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쑤저우의 호숫가에 BIG이 처음 완성한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전시실은 연면적의 19%이고, 나머지는 회랑과 극장, 식당,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호수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1.8월 30일, 쑤저우(苏州) 진지호(金鸡湖) 동쪽 물가에 쑤저우 현대미술관(苏州当代美术馆, Suzhou MoCA)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설계는 BIG(Bjarke Ingels Group)으로, 비야케 잉엘스(Bjarke Ingels)가 2005년 사무소를 연 뒤 처음 완성한 미술관이다. 표 한 장이 40위안(약 7,600원)이고,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개관 전시 넷을 그 한 장으로 다 본다.
2.대지 4.88만㎡(약 1만 4,800평)에 연면적 5.95만㎡(약 1만 8,000평). 그중 전시실은 1.13만㎡로 5분의 1이 안 된다. 나머지는 로비와 극장, 식당, 다목적홀, 사무동, 지하층, 그리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회랑 몫.


3.BIG은 이 건물을 지붕 하나 아래 12채가 모인 마을이라 부르고, 현지 정부 발표는 9동이라고 적는다. 평면도를 펴면 두 숫자가 다 맞다. 로비와 다목적홀, 식당, 극장, 전시동 넷, 사무동이 9동이고, 물 위의 작은 정자 두 채와 냉각탑까지 같은 지붕을 씌워 12채로 셌다. 설비인 냉각탑까지 마을의 한 채로 대접한 셈법.
4.뼈대는 쑤저우 정원의 랑(廊). 지붕 덮인 긴 복도가 정원을 돌며 걸음마다 다른 장면을 보여 주는데, 여기서는 그 복도가 전시동을 하나씩 꿰는 동선이 됐다. 동과 동 사이에는 얕은 연못을 두고 징검돌을 놓았다. 입구 광장의 돌바닥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풀밭이 되고, 다시 물가 식재로 바뀌며 호수까지 내려간다.


5.지붕은 스테인리스 기와로 덮었다. 전통 처마처럼 끝이 들리되 곡선은 늘어뜨린 쇠사슬이 그리는 현수선을 따랐고, 둘레의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지붕 전체가 다섯 번째 입면이 된다. 외벽은 물결치는 곡면 유리와 따뜻한 빛깔의 스테인리스를 섞어 제 색을 내는 대신 하늘과 호수를 되비친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루버가 천장을 촘촘히 덮고, 고측창과 천창으로 든 빛이 동마다 다른 각도로 벽에 떨어진다.


6.땅 위에서는 따로 선 여러 채지만, 땅 밑에서는 한 덩어리다. 단면도를 보면 전시동 아래로 지하층이 길게 이어지고, 지하철 8호선 역에서 지하 통로로 곧장 미술관에 닿는다. 현지 발표로는 이 일대 물가의 지하 공간을 모두 텄다고 한다.


7.담장이 없다. 조각 정원과 산책로는 미술관이 문을 닫은 뒤에도 열려 있고, 금·토요일에는 전시실도 밤 9시까지 연다. 바로 옆이 쑤저우의 눈(苏州之眼) 대관람차라, 해 질 녘 호숫가로 나온 사람들이 그대로 미술관 마당을 지나간다. 잉엘스는 이 건물이 도시와 호수 사이를 막지 않고 잇는다고 설명한다.
8.쑤저우는 이미 정원으로 이름난 도시다. 2006년 이오 밍 페이(I. M. Pei)가 쑤저우 박물관(苏州博物馆)을 지으며 흰 벽과 짙은 지붕선을 가져왔다면, BIG은 지붕 모양보다 걷는 순서를 가져왔다. 그림 한 점을 보러 일부러 온 사람보다 호숫가를 걷다 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배치다. 쑤저우 박물관은 무료 예약제이고, 이곳은 유료.
9.관객은 건물보다 먼저 모였다. 운영진은 2024년 4월부터 「공간생산력(空间生产力)」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 없는 미술관을 돌렸다. 도시 곳곳을 빌려 연 전시가 10여 건, 강연이 20회 가까이, 교육 행사가 86회였고, 개관 전까지 모은 관객이 42만 명이다. 올해 1월 17일부터 3월 8일까지는 시범 운영도 한 차례 거쳤다.

10.사업비는 공개되지 않았다. 쑤저우 공업원구(苏州工业园区) 관리위원회가 돈을 대 2023년 1월 착공했고, 2년 반 뒤인 2025년 8월 준공했다. 중국에서 이 급의 문화시설 공사비를 ㎡당 1.2만~1.6만 위안으로 잡으면 7억~9.5억 위안, 우리 돈 1,350억~1,800억 원쯤 된다(추정).
11.표 수입은 작다. 정가 40위안, 할인 24위안이고 70세 이상은 무료다. 한 해 100만 명이 평균 30위안을 낸다고 쳐도 3,000만 위안(약 57억 원)이다(추정). 한 장으로 네 전시를 다 보고 같은 날 몇 번이고 드나들게 해, 전시마다 표를 따로 팔 여지는 처음부터 닫아 뒀다.
12.연면적 6만㎡ 가까운 공공건물이면 청소와 경비, 설비 관리에만 ㎡당 한 해 300~500위안이 든다. 그렇게 치면 1,800만~3,000만 위안이다(추정). 표 수입이 건물 관리비와 비슷한 크기이고, 전시를 들여오는 비용과 인건비는 따로 채워야 한다. 운영을 맡은 곳은 쑤저우 현대미술관 관리 유한회사(苏州当代美术馆管理有限公司)라는 별도 법인.
13.그럼 이 미술관은 어디서 수지를 맞추나. 전시실 19%를 뺀 나머지에 극장과 식당, 사무동, 지하층, 회랑이 들어가고, 조각 정원과 물가 산책로는 표 없이 걷는다. 관리위원회는 땅을 팔고 기반시설을 까는 쪽이기도 하니, 셈은 표값보다 호수 동쪽으로 사람을 끌어오는 데 걸려 있다.
14.현대미술관의 상설전 자리는 설계사가 차지했다. 7번 동에서 열리는 「BIG: Materialism」은 돌에서 시작해 재활용 소재로 끝나는 재료 열 가지를, BIG이 세계 곳곳에서 설계한 건물의 실물 크기 모형과 축소 모형으로 보여 준다. 건물을 보러 온 관객이 나가는 길에 건축가의 작업실까지 들여다보는 동선.
15.첫 시즌의 주제전은 오래된 이름을 앞세웠다. 「피카소와 그가 영향을 준 세계」는 피카소가 1930~1937년에 찍은 볼라르 연작(Vollard Suite) 판화 100점을 한 벌로 걸고,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와 자오우키(赵无极) 등 9개국 작가 21명을 곁에 세웠다. 현대미술관이 첫 관객을 부르려고 앞세운 게 90년 전 판화.
16.쑤저우 공업원구는 진지호 동쪽 물가에 연면적 5.95만㎡의 미술관을 지으면서 전시실을 19%만 두고, 나머지를 회랑과 마당, 지하철로 이어지는 지하층에 썼다. 표는 40위안이라, 한 해 100만 명이 와도 표 수입은 건물 관리비를 겨우 넘는다(추정). 국내 지자체가 같은 계산을 하려면 돈이 들어오는 주머니가 갈린다는 데서 먼저 막힌다. 미술관은 문화 예산으로 짓고 운영비는 해마다 의회 심의를 받는데, 주변 땅값과 상가 매출이 오른 몫은 민간 소유자에게 간다. 짓는 쪽과 버는 쪽이 한 손인 곳이어야 전시실 19%짜리 미술관이 예산 심의를 넘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