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을 앞둔 외관흰 덩어리가 땅에 닿지 않고 부지를 가로지른다. 앞쪽은 새로 만든 잔디밭.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데일리 스페이스
두 도시가 돌려보낸 미술관을, LA가 연 20달러에 받았다 (미국·미술관 건축)
2026.09.01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문을 여는 미술관이 있다. 부지는 주차장이던 11에이커, 건립비는 세금 한 푼 없이 전액 개인 돈, 표는 성인 25달러. 착공에서 개관까지 8년 6개월이 걸렸고 그 앞에 도시 두 곳을 헛돌았다.
1.2026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익스포지션파크(Exposition Park)에서 루카스 내러티브아트 미술관(Lucas Museum of Narrative Art)이 문을 연다. 부지는 11에이커, 4.5헥타르. 2018년까지 여기는 노면 주차장. 세운 사람은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와 멜로디 홉슨(Mellody Hobson) 부부.
2.건물은 연면적 27,870㎡에 5개 층이고, 그중 전시실이 9,290㎡를 쓴다. 극장 둘과 도서관, 카페와 옥상 식당, 상점이 나머지를 채운다. 설계는 마옌송(马岩松)의 MAD, 조경은 미아 레러(Mia Lehrer)의 Studio-MLA, 실시설계는 Stantec.
놓인 자리오른쪽 붉은 시설이 LA 메모리얼 콜리세움, 배경이 다운타운. 미술관은 공원 안에 앉았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3.건물은 땅에 앉지 않는다. 흰 덩어리가 부지 위를 가로질러 떠 있고 그 밑은 열려 있다. 기둥은 바닥에서 위로 갈수록 벌어져 천장으로 이어지고, 덩어리 밑면에는 타원형 구멍이 뚫려 그리로 하늘이 내려온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설계로 만들어 놓아야 하고, 이 건물이 지상층에 내놓은 게 바로 그 그늘.
비워 둔 지상층밑면에 뚫린 타원이 채광구다. 이 아래가 통째로 그늘이 된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걸어 들어가는 높이기둥이 벌어지는 자리가 그대로 출입구가 된다. ⓒMAD Architects
4.껍데기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GFRP) 패널 1,500장이 넘는다. 평균 2.4×9.8m,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표면이 매끈해 이음선만 실처럼 남고, 흐린 날에는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 회백색으로 가라앉는다. Kreysler & Associates가 캘리포니아 북부 Mare Island 공장에서 CNC 몰드로 뽑고 로봇으로 형상을 재확인한 뒤, 마지막 마감은 사람이 손으로 갈아 냈다.
이음선패널 1,500장이 만드는 격자. 창은 곡면이 꺾이는 자리에만 좁게 났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붙이는 일곡률이 매번 달라 패널마다 부착 위치가 정해져 있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5.지붕에는 흙을 덮어 잔디와 관목을 올렸고 그 사이로 태양광 패널이 띠처럼 누웠다. 나무는 200그루 넘게 새로 심었다. 빗물을 받아 관수에 돌리고, 폭포꼴로 떨어지는 분수 물을 냉방에 쓴다. 건물이 덮지 않은 자리는 전부 공원.
지붕 위흙을 덮은 둔덕과 태양광 패널이 같은 면에 있다. 지붕도 공원의 일부.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6.돈은 전액 루카스 가족이 냈다. 세금은 한 푼도 안 들어갔고, 보도된 총액은 10억 달러에서 15억 달러 사이를 오간다. 이 금액에 건물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소장품 값과 운영기금이 함께 묶여 있고, 그중 기금만 4억 달러.
7.건물 몫을 10억 달러로 잡고 연면적으로 나누면 평당 1억 6,500만 원쯤 된다. 보도된 총액을 그대로 나누면 평당 2억 4,700만 원. 같은 도시에서 2015년에 문을 연 The Broad는 건립비 1억 4,000만 달러에 연면적이 11,148㎡였으니 평당 5,770만 원이고, 입장료는 아예 안 받는다. 그 차이를 만든 게 곡면 껍데기와 지진 대비 구조다.
