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로축구 구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lético de Madrid)가 8월 6일부터 9일까지 성수에 '까사 알레띠 서울'(Casa Atleti Seoul)이라는 나흘짜리 팬 허브를 연다. 이강인을 파리 생제르맹(Paris Saint-Germain)에서 데려온 지 2주가 안 됐다. 클럽 박물관과 유니폼 스토어, 게임존, 치맥 코너까지 한 건물에 들어찼다. 그런데 문 앞에서 표를 팔지 않는다.
1.가게 이름부터 보자. '까사'(Casa)는 스페인어로 집이다. 4일간 성수에 아틀레티코의 집 한 채를 임시로 짓는다는 뜻. 8월 6일 문을 열어 9일까지, 성수역 일대. 유럽 리그가 한창 쉬는 여름, 유니폼을 팔러 온 게 아니라 클럽 하나를 통째로 옮겨 왔다.
2.타이밍이 우연이 아니다. 아틀레티코는 7월 25일 이강인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열흘 남짓 만에 서울에 팬 허브를 세운다. 한국 선수 한 명을 데려온 사건을, 클럽은 곧바로 한국 시장에 들어가는 문으로 바꿨다. 선수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걸린 간판.

3.안을 뜯어보면 축구장이 아니라 백화점에 가깝다. 구단 박물관에 역대 기념품을 걸고, 선수와 클럽 레전드의 밋앤그릿을 잡고, EA SPORTS FC 26 게임존을 깔았다. 한국 브랜드 Over The Pitch와 유니폼을 다시 디자인해 팔고, 미술가 최성욱이 현장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한다. 라이브 DJ가 돌고, 한쪽에는 치킨과 맥주를 내는 치맥 코너가 붙었다. 축구는 이 모든 것의 배경음악이다.


4.붉은색과 흰색. 아틀레티코의 세로 줄무늬가 벽과 굿즈와 유니폼을 한 색으로 묶는다. 팬이 이 집에 들어서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색 안에 통째로 담긴다. 밖은 성수 벽돌 골목인데, 문 하나를 넘으면 마드리드 구단의 색이 된다. 그 온도 차가 체류 시간을 만들고, 체류 시간이 지갑을 연다. 팬 액티베이션이라는 업태의 설계가 여기 있다.

5.이 나흘의 진짜 무대는 성수가 아니라 상암이다. 8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아틀레티코와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가 맞붙는다. 쿠팡플레이(Coupang Play)가 주최한 프리시즌 경기, 3년 만의 리턴 매치. 클럽의 방한은 이 한 경기를 위해 짜였고, 성수 팬 허브는 그 경기 앞뒤 나흘을 팬과 붙어 있으려는 장치.

6.그럼 왜 이게 먹히나. 유럽 빅클럽은 대부분의 아시아 팬에게 화면 속에만 있다. 경기는 새벽에 열리고, 구장은 비행기로 열 시간 거리. 평생 마드리드에 못 가 볼 팬이 훨씬 많다. 그 팬에게 클럽이 직접 걸어와 나흘짜리 집을 지어 준다. 못 가는 곳을 잠깐 이곳으로 옮겨 주는 것. 소속감이라는 감정은 그 거리감을 먹고 자란다.

7.이강인이라는 이름이 그 소속감에 지렛대를 건다. 남의 나라 클럽이던 아틀레티코가, 우리 선수가 뛰는 순간 '내 팀'의 후보가 된다. 유니폼 등판에 자기 나라 선수 이름을 박을 수 있게 되면 팬덤의 문턱이 확 낮아진다. 클럽이 성수에 세운 건 매장이 아니라 그 전환이 일어나는 자리.
8.입장료를 받지 않는 게 핵심이다. 문을 활짝 열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안으로 들인 뒤, 그 안에서 판다. 팬 액티베이션은 입장 수입으로 버는 모델이 아니다. 굿즈와 멤버십, 그리고 방문자 명단으로 회수한다. 공짜 문은 비용이 아니라 미끼다.
입장료 0원 · 그럼 어디서 회수하나
9.가장 잘 팔리는 건 유니폼. 유럽 빅클럽 정품 홈 유니폼은 보통 15만 원 안팎, 등판에 선수 이름과 번호를 새기면 3만 원가량이 더 붙는다(추정). 이강인 영입 발표 직후 그의 아틀레티코 유니폼 판매가 뛰었다는 보도가 이미 나왔다. 성수의 유니폼 스토어는 그 수요가 실물로 떨어지는 계산대. 등판에 새길 이름이 생긴 순간, 유니폼은 관전 도구에서 소장품으로 바뀐다.

10.유니폼이 일회성이라면, 멤버십은 반복. 클럽은 이 자리를 빌려 국제 유료 회원제 '레드 앤 화이트'(Red & White) 가입을 민다. 회원에게는 우선 예약과 선수 등장, 회원 전용 행사 같은 걸 준다. 한 번 팔고 끝나는 유니폼과 달리, 멤버십은 해마다 회비가 도는 구독이다. 실제로 클럽은 한국에 첫 공식 아시아 팬클럽을 회원 45명으로 띄웠다고 밝혔다. 나흘 팝업의 숨은 목표가 이 씨앗을 심는 일이다.
11.맨시티전 티켓도 같은 지갑에서 나온다. 이 경기 좌석은 과거 기준 3만 원대에서 시작해 프리미엄석은 30만 원을 넘겼다. 나흘 팬 허브와 한 경기의 티켓, 유니폼, 멤버십이 같은 방한 기간에 겹쳐 붙는다. 팬 한 명이 이 나흘 안에 지출할 수 있는 항목을 클럽이 촘촘하게 깔아 뒀다.
한 팬이 나흘 안에 지출하는 항목 · 방한 기간 겹침
12.이 방식의 계보는 오래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는 20년 넘게 여름마다 아시아로 프리시즌 투어를 돌며 유니폼과 팬을 팔아 왔다. 축구 클럽은 스포츠 조직이면서 동시에 미디어이고 리테일 회사. 경기로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로 팬을 모으고, 팬에게 상품을 판다. 아틀레티코는 이 시장의 후발 주자에 가깝다.

13.후발 주자가 지름길을 찾았다. 남들이 20년에 걸쳐 쌓은 아시아 팬층을, 아틀레티코는 로컬 스타 한 명으로 단번에 당겨 오려 한다. 그리고 이 나흘에서 클럽이 정말 챙겨 가는 건 유니폼 매출이 아니라 문을 들어선 사람들의 명단이다. 오늘 공짜로 들어온 팬이 내일의 멤버십 회원이고 유니폼 구매자. 팝업은 매장이 아니라 명단 수집기다.

14.선수 한 명을 사고 열흘 만에, 클럽이 성수에 나흘짜리 집을 지었다. 입장료 0원, 대신 유니폼과 연회비 도는 멤버십과 방문자 명단으로 회수한다. 브랜드가 임시 공간을 세울 때 걸리는 건 평수나 인테리어가 아니라 목적의 순서다. 이 문을 매출을 찍는 계산대로 볼지, 명단을 채우는 깔때기로 볼지. 앞을 고르면 나흘 매출로 끝나고, 뒤를 고르면 나흘 뒤에도 팬이 남는다. 공짜로 문을 여는 집은 보통 뒤를 고른 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