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동안만 열리는 통로게임스컴 2024 현장. 천장 트러스가 드러난 통로 양옆으로 부스가 섰다. ⓒSergiy Galyonki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데일리 컬처
내려받아 파는 물건을 보러 23만㎡가 동났다 (게임스컴 2026)
2026.08.28
8월 26일 독일 쾰른에서 게임 전시회가 문을 열었다. 전시면적 23만 3,000㎡가 사상 처음으로 빈칸 없이 다 팔렸다. 게임은 매장도 진열대도 없이 내려받아 파는 상품인데, 그걸 직접 만져 보겠다고 닷새 동안 35만 명이 표를 끊고 걸어 들어간다. 매장이 필요 없어진 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을 짓고 있다.
1.회기는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 첫날은 업계와 취재진만 들어가고 일반 공개는 27일부터. 장소는 쾰른(Köln)의 전시장 쾰른메세(Koelnmesse)이고, 올해 이곳 전시면적 23만 3,000㎡가 처음으로 전부 팔렸다.
2.부스를 낸 회사는 1,600곳이 넘고 그중 70%가 독일 밖에서 왔다. 지난해 참가사는 1,568곳. 숫자만 보면 큰 변화가 없는데 자리가 동났다는 사실이 다르다. 남는 칸이 없으면 파는 쪽이 값을 정한다.
3.입장권은 평일 31.50유로, 토요일이 41유로. 현장 매표소는 두지 않고 온라인 사전 판매만 받는다. 지난해 방문객은 35만 7,000명이었고 올해도 그 언저리를 본다고 주최 측은 밝힌다.
4.행사가 아닐 때 이 건물은 빈 상자다. 홀에는 고정된 상점도 좌석도 없고 바닥, 천장 트러스, 전기와 통신 인입만 남는다. 채우는 일은 빌린 쪽이 한다. 전시장 사업을 임대업이라 부르는 이유.
사람이 없는 날의 입구쾰른메세 동쪽 입구. 유리 파사드 아래 도로가 비어 있다. ⓒRaimond Spekking,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5.값은 바닥 면적으로 매긴다. 엔터테인먼트 구역의 열식 부스가 ㎡당 152.50유로에서 182.50유로 사이인데, 가르는 것은 위치가 아니라 신청 시점이다. 겨울에 잡으면 싸고 여름에 잡으면 비싸다. 이 값에 들어 있는 건 바닥뿐. 벽도 전기도 카펫도 따로 산다.
언제 신청했느냐가 ㎡당 값을 가른다
같은 바닥인데 다섯 달 늦게 잡으면 20% 비싸진다.
6.그 바닥 위에 닷새 쓰고 부술 건물이 선다. 2층 구조를 올리고 사이니지를 두르고 대기 줄을 폴로 나눈 대형 부스라면 임대료는 총비용의 일부일 뿐이다. 설계와 시공, 운반, 인력, 철거가 그 위에 붙는다. 독일 매체가 정리한 참가 비용은 무료에서 50만 유로까지.
닷새 쓰고 부수는 건축2017년 게임스컴의 Star Citizen 부스. 위쪽에 매단 화면 큐브와 앞쪽 대기 줄 구획이 보인다. ⓒQSO4YOU.com [DE],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7.안으로 들어가면 눈에 들어오는 건 화면이 아니라 자리 수다. 원형 카운터 하나에 모니터가 네 대, 헤드셋과 컨트롤러가 그만큼 놓인다. 천장에는 멀리서도 부스를 알아볼 조형물을 매단다. 한 사람이 한 자리를 쥐는 시간은 보통 10분에서 15분. 부스가 세는 숫자는 그날의 매출이 아니라 몇 명이 손을 대 봤는가다.
체험대의 밀도inZOI 부스. 천장에 매단 고양이 조형 아래로 체험 자리가 줄지어 있다. ⓒDulamas, CC0, Wikimedia Commons한 자리에 모니터 넉 대2024년 게임스컴의 Towerborne 부스. 풍차 조형 아래 원형 체험대를 뒀다. ⓒSergiy Galyonki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8.게임은 파는 데 매장이 필요 없는 상품이다. 스팀(Steam)에는 해마다 1만 개가 넘는 게임이 올라오고 내려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 그런데 왜 다들 쾰른까지 가서 바닥을 사는가. 이 산업의 병목은 유통이 아니라 발견이다. 만든 것을 알리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다.
