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에 해변 호텔로 지었다가 70년을 병원으로 쓴 건물이 9월 1일 다시 호텔이 됐다. 상주인구는 3,605명. 나머지 아홉 달을 갚기로 한 스파는 아직 문을 못 열었다.
1.덴마크 셸란섬 북쪽 해안에 호른베크(Hornbæk)라는 해변 마을이 있다. 모래언덕 뒤에 선 흰 건물 하나가 9월 1일 코리 호른베크 호텔(CORI Hornbæk Hotel, 이하 코리)로 문을 열었다. 객실 77개에 타운하우스가 다섯 채. 코펜하겐에서 차로 40분 거리이고, 소유와 개발은 덴마크 개발사 COPI Group이 맡았다.
2.이 건물은 원래 호텔이었다. 1935년 준공, 설계는 올레 팔켄토르프(Ole Falkentorp), 이름은 호른베크 배지호텔(Hornbæk Badehotel). 덴마크어 badehotel은 바다에서 몸을 씻고 쉬는 숙소를 가리킨다. 1층에는 극장이 있었고, 여름마다 레뷔 공연이 올랐다고 한다.


3.그 용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병원이 들어와 70년을 썼고, 마지막 세입자는 Rigshospitalet의 척수손상 클리닉이었다. 클리닉이 나가자 국유 부동산을 파는 회사 Freja Ejendomme이 입찰을 걸었다. 헬싱외르(Helsingør) 시가 주거 대신 호텔 쪽으로 방향을 정하면서 마감이 한 번 밀렸고, 2023년에 COPI Group이 받아 갔다. 매각가는 비공개.

4.인수 당시 건물은 5,442제곱미터. 설계를 맡은 AART는 Nvmbr Architects와 함께 옛 몸통을 뜯어고치고 두 군데를 새로 붙였다. 지붕 위에 최상층 한 개 층, 그리고 뒤쪽 증축. 준공 연면적은 6,374제곱미터가 됐다.

5.방은 세 등급이다. 슈페리어가 22~27제곱미터, 주니어 스위트와 스위트가 그 위로 올라가 가장 큰 방이 57제곱미터. 국내 도심 호텔 표준룸이 24제곱미터 안팎에서 시작하니 아래쪽은 비슷하고 위쪽이 배 넘게 벌어진다. 곡면 통창에 전용 테라스가 붙은 스카이 스위트는 새로 얹은 층에 있다.
6.방 77개를 다 더해도 연면적의 40%가 안 된다. 그럼 나머지는 누가 쓰나. 스파와 식당, 바, 회의실, 그리고 그것들을 잇는 복도와 계단이다. 객실 하나가 지고 있는 연면적이 78제곱미터인데, 비즈니스호텔이 실당 30제곱미터 남짓으로 짓는 것과 견주면 두 배가 넘는다. 방만 팔아서는 이 면적을 감당하지 못한다.

7.1층은 두꺼운 병원 벽을 걷어내고 유리로 다시 쌌다. 그 안에 들어간 것이 식당 CORI Table과 바 The Jetty. 천창 아래 나무를 심었고 바닥은 격자로 짠 석재. 이 해안의 바람은 여름에도 서늘한데, 유리 안쪽에 앉으면 그 바람이 소리로만 남는다. 밖에 오래 앉을 수 있는 날이 1년에 두 달뿐인 곳에서, 유리를 두른 실내는 낭만이 아니라 영업일 수를 늘리는 장치다.

8.가장 싼 방이 1박 4,700크로네부터다. 우리 돈으로 108만 원. 스위트가 섞여 팔리는 걸 치면 연평균 객실단가는 5,200크로네쯤 될 텐데, 공개 자료가 없어 시장 통상치를 대입해 잡았다.
9.가동률은 55%로 본다. 코펜하겐 시내 호텔의 지난해 실적보다 한참 낮게 잡은 값. 도시와 달리 여기는 해변 리조트 마을이라 여름과 겨울의 격차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가정에서 1년 객실매출이 우리 돈 185억 원, 연면적으로 나누면 평당 월 80만 원이 된다.
10.호른베크의 상주인구는 3,605명이다. 여름이면 3만 5,000명이 별장을 빌려 들어온다. 열 배. 7월과 8월에 마을이 부풀었다가 9월에 꺼지고, 그다음 아홉 달을 이만한 규모의 호텔이 혼자 버텨야 한다.

