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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1988). TV 모니터 1,003대를 쌓아 올린 대표 비디오아트 (ⓒWikimedia Commons)
백남준 <다다익선>(1988). TV 모니터 1,003대를 쌓아 올린 대표 비디오아트 (ⓒWikimedia Commons)
데일리 컬처

죽은 지 20년, 그는 아직 방송 중이다 (백남준의 행성)

2026.07.20

지난주 목요일, 용인의 한 미술관이 전시를 열었다. 그런데 전시 기간이 이상하다. 214일. 7개월짜리 축제를 '제1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입장료는 0원이다. 서거 20주기를 맞은 작가가 40년 전에 이미 같은 질문을 던져 놓았다. 사람을 오게 할 것인가, 아니면 보낼 것인가.

1.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이 7월 16일 목요일 개막했다. 폐막은 2027년 2월 14일. 전시 기간이 214일이다. 개막주간만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를 따로 잡았고, 주무대는 백남준아트센터(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인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NJP 라운지(PSK홀딩스 판교캠퍼스), 한국영상자료원, 이화여자대학교까지 관외 공간을 묶었다. 한 건물에서 하는 전시가 아니다.
2.전시는 두 개다. 《별, 괘卦》가 개막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달들》이 10월 4일까지. 제1·2전시실을 통째로 쓰고, 동시대 작가들의 커미션 신작이 들어간다. 주최는 경기문화재단, 주관은 백남준아트센터. 여기에 한국과 프랑스 연주자가 사흘간 협연하는 퍼포먼스,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하는 상영회, 기술랩, 학술 프로그램이 붙는다. 퍼포먼스에는 임용주 퓨처사운드랩, 채얼(전인정), 김바울 & Kyna가 참여한다.
개막한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 전시장 (ⓒ뉴스1)
개막한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 전시장 (ⓒ뉴스1)
3.가장 놀라운 숫자는 가격. 상설 관람료가 무료다(특별기획전은 전시별로 다를 수 있다고 안내한다). 화요일부터 일요일 10시~18시, 마지막 입장 17시, 월요일 휴관. 현장에서 돈을 받는 창구는 주차장 하나뿐인데, 시간당 1,000원에 하루 최대 8,000원이고 170대를 댈 수 있다. 공립 미술관이 입장 수입을 통째로 포기할 수 있는 건 운영비의 대부분이 지자체 출연금에서 나오기 때문이고, 뮤지엄숍·카페·대관 같은 자체 수입은 한 자릿수 비중에 머무는 것이 이 업태의 통례다(추정).
4.이 기획에서 눈여겨볼 건 작품이 아니라 포맷. 미술관이 스스로를 '전시'가 아니라 '페스티벌'로 부르기 시작했다. 보통 페스티벌은 사흘에서 열흘, 짧게 터뜨리고 끝낸다. 그런데 이건 214일. 페스티벌의 언어를 쓰면서 기간은 전시만큼 길게 잡았다.
5.섞은 이유는 구조를 보면 나온다. 전시는 7개월 내내 고정돼 있고, 퍼포먼스·상영회·학술 프로그램이 그 위에 간헐적으로 얹힌다. 바닥은 상시, 이벤트는 간헐. 방문 이유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생긴다. 공간 배치도 같은 논리여서, 본관 하나로 끝냈으면 용인까지 오는 사람만 만나지만 판교 기업 캠퍼스와 서울의 영상자료원과 대학 캠퍼스로 거점을 흩뿌리면 용인에 안 오는 사람도 이 페스티벌을 만난다. 사람을 부르는 대신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그랜드 피아노를 본뜬 백남준아트센터 (ⓒFrame)
그랜드 피아노를 본뜬 백남준아트센터 (ⓒFrame)
6.건물 자체도 읽어볼 만하다. 설계는 2003년 국제공모에서 430여 명을 제치고 뽑힌 독일 건축가 키르스텐 셰멜(Kirsten Schemel)과 마리나 스탄코비치(Marina Stankovic)다. 연면적 5,600㎡, 지상 3층·지하 2층으로 2008년 4월 30일 문을 열었다. 외형은 그랜드 피아노를 본떴는데, 그 피아노는 연주하는 피아노가 아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바침」에서 백남준이 부숴버린 그 피아노다. 자기가 깨뜨린 악기를 훗날 건물의 형태로 세웠다.
백남준 <TV 정원>. 화초 사이에 모니터를 눕혀 놓은 설치 (ⓒElephant)
백남준 <TV 정원>. 화초 사이에 모니터를 눕혀 놓은 설치 (ⓒElephant)