9.줄은 그래서 광고가 아니라 신호다. 어느 부스 앞이 길고 어느 쪽이 비었는지가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고, 그 장면이 다시 영상으로 퍼진다. 개막 방송은 지난해 7,200만 회 재생됐다. 현장 35만 명보다 훨씬 큰 숫자인데, 그 방송을 만드는 재료가 바로 현장이다.
화면으로는 못 파는 것2024년 게임스컴에서 VR 헤드셋을 쓰고 탈것 기구에 오른 관람객. ⓒSergiy Galyonki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10.올해 인디 게임사는 420곳을 넘겼고 지난해보다 16% 늘었다. 대형사와 같은 지붕 아래 부스를 세우는 값이 그 회사들에는 광고비보다 싸다. 두세 평짜리 자리 앞에도 줄은 설 수 있으니까. 주최 측이 올해 내건 말도 작은 팀의 성공.
부스 앞에 세운 물건2025년 게임스컴. 게임 그래픽을 입힌 차 한 대를 세워 두고 뒤로 관람객이 몰렸다. ⓒDulamas,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1.업계 방문객을 뺀 일반 관람객이 31만 명, 할인권을 섞은 평균 표값을 33유로로 보면 입장 수입은 1,020만 유로가 된다. 요일별 판매량이 공개된 적 없으니 어림일 뿐.
12.부스 쪽이 더 크다. 전시면적의 절반이 실제 임대 칸이라 보고 ㎡당 167.50유로를 곱하면 임대 수입은 1,950만 유로가 된다. 입장 수입의 두 배 가까이. 관람객이 이 행사의 손님처럼 보이지만 돈을 내는 쪽은 부스를 세운 회사다.
부스 임대가 입장권의 두 배
표를 파는 행사처럼 보이지만 매출의 중심은 바닥 임대다.
13.㎡당 167.50유로를 닷새로 나누면 하루 33.5유로. 우리 돈 5만 4,000원. 서울 도심 프라임 오피스가 한 달 동안 받는 ㎡당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더하면 대체로 그 언저리다. 대신 파는 날이 1년에 며칠뿐이니, 전시장은 단가와 가동일수를 맞바꾼 자산이다.
14.쾰른시는 여기에 35만 유로를 넣는다. 시티 페스티벌 무료 공연을 여는 돈이고, 방문객 한 사람에 1유로꼴. 그 대가는 호텔과 식당이 받아 간다. 도시가 행사를 붙잡을 때 계산하는 것은 입장료 배분이 아니라 이런 파급이다.
1년의 대부분쾰른메세 남쪽 입구와 11홀. 앞마당에 크레인과 트럭이 서 있다. ⓒRaimond Spekking,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5.이 행사는 원래 쾰른 것이 아니었다. 2002년부터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Games Convention이라는 이름으로 열렸고 유럽 최대였다. 교통과 숙박이 사람을 못 받아 내자 업계 단체가 쾰른행을 택했는데, 라이프치히가 이름의 권리를 팔지 않아 새 이름이 붙었다. 그게 gamescom이다. 2009년 첫 회 방문객이 24만 5,000명.
첫 회의 남쪽 입구2009년 8월, 쾰른에서 처음 열린 게임스컴의 남쪽 입구. 파사드에 로고가 붙었고 계단에 사람이 몰렸다. ⓒRaimond Spekking,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6.같은 기간 미국 쪽은 반대로 갔다.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는 온라인 개최로 옮겼다가 적자를 봤고, 2023년 말 주최 단체가 영구 폐지를 알렸다. 도쿄 게임쇼(東京ゲームショウ)는 다음 달 사상 처음 닷새 일정으로 30주년을 연다. 화면으로 옮긴 쪽이 죽고 바닥을 더 산 쪽이 남았다.
무대에 올린 게임2015년 게임스컴의 Street Fighter V 시연 무대. 아케이드 스틱을 쥔 참가자들과 코스프레 차림의 두 사람. ⓒSergey Galyonki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17.쾰른에서 닷새 동안 23만 3,000㎡가 처음으로 빈칸 없이 팔렸고, 그 바닥의 하루 단가는 ㎡당 5만 4,000원이 된다. 임대료는 참가사가 쓰는 돈의 일부일 뿐이다. 설계·시공·운반·철거가 그 몇 배로 붙고, 참가사가 그 총액을 낼 이유를 못 찾으면 자리는 팔려도 부스는 초라해진다. 국내에서 같은 규모를 세울 때 잡기 어려운 것도 전시장이 아니라 이쪽이다. 자리를 다 파는 일과 볼 것이 있는 행사를 만드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