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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 <더 라스트 리조트>(1983~85). 고채도 컬러로 노동계급 휴양지를 표본처럼 담았다 (ⓒMagnum Photos)
마틴 파 <더 라스트 리조트>(1983~85). 고채도 컬러로 노동계급 휴양지를 표본처럼 담았다 (ⓒMagnum Photos)
데일리 컬처

전시 제목이 '우리가 마틴 파다'인 이유 (마틴 파 회고전)

2026.07.17

어제 창동에서 사진 500점짜리 회고전이 열렸는데, 주인공은 작년 12월에 죽었다. 평생 휴가지에서 아이스크림 흘리는 사람들을 찍었고 그걸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가가 됐다. 표는 공짜.

1.어제 7월 16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가 열렸다. 10월 18일까지 미술관 전관을 쓰고, 사진 500여 점에 사진책 90권, 14개 시리즈로 50여 년 작업을 훑는다.
2.중요한 숫자가 하나 더 있다. 관람료 0원. 예약도 필요 없어 그냥 가면 되고, 도슨트는 매일 11시·13시·17시에 돈다. 화~금 10~20시, 주말 10~19시, 월요일 휴관. 1·4호선 창동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창동 아파트 단지 앞에 2025년 문을 연 국내 첫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 관람료 0원 (ⓒ월간 디자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창동 아파트 단지 앞에 2025년 문을 연 국내 첫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 관람료 0원 (ⓒ월간 디자인)
3.이 전시의 성격을 결정하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마틴 파는 작년 12월 6일에 죽었다. 향년 73세. 2021년 5월 골수종 진단을 받고 브리스톨(Bristol) 자택에서 눈을 감았고, 그가 죽은 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 이번 전시. 구성은 Magnum Photos와 Martin Parr Foundation이 함께 짰다.
마틴 파(1952~2025). 대중의 일상을 표본으로 만든 사진가 (ⓒWikimedia Commons)
마틴 파(1952~2025). 대중의 일상을 표본으로 만든 사진가 (ⓒWikimedia Commons)
4.한국 관객에게 걸리는 부분이 따로 있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에 와서 남한과 북한을 다 찍었고, 그 작업이 이번에 걸린다. 그가 우리를 찍은 걸 이제 우리가 보러 가는 것.
마틴 파 《평양, 북한》(1997). 평양의 사진관에서 주체사상탑 배경천을 두고 찍은 자화상 (ⓒMartin Parr/Magnum Photos)
마틴 파 《평양, 북한》(1997). 평양의 사진관에서 주체사상탑 배경천을 두고 찍은 자화상 (ⓒMartin Parr/Magnum Photos)
5.먼저 그가 뭘 어떻게 찍었는지부터 봐야 하는데, 기법이 곧 내용인 사람이라 그렇다.
파란 선탠 고글 하나로 얼굴 전체를 채웠다. 링 플래시가 그림자를 지운 마틴 파 특유의 화법 (ⓒMartin Parr/Magnum Photos)
파란 선탠 고글 하나로 얼굴 전체를 채웠다. 링 플래시가 그림자를 지운 마틴 파 특유의 화법 (ⓒMartin Parr/Magnum Photos)
6.장비 구성이 특이하다. 매크로 렌즈로 바짝 붙고, 채도 높은 컬러 필름에 링 플래시를 때린다. 원래 치과나 곤충 촬영에 쓰는 물건. 렌즈를 도넛처럼 둘러싸고 때리는 빛이라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7.그림자가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대상이 배경에서 도려낸 것처럼 떠오르고, 케첩은 더 빨개지고 살갗은 더 번들거리고 아이스크림은 더 끈적해진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아무렇지 않은 장면인데 사진에서는 견본 상자에 핀으로 꽂힌 곤충이 된다.
8.본인은 이걸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오락으로 위장한 진지한 사진을 만든다." 이 문장이 전부. 일단 웃기고, 웃고 나면 그게 나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의 사진 앞에서 사람들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해지는 이유.
9.'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포착했다'는 설명은 너무 헐거워서, 그 정도로는 사후 회고전에 500점을 보러 오지 않는다.
10.사진의 역사에서 카메라는 오랫동안 '저기'를 향했다. 전쟁, 기근, 빈곤, 먼 나라. 사진가는 위험한 데를 가서 우리가 못 보는 걸 물어오는 사람이었다. 사진도 흑백이었고, 흑백은 진지함의 유니폼.