1959 피아노를 부수다 ·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시청 2,500만

2006 1월 29일 타계 · 2008 아트센터 개관

2026 20주기 · 214일 축제

그가 떠난 뒤에도 전시 기간은 계속 갱신된다. 2027년 2월 14일까지, 입장료 0원.

7.20년 전에 죽은 작가의 이름으로 214일을 걸 수 있는 근거가 뭔가.
3년간의 복원을 거쳐 2022년 다시 켜진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3년간의 복원을 거쳐 2022년 다시 켜진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8.답은 그의 대표작 하나에 다 들어 있다. 1984년 1월 1일 낮 12시(미국 시간), 그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생중계 쇼를 열었다. 제목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뉴욕과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를 실시간으로 이어, 파리에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가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뉴욕에서 존 케이지(John Cage)가 연주했다. 시청자가 전 세계 2,500만 명. 미술관 정원의 몇 배인지 계산할 것도 없이 미술관이라는 그릇 자체를 건너뛰었다. 그날 방송은 KBS로도 생중계됐고, 그 덕에 그의 이름이 고국에 알려져 1984년 6월 22일 34년 만에 귀국했다.
1984년 1월 1일 뉴욕과 실시간으로 이어졌던 파리 퐁피두센터 (ⓒDezeen)
1984년 1월 1일 뉴욕과 실시간으로 이어졌던 파리 퐁피두센터 (ⓒDezeen)
9.제목의 뜻이 결정적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84』에서 텔레비전 같은 매체가 인간을 지배할 거라고 썼는데, 백남준은 바로 그해 첫날 그 텔레비전으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놀게 만들었다. 매체 자체로 "당신 틀렸다"고 대꾸했다. 지금 먹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가 40년 전에 실험한 구조가 지금 우리가 매일 쓰는 구조다. 스트리밍, 실시간 송출, 시차를 건너뛴 동시 접속. 플랫폼이 생기기 전에 플랫폼을 예술로 먼저 썼으니, 그의 작업은 지금 보면 낡은 게 아니라 익숙하다. 그 익숙함이 관객을 부른다.
백남준 <전자 초고속도로>의 한 구간 (ⓒSmarthistory)
백남준 <전자 초고속도로>의 한 구간 (ⓒSmarthistory)
10.작가 한 명에 도시가 매달리는 기획은 처음이 아니다. 유럽에는 바그너(Wagner)를 위한 바이로이트(Bayreuth)처럼 한 사람의 이름으로 도시의 여름을 통째로 굴리는 모델이 오래됐는데, 그건 티켓이 비싼 모델이다. 이번 기획은 반대로 공짜에 길게 가고, 국내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20주기를 맞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Zagreb, 3월 19일 개막)과 상파울루 피나코테카(Pinacoteca de São Paulo, 11월)로 국제협력전이 이어진다. 4월 23일에는 한나 히긴스(Hannah Higgins)를 포함한 국내외 연구자 10명 안팎이 모이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열렸다.
백남준 (ⓒGuggenheim Museum)
백남준 (ⓒGuggenheim Museum)
11.이 페스티벌은 1년짜리 캠페인의 한 챕터. 봄에 학술과 유럽, 여름에 본전시 개막, 가을에 남미, 겨울에 폐막. 한 해를 연간 편성표처럼 짰다. 방송국이 시즌을 짜는 방식과 같은데, 방송으로 예술을 한 사람을 기리는 방법으로는 꽤 정확하다.
