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브랜드 하나가 오늘 도쿄 진구마에(神宮前) 5초메 49-2번지에서 문을 열었다. 지난해 9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가 비우고 나간 세 개 층, 307제곱미터. 우리 셈으로 92.9평이다. 이 브랜드 매출의 8할은 유럽과 북미에서 나오는데 첫 해외 직영점은 파리도 뉴욕도 아니다. 잘 팔리는 시장을 놔두고 안 팔리던 시장에 92평을 빌린 이유가 오늘의 주제.
1.팩트부터. 2026년 8월 1일, 도쿄 시부야구 진구마에 5초메 49-2번지에서 ADSB ANDERSSON BELL AOYAMA가 문을 열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세 개 층 307제곱미터. 같은 날 일본 공식 온라인몰도 함께 열었고, 개점 한정품은 얼굴 그래픽을 앞에 넣은 티셔츠 19,800엔과 줄자가 들어간 하트 키링 9,900엔. 영업은 평일 정오,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2.브랜드는 2014년 12월 서울에서 시작했다. 법인 이름은 스튜어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김도훈, 대표는 최정희. 익숙한 '김'과 낯선 '앤더슨'을 붙여 만든 이름이고, 스스로 내건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어울림이다. 해외 리테일 계정이 150곳, 그중 유럽과 북미가 80여 곳. 밀라노에서 쇼를 두 번 올렸고 프라다·발렌티노와 같은 시간대를 받았다.
3.건물이 먼저 눈에 걸린다. 1993년에 올린 세 개 층짜리로, 노출 콘크리트와 벽돌을 드러낸 브루탈리즘. 지난해 9월 10일까지 여기가 비비안 웨스트우드 아오야마(青山)점이었고, 그 브랜드는 미나미아오야마(南青山)의 새 플래그십으로 옮겨 갔다. 영국 펑크가 쓰다 비운 주소를 서울 브랜드가 받았다.

4.설계는 도쿄의 I IN. 2018년에 문을 연 곳으로 카르티에(Cartier) 도쿄 본사와 블루보틀 재팬 매장을 그렸다. 거푸집 자국이 남은 회색 면 위에 선명한 색과 광택 있는 소재를 얹고, 조명은 그 색만 띄운다. 콘크리트가 빛을 먹는 동안 그 앞의 색은 빛을 튕겨 낸다. 벽을 갈아엎는 대신 벽을 배경으로 쓴 판.


5.세 개 층에 의류·신발·액세서리 전 품목과 시즌 컬렉션을 다 넣었다. 김도훈은 옷만 보는 자리가 아니라 공간과 음악과 소재와 오브제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느끼는 자리를 원한다고 말한다. 매장 수를 빨리 늘리기보다 아오야마 한 곳을 문화 플랫폼으로 굴리겠다는 게 회사가 밝힌 방침.

6.첫째는 일본 손님의 습관이다. 입어 보고 사는 쪽이고, 온라인으로 산 물건을 잘 반품하지 않는 대신 조용히 재구매를 끊는다. 피팅룸이 곧 전환율이 되는 시장이라 노면 직영의 값이 다른 나라보다 높게 매겨진다.
7.둘째는 빈자리. 일본 패션시장은 코로나 이후 30% 가까이 줄었다가 회복하는 중인데, 줄어드는 과정에서 고가와 저가로 갈리고 중간이 비었다. K패션이 정확히 그 자리에 들어갔다. 디자인은 상급으로 보이고 값은 중급인 물건. 티셔츠 19,800엔은 도쿄에서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값이다.

8.셋째는 주소.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表参道)는 브랜드 서열이 번지수로 표시되는 몇 안 되는 거리이고, 여기 간판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시아 바이어에게 보내는 신호가 된다. 92평은 옷을 파는 면적이면서 동시에 명함.

9.오모테산도 1층 노면 임대료는 2025년 하반기 기준 월 평당 5만 4,000엔이었다. 다만 진구마에 5초메와 미나미아오야마 3초메는 프라임 뒷길이라 매물이 늘며 평균을 끌어내린 구역. 층당 31평으로 보고 1층에 5만 4,000엔, 지하와 2층에 3만 엔을 넣으면 월 약 353만 엔, 1년에 4,200만 엔이 나온다. 원화로 월 3,300만원 안팎. 시장 호가에 면적을 곱해 낸 추정이고 실제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10.그 임대료를 매장이 자기 매출로 갚으려면. 의류 노면 매장에서 임대료가 매출의 15%를 넘으면 위태롭다는 게 업계 통념이니, 필요한 월 매출은 약 2,350만 엔. 평당 월 25만 엔, 우리 돈 235만원이다. 참고로 이 브랜드가 지난해 11월 롯데월드몰 1층 팝업에서 한 달에 판 금액이 4억원이었다.
11.법인 숫자를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스튜어트의 2024년 매출은 134억 6,000만원, 영업손익은 11억 9,000만원 적자였다. 브랜드 취급 기준으로 알려진 200억원과 숫자가 다른 이유는 이 브랜드가 도매 중심이기 때문. 컬렉션 하나에 10억원쯤 쓴다고 대표가 밝힌 적이 있다. 도매 150곳은 재고 위험을 바이어에게 넘기지만, 직영 한 곳은 안 팔린 옷이 전부 자기 창고로 돌아온다.
12.계보를 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뗑킴(Matin Kim)이 올해 4월 26일 하라주쿠(原宿)에 195제곱미터, 59평짜리 두 개 층을 열었고 유통은 무신사가 맡았다. 그 앞에 2025년 10월 도쿄 파르코(PARCO) 팝업 12일에 5억원, 2026년 2월 한큐(阪急) 우메다 본점 팝업 일주일에 7억원을 찍어 두고 시작한 매장이었다. 마르디 메크르디는 조조타운(ZOZOTOWN) 입점 첫날 1억 5,000만원.

13.반전은 지도에 있다. 매출의 80%가 유럽과 북미에서 나오는데 첫 해외 직영은 도쿄다. 회사는 일본과 중국이 그동안 비중이 낮았다고 스스로 밝혀 왔다. 가장 잘 팔리는 시장이 아니라 가장 안 팔리던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도매가 두껍게 깔린 곳에 직영을 내면 자기 계정과 같은 손님을 놓고 싸우게 되고, 뺏을 계정이 없는 시장이라야 직영이 안전하니까.

14.아시아 축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2025년 10월 1일 중국 국경절에 리닝(李宁)과의 협업을 베이징·상하이 등 11개 도시에서 동시에 풀었고, 상하이 우정박물관에서 첫 쇼를 올렸다. 도쿄 직영은 그 축에 찍은 한 점. 유럽에서 벌어 아시아에 심는 순서다.

15.유럽·북미에서 매출의 8할을 버는 서울 브랜드가 영국 펑크 하우스가 비운 아오야마 주소를 받아 92평 직영을 열었고, 그 임대료는 월 350만 엔 안팎으로 추정된다. 기억할 숫자는 면적이 아니라 평당 월 25만 엔 쪽이다. 임대료 한 줄을 맞추는 데 필요한 매출이 그만큼이고, 도매로 굴러온 브랜드가 처음으로 재고 위험을 자기 몫으로 받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이걸 일본에 옮기면 디자인이 아니라 보증금에서 처음 걸린다. 도쿄 노면 상업 임대차는 보증금 10개월치가 예사이고, 해약할 때 그 가운데 두세 달치를 상각으로 떼는 조항이 붙는다. 정기임대차로 맺으면 갱신권도 없다. 초도 재고와 현지 물류를 얹기 전에 목돈 하나가 먼저 묶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