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뤽상부르 공원 옆의 27실짜리 호텔이 네 번째 이름을 달고 다시 문을 열었다. 방 수도 4성 등급도 전 주인 때와 같다. 달라진 건 1층을 투숙객이 아니라 길 쪽 손님 기준으로 짰다는 것.
1.파리 6구 몽파르나스 대로(Boulevard du Montparnasse) 155번지에 호텔 룰루(Hôtel Lulu)가 9월 초 문을 열었다. 객실 27개짜리 4성 호텔이고, 1층에 커피숍과 유리 지붕을 얹은 겨울정원, 피아노 바를 들였다. 이름은 코앞의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을 동네에서 줄여 부를 때 쓰는 애칭.
2.만든 사람은 바네사 스코피에(Vanessa Scoffier). 10년 넘게 패션 기자와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다 13구 고블랭(Gobelins)의 낡은 숙소 Résidence des Gobelins를 사들였고, 1년 공사 끝에 2015년 호텔 앙리에트(Hôtel Henriette)로 다시 열었다. 벼룩시장과 골동품 장에서 모은 가구로 방을 채우는 방식이 그때 생겼다. 룰루는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고친 두 번째 낡은 호텔.
3.이 주소의 호텔은 이름을 여러 번 바꿨다. 오래전 이름은 Hôtel de Nice였고, Novanox를 거쳐 최근까지는 Hôtel Nude Paris로 영업했다. 2020년에 27실을 전면 개보수하고 4성을 달았지만 평점과 순위는 파리에서 아래쪽에 머물렀고, 빈 방은 대실 사이트에 낮 시간 할인으로 올렸다. 방 수도 등급도 그대로인데 요금을 올릴 근거가 없던 호텔.
4.1층에는 거칠게 쪼갠 자국이 남은 석회암 기둥이 그대로 서 있다. 그 옆에 노출 콘크리트 카운터와 솔질한 스테인리스 판, 나무와 래커, 두꺼운 카펫을 붙였고, 색은 갈색과 카키로 맞췄다. 가구는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과 토마소 바르비(Tommaso Barbi) 같은 20세기 디자이너의 빈티지를 섞었다. 운영 쪽 표현으로는 브루탈리즘과 모더니즘 사이.


5.한 층을 시간대에 따라 세 번 판다. 아침에는 유리 지붕 아래 겨울정원이 조식 식당이 되고, 낮에는 커피숍이 길에서 들어오는 동네 손님을 받고, 저녁에는 피아노 바로 넘어간다. 대로를 향한 통창 앞에는 긴 벤치와 낮은 테이블을 붙였다. 창밖으로 가로수와 건너편 상점이 보이고, 길에서도 안에 앉은 사람이 보이는 배치.


6.객실은 흰 벽 아래로 허리 높이의 턱을 둘러 선반과 협탁을 겸하게 했고, 적갈색 나무 문짝의 붙박이장을 넣었다. 침구는 짙은 갈색. 방 면적과 타입별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다. 욕실은 분홍·초록·파랑 모자이크 타일로 방마다 색을 달리했는데, 건물의 옛 이름 Hôtel de Nice에서 지중해 수영장을 떠올려 고른 색이라고 운영 쪽은 설명한다.


7.몽파르나스 대로는 버스와 택시가 끊이지 않는 길이라, 창을 열면 차 소리가 방 안까지 들어온다. 바닥의 두꺼운 카펫은 발소리를 삼키고, 욕실 문을 열면 손톱만 한 타일이 창빛을 되받아 반짝인다. 크기가 비슷한 방도 욕실 색이 다르면 사진 속에서는 다른 방이 된다. 예약 사이트에 걸린 방 27개가 한 종류로 보이지 않게 하는 데 타일값이 든다.


