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악기 회사 롤랜드가 10월 10일 맨해튼 미트패킹에 미국 첫 직영점을 연다. 1층과 지하층을 합쳐 253평이고, 입구 첫 방은 1980년에 나온 드럼머신 TR-808 차지다. 건물 주인은 자라를 만든 인디텍스 창업자의 부동산 투자사다.
1.롤랜드(Roland)가 10월 10일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에 미국 첫 직영점 「Roland Store New York City」를 연다. 주소는 웨스트 14번가 414번지. 1층과 지하층을 합쳐 9,000제곱피트(약 836㎡, 253평)를 쓴다. 개장 당일은 초대받은 손님만 들이고, 그 뒤로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2022년 런던, 2023년 도쿄에 이은 세 번째 직영점.
2.문을 열고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방이 TR-808 자리다. 1980년에 나온 드럼머신으로, 옛 기계를 돌려 가며 전시하고 30분짜리 무료 체험을 예약받는다. 안쪽으로 그랜드피아노 쇼룸, 미국에서 하나뿐인 DW(Drum Workshop) 전용 쇼룸, 신시사이저와 DJ 장비 구역이 이어진다. 기타 이펙터 브랜드 BOSS는 「BOSS Cavern」이라는 방을 따로 받았다.

3.공개된 렌더를 보면 붉은 벽돌 벽과 천장 배관을 가리지 않았다. 진열대는 나무 상판에 검은 쇠 다리를 붙인 것이고, 높이가 허리 아래에서 멈춘다. 보통 악기 가게는 벽마다 기타를 빽빽이 거는데, 여기서는 벽을 비우고 재고를 따로 둔 창고로 뺐다. 매장 안에 흐르는 음악은 롤랜드의 「Soundscapes」가 손님 움직임과 건반 입력, 시각, 날씨를 받아 그 자리에서 만든다.
4.414번지는 연면적 5만 6,000제곱피트(약 5,200㎡)의 사무·상가 건물이다. 주인은 Ponte Gadea로, 자라를 만든 인디텍스(Inditex)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의 부동산 투자사. 2013년 9,400만 달러에 이 건물을 샀다. 롤랜드가 빌린 면적은 건물 전체의 16%쯤 된다.

5.미트패킹은 이름 그대로 정육 도매 창고가 모였던 거리다. 옛 고가 철로를 공원으로 바꾼 하이라인(High Line)과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들어서며 명품 매장이 줄지어 들어왔다. Cushman & Wakefield 집계로 올해 2분기 이 상권의 평균 호가는 제곱피트당 연 321달러. 1년 새 10.3% 올라 맨해튼 상권 중 가장 많이 뛰었다.

6.악기는 손으로 쳐 봐야 사는 물건. 그런데 미국에서 그걸 쳐 볼 자리는 Guitar Center 같은 대형 딜러 매장이고, 거기서 롤랜드는 여러 브랜드 가운데 한 칸을 얻는다. 온라인 구매가 늘수록 그 한 칸마저 줄어든다. 뉴욕 매장은 그 자리를 제조사가 직접 만들었다. 피아노·드럼·신시사이저·BOSS·DJ 과목별 30분 무료 워크숍과 전문 직원 일대일 시연을 전부 예약으로 받는다.

7.첫 방을 46년 전 기계에 준 데는 이유가 있다. TR-808은 1980년 1,195달러에 나와 1983년 단종될 때까지 1만 2,000대 남짓 팔렸다. 나올 때는 진짜 드럼 소리와 닮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중고로 싸게 풀리면서 힙합과 전자음악의 기본 소리가 됐다. 롤랜드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 낮은 킥 소리는 아는 사람이 많다. 가케하시 이쿠타로(梯郁太郎)가 1972년 오사카에서 세운 회사의 가장 유명한 물건.

