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랜드 KHAITE가 일본에 첫 상설 매장을 냈다. 자리는 이세탄 신주쿠 본점(伊勢丹新宿店) 본관 3층. 노면이 아니라 남의 건물 안이고, 임대료도 보증금도 내지 않는 대신 팔린 값의 일부를 백화점에 넘긴다. 이 브랜드는 세계 200곳 넘는 편집숍에 도매로 깔려 있고 매출의 3분의 2가 거기서 나온다. 자기 이름을 건 계산대를 일본에서 처음 놓은 곳이 1년에 4,249억 엔을 파는 건물이다.
1.본관 3층 인터내셔널 디자이너스 구역에 자리를 받았고 문은 9월 4일에 열었다. 그 앞에 7월 1일부터 11일까지 같은 층 The Stage #3에서 열흘짜리 팝업을 먼저 돌렸다. 팝업으로 숫자를 보여 준 뒤 상설 매대를 받는 순서. 면적은 비공개.
2.운영은 케이트 재팬(Khaite Japan)이 맡는다. 2025년에 야기통상(八木通商)과 합작으로 세운 회사이고, 공동 대표는 야기통상 사장 야기 유조(八木雄三)와 후지이 노리미쓰(藤井則充)가 함께 앉았다. 후지이는 클로에와 돌체앤가바나 일본 법인에서 임원을 지낸 사람. 브랜드 본사가 직접 들어온 게 아니라 일본 상사가 판을 깔았다.

3.가격표를 보면 이 매대가 어느 칸에 서는지 보인다. 청바지인 클라라 진이 11만 엔, 램스킨으로 지은 셸먼 재킷이 75만 9,000엔. 한 매대 안에서 일곱 배가 벌어진다. 아래 칸에는 옷장을 채우는 물건, 위 칸에는 그 옷장을 설명하는 물건.

4.램스킨은 소가죽처럼 서지 않는다. 팔을 내리면 그대로 흘러내려서, 봄버로 지으면 어깨선이 각지지 않고 몸을 따라 눕는다. 캐시미어 카디건은 손바닥에 붙는다. 백화점 매대에서 이런 감촉은 만져 보게 두는 것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고, 그 몇 초가 37만 4,000엔짜리 카디건과 흔한 니트를 가른다.


5.3층은 해외 디자이너 구역이다. 옆에 어떤 간판이 서 있느냐가 그 브랜드의 값을 정하는 층이고, 손님은 브랜드 하나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층 하나를 보러 온다. 건물은 지하철 신주쿠산초메역과 지하로 붙어 있어 비 오는 날에도 젖지 않고 들어온다. 노면 매장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쓰는 돈을 이 건물은 이미 써 뒀다.

6.같은 브랜드가 한 건물 안에서 두 층에 걸린다. 3층 매장에 옷도 신발도 가방도 있는데, 본관 1층 핸드백 구역에 이 브랜드의 가방과 지갑이 따로 놓인다. 백화점이 층을 상품군으로 갈라 놓았고 가방을 사러 온 사람은 3층까지 올라가지 않기 때문. 오사카에서 잡은 자리는 한큐 우메다 본점(阪急うめだ本店) 2층 백 갤러리 한 곳.


7.매출 구조를 보면 노면을 고르지 않은 까닭이 나온다. 2022년에 매출 1억 달러를 넘겼고 그중 도매가 65%, 자사 온라인이 35%였다. 취급점은 세계 200곳을 넘는데 자기 매장은 2023년에 연 뉴욕 소호 한 곳뿐. 만들어서 남에게 넘기는 회사였다.