8.룰루는 방값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준이 될 만한 건 시장 평균인데, 2025년 파리 호텔의 평균 객실단가는 239유로, 가동률은 82%로 역대 최고였다(In Extenso). 새로 고친 좌안 4성이고 공원 옆이니 시장 평균보다 위에서 팔 수 있는 자리.
9.평균 판매가를 280유로, 개업 첫해 가동률을 78%로 놓으면 1년 객실 매출은 약 215만 유로다(추정). 방 하나로 나누면 8만 유로 남짓. 옛 Nude 시절 가격대 위쪽이 470달러였으니 무리한 가정은 아니다. 걸리는 건 리뷰가 쌓이기 전인 첫해에도 78%가 나오느냐.
10.1층 세 곳의 매출도 공개된 게 없다. 조식은 투숙객 절반이 먹고, 커피숍과 바는 잔 수와 객단가를 보수적으로 잡으면(도표) 셋을 더해 1년 78만 유로가 된다(추정). 객실 매출의 36%가 1층에서 나와야 계산이 선다.
11.성급 호텔이라면 객실 밖의 돈은 연회장과 레스토랑에서 나온다. 행사 손님과 수백 명의 투숙객이 그 자리를 채운다. 27실 호텔에는 연회장이 없고 하루 투숙객은 34명 남짓이라, 투숙객만으로는 커피 머신 한 대도 제대로 돌리기 어렵다. 룰루는 연회장 대신 길을 쓴다. 뤽상부르 공원을 오가는 사람과 대로의 출퇴근 인파가 1층을 채울 손님.
12.옛 호텔은 빈 방을 대실로 낮에 팔아 메웠다. 룰루는 낮에 방 대신 1층을 판다. 방값 밖에서 붙는 돈도 있는데, 파리는 올해 숙박세를 올려 4성 호텔 투숙객은 1인 1박 8.45유로를 따로 낸다. 두 사람이 묵으면 280유로 방값에 6% 남짓이 세금으로 더 붙는다. 손님이 느끼는 가격은 방값보다 그만큼 위에 있다.
13.같은 대로 171번지에는 헤밍웨이가 드나들던 카페 라 클로즈리 데 릴라(La Closerie des Lilas)가 있다. 몽파르나스는 카페가 거실 노릇을 해 온 동네이고, 룰루는 그 거실을 호텔 1층에 들였다. 여행자는 관광지보다 동네 사람이 앉는 자리에 앉고 싶어 하고, 1층에 동네 손님이 앉아 있으면 그 장면이 곧 호텔 광고가 된다. RER B선 포르루아얄(Port-Royal)역이 200m 앞이라 공항 두 곳에서 갈아타지 않고 닿는 자리.

14.로비를 동네에 여는 방식은 2009년 뉴욕 에이스 호텔(Ace Hotel)이 로비에 노트북 든 동네 손님을 앉힌 뒤로 흔해졌다. 그런 로비는 보통 방이 수백 개인 도심 호텔에서 통했고, 로비에 앉은 사람이 다음 투숙객이 되는 구조였다. 27실에서는 방향이 거꾸로. 1층이 스스로 벌어야 하는데, 몽파르나스 대로에는 100년 넘은 카페가 이미 줄지어 있다.
15.11년 전 앙리에트는 방 32개를 평균 120유로에 팔았다. 룰루는 방이 다섯 개 적고 등급은 4성으로 올라간 자리에서 시작한다. 같은 사람이 두 번째 호텔에서 늘린 건 방이 아니라 1층이고, 그 1층이 추정만큼 벌지 못하면 매출의 4분의 1이 통째로 빈다.
파리 몽파르나스의 27실 호텔이 네 번째 이름을 달고 다시 열었다. 방 수와 4성 등급은 전 주인 때 그대로이고, 바뀐 건 1층을 커피숍·겨울정원·피아노 바로 다시 짜 길 쪽 손님에게 연 것이다. 이 1층이 객실 매출의 36%쯤을 벌어야 계산이 선다(추정). 국내에서 이 규모는 관광진흥법의 소형호텔업(객실 20실 이상 30실 미만)에 들어가고, 이 업종은 부대시설을 두 종류 이상 갖춰야 등록이 되니 1층 카페와 바는 오히려 요건을 채우는 시설이다. 다만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은 둘 수 없어, 피아노 연주를 곁들인 바를 어떤 영업으로 신고할지부터 따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