11.그 아홉 달을 갚기로 한 것이 스파다. 온실을 본뜬 실내 풀, 야외 사우나, 냉온 요법과 바다 입수, 요가와 필라테스를 도는 헬스클럽, 소리 치료실과 말을 하지 않는 라운지가 붙는다. 그런데 개관일에 이게 열리지 않았다. 운영사는 연내에 연다고 안내한다. 첫 겨울은 방과 식당만으로 넘겨야 한다.

12.사람도 도시 호텔과 다르게 든다. 스파와 주방을 함께 돌리는 5성 호텔은 객실 하나당 0.8명에서 1명이 붙는다. 이 규모면 70명대. 상주인구가 네 자리인 마을에서 그만한 인원을 뽑아 겨울에도 붙잡아 두는 일은 견적서에 늦게 나타난다.
13.스파가 여기 들어온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이 쓰던 시설이 그 자리에 이미 있었다. 매각 공고에 적힌 목록에 온수 풀과 체육관, 그 위 옥상 테라스. 재활 환자를 위해 만든 물과 운동의 설비가 그대로 스파의 뼈대가 됐다. 컨버전에서 가장 비싼 항목은 보통 물 쓰는 자리인데, 그 자리를 건물과 함께 샀다.

14.손님이 여기서 돈을 더 내는 이유는 거리에 있다. 코펜하겐에서 40분. 비행기를 타지 않고 도시를 벗어나 며칠 쉬려는 수요가 북유럽에서 계속 커져 왔다는 이야기. 성급 호텔이 연회장과 회의로 벌던 돈을 이 호텔은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판다. 연회는 도시 안에서 열리고, 회복은 도시 밖에서 팔린다.

15.덴마크에는 그 값이 이미 매겨져 있다. 코펜하겐 북쪽의 Kurhotel Skodsborg는 스파 회원권을 월 1,400크로네에 팔고, 하루만 쓰는 손님에게 895크로네를 받는다. 회원 한 사람이 1년에 내는 돈은 객실 서너 밤 값인데, 그 돈은 겨울에도 들어온다. 코리가 세우려는 구조도 이것.

16.일정은 밀렸다. 인수 때 발표한 개관일이 2025년 5월 1일이었고 실제로는 1년 4개월이 늦었는데, 90년 된 골조를 뜯으면서 나온 것들이 그 기간을 먹었을 것이다. 판매망은 The Leading Hotels of the World에 붙였다고 한다. 자기 이름으로 예약을 받되 유통은 빌리는 방식. 첫해 객실을 채워야 하는 독립 호텔이 흔히 고르는 길이다.
1935년에 해변 호텔로 지었다가 1950년대부터 병원으로 쓰던 건물이 90년 만에 원래 용도로 돌아왔다. 연면적 6,374제곱미터에 방은 77개, 나머지 60%를 스파와 식당이 쓴다. 여름 두 달에 인구가 열 배로 부는 마을에서 나머지 아홉 달을 버티려면 객실 밖에서 돈이 돌아야 하는데, 그 장치가 아직 안 열린 채로 첫 겨울이 온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먼저 걸리는 것은 물이다. 폐병원이나 폐요양원을 숙박으로 바꿀 때 의료시설에서 숙박시설로 가는 용도변경은 도면에서 풀린다. 그런데 온수 풀과 사우나를 투숙객만 쓰면 부대시설로 넘어가고, 동네 손님에게 표를 팔기 시작하면 체육시설법상 수영장업과 공중위생관리법상 목욕장업이 따로 붙는다. 겨울 매출을 만들자고 문을 여는 순간 신고가 갈리고, 소방과 오수 처리 기준도 그만큼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