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l주민들이 '더 길'이라 부르는 길간드라 도서관·커뮤니티 허브. 밀러 스트리트(Miller Street) 30-34번지. ⓒKat Lu / Dunn Hillam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데일리 스페이스
발주처는 새로 짓자고 했고, 건축가가 말렸다 (호주·재생건축)
2026.08.04
인구 2,417명. 할인점 체인이 철수하며 중심가에 남기고 간 벽돌 상자 하나. 이 마을이 거기에 641만 호주달러를 넣었는데, 결과물은 신축이 아니었다. 그리고 반년 만에 주민의 9%가 회원증을 새로 만들었다.
1.시드니에서 내륙으로 차를 여섯 시간 몰면 길간드라(Gilgandra)가 나온다. 뉴사우스웨일스 서부 평원, 주변 농지의 중심 노릇을 하는 마을. 2021년 인구조사 기준 2,417명. 2025년 3월 이 마을 중심가에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그해 9월 29일 공식 개관식이 열렸다.
2.그 자리에 있던 것은 Target Country 매장이었다. 2019년 철수. 중심가 한복판에 아르데코 벽돌 건물 하나가 빈 상자로 남았고, 길간드라 샤이어 카운슬(Gilgandra Shire Council)이 그것을 사들였다. 매입가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업비로 공표된 금액은 641만 호주달러, 원화로 약 60억 원.
옆 주차장이 광장이 됐다인접 주차장을 공공 광장으로 바꾸자고 먼저 제안한 쪽은 건축가였다. 조경은 Somewhere Landscape Architects. ⓒKat Lu
3.카운슬이 처음 원한 것은 신축이었다. 설계를 맡은 Dunn Hillam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이 그 방향을 되돌렸다. 벽돌 껍데기를 남기자는 것. 근거가 셋인데 그중 하나가 바닥이다. 여러 차례의 홍수를 견디고 살아남은 바닥. 물이 들어오면 책과 가구는 들어내면 그만이니까.
지붕이 천장이 됐다기존 하드우드 트러스의 절반을 걷어 내고 남은 것을 감싸 격자 천장으로 만들었다. ⓒKat Lu
4.지붕을 뜯자 옛 하드우드 트러스가 드러났다. 절반을 걷어 내고, 남은 절반은 현행 법규에 맞춰 상자로 감쌌다. 그 결과가 서가 위에 낮게 걸린 격자 천장이다. 우물처럼 파인 칸마다 소리가 잡히고, 낮에는 저속 공조가 그 사이를 돌고, 밤에는 더운 공기가 같은 칸을 타고 빠져나간다. 천장 하나가 음향과 공조를 겸한다.
걷어 낸 트러스로 짠 창새 창틀은 철거한 트러스 목재를 다시 켜서 만들었고, 테두리는 거울처럼 닦은 스테인리스다. ⓒKat Lu
5.건물 측면은 아연도금 강판을 얹은 베란다가 감싼다. 이웃 상점 차양의 높이를 따라 흐르다가 아치형 출입문 위에서 한 번 뛰어오르는 선. 뒤쪽에서는 박공지붕이 그대로 이어져 넓은 테라스를 덮는다. 파사드의 타일과 벽돌 색은 옆집 가게들에서 가져온 것.
설계 스케치기존 벽돌 구조 위에 베란다와 지붕을 어떻게 얹을지 정리한 스케치. ⓒJonathan Temple / Dunn Hillam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6.이런 마을에서 공공 건물이 하는 일은 도시와 다르다. 시골 도시에는 성격이 다른 공공 공간이 여럿 있지 않고,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은 가게와 카운슬뿐. 그래서 도서관 한 채가 오락과 교육, 창업 지원까지 한꺼번에 떠맡는다. 장서는 2만 권을 넘지만 이 건물의 값은 거기서 나오지 않는다.
가운데 안내 데스크서가 사이사이에 조용한 구석을 두고, 안내 데스크는 어디서든 보이는 자리에 놓았다. ⓒKat Lu
7.건물 안에는 창업자에게 내주는 점포가 하나 들어 있다. 카운슬이 관리하고 임대료를 깎아 준다. 여기서 자리를 잡은 사업체는 중심가 점포로 나가고, 빈 칸은 다음 사람에게 넘어간다. 입주가 아니라 졸업을 전제로 짠 칸이라 한 자리가 여러 사업체를 통과시킨다.
