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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원화전으로 문을 열다 · 개관 라인업 중 하나인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그림책 원화를 걸어 다니는 방으로 늘렸다. ⓒ그라운드시소·타임티켓
두 원화전으로 문을 열다개관 라인업 중 하나인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그림책 원화를 걸어 다니는 방으로 늘렸다. ⓒ그라운드시소·타임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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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짜리 전시 회사가 아파트 상가에 세 들었다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2026.07.27

그라운드시소가 다섯 번째 지점을 열었다. 자리가 뜻밖이다. 미술관 거리도, 힙한 골목도 아닌 구의역 옆 재개발 아파트 단지의 백화점 2층. 연 100만 명이 표를 끊고 사진을 찍으러 드나드는 이 전시 회사는 지난해 1,000억 원 몸값으로 110억을 투자받았다. 그런 회사가 신축 복합단지의 문화 간판으로 걸어 들어왔다. 개관은 7월 17일, 두 개의 원화전이 나란히 걸렸다.

1.그라운드시소 이스트. 광진구 자양동 이스트폴 안, NC백화점 2층에 문을 열었다. 개관전은 두 그림책 작가의 원화전이다.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과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둘 다 7월 17일부터 1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 입장 마감은 6시.
2.이스트폴이라는 이름부터 이 이야기의 절반이다. 자양1구역을 갈아엎은 도시정비형 재개발 단지고, 롯데캐슬 이스트폴 아파트 1,063세대에 오피스동이 하나 붙는다. 그 오피스에는 쿠팡 본사가, 상업동에는 NC백화점이 들어왔다. 설계는 해안건축, 한강을 남쪽에 두고 구의역에서 걸어 닿는다. 전시장이 앉은 곳은 그 상업동의 문화 앵커 자리.
전시장이 들어온 단지 · 자양1구역 재개발로 지은 롯데캐슬 이스트폴. 아파트 1,063세대에 오피스와 백화점이 붙은 복합단지다. ⓒ매일경제
전시장이 들어온 단지자양1구역 재개발로 지은 롯데캐슬 이스트폴. 아파트 1,063세대에 오피스와 백화점이 붙은 복합단지다. ⓒ매일경제
3.원화전이라는 포맷을 뜯어보면 이 회사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림책 원화는 종이 한 장이다. 크게 봐야 전지 크기, 액자에 걸면 스무 점이라도 20분이면 다 본다. 그라운드시소는 그 스무 장을 방 여러 개로 늘린다. 관객은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 안을 걷는다.
4.두 전시의 결이 갈린다. 조은의 '오늘의 정원'은 도시에 살며 쌓인 기억과 감정이 정원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 연작이고, 이기훈의 '내일의 낙원'은 노아의 방주 설화에서 재난 이후의 희망을 길어 올린다. 오늘의 정원과 내일의 낙원. 개관 라인업의 두 제목을 붙여 읽으면 그대로 한 문장이 된다.
그림 안을 걷는다 · '오늘의 정원'의 연작 이미지. 종이 위 원화를 방과 통로로 펼쳐 관객이 통과하게 만든다. ⓒ그라운드시소
그림 안을 걷는다'오늘의 정원'의 연작 이미지. 종이 위 원화를 방과 통로로 펼쳐 관객이 통과하게 만든다. ⓒ그라운드시소
5.이 방들을 짓는 회사가 미디어앤아트다. 2014년에 세워져 지금은 애니플러스의 자회사인데, 자체 화가도 소유한 IP도 없다. 남의 그림, 남의 캐릭터, 남의 사진을 빌려 와 공간으로 짓는다. 국내 첫 반 고흐(Van Gogh) 미디어아트를 시작으로 앨리스, 유미의 세포들, 요시고(Yosigo) 사진전까지 30여 차례. 붓을 든 적은 없지만 전시는 누구보다 많이 지었다.
남의 IP로 짓는다 · 2021년 흥행한 '요시고 사진전'. 자체 IP 없이 남의 작가·사진을 빌려 공간 콘텐츠로 만든다. ⓒ달담
남의 IP로 짓는다2021년 흥행한 '요시고 사진전'. 자체 IP 없이 남의 작가·사진을 빌려 공간 콘텐츠로 만든다. ⓒ달담
6.동선이 곧 매출 설계다. 예매로 입장하고, 방을 지나고, 정해진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에 굿즈숍으로 쏟아진다. 관람 자체가 콘텐츠고 나가는 길이 매대인 구조. 원화전은 특히 아이 손을 잡은 부모를 부른다. 티켓 한 장이 두세 명을 데려오는 장르.
