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이 직접 만든 카페 틸화이트가 1년 1개월 만에 세 번째 매장을 냈다. 매장마다 메뉴가 다르고, 원두부터 브런치 메뉴까지 속은 전부 밖의 이름을 빌렸다.
1.지난 9월 4일,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의 새 식당가 에피원(EP.1)에 카페 틸화이트(Till White)가 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브런치를 내는 이번 매장의 메뉴 11종은 셰프 유기영(뽀모)과 함께 짠 것. 제철 프렌치토스트가 1만 7,000원, 김치볶음밥과 치킨 시저 샐러드가 각각 1만 9,000원. 커피 한 잔 값으로 시작한 카페가 세 번째 매장에서는 밥값을 받는다.
2.국내 백화점이 카페 브랜드를 직접 기획해 운영하는 첫 사례. 1호점은 2025년 8월 7일 여의도 더현대 서울 2층에, 2호점은 올해 6월 5일 압구정본점 4층에 열었다. 판교점도 연내 개점 예정. 세 매장은 이름만 같을 뿐 메뉴판이 같지 않다. 현대백화점은 점포마다 상권과 손님에 맞춰 메뉴와 공간, 협업 상대를 바꾸겠다고 설명한다.

3.1호점은 높이 12m의 인공폭포가 떨어지는 중앙 정원 워터폴가든을 내려다보는 2층 모서리에 붙어 있다. 벽과 가구는 흰색이고, 포인트 색은 짙은 파랑 「틸 블루」 하나뿐. 엄유정 작가가 그린 드로잉이 벽과 포장지, 접시에 들어갔고, 매장 가운데 기둥 조명도 그 그림으로 감쌌다. 손님들이 폭포를 등지고 사진을 찍는 자리도 이 흰 벽 앞.


4.원두는 서울 로스터리 커피리브레(Coffee Libre)의 것. 문을 열 때 메뉴는 커피 11종과 커피가 아닌 음료 9종이었고, 메뉴판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빵이다. 식빵 7종 가운데 하나를 고르고 스프레드 16종 가운데 하나를 고른 뒤 굽는 정도를 정하면 접시 하나가 나오는데, 회사는 이 「타르틴」의 조합이 112가지라고 소개했다. 통째로 사 가는 손님이 많은 우유 식빵과 밤 식빵은 지금도 1호점의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5.대표 음료 「틸화이트 라떼」에는 카다멈을 넣는다. 우유 거품 위에 뿌린 갈색 가루에서 먼저 올라오는 건 생강과 유칼립투스 사이 어디쯤의 서늘한 향이고, 그 아래 우유와 에스프레소는 익숙한 라떼 그대로다. 6,500원짜리 「틸블랙 라떼」는 흑임자를 갈아 넣어 잔이 회색으로 탁하고, 볶은 깨의 기름진 고소함이 커피의 쓴맛을 덮는다. 향신료 하나나 곡물 하나를 얹어 익숙한 라떼를 조금만 비트는 방식이다.

6.압구정본점의 2호점에는 매장 벽이 아예 없다. 사방이 트인 섬처럼 바와 좌석을 놓아, 손님이 옆 명품 매장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다시 매장으로 벽 없이 걸어 들어가게 했다. 이 매장에서만 파는 음료 10종은 국내 1세대 스탠딩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 커피(Leesar Coffee)와, 빵은 디저트 회사 도레 컴퍼니(Doré Company)와 함께 만들었다. 대표 메뉴 「틸 플레이트」는 아몬드 스프레드를 더한 에스프레소, 카다멈 라떼, 오렌지 그라니따를 한 쟁반에 올린다. 진한 한 모금과 부드러운 한 잔, 입을 씻는 얼음 한 숟가락.

7.세 매장의 가격표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일까. 1호점의 손님은 6,500원짜리 라떼에 8,000~1만 2,000원짜리 식빵을 얹고, 무역센터점 손님은 1만 7,000~1만 9,000원짜리 접시를 시킨다. 같은 이름 아래에서 한 사람이 쓰는 돈이 두세 배로 뛰고, 그 차이를 만든 건 메뉴보다 자리다. 무역센터점이 선 삼성동은 사무실이 몰린 동네다.

