 얹어 주는 안내가 인심이 아니라 계산인 이유.

13.자리 값은 건물을 통으로 쓰는 쪽이 비쌀 수밖에. 망원동 1층 상가는 49.5㎡에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250만 원 선에 매물이 나온다. 3층까지 올려 쓰면 임대료가 그만큼 늘고 층마다 잔을 나르고 치울 사람이 더 붙는다. 로스팅 랩을 1층에 둔 것도 공짜가 아니다. 판매 면적이 줄어드는 대신 볶는 장면이 창밖에서 보인다.

14.이런 방식의 뿌리는 북유럽. 산미를 살려 얕게 볶는 노르딕 스타일이 국내에 들어온 게 2010년대 중반이고, 이 집은 그 계열을 대표하는 곳으로 꼽혀 왔다. 장비 목록만 보면 미국제 로스터기와 네덜란드제 에스프레소 머신. 서울 주택가의 작은 로스터리가 유럽 소형 공방과 같은 줄에 서 있다.
15.관광객이 몰리는 게 마이크로 로스터리에 늘 좋기만 할까. 자리를 오래 쓰고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이 늘면 설거지만 늘고 봉지는 안 나간다. 원두를 고르게 하고 잔에 이름을 적어 주고 봉지 손님에게 한 잔을 얹는 장치가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손님을 계산대 앞이 아니라 봉지 앞에 세우는 쪽으로.
16.Forbes가 지목한 파란 3층 건물은 아메리카노를 5,500원에 팔면서 원두 봉지를 1만 7,000원에 내보내고, 봉지를 사는 손님에게는 그 잔을 얹어 준다. 국내에서 같은 구조를 짜려 하면 영업 등록에서 한 번 갈린다. 매장에서 볶아 손님에게 봉지로 파는 데까지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 신고로 되지만, 다른 카페에 원두를 넘기는 도매로 넘어가는 순간 식품제조가공업 등록이 따로 필요하다. 휴게음식점 신고 하나로 로스터리를 굴릴 수 있다고 계산하면, 봉지 매출은 장부에 올라오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