개관을 채운 콘텐츠 · 이스트 개관 특별전으로 함께 건 조나단 베르탱(Jonathan Bertin) 사진전. 원화·사진·미디어아트를 돌려 가며 방을 채운다. ⓒ그라운드시소
개관을 채운 콘텐츠이스트 개관 특별전으로 함께 건 조나단 베르탱(Jonathan Bertin) 사진전. 원화·사진·미디어아트를 돌려 가며 방을 채운다. ⓒ그라운드시소
7.사진을 찍으러 표를 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시소 누적 관객은 500만을 넘겼고, 연 100만 명이 꾸준히 든다. 힙하지 않아도 통한 비결은 만만함이었다. 미술관의 문턱은 낮추고, 대신 사진이 잘 나오는 벽을 높였다. 이해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찍으러 가는 곳.
그림 한 점 없이 번 숫자 · 그라운드시소(미디어앤아트)
전시장 하나가 스타트업으로 값이 매겨진 지표 누적 관객 500만 명+ 연 방문객 약 100만 명 서울 지점 5곳 (이스트 신규) 시리즈 A (2024.7) 110억 원 투자 후 몸값 약 1,000억 원 (지분 11.11%)
지분 11.11%에 110억이면 몸값은 약 1,000억으로 역산된다. 관객·방문객 수는 운영사·언론 보도 기준이다.
8.백화점이 이 전시장을 원하는 이유는 반대편에 있다. 신축 복합단지 상업시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공실과 죽은 위층이다. 전시장은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손님을 끌고, 머무는 시간이 길고, 가족을 통째로 데려온다. 한 층의 트래픽을 혼자 만드는 세입자. 백화점이 사는 건 임대료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발걸음.
발걸음을 만드는 세입자 ·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표를 끊고 시간을 정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중앙일보
발걸음을 만드는 세입자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표를 끊고 시간을 정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중앙일보
9.원화전 티켓은 성인 기준 1만5천 원 안팎이 이 회사 전시의 통상가다(개관 요금이 확정 공개되지 않아 통상가로 추정한다). 연 100만 명에 이 단가를 곱하면 티켓 매출만 100억대가 된다. 여기에 엽서·프린트·인형으로 이어지는 굿즈가 얹힌다. 전시장 뒤 굿즈숍 객단가가 티켓값을 넘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
찍으러 가는 전시 · 몰입형·포토형 전시의 문법을 보여 주는 아르떼뮤지엄(d'strict). 사진이 곧 입소문이 되는 구조를 대중화했다. ⓒd'strict
찍으러 가는 전시몰입형·포토형 전시의 문법을 보여 주는 아르떼뮤지엄(d'strict). 사진이 곧 입소문이 되는 구조를 대중화했다. ⓒd'strict
10.그래서 지난해 여름 숫자가 나왔다. 2024년 7월, 미디어앤아트는 110억 원 규모 시리즈 A를 유치했다. 에이치비인베스트먼트와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주도했고, 이들이 가져간 지분이 11.11%. 거꾸로 계산하면 회사 몸값은 약 1,000억 원이다. 그림 한 점 소유하지 않은 전시 회사가 스타트업의 밸류로 값이 매겨졌다.
누가 무엇을 얻나 · 재개발 단지와 전시장
이스트폴 · 자양1구역 재개발 아파트 1,063세대 + 오피스 + 상업 아파트동 1,063세대 오피스동 쿠팡 본사 상업동 NC백화점 문화 앵커 = 전시장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단지가 얻는 것 집객·분양가·브랜드 전시장이 얻는 것: 신축 유동인구를 헐값에 가깝게. 서로 다른 지갑이 열린다.
앵커테넌트 임대는 감면·매출연동이 흔하다. 배치는 공개 정보에 근거한 개념도이며 실제 임대조건과 다를 수 있다.
