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강원 횡성에 서울시 첫 통합수장고가 문을 연다. 연면적 9,155㎡에 총사업비 524억 원. 그 가운데 땅값은 21억 원이고 나머지 503억 원이 전부 건물값이다. 도심 문화시설이라면 뒤집혀 있을 비율이다.
1.2026년 9월 10일 오전 11시,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우천면 두래울문화길 50에서 서울문화유산센터 횡성이 정식으로 문을 연다. 서울시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아 두는 첫 통합수장고다.
2.부지는 약 4만 4,600㎡, 연면적 9,155㎡에 지상 2층. 총사업비는 524억 원인데 뜯어보면 건축비가 503억 원이고 토지비가 21억 원이다. 땅값이 사업비의 4%다.

3.자리를 고르는 데만 여러 해가 걸렸다. 2016년 시도를 상대로 공모를 냈고 네 개 군이 경쟁했으며, 2018년 횡성군과 협약을 맺었다. 고속도로와 KTX가 가깝고 옆으로 더 넓힐 땅이 남아 있다는 점이 선정 사유였다고. 착공은 2022년 10월 17일.
4.공개된 부분의 이름은 열린 수장고다. 흰 철제 선반을 두 개 층으로 쌓고 그 사이로 관람로를 냈는데, 통로가 아래층과 위층에 모두 있어 같은 선반을 눈높이에서도 보고 내려다보기도 한다. 서울시가 개방형 중층 관람로라 부르는 구조.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전시가 아니라 정리되어 놓인 상태 그대로다.

5.안은 재질과 크기로 갈린다. 목재, 대형 미술품, 지류와 복식, 금속과 복합재, 도기와 토기까지 여섯 구역. 종이와 옷은 습도에 예민하고 금속은 건조해야 하며 목재는 그 사이 어딘가다. 한 건물에서 공기를 여러 갈래로 갈라 돌려야 한다는 뜻이라, 재질별 수장고 다섯 실에 개방형 한 실이 붙고 보존처리실 넷과 환경·분석실 하나가 따로 선다.

6.설명은 벽에 붙이지 않았다. 선반마다 1-20-5 같은 위치 번호와 QR 코드를 나란히 달아 두고, 찍으면 그 칸에 놓인 물건의 정보가 휴대폰에 뜬다. 벽면을 설명 패널로 채우면 그만큼 수장 면적이 줄어드니까. 라벨을 없앤 것이 아니라 라벨을 옮긴 것.


7.서울 쪽 사정이 이 건물을 밀었다. 2022년 기준 서울시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은 40만 점이고 평균 수장률이 90%였다. 새로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뜻이라, 서울역사박물관은 등록유물의 29.7%에 해당하는 7만 5,930점을 이쪽으로 넘겼다.

8.시민이 여기서 보는 것은 유물 자체가 아니다. 유물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어느 칸에 무엇이 몇 개나 쌓여 있는지, 그 총량이다. 미술관은 한 점을 잘 보이게 하려고 나머지를 치우는데 여기서는 그 나머지가 통째로 보인다.

9.뒤쪽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오래된 것이다. 공장 견학, 주방이 보이는 식당, 로스터리 카페의 유리벽 안 로스터. 완성품보다 완성되는 자리가 더 재미있다는 감각인데, 미술관에서는 그 자리가 늘 지하에 있었다.

10.반응은 나왔다.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한 달 시범운영에 7,408명이 왔고, 월요일 휴관을 빼면 하루 285명꼴. 무료이고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인 시설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만족도와 재방문 의향이 모두 80%를 넘었다고.

11.건축비 503억 원을 연면적으로 나누면 ㎡당 549만 원, 평당 1,816만 원이 된다. 공공건축 치고 비싼 편인데 항온항습 설비와 수장 하중을 받는 바닥이 값을 올린다. 아낀 것은 땅 하나다.
12.올해 서울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높은 곳은 중구 명동의 상업용 토지로 ㎡당 1억 8,840만 원. 같은 21억 원이면 그 자리에서 11㎡ 남짓을 살 수 있고, 횡성에서는 4만 4,600㎡를 샀다. 넓이로 4,000배 차이다.
13.회수는 입장료에서 나오지 않는다. 관람료가 없으니 이 건물의 수입은 0원이고, 값을 갚는 쪽은 서울 도심에서 비워진 수장 면적이다. 7만 5,930점이 빠져나간 자리를 전시장이나 교육실로 돌리면 그 면적이 이 사업의 수익란. 반대로 새로 생긴 비용도 있다. 유물 한 점을 서울에서 쓰려면 왕복 네 시간과 포장·보험·운반차를 매번 치러야 한다.

14.글래스고의 Glasgow Museums Resource Centre와 리즈의 Leeds Discovery Centre는 창고를 예약제로 열었고, 뉴욕 Brooklyn Museum은 소장품 일부를 보이는 수장 형태로 상설 공개했다. 국내에도 앞선 사례가 둘 있다. 옛 담배공장을 고쳐 2018년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그리고 2021년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서울시는 그 뒤를 따라간 쪽이다.

15.가장 유명한 열린 수장고는 도시 한복판에 있다. 2021년 로테르담에 문을 연 Depot Boijmans Van Beuningen은 MVRDV가 설계했고, 미술관 바로 옆 공원 안에 15만 5,000점을 쌓아 성인 20유로를 받는다. 창고를 관광상품으로 판 것. 횡성은 같은 개념을 정확히 반대로 풀어서, 한쪽은 티켓을 팔고 다른 쪽은 아낀 땅값을 판다.
16.9월 10일 문을 여는 이 건물에 서울시가 쓴 돈은 524억 원, 그중 땅에 쓴 몫이 21억 원이었다. 같은 셈은 도심 임차공간에서도 선다. 창고로 쓰던 면적을 외곽으로 빼면 평당 월 수십만 원이 매출 면적으로 돌아오니까. 막히는 자리는 그다음이다. 하루 한 번이라도 손이 가는 물건을 밖에 두면 그 차액이 운반비와 기다리는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무엇을 내보낼지 고르는 기준은 부피가 아니라 1년에 몇 번 꺼내는가이고, 서울시가 내보낸 7만 5,930점도 몇 년에 한 번 손이 가는 물건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