8.전시실에서 판매대까지는 몇 걸음. 롤랜드는 지난해 10월 40여 년 만에 아날로그 소리를 넣은 드럼머신 TR-1000을 2,699.99달러에 내놨다. 808을 쳐 본 손님이 옆 진열대에서 만나는 물건이 이것이고, 회사는 한 번 팔고 끝나는 기계보다 소프트웨어 악기 구독 서비스 Roland Cloud 가입으로 이어지는 손님을 늘리겠다고 밝혀 왔다.
9.롤랜드의 2025년 성적표는 매출 1,009억 엔에 영업이익 94억 엔. 매출은 4년 새 26%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거의 해마다 줄었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고, 미국 법인 한 곳이 전체 매출의 29%를 낸다.
10.올해 상반기는 사정이 나아졌다. 매출이 12.9%, 영업이익이 16.0% 늘었고, 회사는 1년 목표로 영업이익 100억 엔을 그대로 뒀다. 다만 경영진은 하반기에 반도체 메모리 값이 예상을 크게 넘는다고 경고했다. 4월에는 미국 본사를 캘리포니아 엘세군도(El Segundo)로 옮겼고, 뉴욕 매장은 그다음 걸음.
11.임대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1층과 지하가 절반씩이라 치고 1층 4,500제곱피트에 상권 평균 호가를 대면 연 144만 달러, 지하에 1층의 4분의 1 값을 매기면 36만 달러가 나온다. 둘을 합치면 연 180만 달러, 달러당 1,400원으로 약 25억 원(추정).
12.여기에 매일 문을 여는 전문 직원 15명쯤의 인건비를 1인당 연 7만 3,000달러로 얹으면 한 해 고정비가 290만 달러 안팎이 된다(추정). 롤랜드 1년 영업이익의 5% 가까이. 딜러가 가져가던 몫을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소매가의 30%로 잡고 그걸 전부 챙긴다 쳐도, 이 고정비를 메우려면 연 970만 달러어치를 팔아야 한다. TR-1000으로 세면 3,600대쯤.
13.그 판매량이 목표였다면 판매 면적부터 넓히지 않았을까. 앞선 두 매장도 간판은 스토어지만 시연 공간을 앞세웠다. 2022년 9월 런던 매장은 1960년대부터 악기 가게가 모여 「틴 팬 앨리」로 불린 덴마크 스트리트(Denmark Street)에 냈다. 딜러 매장이 늘어선 거리 한가운데다. 2023년 10월 문을 연 도쿄 매장은 하라주쿠(原宿)의 세 개 층을 쓰고, 1층에 신시사이저와 DJ 장비, 2층에 디지털 피아노, 지하에 전자 드럼과 BOSS를 뒀다.


14.뉴욕이 앞의 두 곳과 갈리는 부분은 DW다. 롤랜드가 2022년 6,500만 달러에 사들인 캘리포니아의 어쿠스틱 드럼 회사로, 전자 드럼으로 큰 회사가 나무 드럼을 산 거래. 도쿄 매장 지하에는 전자 드럼만 있었다. 뉴욕에서는 미국 드러머에게 익숙한 그 이름을 전용 쇼룸으로 앞세웠다.

15.워크숍도 시연도 공짜. 대신 예약은 매장 웹사이트로만 받는다. 뭘 치러 왔는지, 어느 악기에 30분을 썼는지가 이름과 함께 남는다. 딜러 매장에서 기타를 산 손님은 롤랜드에게 영수증 한 장 남기지 않는다. 뉴욕의 예약 시연은 도쿄 매장이 2023년부터 돌린 「Demo-on-Demand」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16.딜러를 거쳐 악기를 팔던 일본 회사가 인디텍스 창업자 소유 건물 253평을 빌려 첫 방을 46년 전 드럼머신에 내줬고, 한 해 290만 달러 안팎(추정)을 물건을 쌓는 데보다 손님이 쳐 보고 이름을 남기는 데 쓴다. 국내에서 악기 브랜드가 같은 매장을 내면 먼저 걸리는 건 소리다. 상가 건물에서 드럼과 앰프를 켜려면 벽과 바닥을 띄우는 방음 공사부터 해야 하고, 위층에 사무실이나 오피스텔이 있으면 임대차 협의에서 먼저 막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