11.부동산 쪽에서 보면 더 선명하다. 재개발 상업시설은 앵커테넌트가 절반이다. 전시장은 임대료를 다 못 내도 트래픽으로 제 몫을 한다. 감면이든 매출연동이든, 복합단지는 문화시설 하나로 분양가와 브랜드값을 사고 전시 회사는 신축의 유동인구를 헐값에 가깝게 얻는다. 한 공간에서 열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지갑.
간판이 된 전시장 · 전시장이 들어온 NC 이스트폴 상업동. 문화시설은 층 전체의 트래픽을 끄는 미끼로 쓰인다. ⓒ브런치
간판이 된 전시장전시장이 들어온 NC 이스트폴 상업동. 문화시설은 층 전체의 트래픽을 끄는 미끼로 쓰인다. ⓒ브런치
12.몰입형 전시의 역사는 짧지만 가파르다. 반 고흐 미디어아트가 문을 열었고, 아르떼뮤지엄이 규모를 키웠고, 요시고와 그림책 원화가 대중을 데려왔다. 처음 이 전시들의 자리는 '미술관 옆 카페'였다. 지금은 '백화점 안 미술관'.
다섯 곳으로 번진 포맷 · 기존 지점의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 같은 문법을 도심 곳곳으로 복제해 다섯 곳까지 늘렸다. ⓒ투데이신문
다섯 곳으로 번진 포맷기존 지점의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 같은 문법을 도심 곳곳으로 복제해 다섯 곳까지 늘렸다. ⓒ투데이신문
13.그런데 이 회사가 가진 그림은 한 점도 없다. 500만을 모은 힘도 결국 남의 IP와 작가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요시고,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그림책 작가들. 빌린 이름이 뜨면 같이 뜨지만, 라이선스료와 독점 기간에 발목이 잡힌다. 소유하지 않고 연출로만 버는 회사의 천장이 거기 있다.
빌려 온 이름 · 또 다른 개관전,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노아의 방주 설화를 재난 이후의 희망으로 옮긴 회화다. ⓒ아트램프
빌려 온 이름또 다른 개관전,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노아의 방주 설화를 재난 이후의 희망으로 옮긴 회화다. ⓒ아트램프
14.사진을 찍으러 표를 끊는 전시가 재개발 단지의 문화 간판이 됐고, 그 회사는 그림 한 점 없이 연 100만 관객과 1,000억 몸값을 손에 쥐었다. 1만5천 원짜리 티켓 한 장이 굿즈와 트래픽으로 몇 번씩 다시 팔리는 구조다. 이걸 작은 공간에서 흉내 내려면 둘을 먼저 넘어야 한다. 앵커로 들어가 임대료를 깎으려면 '내가 이 층의 발걸음을 만든다'를 숫자로 증명해야 하고, 자체 IP가 없으면 라이선스료가 마진을 먼저 먹는다. 전시의 완성도보다 그 두 장의 증명이 앞선다.
참고: 그라운드시소·미디어앤아트(전시 정보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2026.7.17-11.29, 광진구 자양동 이스트폴 NC백화점 2F, 10:00-19:00·입장마감 18:00, 개관 특별전 조나단 베르탱 사진전). 투자·규모: 플래텀·경향게임스·뉴스와이어·우먼스토리뉴스(2024년 7월 시리즈 A 110억 원, 에이치비인베스트먼트·타임폴리오자산운용 주도, 지분 11.11%, 투자 후 밸류 약 1,000억 원, 미디어앤아트 2014년 설립·애니플러스 자회사), 중앙일보(누적 관객 500만 명 이상, 연 방문객 약 100만 명). 단지: 롯데캐슬 이스트폴·해안건축·나무위키·경향신문(자양1재정비촉진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 아파트 1,063세대·6개동, 오피스동 쿠팡 본사, 상업동 NC백화점 구의점, 2025년 3월 입주). 티켓 성인 1만5천 원 안팎은 그라운드시소 원화전 통상가에 근거한 필자의 추정이며 개관 확정 요금이 아니다. 매출·객단가·임대구조에 대한 해석은 공개 정보에 근거한 필자의 분석이고 운영사의 공식 설명이 아니다. 도표는 개념도다. 사진 ⓒ그라운드시소·타임티켓·매일경제·달담·중앙일보·d'strict·브런치·투데이신문·아트램프. 운영 시간·요금·기간은 변동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