8.여기서부터 일본 백화점의 거래 방식이 끼어든다. 백화점은 자리를 임대차로 빌려주지 않고 소화매입(消化仕入れ)으로 받는데, 물건이 계산대를 지난 순간에야 백화점이 그것을 사들인 것으로 처리한다. 재고는 브랜드 장부에 남고 판매원 인건비도 브랜드가 낸다. 임대료와 보증금은 0원. 파는 만큼만 수수료가 나간다.
9.도매로 넘기면 정가의 절반 남짓만 손에 들어온다. 일본 의류 도매의 매입률(掛け率)이 보통 55% 안팎이고, 백화점 소화매입 수수료는 일반 브랜드가 30~38%, 고가 수입 브랜드는 15~20% 선으로 본다. 같은 물건을 도매로 넘길 때와 자기 매대에서 팔 때 남는 돈이 20%포인트 넘게 벌어진다. 매대를 하나 여는 일이 곧 마진을 다시 쓰는 일.
10.34만 1,000엔짜리 로터스 미니백 하나로 세어 보면 이렇다. 도매 매입률 55%면 18만 7,550엔, 소화매입 수수료 25%면 25만 5,750엔이 브랜드에 남는다. 개당 6만 8,200엔 차이. 판매원 두 사람 인건비를 연 1,600만 엔으로 잡고 660개를 팔면 개당 2만 4,000엔이 붙으니, 그래도 4만 엔 넘게 앞선다.
11.임대료를 안 낸다고 자리가 공짜일까. 이세탄 신주쿠 본점은 2026년 3월기에 4,249억 엔을 팔아 일본 백화점 가운데 1위였다. 본관과 멘즈관을 합한 매장면적이 64,296㎡이니 1㎡가 1년에 661만 엔을 만든다. 평으로 옮기면 2,180만 엔. 이 건물에서 자리를 지키려면 그 밀도를 맞춰야 하고, 못 맞추면 다음 개편에서 매대가 사라진다.
12.매대를 30㎡로 놓고 계산하면 1년에 1억 9,800만 엔을 팔아야 층 평균에 닿는다. 객단가 30만 엔이면 660건, 영업일 350일로 나누면 하루 1.9건. 하루 두 사람이 가방이나 카디건을 하나씩 사 가면 자리가 유지된다. 면적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이 숫자는 가정 위에 서 있지만, 고가 구역이 요구하는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여 준다.
13.판을 깐 야기통상은 오사카 기타하마(北浜)에 본사를 둔 상사다. 1971년 밀라노에 법인을 세운 뒤 고급 의류 수입으로 방향을 틀었고, 2025년 3월기 연결 매출이 616억 엔. 1996년부터 몽클레르(Moncler)를 독점으로 들여왔고 매킨토시(Mackintosh)와 바버(Barbour)도 이 회사 손을 거쳤다. 남의 브랜드를 일본에서 키워 주는 것이 이 회사가 파는 물건.

14.몽클레르 재팬의 지분은 몽클레르가 51%, 야기통상이 49%. 브랜드가 크면 결정권은 브랜드 쪽으로 넘어가고, 야기 유조는 그 결말을 공개 인터뷰에서 여러 번 말해 왔다. 다만 이번 건에서 눈여겨볼 지분은 따로 있다. KHAITE는 2023년 사모펀드 Stripes에게 1억 5,000만 달러를 받으면서 지분 80%를 넘겼고, 당시 기업가치는 4억 달러 선으로 알려졌다. 일본 확장은 브랜드의 성장 계획이면서 그 펀드의 회수 일정표이기도 하다.
15.뉴욕에서 200곳 넘는 편집숍에 도매로 깔린 브랜드가 일본 첫 매장을 노면이 아닌 백화점 3층에 냈다. 임대료 대신 수수료를 내고, 그 대가로 1㎡당 661만 엔이라는 층 평균에 매출을 맞춰야 한다. 국내에서 같은 길을 가려면 수수료율보다 순서에서 먼저 걸린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국내 백화점 실질 판매수수료율은 2024년 거래 기준 평균 19.1%라 일본 소화매입보다 낮아 보인다. 그런데 해외 디자이너 구역은 상품기획 담당이 브랜드를 고르고, 신규는 팝업을 한 번 돌린 뒤에야 정규 매대를 받는다. 이 브랜드도 열흘짜리 팝업을 먼저 했다. 그 줄을 건너뛰는 길은 보증금과 인테리어를 자기 돈으로 대는 로드숍뿐이고, 도매로 큰 회사가 처음부터 그 돈을 태울 이유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