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가 60년 쓰던 수산시장을 버리고 블랙와틀베이 수변으로 옮겼다. 2026년 1월 19일 개장, 사업비 8억 3,600만 호주달러. 230미터짜리 파도 지붕 아래 도매 경매장과 소매 마켓홀을 한 채에 겹쳐 넣고, 목표 방문객은 연 600만 명으로 걸었다. 그런데 시장을 운영하는 회사의 한 해 매출은 3천만 호주달러대다. 이 건물의 회수는 시장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7월 초 옛 시장 부지의 철거 절차가 끝났다는 소식이, 그 답에 더 가깝다.
1.2026년 1월 19일, 시드니 글리브(Glebe) 쪽 블랙와틀베이(Blackwattle Bay) 수변에 새 시드니 피시 마켓(Sydney Fish Market)이 문을 열었다. 발주는 주정부 기관 Infrastructure NSW, 설계는 덴마크의 3XN과 그 리서치 조직 GXN이 현지 사무소 BVN과 함께 맡았고, 조경은 ASPECT Studios, 시공은 Multiplex. 부지 10.4헥타르, 연면적 65,000㎡(약 19,660평), 지상 4개 층에 수중 기초부까지 내려간다. 총사업비는 8억 3,600만 호주달러로 발표됐다. 1호주달러를 920원으로 놓으면 약 7,700억 원.
2.개장 첫 주에 23만 명이 들어왔고 수산물 160톤이 거래됐다. 두 달이 채 안 된 3월 말에 누적 100만 명. 운영 목표는 연 600만 명이다. 옛 시장은 1966년부터 피어몬트(Pyrmont) 쪽 낡은 창고들에서 60년을 버텼고, 소매 면적은 6,582㎡였다. 새 시장의 마켓홀은 12,200㎡. 보도에 따라 소매 면적을 15,500㎡로 적기도 하는데, 어느 쪽으로 세어도 두 배 이상이다.

3.뜯어보면 이 건물의 정체는 사실상 지붕 한 장이다. 길이 230미터, 면적 20,000㎡, 무게 2,500톤. 글루램 보 594개가 물결치며 지나가고 그 위에 피라미드 모양 알루미늄 카세트 407개가 얹혔는데, 카세트마다 태양광 패널이 물려 있다. 멀리서 보면 파도이자 비늘. 가까이서 보면 빗물을 모으고 전기를 만들고 바람길을 여는 설비 한 벌이다.


4.안으로 들어가면 재료가 먼저 말을 건다. 천장은 목재, 바닥은 젖은 콘크리트, 가판대는 스테인리스. 카세트 사이로 떨어진 자연광이 얼음 위에서 한 번 더 튀어 눈이 부시고, 소리는 지붕의 굴곡을 타고 흩어져 한 덩어리 웅성거림으로 바뀐다. 하루 70톤의 얼음을 자체 생산하는 설비가 아래에서 돌아간다. 냄새와 습기와 소음은 이 업종에서 늘 감추는 대상이었는데, 여기서는 감추지 않기로 한 쪽에 가깝다.


5.설계진이 밝힌 개념은 안팎을 뒤집는 것이었다. 보통 시장 건물이라면 새벽 경매장과 하역장, 얼음 창고를 뒤로 밀어 넣고 손님에게는 매대만 보여준다. 여기서는 그 순서를 반대로 짰다. 160명이 들어가는 경매장을 유리로 두르고, 관람 동선을 작업 동선 옆에 나란히 붙였다. 층을 잇는 승강기만 26대. 보여주기 위해 동선을 두 벌 깐 건물이고, 그 이중 동선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비싼 결정이었을 것이다.

6.그래서 왜 먹히나. 첫째, 시장은 원래 새벽의 것이었다. 오전 다섯 시에 끝나는 노동을 오전 열한 시의 구경거리로 옮겨 놓은 게 이 건물이 한 일이다. 관광객이 사는 건 생선이 아니라 생선이 거래되는 장면이고, 그 장면은 원래 값이 매겨지지 않던 자산이었다.
7.둘째는 증명의 문제. 수산물 소매가 온라인과 대형마트에 계속 뺏겨 온 이유는 값이 아니라 신뢰였다. 얼음 위 눈알과 아가미, 옆 방에서 도는 경매, 물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 이 세 가지가 한 시야에 들어오면 가격표는 설득의 대상에서 결과로 바뀐다. 마트가 조명과 포장으로 흉내 내던 것을 이쪽은 운영 그 자체로 증명한다.

8.셋째, 이 시장은 시장으로만 서 있지 않는다. 6,000㎡의 공공 개방 공간, 30미터 폭 수변 프롬나드, 그리고 로젤베이에서 울루물루(Woolloomooloo)까지 이어지는 15킬로미터 해안 산책로의 끊어진 구간을 이 건물이 잇는다. 방문 목적이 없는 사람도 지나가게 만드는 구조. 목적 없는 통행량을 확보한 상업시설은 다른 종목을 한다는 걸 이 배치가 보여준다.