8.지난해 12월 어느 날 오후 3시, 1호점 앞에는 20명 남짓이 줄을 서 있었다고 한국경제 현장 기사는 적었다. 같은 기사는 샤넬과 디올 매장 앞 「오픈런」이 사라진 백화점에서 오랜만에 보는 줄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가 나온 첫 주말 방문객은 한 주 전보다 1.7배였고, 독일 과자 슈톨렌을 식빵 모양으로 구운 1만 원짜리 「슈톨렌 식빵」은 오전에 동나는 날이 많았다고.
9.손님의 80%가 20~40대 여성이고, 현장 기사 속 30대 손님은 「메뉴 디자인이 사진 찍기에 너무 좋다」고 했다. 걷다 지치면 나가는 곳이 백화점인데, 앉아서 쉴 만한 자리가 있으면 손님은 왜 한 바퀴를 더 돌까. 다리가 쉬는 동안 다음 매장을 고르기 때문. 2호점이 벽을 없앤 이유도 같다. 카페에 앉은 손님의 눈앞으로 바로 옆 매장의 진열장이 들어온다.
10.밖의 카페 시장은 거꾸로. 국세청 통계로 전국 커피음료점은 2025년 1분기 9만 5,337곳으로 한 해 전보다 743곳 줄었고, 2018년 집계를 시작한 뒤 처음 줄어든 숫자였다. 동네 카페가 문을 닫는 사이 백화점들은 카페를 늘렸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6월 강남점 11층에 40석짜리 「카테고릭」을 열었고, 롯데백화점은 모로코에서 시작한 커피 브랜드 바샤커피(Bacha Coffee)를 들여와 4곳까지.
11.현대백화점이 밝힌 1호점 숫자는 둘뿐. 문을 연 첫 달 커피가 8,000잔을 넘었고, 한 달 방문객이 평균 3만 명이다. 8,000잔을 30일로 나누면 하루 270잔쯤이고, 잔당 6,500원으로 치면 커피만으로 한 달 5,200만 원 안팎이 나온다(추정). 하루 방문객 1,000명에 커피 270잔이면 나머지 손님 상당수가 빵과 커피 아닌 음료를 샀다고 봐야 해서, 이 매장의 매출은 커피보다 빵 쪽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12.백화점이 카페 자리를 외부 브랜드에 내주면 매출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공개하는 백화점 실질 판매수수료율은 20% 안팎이다. 직접 운영하면 매출 전부가 백화점 장부에 들어오지만 원두와 우유, 밀가루와 버터, 바리스타와 제빵사 급여도 전부 백화점이 낸다. 카페 업계 통상 비용을 대 보면 직영으로 남는 돈은 매출의 15~25%로(추정), 수수료로 앉아서 받는 20%와 크게 다르지 않다.
13.그러니 이 카페의 성적표는 카페 안에 있지 않다. 더스쿠프 집계로 현대백화점의 별도 기준 매출 성장률은 2021년 20.1%에서 2024년 1.3%로 내려앉았고, 더현대 서울은 2025년 상반기에 처음으로 1% 역성장했다. 틸화이트 1호점이 문을 연 건 바로 그해 8월. 손님을 한 시간 더 붙잡아 두면 그 한 시간 동안 옆 매장에서 쓰는 돈이 카페 이익보다 크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14.매장 안에 카페를 들여 손님을 붙잡는 방식은 명품 브랜드들이 먼저 썼다. 루이비통은 「르 카페 LV」를, 구찌는 「구찌 오스테리아(Gucci Osteria)」를 운영하고,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의류 회사 한섬도 플래그십 매장에 「카페 타임」을 냈다. 다만 이들의 카페는 자기 옷과 가방을 팔려고 차린 곳이지, 남의 물건까지 챙기지는 않는다. 백화점은 파는 물건이 수백 개 브랜드에 흩어져 있어서, 카페가 특정 브랜드 대신 백화점이라는 건물 자체를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15.그런데 「자체 브랜드」라는 이 카페를 뜯어보면 백화점이 직접 만든 건 생각보다 적다. 원두는 커피리브레, 2호점 에스프레소는 리사르 커피, 빵은 도레 컴퍼니, 3호점 브런치는 셰프 유기영. 백화점이 쥔 건 이름과 자리, 흰 벽과 파란 선 그림. 좋은 브랜드를 골라 한 층에 모으는 일, 그러니까 백화점이 원래 하던 일을 카페 한 곳 안에서 다시 하고 있다.
16.현대백화점은 13개월 동안 세 점포에 자기 카페를 냈고, 매장마다 협업 상대를 바꿔 커피·빵·브런치를 따로 짰다. 1호점의 첫 달 커피는 8,000잔이었지만, 회사가 내세운 목표는 잔 수가 아니라 손님이 백화점에 머무는 시간. 쇼핑몰이나 복합상가를 가진 쪽이 직영 카페를 내려 하면 먼저 걸리는 건 사람이다. 임대를 주면 입점 브랜드가 데려오던 바리스타와 제빵사를 직접 뽑아,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교대표를 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