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흘간 코엑스 C홀에서 '2026 서울팝콘 by CCXP'가 열릴 예정이었다. 3월에 체결한 제휴, 세계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팝컬처 컨벤션의 이름, 여름 성수기 주말 사흘. 다 갖춰 놓고 주최 측은 7월 9일 행사를 통째로 1년 미뤘다. 이름은 CCXP 코리아로 바뀌고 장소는 강남에서 일산으로 옮긴다. 브랜드를 사 오는 일과 그 브랜드를 담을 그릇을 갖추는 일은 별개였다.
1.공식 안내에 남은 일정은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코엑스 C홀이었다. 코엑스 전시 일정표에는 아직 '2026 서울 팝 컬쳐 컨벤션'이 걸려 있다. 7월 9일 주최 측은 개최를 2027년으로 미룬다고 알렸고, 사유로 든 것은 내부 논의와 글로벌 파트너십 준비.
2.바뀐 것이 날짜만은 아니다. 행사명은 CCXP 코리아, 개최지는 코엑스에서 일산 킨텍스. 조직위는 개최 환경과 공간 확장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고, 2026년은 통합 준비 기간으로 쓴다고 밝혔다. 강남 한복판의 전시장을 버리고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결정에는 대체로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자리가 모자란 것.
3.CCXP는 2014년 브라질에서 시작했다. 대중문화 웹진 Omelete와 만화 에이전시 Chiaroscuro Studios, 완구사 Piziitoys가 함께 만들었고 첫 회 관람객이 10만 명. 2016년 19만 6,000명, 2018년 26만 2,000명, 2019년 28만 명. 5년 만에 규모가 세 배 가까이 불었다.

4.관람객 수만 놓으면 샌디에이고 코믹콘을 넘어선다. 샌디에이고는 컨벤션센터 수용 한계 탓에 13만 명 선에서 20년 가까이 묶여 있고, 브라질은 대신 신축 전시장으로 옮겨 계속 부풀렸다. 마블과 워너브라더스, 넷플릭스가 신작 영상을 여기서 처음 트는 것도 그래서다. 관객 수가 곧 발표 무대의 값이니까.
한 해 관람객, 세 행사 비교
5.티켓은 계단으로 쪼개 판다. 가장 싼 표가 200헤알, 가장 비싼 표가 3,300헤알. 1헤알을 250원으로 잡으면 5만 원에서 82만 원까지다. 며칠권이냐 입장 순서가 앞이냐 배우와 사진을 찍느냐로 등급이 갈리고, 비싼 표를 산 사람이 먼저 들어가 굿즈 한정판을 먼저 집는다. 팬덤 행사의 가격표는 좌석이 아니라 순서를 파는 표다.

6.한국 쪽 뿌리는 코믹콘 서울. 2022년 팝콘으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사는 엑스포럼이다. 2022년에는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다친 관람객이 나왔고, 2023년과 2024년은 규모가 크지 않았다. 2025년에는 처음으로 9월로 옮겨 코엑스 A홀에서 사흘을 열었는데 같은 주말에 코믹월드가 겹쳤다.

7.2025년 서울팝콘이 내건 목표는 참관객 4만 8,000명에 바이어 1,200명, 상담 1,000건. 관람객과 바이어를 한 행사에 함께 세운 구성인데, 국내 전시 주최사가 대부분 이 구조를 쓴다. 표를 파는 쪽만으로는 판이 안 굴러가기 때문.
8.3월에 엑스포럼 신현대 대표와 CCXP 피에르 만토바니(Pierre Mantovani) 대표가 제휴를 맺었다. 기술과 콘텐츠,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K팝과 웹툰, 드라마를 할리우드 스튜디오 네트워크에 붙여 아시아 최초의 글로벌 팝컬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내용. 그 발표에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코엑스라는 일정이 함께 실렸다.

9.넉 달 뒤 그 일정이 지워졌다. 코엑스 A홀의 바닥은 10,368㎡이고 부스로 환산하면 520개가 상한이다. 상파울루의 행사는 이 열 배 가까운 바닥에 3만 명 안팎을 동시에 세워 놓고 굴러간다. 같은 이름을 붙여도 같은 물건이 되지 않는다.
전시 바닥 면적
10.킨텍스의 실내 전시면적은 108,000㎡, 국내에서 가장 넓고 아시아에서 네 번째다. 다만 삼성역에서 걸어 들어가던 행사가 3호선 끝자락으로 간다. 관람객 동선이 길어지는 만큼 하루짜리 방문이 줄고 숙박을 낀 방문이 늘어나는데, 이 교환을 감당하려면 프로그램이 하루로 다 못 볼 만큼 두꺼워야 한다.

11.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면 왜 그릇부터 바꿨는지가 선명해진다. 컨벤션 주최사의 매출은 부스 임대료와 입장권, 협찬 세 갈래인데 가장 크고 가장 먼저 들어오는 쪽은 부스다. 국내 전시에서 3m×3m 한 부스가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선이니, A홀을 꽉 채운 520부스로 잡아도 13억 원 안팎이 상한이라는 계산이 나온다(필자 추정).
12.입장권 쪽도 비슷하다. 서울팝콘 1일권은 28,000원이었고 4만 8,000명이 전부 정가로 샀다고 쳐도 13억 원대. 초대권과 얼리버드 할인이 섞이니 실수령은 8억 안팎으로 내려가고, 부스와 합쳐 20억 원 남짓이 이 행사의 몸집이었다. 브라질 쪽은 티켓 평균 단가를 가장 싼 200헤알로만 눌러 잡아도 28만 명이면 5,600만 헤알, 140억 원이 나온다.
13.2023년 CCXP가 상파울루에 남긴 경제 효과는 9억 헤알로 집계됐다. 관람객이 직접 쓴 돈이 5억 4,730만, 나머지가 간접 효과. 우리 돈 2,250억 원 규모의 사흘이라 도시가 유치 경쟁을 벌인다. 이 규모에 도달한 컨벤션은 티켓 장사가 아니라 도시 사업이 된다.

14.이 브랜드가 해외로 나간 기록은 둘. 2019년 6월 쾰른(Köln)에서 연 CCXP Cologne은 4만 명을 넘겼지만 이듬해부터 코로나로 끊겼고, 2024년 5월에는 멕시코시티에서 CCXP MX가 처음 열렸다. 브라질 본진의 28만과 쾰른의 4만 사이에 놓인 간격이 이 브랜드의 실제 이식 성적이다.

15.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서브컬처 행사 시장은 이미 코믹월드와 AGF가 나눠 쥐고 있고, 2025년에는 날짜가 겹쳐 관객이 갈렸다. 1일권 28,000원이 비싸다는 말도 계속 나왔는데, 참가 창작자의 부스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3만 원에 가까운 입장료는 굿즈 한두 개 값이니까.


16.오늘 코엑스 C홀에서 사흘간 열릴 예정이던 행사는 열리지 않고, 같은 이름은 2027년 킨텍스에서 108,000㎡짜리 바닥을 깔고 다시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팝컬처 컨벤션의 이름을 빌려 오는 데는 도장 하나면 됐지만, 그 이름이 부르는 관객을 받아 낼 바닥과 스튜디오 라인업을 갖추는 데는 1년이 더 필요했다. 국내에서 이런 판을 벌일 때 먼저 걸리는 건 대관 계약서다. 큰 전시장 자리는 1년도 더 앞서 잡아야 하고 계약금은 그때 나간다. 프로그램이 덜 여물었다는 이유로 날짜를 미루면 그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1년을 쉬기로 한 결정에는 이미 지불된 값이 붙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