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종로 한복판의 잔디밭에 조각이 선다. 열린송현 녹지광장이 대표 장소이고 뚝섬한강공원과 서울숲, 서울어린이대공원, 풍납토성까지 다섯 곳. 표는 팔지 않는다. 이 땅에는 원래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학교가 가까워 못 지었고 13년을 비워 두다 팔렸다. 조각은 미술에서 가장 안 팔리는 장르인데 한국에는 그 조각을 사 주는 법이 따로 있다.
1.제3회 서울조각페스티벌이 8월 29일 문을 연다. 대표 장소는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 축제 프로그램은 9월 4일까지 돌고, 야외에 세운 작품은 그 뒤로도 석 달을 더 서 있는다. 전체 92점, 관람료는 없다.

2.열린송현은 경복궁 동쪽 담 너머에 있다. 안국역에서 걸어 몇 분 거리이고 넓이는 3만 7,141㎡. 지하철역과 궁 사이에 이만한 빈 땅이 서울 어디에 또 있을까. 오래 닫혀 있었기에 남은 자리다.

3.전시는 다섯 곳으로 흩어진다. 열린송현에 서울조각상 입선작과 아트디렉터 초청작이 서고 뚝섬한강공원에는 조각마을이 들어서며, 서울숲과 서울어린이대공원, 풍납토성 동성벽 일대에도 작품이 나가 있다. 철수 날짜는 곳마다 제각각.
다섯 곳의 회기가 서로 다르다
4.운영 시간이 눈에 걸린다. 평일은 오후 5시에 열어 9시에 닫고 주말은 앞을 당겨 시작한다. 낮에는 아예 열지 않는다. 8월 말 잔디광장의 한낮에는 그늘이 없고, 여름 야외 행사가 무너지는 자리는 거의 언제나 그늘.

5.서울조각상에는 111건이 들어왔고 15명이 입선했다. 입선 작가는 상금 대신 작품 제작비를 각 2,500만 원씩 받는다. 회화 공모전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림은 이미 그려 놓은 것을 내지만, 조각은 돈이 먼저 나가야 물건이 생기니까.

6.올해부터 대상 수상작은 서울시가 사들인다. 시민 투표에서 1위를 한 작품에는 시민상을 준다고 한다. 상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 준다는 것, 조각가에게는 이게 상패보다 무겁다.

7.뚝섬 쪽 이름은 '바람이 깃든 마을'. 둔치에 작품을 흩어 놓고 마을처럼 걸어 지나가게 하는 구성. 강바람 때문에 여름 저녁이면 사람이 알아서 모이는 자리이고, 주최 측은 그 사람들 사이에 조각을 세운다.

8.조각이 미술관 안에서 표를 못 파는 데는 물리적인 이유가 있다. 회화는 벽만 있으면 걸리지만, 조각에는 딛고 설 바닥과 머리 위 층고가 함께 있어야 하고 그 바닥이 무게를 받쳐야 한다. 한 점이 차지하는 면적이 그림의 몇 배이고, 관람객이 둘레를 돌아야 하니 동선까지 잡아먹는다. 그림 100점이 걸릴 벽 앞에 조각은 20점이나 놓일까. 전시장 임대료는 같은데 한 점당 원가가 다섯 배로 뛴다.
9.그래서 조각은 표를 파는 대신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로 나간다. 공원과 광장은 임대료가 0원이고, 천장이 없으니 층고 제한도 없고, 땅바닥이라 무게를 걱정할 일도 없다. 저녁에만 여는 것도 같은 계산. 새 관객을 만드는 대신 퇴근길과 저녁 산책이라는 이미 있는 흐름 위에 작품을 얹는다.

10.그러면 돈은 어디서 나오나. 이 축제에서 관객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입선작 제작비만 3억 7,500만 원이 나가고 설치와 운영, 철거가 그 위에 붙는다. 전부 서울시 예산.
11.조각가가 먹고사는 진짜 시장은 따로 있다. 연면적 1만㎡ 이상인 건물을 새로 짓거나 늘리면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에 써야 한다. 문화예술진흥법이 정한 의무이고 공동주택과 업무시설, 판매시설, 숙박시설이 모두 대상. 건물주가 원해서 사는 게 아니다. 준공 절차에 걸려 있어서 산다.
12.금액이 작지 않다. 국토교통부 고시 표준건축비가 ㎡당 238만 원이고 여기에 요율 0.7%를 곱한다. 연면적 1만㎡짜리 건물 한 채가 미술작품에 쓰는 돈이 1억 6,660만 원.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는 중형 오피스 한 동이나 호텔 한 채다.
연면적이 정하는 미술작품 금액
13.건축주에게는 빠져나갈 길이 하나 있다. 작품을 세우는 대신 그 금액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내면 의무가 끝난다. 앞의 건물이라면 1억 1,662만 원, 3할 가까이 싸다. 그런데도 그 길을 안 가는 쪽이 많다. 기금에 낸 돈은 영수증으로만 남지만 로비에 세운 물건은 준공 사진과 임대 안내서에 계속 등장하니까. 조각이 여기서 팔리는 이유는 감상이 아니라 자산.

14.대한항공이 삼성생명에서 이 땅을 산 것이 2008년. 호텔을 지으려 했는데 학교보건법에 막혔다. 담장 둘레에 학교가 있었고 반경 200m 안에서는 관광호텔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그 뒤로 13년, 서울 한복판의 이 땅은 담장만 두른 채 비어 있었다.
15.매각가는 5,578억 원. LH가 사들여 서울시의 옛 서울의료원 남측 땅과 맞바꿨고, 서울시는 담장을 헐고 잔디를 깔았다. 호텔을 막았던 풍문여고는 그 사이 강남으로 옮겼고, 그 학교 건물이 지금의 서울공예박물관. 지금 이 잔디밭 한쪽에는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자리가 잡혀 있다. 개관 목표는 2027년.

16.8월 29일부터 석 달, 서울시가 공원과 광장 다섯 곳에 조각 92점을 세워 두고 표를 팔지 않는다. 작가에게 가는 돈은 상금이 아니라 제작비이고, 그 바깥에는 연면적 1만㎡ 넘는 건물이 법에 따라 억 단위로 작품을 사야 하는 시장이 따로 버티고 있다. 국내에서 야외 전시를 하면 돈이 새는 자리는 세울 때가 아니라 내릴 때다. 기초를 묻어 세운 것은 다시 걷어내야 하고 공원 부지에는 원상복구가 조건으로 붙는다. 세우는 견적서에 철거와 복구가 빠져 있으면 그 행사는 마지막 주에 적자가 난다. 이 잔디밭도 언제까지나 잔디밭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