강 쪽 대관실뒤편 캐슬레이 강(Castlereagh River)을 향한 다목적실. 간이 주방과 배식대가 붙어 있다. ⓒKat Lu
8.그 대관실은 수업부터 파티까지 받는다. 방음 처리한 팟캐스트 방이 따로 있고, 스터디룸 하나는 바깥에서 키코드로 24시간 들어갈 수 있다. 예약제 기술실은 동호회 몫. 문을 열면 도서관과 이어지고 닫으면 끊기는 구조라, 소란과 정적이 같은 지붕 아래 공존한다.
그늘진 전정나무를 심은 광장이 도서관의 앞마당 역할을 한다. 배수와 저류, 낮은 담으로 홍수 저감도 겸한다. ⓒKat Lu
9.총사업비 641만 호주달러 가운데 시공 계약은 410만이다. 나머지 231만, 원화로 약 21억 7천만 원은 부지 매입과 설계·감리, 가구와 장비로 흩어졌다. 인구 2,417명으로 나누면 1인당 249만 원. 착공에서 실질 준공까지 걸린 시간은 35개월.
사업비 구조막대 길이는 두 금액의 비율을 반영했다. 1인당 값은 공표 수치를 인구로 나눈 것이고 회수 계획이 아니다.
10.개관 반년치 성적표는 이렇다. 신규 회원 225명. 마을 인구의 9.3%가 반년 만에 새로 등록했다. 새로 만든 프로그램 11개, 행사와 활동 124회, 커뮤니티 모임 39회, 대관 230건. 카운슬이 개관식 자리에서 직접 공개한 숫자.
개관 반년 실적카운슬이 2025년 9월 공식 개관식에서 공개한 수치다. 이후 기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11.그럼 이 돈은 무엇으로 갚나. 갚지 않는다. 창업 점포의 깎아 준 임대료와 대관료를 다 합쳐도 사업비 근처에 가지 못하고, 애초에 회수를 전제로 세운 건물이 아니다. 이런 사업의 진짜 계산서는 준공식이 아니라 3년 차 운영비에서 날아온다. 재원은 연방과 주정부 보조금 다섯 갈래에 카운슬 몫을 얹어 짰는데, 그 목록 어디에도 매년 돌릴 돈은 적혀 있지 않다.
차양이 이어지는 거리베란다 지붕이 이웃 상점 차양의 선을 이어받아 거리 전체를 하나로 묶는다. ⓒKat Lu
12.계보를 보면 이 빈 상자는 길간드라만의 사정이 아니다. 2020년 Wesfarmers는 Target Country 93개 점포 가운데 52개만 소형 Kmart Hub로 바꾸고 나머지는 닫았다. 전환 기준은 입지와 배후 인구, 점포 크기였다고 회사는 설명한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마을마다 중심가에 상자가 하나씩 남았다. 길간드라의 폐점은 그보다 한 해 빨랐을 뿐이다.
13.답은 재료 목록에 있다. 강구조와 하드우드 짜맞춤은 농사짓는 동네의 철공과 목수가 늘 다루던 기술이고, 그래서 이 건물의 창과 베란다는 대부분 지역 업체의 손을 거쳤다. 애슐리 던(Ashley Dunn)이 이 프로젝트를 말할 때 반복한 단어가 '문화적 연속성'인데, 실제 내용은 도급이 어디에 떨어지느냐다. 옆 주차장을 광장으로 바꾸자고 먼저 꺼낸 쪽도 발주처가 아니라 건축가였다.
중심가의 저녁2026년 뉴사우스웨일스 건축상 공공건축·지속가능 건축 부문 수상작. ⓒKat Lu
14.인구 2,417명 마을이 체인이 버리고 간 벽돌 상자를 헐지 않고 약 60억 원을 들여 도서관으로 바꿨고, 반년 만에 주민의 9.3%가 회원증을 새로 만들었다. 이 방식을 국내로 옮기려는 쪽이 먼저 걸리는 자리는 설계가 아니라 재원의 이름이다. 폐점포를 사서 고치는 사업은 보통 여러 갈래 보조금을 겹쳐 짜야 성립하는데, 조성비는 그렇게 끌어와도 운영비는 매년 다시 심의를 받는다. 감액 임대 점포와 대관실은 그 심의를 통과시키는 근거이지 수익원이 아니고, 프로그램 예산이 먼저 잘리면 건물은 남고 사람은 빠진다. 그러니 이런 건물을 기획하는 쪽이 첫 장에 적어야 할 항목은 조형도 연면적도 아니고 준공 이후 10년치 운영비의 출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