9.8억 3,600만 호주달러를 연면적으로 나누면 평당 약 42,500호주달러, 원화로 3,900만 원대다. 수변 매립 조건과 수중 기초, 2,500톤짜리 지붕, 4개 층을 오르내리는 승강기 26대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값은 아니다. 문제는 이 자산이 벌어들이는 쪽이다. 시장 운영법인의 2025년 매출은 3,290만 호주달러 수준으로 집계된다. 건물값에 자본비용 4%만 얹어도 연 3,340만 호주달러. 운영법인의 매출 전부가 건물 이자에 겨우 맞먹는다.
10.임대료 구조가 이 그림을 확정한다. 입점 상인들은 옛 뱅크스트리트 시절과 같은 시세 이하 요율로 새 건물에 들어왔다. 대신 5년 뒤 임대료 재검토가 예정돼 있다. 즉 정부는 세계적 건축가를 붙인 랜드마크를 지어 놓고, 그 안의 임대 수익은 최소 5년간 포기한 것이다. 상인 입장에서도 공짜는 아니었다. 인테리어 부담이 업체당 수십만에서 수백만 호주달러에 이르렀고, 전기 용량과 배기 설비를 두고 분쟁이 붙어 대다수가 임대차에 서명한 시점은 2025년 8월 초였다.
11.방문객 쪽 숫자도 뒤집어 보자. 연 600만 명은 하루 16,400명이고, 마켓홀 12,200㎡를 3,690평으로 환산하면 평당 하루 4.5명. 1인 평균 지출을 30호주달러로 가정하면 연간 시장 거래액은 1억 8천만 호주달러 안팎이 된다. 과거 자료에 적힌 연 1.65억 호주달러와 얼추 겹친다. 다만 개장 초 후기에서 반복되는 불평이 있다. 굴 반 다스 38.50호주달러, 주차 1시간 10분에 22호주달러. 객단가는 올랐고 장 보러 오던 손님은 밀려났다는 이야기다.

12.계보는 길다. 시드니의 수산시장은 1871년 울루물루에서 시작해 레드펀과 헤이마켓을 거쳐 1966년 피어몬트에 자리를 잡았고, 1989년 10월 목소리 경매를 전산 하향 경매로 바꿨다. 거래량 기준 세계 3위, 취급 어종 다양성 기준 세계 2위로 소개돼 왔다. 도쿄의 도요스(豊洲)가 2018년 츠키지(築地)를 떠나며 보여준 것과 같은 계열의 이동인데,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도요스는 관광을 뒤로 뺐고, 시드니는 앞으로 당겼다.


13.반전은 여기부터다. 이 프로젝트의 상품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이 비워 준 땅이었다. 옛 피어몬트 부지 3.6헥타르는 시드니 내항에 남은 마지막급 재개발 부지였고, 2025년 12월 공모에서 Mirvac이 Lendlease와 Stockland를 제치고 개발권을 가져갔다. 계획은 주택 1,400세대 이상. 그중 580세대가 Scape와 손잡은 학생주거다. 공공 개방 공간 3헥타르 이상, 30미터 폭 수변 프롬나드, 2027년 초기 공사에 2033년 완료.

14.그러니 8억 3,600만 호주달러는 시장 건설비라기보다 부지 해제 비용에 가깝다. 60년간 수변 3.6헥타르를 깔고 앉아 있던 산업 기능을 옆으로 옮기고, 그 대가로 랜드마크 한 채와 15킬로미터 산책로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거래. 옛 시장 건물 철거를 위한 환경영향 검토가 2026년 7월 초에 마무리됐으니, 계산서의 오른쪽 항목이 이제야 열리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시한장치도 같이 걸려 있다. 5년 뒤 임대료 재검토. 그때 요율을 시세로 붙이면 임대료를 감당 못 하는 업종부터 빠지고, 붙이지 않으면 이 자산은 계속 세금으로 굴러간다.
15.한 도시가 60년 된 수산시장을 8억 3,600만 호주달러짜리 건물로 갈아 끼웠고, 그 건물은 목재 보 594개와 태양광 카세트 407개로 만든 230미터 지붕 아래 도매 경매와 소매와 공공 산책로를 한꺼번에 밀어 넣었으며, 회수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이 비워 준 수변 3.6헥타르에서 일어난다. 평당 3,900만 원을 들여 지은 상업시설의 운영 매출이 자기 자본비용과 겨우 같다는 사실을, 이 사업은 감추지 않는다. 이 구조를 국내에 옮기면 설계가 아니라 이전 합의에서 먼저 걸린다. 도매시장이든 전통시장이든, 이전은 상인 동의와 보상 협의를 통과해야 시작되고 그 협의는 통상 몇 년 단위로 늘어진다. 남는 부지의 개발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를 이전 합의서에 먼저 못 박지 않으면, 새 건물만 서고 정작 값나가는 땅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 몇 년을 더 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