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가스 본사 옆, 착공이 무기한 밀린 고층 빌딩 부지 한쪽 300㎡를 비계 파이프와 도로반사경으로 꾸며 동네에 열었다. 주차장으로 두면 한 해 550만 엔쯤 받을 땅이다.
1.오사카 요도야바시(淀屋橋), 미도스지(御堂筋)에서 한 블록 안쪽 도쇼마치(道修町) 4초메에 약 300㎡짜리 빈 땅이 있다. 오사카가스 도시개발(大阪ガス都市開発)은 2023년 5월부터 이곳을 GAS STAND라 부르며 누구에게나 열어 두었다. 올해 6월 말, 설계 팀 team raw row가 비계 파이프로 다시 꾸민 모습이 디자인붐(designboom)에 실렸다.
2.원래라면 지금쯤 철골이 올라가고 있어야 할 자리. 오사카가스(大阪ガス)는 2023년 2월 본사 가스빌딩(ガスビル) 서쪽 자기 땅에 33층, 높이 약 150m의 서관을 짓겠다고 발표했고, 2024년 무렵 착공할 계획이었다. 2025년 3월 6일 회사는 건설 자재 가격이 올라 착공을 미룬다고 알렸다. 새 일정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미정. 서쪽 땅의 나머지는 지금도 주차장이다.

3.재료는 거리와 공사장에서 흔히 보는 것들. 비계용 단관 파이프로 틀을 짜고, 그 안에 흰 상자에 파란 상판을 얹은 벤치를 넣었다. 서서 먹는 카운터와 게시판, 화분에 굽은 길모퉁이에 다는 도로반사경까지 함께 섰다. 모두 들어서 옮길 수 있는 크기라 행사에 따라 배치를 바꾼다.


4.바닥은 새로 깔지 않았다.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 흰색과 파란색 페인트로 횡단보도 같은 줄무늬와 물웅덩이 같은 얼룩을 그리고, 그 사이에 GROW AND SPREAD라는 글자를 눕혔다. 파이프 이음새마다 클램프가 물려 있어 공사장 가설재를 본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 새로 지은 광장이 아니라 늘 보던 거리의 연장으로 보이게 하겠다는 게 설계 팀이 밝힌 방향이다.


5.요도야바시는 평일 낮에 직장인이 쏟아지고 주말이면 조용해지는 사무실 동네다. 점심 먹고 잠깐 앉을 벤치 하나 찾기 어려운 거리. team raw row는 인도와 부지 사이에 담을 세우지 않고 거리의 표지와 가구를 부지 안으로 끌어들여, 광장을 따로 떼지 않고 길이 안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6.사람은 점심에 온다. 평일 점심에는 키친카를 불러 주변 직장인에게 밥을 팔고, 밤에는 토크 행사를 연다. 2023년 11월에는 오사카 시내 식당들이 좌판을 펴고 창작자들이 팝업을 여는 WeST CYCLE MARKET이 섰다. 도심 한복판에 돈 안 내고 앉을 자리가 생기면 도시락을 든 사람이 먼저 찾는다.


7.첫 판은 직원 손으로 만들었다. 2023년에 오사카가스 도시개발 직원들이 쓰던 화분을 고쳐 벤치와 테이블을 짜고, 전시회에서 쓴 천막을 잘라 해가림으로 걸었다. 천막 원단은 Daigas 그룹이 개발한 복사냉각 소재 SPACECOOL. 개발사의 빈 땅이 그룹 신소재의 야외 시험장도 겸했다.
8.요도야바시역 주변 공시지가는 2026년 평균 ㎡당 363만 엔이다. GAS STAND 300㎡에 이 평균을 곱하면 땅값만 약 11억 엔(약 103억 원)이다(추정). 입장료도 임대료도 없으니, 그 땅이 지금 벌어들이는 돈은 0엔.