12.백남준의 예언은 절반만 맞았다. 텔레비전은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연결할 거라고 그는 말했고, 앞의 절반은 맞았다. 우리는 실제로 연결됐다. 뒤의 절반이 빗나갔다. 오웰이 상상한 감시는 강제로 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온 감시는 자발적이었다. 아무도 카메라를 설치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켰고 위치를 스스로 올렸다. 백남준이 이긴 게 아니라, 오웰이 다른 방식으로 맞았다.
백남준 <TV 부처>. 불상이 자기 모습을 비추는 모니터를 마주 본다 (ⓒWikimedia Commons)
백남준 <TV 부처>. 불상이 자기 모습을 비추는 모니터를 마주 본다 (ⓒWikimedia Commons)
13.두 번째 반전은 훨씬 현실적이다. 이 페스티벌의 주무대가 서울이 아니다. 용인 상갈동이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안팎, 대중교통으로는 더 걸린다.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이 0명인 입지. 그런 자리에서 214일과 0원을 고른 건 계산. 유동인구가 없는 곳은 충동 방문을 팔 수 없고, 팔 수 있는 건 작정하고 오는 방문뿐이다. 그래서 전시 기간을 길게 늘려 "언제든 갈 수 있다"를 만들고, 가격을 0으로 내려 "가봤다 아니면 말고"의 문턱을 없앴다. 입지가 나쁠수록 전시 기간은 길어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14.이 기획의 진짜 상품은 전시가 아니라 '가야 할 이유의 개수'. 전시 하나로는 한 번이지만, 퍼포먼스·상영회·학술·관외 거점을 얹으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온다. 물건을 여러 개 파는 대신 같은 물건에 방문 사유를 여러 개 붙였다.
1964년에 만든 백남준 <로봇 K-456> (ⓒElephant)
1964년에 만든 백남준 <로봇 K-456> (ⓒElephant)
15.이 계산은 옮길 수 있다. 이면도로·외곽·지방 입지에서 가장 흔한 실수가 도심의 문법을 그대로 쓰는 것이고, 2~4주만 짧게 열고 비싸게 받고 홍보로 밀어붙인다. 그런 자리에는 충동 방문이라는 상품이 애초에 없다. 팔 수 있는 건 '작정하고 오는 방문'뿐이고, 그건 날짜를 바꿀 수 있는 여지와 실패해도 아깝지 않은 가격을 요구한다. 전시 기간은 최소 3개월, 가능하면 반년으로 길게 깔고 진입 가격은 0에 가깝게 내린 뒤 돈은 안에서, 굿즈·음료·유료 프로그램에서 받는 구조가 맞다. 목 좋은 도심이면 거꾸로 짧고 비싸게 가는 게 맞다. 전시 기간과 가격을 정하는 건 컨셉이 아니라 입지.
16.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은 2027년 2월 14일까지 214일간 이어지고, 상설 관람은 0원이다. 바닥을 7개월 고정으로 깔고 그 위에 퍼포먼스·상영회·강연을 갈아 끼운 덕에 공사비 0원으로 방문 사유가 대여섯 개가 됐고, 본관 밖 세 곳에는 축소판을 내보내 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 자리로 프로그램을 먼저 보냈다. 국내에서 걸리는 건 바닥이 아니라 위층이다. 상설 구성은 손대지 않아도 되지만, 두세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월 한두 번씩 7개월치 캘린더에 박아 넣는 일은 공사가 아니라 섭외의 문제이고, 재방문은 공간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그날 거기서만 벌어지는 일이 있어서 생긴다. 40년 전 위성 생중계와 같은 논리. 관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먼저 나가는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