11.마틴 파는 카메라를 돌려서 '여기'를 겨눴다. 해변에서 감자튀김 먹는 가족, 유적지 앞에서 같은 포즈로 찍는 관광객 줄, 쇼핑카트, 파티, 개, 케이크. 아무도 안 죽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장면들이다.
마틴 파 《스몰 월드》(1987~94). 피사의 사탑 앞,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관광의 포즈 (ⓒMartin Parr/Magnum Photos)
마틴 파 《스몰 월드》(1987~94). 피사의 사탑 앞,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관광의 포즈 (ⓒMartin Parr/Magnum Photos)
12.그게 더 아프다. 전쟁 사진은 보면서 슬퍼하면 되는데, 나는 거기 없으니까. 마틴 파의 사진에는 도망갈 데가 없다. 저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지난여름의 나고, 나도 저렇게 줄 서서 저 각도로 찍었다. 그가 건드린 결핍은 '우리가 우리를 본 적이 없다'는 것.
13.그래서 전시 제목이 《We Are Martin Parr》다. 그가 마틴 파라는 게 아니라 그가 찍은 대상인 우리가 마틴 파라는 것. 관객에게 던지는 고발장이면서 동시에 초대장.
14.이게 2026년에 정확히 도착한다. 전 국민이 자기를 연출해서 올리는 시대에 살고, 여행 가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고 여행을 간다. 마틴 파는 이 습성을 40년 전에 필름으로 잡아뒀는데, 스마트폰이 나오기 20년 전에 미리 찍어둔 인스타그램.
15.이게 처음부터 환영받은 게 아니다. 계보를 봐야 그 저항이 보인다.
16.그는 1970~73년 맨체스터 폴리테크닉(Manchester Polytechnic)에서 사진을 배웠고, 1975년 헵던브리지(Hebden Bridge)로 옮겨 시골 감리교 예배당을 흑백으로 찍었다. 《논컨포미스트》(Non-Conformists) 시리즈. 여기까지는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이력서.
17.1982년, 그가 컬러로 갈아탔다. 조엘 마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와 윌리엄 에글스턴(William Eggleston) 같은 미국 사진가들에게서 받은 자극. 당시 유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컬러는 광고와 관광 엽서의 언어였고 진지한 사진은 흑백으로 하는 거였으니, 컬러로 간다는 건 진영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18.그 배신의 첫 결과물이 《더 라스트 리조트》(The Last Resort, 1983~85)다. 리버풀 건너편의 쇠락한 해수욕장 뉴브라이턴(New Brighton)에서 노동계급 휴가객을 찍었는데, 쓰레기 옆에서 먹고 콘크리트 위에서 태닝하고 아이는 울고 아이스크림은 녹는다. 평론가 게리 배저(Gerry Badger)가 이 작업에 붙인 말은 "사진적 표현의 기본 양식에 일어난 지각변동".
마틴 파 《더 라스트 리조트》(1983~85). 뉴브라이턴, 녹는 아이스크림과 아이 (ⓒMartin Parr/Magnum Photos)
마틴 파 《더 라스트 리조트》(1983~85). 뉴브라이턴, 녹는 아이스크림과 아이 (ⓒMartin Parr/Magnum Photos)
19.이후 작업은 카메라를 계속 위로 올렸다. 《코스트 오브 리빙》(The Cost of Living, 1987~89)은 대처 시대에 풍요로워진 중산층을, 《스몰 월드》(Small World, 1987~94)는 전 세계 단체관광을 찍었다. 《커먼 센스》(Common Sense, 1995~99)는 전 지구적 소비를 찍었는데, 발표 방식이 더 재밌다. 17개국 41곳에서 동시 개막.
마틴 파 《커먼 센스》(1995~99). 매크로로 바짝 붙어 전 지구적 소비를 표본으로 만들었다 (ⓒMartin Parr/Magnum Photos)
마틴 파 《커먼 센스》(1995~99). 매크로로 바짝 붙어 전 지구적 소비를 표본으로 만들었다 (ⓒMartin Parr/Magnum Photos)
20.그리고 매그넘. 1988년 준회원, 1994년 정회원이 되는데 표 차가 단 1표였다. 베트남전 사진집 《베트남 주식회사》(Vietnam Inc.)로 이름난 필립 존스 그리피스(Philip Jones Griffiths)가 그의 입회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전쟁과 정의를 찍는 조직에 해변에서 감자튀김 찍는 사람을 왜 들이냐는 논리.