9.주차장으로 뒀다면 얼마였을까. 도쇼마치와 히라노마치(平野町) 일대 월 주차료는 한 대에 3만 8,500엔 안팎이다. 통로까지 쳐도 300㎡면 12대쯤 들어가니, 한 해 약 550만 엔(추정). 오사카가스가 GAS STAND에 치르는 값은 이 550만 엔에 설치비와 운영비를 더한 것.
10.그 값을 땅값 상승과 나란히 놓으면 크기가 다르다. 평균 공시지가가 1년에 16.9% 올랐으니 300㎡로 치면 약 1억 6,000만 엔이 장부 밖에서 불었다(추정). 주차료의 30배 가까이. 착공을 기다리는 동안 땅값이 오르고, 빈 땅을 여는 비용은 그 30분의 1 남짓이다.
11.사업비는 반대 방향. 2023년 발표 때 오사카가스는 총사업비를 500억 엔(약 4,700억 원) 넘게 잡았다. 그 뒤 2015년을 100으로 둔 국토교통성 건설공사비 디플레이터(建設工事費デフレーター)가 2026년 3월 135.4까지 올라갔고, 회사는 연기를 알리며 일부 사양과 총사업비를 다시 따지겠다고 했다.
12.이 계획의 부피는 옛 건물에서 나왔다. 가스빌딩 땅과 서쪽 땅 사이에 난 시도 고료스지(御霊筋) 위 공중을 함께 쓰고, 역사 건축물을 남기는 대가로 용적률 완화를 받았다. 도시재생특별지구(都市再生特別地区)로 정해진 숫자는 두 땅 합쳐 1만 370㎡에 용적률 약 1,200%, 연면적 약 13만 6,000㎡. 서관이 서야 이 숫자가 채워진다.
13.가스빌딩은 1933년 야스이 다케오(安井武雄)가 설계한 남관에 1966년 사노 쇼이치(佐野正一)의 북관을 붙여 한 몸으로 만든 8층 건물이다. 흰 타일과 검은 화강암의 가로 띠가 미도스지의 얼굴이 됐고, 남관은 등록유형문화재다. 외벽과 바닥의 약 85%를 남길 계획이었는데, 서관이 멈추면서 이쪽 수선 일정도 함께 섰다.

14.1933년의 가스빌딩은 사무실만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최신 가스 기구 전시장과 요리 강습실, 강연장을 두고 시민을 불러 모았고, 8층의 가스빌딩 식당(ガスビル食堂)은 지금도 영업한다. 오사카가스가 GAS STAND를 알리며 먼저 꺼낸 이야기도 이 내력. 90년 전 본사 건물이 하던 일을 빈 땅이 먼저 한다.
15.헐거나 지을 때까지 땅을 잠깐 쓰는 일 자체는 새롭지 않다. 도쿄에서는 몇 년 뒤 헐 땅에 목조 가설 건물을 세워 영업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GAS STAND는 건물을 세우지 않았다. 비계 파이프, 반사경, 화분은 공사가 시작되면 쉽게 걷어 갈 수 있는 물건이고, 오사카와 도쿄에 한 명씩 둔 작은 사무소 team raw row는 이것을 긴 변화의 첫 단계라 불렀다.
16.착공이 밀린 500억 엔짜리 땅 한쪽이 비계 파이프 광장이 됐고, 오사카가스는 주차료 한 해 약 550만 엔을 내려놓는 대신 동네가 그 땅을 먼저 쓰게 했다. 서관 1~2층에 들일 상업시설의 손님이 누구일지도 여기서 미리 보인다. 국내에서 같은 일을 하려면 무엇부터 따져야 할까. 세금이다. 유료 주차장으로 쓰던 땅을 무료로 열면 토지분 재산세의 과세 구분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착공이 밀린 땅이 늘어나는 요즘, 빈 땅을 여는 데 드는 돈은 생각보다 작다. 먼저 걸리는 건 공사비가 아니라 세금 계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