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다. 표를 사지 않고 걸어 들어간다. 그런데 이 미술관을 짓는 데 약 500억 원이 들었다고 알려진다. 더 이상한 건 돈을 쓴 방식이다. 지상에 올린 층은 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공원 땅 밑으로 내려보냈다. 3월 12일 문을 연 서울 첫 공공 뉴미디어 미술관, 서서울미술관 이야기다.
1.자리는 서울 금천구 금나래중앙공원 안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소문 본관부터 북서울·남서울·사진미술관까지 여덟 개 관으로 벌려 온 그물의 마지막 매듭. 연면적 7,186제곱미터, 약 2,173평. 설계는 폴 스미스(Paul Smith) 플래그십과 한강 보행터널을 그린 더_시스템 랩(THE_SYSTEM LAB), 김찬중이 맡았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2.위치가 먼저 말을 건다. 금천·구로·영등포로 이어지는 서남권은 1960년대 구로공단 이래 서울의 공장 지대였고, 시립 미술관이 발을 들인 것은 여기가 처음이다. 강북 도심과 강남에 문화 인프라가 쏠리는 동안 지도에서 오래 비어 있던 자리. 서울시가 여덟 번째 관을 이쪽에 앉힌 건 전시 하나가 아니라 그 공백을 겨냥한 결정으로 보인다.

3.건물을 땅에 숨겼다. 지하 2층에 지상 1층. 전시장도 수장고도 편의시설도 대부분 공원 아래로 내려가 있고, 지상에는 낮게 누운 한 켜만 남는다. 용적률을 최대로 뽑아 하늘로 올리는 상업 개발의 문법을 정확히 뒤집은 셈. 공원을 지우지 않으려고 건물이 스스로 물러선 것이다.
묻은 건물 · 서서울미술관 단면 개념도
4.지상에 남은 한 켜는 두 겹으로 되어 있다. 위쪽 외벽은 해머드 스테인리스 스틸. 망치로 두드린 금속면이 낮의 빛을 잘게 흩어 파도처럼 울렁이고, 계절마다 다른 하늘을 되비친다. 지면에 닿는 층은 통유리 커튼월이라, 밖에서 로비와 카페와 전시로 이어지는 안쪽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벽으로 막고 입구를 하나만 뚫는 대신, 어느 방향에서 걸어와도 안이 보이게 열어 둔 얼굴.

5.뉴미디어 특화라는 간판은 흰 벽 갤러리와 전혀 다른 스펙을 요구한다. 영상과 빛을 다루려면 완전히 어두워지는 방, 넉넉한 전력, 서버와 냉방, 소리가 새지 않는 격벽이 필요하다. 그림을 거는 미술관이 벽면과 조도만 잡으면 되는 것과 견주면, 여기선 설비가 건물의 뼈대까지 파고든다. 지하로 내린 결정이 공사를 한층 까다롭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6.왜 이 방식이 사람을 움직이나. 미술관은 보통 목적지다. 마음먹고 찾아가 표를 끊고 들어서는 곳. 서서울은 그 문턱을 지웠다. 공원을 가로지르던 사람이 유리 너머 안을 흘깃 보다 그냥 걸어 들어오게 만든다. 심사평이 이 건물에 붙인 이름이 "공원 속 일상의 미술관"이었다.

7.장르 선택도 계산이다. 블루칩 회화와 고전 소장품은 이미 리움과 국립현대가 수십 년 자본으로 선점해 두었다. 뒤늦게 출발한 공공관이 같은 링에서 이기긴 어렵다. 아무도 깃발을 꽂지 않은 뉴미디어로 방향을 튼 것은, 젊은 관객과 지역 청소년을 겨냥한 자리 잡기. 소장품이 아니라 세대를 판돈으로 걸었다.

8.관람료가 0원이니 티켓 매출은 처음부터 없다. 외신이 추정한 건축비는 약 500억 원. 평으로 환산하면 평당 2,300만 원 안팎이 나온다(추정). 아파트 평당 공사비의 서너 배, 웬만한 근린생활시설과는 자릿수가 다른 값이다.
티켓 0원의 미술관 · 숫자로 본 서서울미술관
9.값이 이렇게 뛴 데는 두 가지가 겹친다. 하나는 지하. 땅을 깊게 파고 물을 막고 공기를 돌리는 지하 공사는 지상보다 배로 든다. 다른 하나는 뉴미디어. 암전과 전력과 서버와 방음 설비가 골조 값 위에 얹힌다. 건물을 숨기고 장르를 미래로 잡은 두 결정이 그대로 공사비 명세서에 찍힌 셈이다.

10.그럼 500억은 무엇으로 돌아오나. 답은 티켓이 아니라 땅이다. 문화시설 하나가 들어서면 그 일대의 유동인구가 늘고 상권이 붙고 지가와 세수가 따라 오른다. 쇠락한 항만에 미술관 하나를 앉혀 도시 전체를 되살린 스페인 빌바오(Bilbao)의 사례가 20년 넘게 교과서로 인용되는 이유다. 공공이 무료로 여는 건 손해가 아니라, 회수 창구를 입구가 아니라 동네 전체로 넓히는 판단이다.

11.다만 이 판에는 계속 나가는 돈이 숨어 있다.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은 한 번 사면 100년을 건다. 반면 뉴미디어의 소장품은 장비와 코드라, 프로젝터가 낡고 소프트웨어가 구버전이 되는 순간 감가가 시작된다. 짓는 값 못지않게 유지하는 값이 매년 드는 미술관. 무료로 접근성을 사는 대신, 그 접근성을 켜 두는 전기료를 공공이 계속 무는 구조다.

12.계보를 보면 이 건물의 성격이 더 선명해진다. 김찬중과 더_시스템 랩은 폴 스미스 플래그십처럼 곡면과 산업 소재로 도시에 눈에 띄는 오브제를 심어 온 사무소다. 2020년 국제 설계공모에서 당선됐고, 착공에서 개관까지 다시 몇 해가 걸렸다. 도시에 튀는 오브제를 만들던 손이 이번엔 건물을 안 보이게 만드는 데 쓰였다는 점이 뒤집힌 부분이다.

13.뒤집힌 자리는 두 곳이다. 첫째, 미래를 판돈으로 걸면 그 미래가 빨리 늙는다. 지금 최신인 뉴미디어 연출은 5년이면 흔해지고 10년이면 낡아 보일 위험을 안는다. 둘째, 접근성을 명분으로 세웠지만 정작 금천이라는 자리가 강북·강남의 관객을 공원까지 끌어올지는 아직 숫자로 증명되지 않았다. 문턱을 없앤 설계와 실제로 사람이 오느냐는 다른 문제다.
14.서울이 여덟 번째 시립 미술관을 공장 지대였던 서남권에 무료로 열면서, 건물을 공원 밑에 묻고 지상엔 유리 한 켜만 남겼다. 약 500억 원, 평당 2,300만 원(추정)이 든 이 공공 건축의 회수는 입장료가 아니라 동네의 지가와 발걸음에서 나온다. 같은 발상을 작은 규모로 옮기면 걸리는 건 하나. 건물을 낮춰 주변에 값을 되돌려 주는 설계일수록, 그 값이 언제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준공 시점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는 것. 눈에 보이는 건 비용이고, 회수는 몇 해 뒤 땅이 대신 증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