21.그 1표 차로 겨우 입장한 이단자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그넘 회장을 지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도사진 조합이 자기들이 거부할 뻔한 사람에게 조직을 통째로 맡긴 것. 전쟁만 심각한 게 아니라 우리가 휴가 보내는 방식도 심각하다는 쪽으로, 진지함의 정의가 옮겨 갔다.
22.그의 유산은 사진만이 아니다. 사진책을 1,000권 넘게 모은 수집가였고, 게리 배저와 함께 《포토북: 하나의 역사》(The Photobook: A History)를 썼다. 책만 모은 게 아니라 1950~70년대 존 하인드(John Hinde)의 촌스러운 영국 관광엽서, 벽지,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손목시계, 공중전화 부스에 붙은 카드까지 모았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들. 대중 취향의 고고학자. 반전은 남이 버린 걸 모으던 그 작업이 이제 자산이 됐다는 데 있는데, 《더 라스트 리조트》 초판 사진책은 지금 수백 파운드에 거래되고 매그넘을 통한 오리지널 프린트는 점당 수천 파운드대(추정)에 팔린다. 2014년 세운 마틴 파 재단(2017년 브리스톨 개관)이 이 아카이브를 지키고, 이번 전시에 사진책 90권이 함께 걸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책은 곁다리가 아니라 본진.
마틴 파 재단 아카이브(브리스톨). 흰 장갑을 끼고 서랍장에서 프린트를 꺼내는 중, 사진책 1,000여 권과 관광엽서·벽지도 이 안에 있다 (ⓒMartin Parr Foundation)
마틴 파 재단 아카이브(브리스톨). 흰 장갑을 끼고 서랍장에서 프린트를 꺼내는 중, 사진책 1,000여 권과 관광엽서·벽지도 이 안에 있다 (ⓒMartin Parr Foundation)
23.그를 성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2020년, 그는 잔 부투리니(Gian Butturini)의 사진집 《런던》(London) 2018년 재발간에 관여한 일로 논란에 휘말렸다. 특정 사진 배치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그는 브리스톨 사진축제(Bristol Photo Festival)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남의 취향을 평생 관찰한 사람이 끝내 못 본 것 하나. 자기 시선의 사각지대.
24.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구조. 공짜에 예약도 없다. 마틴 파는 평생 사진을 미술관 밖으로 꺼내려던 사람이라, 값싼 사진책과 엽서와 티타월에 자기 사진을 인쇄해 팔았다. 그런 사람의 회고전을 가격 0원, 마찰 0으로 여는 건 예산 문제가 아니라 원작자를 읽어낸 결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이라 운영은 서울시 예산으로 굴러가고, 이런 대규모 회고전 한 건의 기획·운영·수송비는 통상 수억 원대(추정). 그 비용을 관람료가 아니라 세금으로 받는 게 공공미술관의 셈법. 대가는 창동이라는 위치다. 도심 미술관 벨트에서 멀어, 이 전시는 돈이 아니라 거리로 값을 받는다.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 전경. 전관에 사진 500여 점과 사진책 90권 (ⓒ서울문화투데이)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 전경. 전관에 사진 500여 점과 사진책 90권 (ⓒ서울문화투데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10월 18일까지 전관에 마틴 파의 사진 500여 점과 사진책 90권을 걸었고, 1990년대 말 남북한 촬영분도 그 안에 있다. 남는 숫자는 관람료 0원. 대신 창동이라는 거리를 값으로 받는다. 그의 화법을 가져오려면 순서에서 걸린다. 그는 피사체를 섭외하지도 연출하지도 않고 렌즈에 도넛 조명 하나를 끼웠을 뿐인데 같은 사람이 표본이 됐고, 매출이 안 나올 때 메뉴와 가구를 갈아엎기 전에 색온도와 스팟 각도부터 만져보는 순서를 지키는 곳은 드물다. 입구에는 웃음을 놓고 무게는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 남들이 쓰레기라 부르던 엽서와 벽지를 안 버려 아카이브가 됐다는 것도 결국 같은 얘기. 싼 변수를 다 써본 뒤에 비싼 걸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