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Es Devlin)의 첫 한국 개인전이 8월 20일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에서 열린다. 비욘세, 유투(U2), 아델의 월드투어 무대를 짓고 두 번의 올림픽 개폐막식을 설계한 사람. 제목은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3rd Poem: Es Devlin, Come Home Again)」. 전시 기간은 이듬해 1월 17일까지, 다섯 달이다.
1.무대를 짓던 사람이 미술관으로 들어온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푸투라 서울 전관. 에스 데블린은 지난 30년간 콘서트장과 오페라 극장, 올림픽 스타디움을 무대로 삼아 온 영국 작가다. 이번 전시는 그 대표작들을 푸투라 서울의 건축과 빛, 관객 동선에 맞춰 다시 세운 자리. 8월 20일 개막, 이듬해 1월 17일 폐막.
2.비욘세, 레이디 가가, 칸예 웨스트, 더 위켄드, 켄드릭 라마, 아델, 유투. 지난 20년 팝 스타디움 투어의 무대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폐막식과 2016년 리우올림픽 개막식도 그가 설계했다.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함 하나로는 다 담기지 않아, 보통 설치미술가와 공공조각가를 함께 붙인다.

3.어떤 작품이 오는가. 세 점이 축이다. 두바이 엑스포 영국관 「시의 정자(Poem Pavilion)」, 20미터 LED 파사드에 인공지능이 지은 집단의 시가 흘렀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앞에 세운 「다시 집으로」, 세인트폴 대성당 돔을 잘라낸 형태 안에 런던의 멸종위기종 243종을 그려 넣었다. 밀라노에 세운 「빛의 도서관(Library of Light)」, 18미터짜리 회전하는 원통 서가에 책 3,200권을 꽂았다. 전부 사람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구조물이다.
4.걸어 들어가면 이렇다. 데블린의 작업은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그 안에 서는 방이다. 빛이 위에서 떨어지고, 낯선 사람들과 같은 소리를 함께 듣고, 돌아 나올 때 처음과 다른 자리에 선다. 관람이라기보다 통과에 가깝다. 이 몰입이 우연이 아니라 설계라는 게 이 작가의 값이다.

5.푸투라 서울은 2024년 9월 북촌 가회동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설계는 WGNB. 한옥 골목의 결을 따라 앉힌 건물로 제43회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다. 층고 10.8미터의 전시장을 갖췄고, 시각과 청각, 후각을 함께 쓰는 몰입형 전시를 전제로 지었다. 이번 전시는 「100편의 시(100 Poems)」라는 큐레이션 연작의 세 번째. 앞서 리픽 아나돌(Refik Anadol)과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이 다녀갔다.


6.무대는 늘 조연이었다. 조명이 스타를 비추고, 세트는 그 뒤에서 분위기를 만들었다. 데블린이 한 일은 그 뒤 배경을 앞으로 끌어낸 것이다. 스타가 사라진 무대에 관객이 직접 올라선다. 배경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게 원래 얼마나 정교하게 짜인 물건이었는지 처음 본다.
7.스펙터클이 값싸진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다. 비욘세 스타디움 투어 티켓은 수십만 원이고, 그마저 구하기 어렵다. 그 무대를 만든 언어를 전시장에서 몇 만 원에 통과할 수 있다면, 이건 스펙터클을 나눠 파는 방식이다. 공연은 두 시간, 전시는 다섯 달. 같은 손이 만든 경험을 훨씬 긴 시간, 훨씬 낮은 문턱으로 연다.

8.스타디움 투어 무대는 한 번 쓰고 부순다. 비욘세와 유투급 대형 투어의 세트 제작비는 공개되지 않지만 수백만 달러 규모로 알려진다(추정). 투어가 끝나면 그 구조물은 대부분 해체된다. 제작비가 아무리 커도 수명이 한 투어라, 회수를 떠받치는 건 공연 티켓과 스폰서.
9.전시는 셈법이 다르다. 한 번 세운 구조물을 다섯 달 세워 두고 매일 티켓을 받는다. 국내 대형 몰입형 전시의 티켓은 보통 2만원에서 3만원대(추정). 전시 기간이 길수록, 관객이 많을수록 같은 제작비가 더 오래 일한다. 무대가 1회성 비용이라면, 전시는 감가상각을 길게 끄는 자산에 가깝다.
한 번 쓰고 부수느냐, 다섯 달 세워 파느냐 · 무대와 전시의 셈법
10.푸투라 서울이 이 전시를 들이는 셈도 여기서 나온다. 개관전으로 리픽 아나돌의 대형 미디어아트를 걸고 유료 관람으로 굴렸다. 「100 Poems」라는 연작 이름 자체가 브랜딩이다. 한 번 온 관객이 다음 시(詩)를 보러 다시 온다. 미술관이라기보다 상영관에 가까운 회전율을 노린 구조.
11.몰입형 전시가 이 판을 키웠다. 사진 찍는 전시, 걸어 들어가는 전시가 지난 몇 년 미술관의 수익 모델을 바꿨다. 관객은 작품을 소장하지 않고 경험을 소비하며, 그 경험을 찍어 올린다. 올린 사진이 다음 관객을 부른다. 데블린의 대형 설치는 이 회로에 정확히 맞는 상품.
한 그릇에 시를 갈아 끼운다 · 100 Poems 연작
12.계보를 보면 이 판이 더 선명하다. 무대에서 미술관으로 건너온 사람이 그가 처음은 아니다.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연극 연출에서 설치로 넘어갔고, 다니엘 뷔렌(Daniel Buren)이 공공장소를 무대로 삼았다. 무대와 미술의 경계는 원래 무르다. 데블린은 그 경계에서 가장 큰 스케일을 다루는 사람일 뿐.

13.정작 그는 물질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무대는 투어가 끝나면 사라지고, 설치는 전시가 끝나면 해체된다. 손에 쥐는 작품이 없는데도 세계 최고 몸값을 받는다. 그가 파는 건 사물이 아니라 장면의 설계다. 남는 건 사진과 기억, 그리고 다음 의뢰.


14.한 번 쓰고 부수던 무대를, 미술관은 다섯 달 세워 두고 매일 티켓을 받는다. 비욘세와 올림픽을 짓던 손이 북촌으로 들어와, 두 시간짜리 공연을 다섯 달짜리 전시로 바꿔 놓는다. 전시 기간은 8월 20일부터 이듬해 1월 17일까지, 티켓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문의 02-3676-1000). 같은 발상을 작은 공간에 옮기면 크기가 아니라 회전에서 걸린다. 한 번 지은 경험을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오래 다시 팔 수 있게 설계했는가. 거기서 무대와 전시가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