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캐주얼 브랜드 매드해피(Madhappy)가 서울 도산공원 골목에 첫 매장을 열었다. 1층 316㎡, 약 96평인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옷걸이보다 소파가 먼저 보인다. 8년 동안 팝업을 스무 번 남짓 열고 내놓는 날 다 파는 방식으로 큰 회사. 그 회사가 상권 평균 시세로 쳐도 임대료가 한 달 4,400만 원인 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자리부터 깔았다.
1.개점은 9월 5일 토요일. 웨스트할리우드·뉴욕·도쿄·말리부에 이은 다섯 번째 상설 매장이고, 미국 밖으로는 도쿄 다음이다. 316㎡를 1층에 모두 깔았다. 한국 유통사 없이 본사가 직접 들어온 매장.
2.창업은 2017년, LA에서 페이먼 라프(Peiman Raf)·노아 라프(Noah Raf) 형제가 친구 둘과 함께 했다. 대표 상품은 175달러짜리 플리스 후드. 옷에 정신 건강과 낙관이라는 말을 붙여 파는 회사여서, 순매출의 1%를 정신 건강 단체에 보내는 재단을 따로 두고 계간지 「Local Optimist」도 낸다.
3.설계는 LA 스튜디오 PlayLab과 함께. 매장을 칸막이로 나누지 않고 나무 기둥을 숲처럼 세웠는데, 몇 개는 건물에 원래 있던 기둥이고 나머지는 새로 넣었다. 판매 구역과 카페, 앉는 자리를 기둥 간격이 가른다. 세 면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라 골목에서 안이 들여다보인다.

4.바닥과 벽은 옅은 파란색 테라초를 부어 이었다. 돌 부스러기를 시멘트에 섞어 붓고 갈아 낸 마감이라 이음매가 없고, 흰 돌 조각이 박힌 그 파랑이 바닥에서 벽으로 꺾이는 모서리를 타고 그대로 올라간다. 가운데 기둥 두 개에 뚫린 둥근 구멍은 스피커. 그 앞에는 투명 유리 받침 위에 파란 천을 씌운 소파 두 벌. 탈의실과 좌대는 붉은 래커로 칠했다. 파랑과 나무색뿐인 매장에서 눈이 멈추는 곳은 그 붉은색.


5.음료는 매장 안 카페 Pantry가 맡는다. 원두는 LA의 LOQUAT COFFEE가 이 매장용으로 따로 섞었고, 페이스트리는 서울의 Maison M'O, 젤라토는 ZENZERO가 댄다. 부엌을 새로 차리지 않고 이미 이름난 가게들의 물건을 받아 놓는 방식이다. 건물 옆에는 자갈을 깐 작은 정원과 나무 벤치.

6.왜 옷보다 앉을 자리를 앞에 뒀을까. 지난 1년 도산공원 상권의 카드 결제 건수는 한 해 전보다 4.0% 줄었고 건당 결제액은 8.2% 올랐다. 사람은 덜 오고, 온 사람이 더 쓴다. 이런 골목에서는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래 붙잡느냐가 계산대 숫자로 이어진다.
7.서울 매장에만 거는 물건도 따로 있다. 그중 하나가 가슴에 pantry seoul을 찍은 집업 후드. 도쿄점도 MADHAPPY TOKYO를 찍은 전용 후드를 3만 8,500엔부터 파는데, 미국의 기본 후드 정가 175달러보다 세금을 빼고도 3할 넘게 비싸다. 팝업 시절 그날 가야만 살 수 있는 물건을 만들던 방식을 상설 매장으로 가져온 것.


8.한국에서 이름이 퍼진 건 블랙핑크 제니가 이 브랜드의 협업 후드를 입은 사진이 돌면서다. 노아 라프는 인터뷰에서 손님의 65%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들러 옷을 고르고 영상을 찍은 사람은 가수 전소미.
9.이 자리의 임대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알스퀘어가 집계한 도산공원 상권 평균은 3.3㎡당 월 46만 원이고, 96평에 대면 한 달 4,400만 원이 나온다. 같은 상권 안에서도 20만 원대에서 110만 원대까지 벌어지고, 플래그십이 몰린 구간일수록 평균보다 한참 위다.

10.임대료를 매출의 15% 안에 두려면 평균 시세로도 한 달 2억 9,400만 원을 팔아야 한다. 결제 한 건을 후드 한 벌쯤인 30만 원으로 잡으면 하루 33건. 상권 건당 결제액의 네 배 가까운 결제를 매일 30번 넘게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골목 1층 시세를 평균의 1.5배로 올려 잡으면 하루 49건이 된다.
11.그 96평에서 옷이 걸린 면적은 얼마나 될까. 옷은 벽을 파낸 나무 선반과 레일 몇 줄에만 걸리고, 매장 가운데는 소파와 유리 탁자, 조각을 올린 좌대가 차지한다. 파는 면적을 덜어 낸 만큼 벽에 걸린 옷 한 벌이 벌어야 할 돈은 커진다. 도시 전용 상품과 카페가 그 빈자리를 메우도록 짜여 있다.

12.이 회사는 가게를 오래 빌려서 크지 않았다. 첫 팝업은 공동창업자 메이슨 스펙터(Mason Spector)의 고향 애스펀(Aspen)에서 열었고, 8년 동안 미국 곳곳에서 스무 번 남짓 팝업을 돌렸다. 창업자들 말로는 내놓는 날 전부 매진. 2019년 LVMH Luxury Ventures가 소수 지분을 산 뒤로 바깥 돈을 더 받지 않았고 2020년부터 흑자라고 한다.
13.그렇게 번 돈이 이제 긴 임대차로 들어간다. 노아 라프는 지난해 상설 매장 여덟 곳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전자상거래 조사업체 ECDB는 2024년 자사몰 매출을 1,040만 달러, 약 145억 원으로 추정한다. 서울 매장이 평균 시세로 버티는 데 드는 1년 매출 35억 원이 그 4분의 1쯤.
14.소파가 서울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웨스트할리우드 멜로즈 애비뉴(Melrose Avenue)에 연 첫 상설 매장 260㎡도 한가운데에 하늘색 원형 소파를 놓았고, 2025년 10월 도쿄 하라주쿠(原宿) 캣스트리트에 연 매장은 230㎡였다. 해외 두 번째 매장이 본거지 LA의 1호 매장보다 크다.

15.이 골목에는 해외 브랜드가 먼저 줄을 섰다. Alo Yoga가 2024년 7월 아시아 첫 플래그십을 냈고, Stüssy도 그해 가을부터 근처에서 직영점을 운영한다. 그 사이 3.3㎡당 땅값은 2021년 2억 원대 초반에서 2024년 최고 4억 5,000만 원까지 올랐다. 해외 브랜드가 모이면서 땅값이 뛰었고, 뛴 땅값은 다음에 들어오는 브랜드의 임대료가 된다.
16.팝업으로 큰 LA 브랜드가 도산공원 1층 96평을 얻고 한가운데를 소파와 카페에 내줬다. 평균 시세로 계산해도 30만 원짜리 결제를 하루 33건 받아야 임대료가 매출의 15% 안에 든다. 국내 브랜드가 매장 안에 이런 카페를 들이려면 서류가 둘 더 붙는다. 커피를 내리려면 휴게음식점 영업신고를 따로 해야 하고, 외부 가게가 자기 이름으로 운영하면 전대가 되어 임대인 동의가 필요하다. 계약서에 전대 조항이 없으면 그 카운터는 문을 못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