도표 읽는 법막대 길이가 평당 금액. 검은 막대가 이번 건, 옅은 막대가 비교 대상.
8.표는 성인 25달러, 65세 이상 21달러. 17세 이하는 무료다. 미술관을 낀 우편번호 90037에 사는 사람은 본인과 동반 한 사람까지 공짜로 들어간다. 화요일 휴관, 금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중앙 홀흰 볼트가 갈라지는 자리에 유리 승강기 통을 세웠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9.이 규모의 미술관이 한 해 쓰는 돈은 보통 5,000만 달러 위. 관람객을 100만 명으로 잡고 유료 비율을 후하게 쳐도 표에서 들어오는 돈은 그 3분의 1에 못 미친다. 나머지를 대는 게 4억 달러짜리 기금이고, 거기서 해마다 4~5%만 뽑아도 표 수입과 맞먹는다. 표값은 재원이 아니라 문지방 높이를 정하는 손잡이에 가깝다.
10.땅값은 이 사업에서 사실상 0이다. 부지는 주 소유 공원이고, 2017년 유치 당시 보도된 임대 조건은 연 20달러였다. 앞서 시카고가 내놓았던 조건은 99년에 연 1달러. 두 도시 다 땅을 거저 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값이 아니었다. 그 땅을 내줄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도표 읽는 법위에서 아래로 시간 순. 옅은 점이 무산된 자리, 검은 점이 성사된 자리.
11.공사판에서 일한 1,477명 가운데 76%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주민. 공사 기간에 붙은 일자리는 6,000개로 집계됐다. 유치전에 나선 도시가 실제로 사는 건 건물이 아니라 이 숫자다.
12.문을 연 뒤 이 건물이 붙들고 갈 일자리는 1,240개에서 1,500개. 연간 경제 산출은 1억 4,000만 달러대로 잡혔다. 90037 주민 무료 입장은 선심이 아니라 이 계산의 뒷면에 붙은 항목이다. 공원을 내준 쪽이 받아 가는 몫.
벌어지는 기둥곡면 껍데기 안쪽을 이렇게 받친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벌어져 천장에 그대로 붙는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13.왜 이만한 건물이 필요했나. 소장품 목록을 보면 짐작이 간다. 노먼 록웰(Norman Rockwell)과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그림부터 잭 커비(Jack Kirby)의 만화 원고, 고든 파크스(Gordon Parks)와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의 사진까지 4만 점이 넘는다. 전시실 35개는 시대나 매체가 아니라 가족·일·공동체·놀이·모험 같은 주제로 갈라 놓았다. 삽화와 만화를 미술관 벽에 거는 일 자체가 아직 논쟁거리이고, 그 논쟁을 건물 크기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
거는 것들어니 바니스(Ernie Barnes)가 서명한 소장품. 이런 그림 4만 점이 전시실 35개에 나뉜다.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14.이 껍데기가 곡면인 이유를 미학에서만 찾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처음 검토한 재료는 유리섬유강화콘크리트(GFRC)였는데, 그 무게를 아래 면진 시스템이 못 받는다는 계산이 나와 플라스틱으로 갈아탔다. 건물 밑에는 면진장치 281개가 깔려 있고 지진이 오면 수평으로 1.07m까지 미끄러진다. 조각처럼 보이는 표면은 흔들림이 정해 준 무게 상한 안에서 나온 형태.
15.주차장이던 11에이커에 8년 6개월을 들여 10억 달러대를 부었고, 땅은 연 20달러에 빌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년을 끌다 접고 시카고에서 소송에 막혀 물러난 뒤 세 번째 도시에서 겨우 앉은 자리다. 국내에서 같은 그림을 그리면 무상사용 기간에서 먼저 막힌다.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법은 기부채납한 재산을 기부자가 공짜로 쓰는 기간을 20년 안쪽으로 묶어 두고, 사용허가 자체도 짧게 끊어 갱신하게 해 놨다. 99년에 연 1달러 같은 조건은 조문에서부터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 돈으로 공공 부지에 문화시설을 앉히려는 계획은 투자 회수가 아니라 쓸 수 있는 햇수에서 먼저 주저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