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서울광장 13m 아래에서 335m짜리 통로가 문을 열었다. 40년 동안 쓸 데가 없던 자리다. 서울시가 81억 8,000만 원을 넣어 환기와 소방을 깔았고, 첫 세입자로 빅뱅 20주년 전시가 들어왔다. 표값은 2만 200원. 이 전시를 만든 회사가 지난해 백화점에서 연 전시는 입장이 공짜였다.
1.개장일은 8월 24일. 자리는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지하 2층이고, 서울광장 13m 아래를 가로지른다. 서울시가 붙인 이름은 K-문화 스테이션, 운영사가 간판에 올린 이름은 두두두 서울(dududo SEOUL).
2.폭 9.5m에 높이 4.5m, 길이 335m. 면적으로는 3,261㎡, 986평짜리 복도 하나다. 위로는 전국에서 처음 생긴 지하상가가 지나고 아래로는 2호선 선로가 지난다. 그 두 겹 사이에 낀 층.
광장 아래로 세 겹이 겹쳐 있다
3.첫 콘텐츠는 빅뱅(BIGBANG) 데뷔 20주년 미디어 전시 코스모스(COSMOS)로 9월 27일까지 연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시 정각에 한 회차씩, 회차당 100명에 관람 시간은 60분. 표는 네이버 예약으로만 팔고 현장 매표소는 두지 않았다. 값은 2만 200원.

4.이 공간은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다. 서울시는 1980년대 초 높이가 다른 두 역을 잇는 공사에서 남은 자리로 추정한다. 준공 기록도 애초의 쓰임새도 남아 있지 않다. 2023년 9월 시민탐험대라는 한시 프로그램으로 처음 문을 열었지만 안전시설이 없어 곧 다시 닫았고, 3년을 더 들여 환기와 소방을 깔았다.

5.치수를 재 보면 쓸 수 있는 용도가 몇 개 안 남는다. 폭 9.5m는 양쪽에 가게를 넣고 가운데 통로를 남기기에 모자라고, 335m 선형은 칸마다 급배수와 배기를 따로 끌어와야 한다. 리테일도 식음도 계산이 안 서는 치수다. 남은 답은 하나. 걸어서 통과하는 콘텐츠.

6.그래서 벽을 새로 치지 않았다. 서울시는 남아 있던 콘크리트 면과 긴 터널 형태를 빛과 영상, 음악의 무대로 그대로 썼다고 밝힌다. 천장 배관과 조명 레일이 드러난 채고, 벽 한쪽에는 거울을 둘러 335m를 더 멀리 보이게 했다. 마감을 뺀 자리가 그대로 연출의 재료.
7.들어간 돈은 81억 8,000만 원, 그중 공사비가 78억이다. 986평으로 나누면 평당 830만 원. 환기·소방·피난·전기만 넣고 마감은 거의 하지 않은 값.

8.회차가 다 차면 하루에 2,424만 원이 들어온다. 회기는 8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35일이니, 만석이 이어진다는 가장 좋은 경우에 4만 2,000명이 들어와 8억 4,800만 원. 실제로는 평일 낮 회차가 다 찰 리 없다. 이 값은 상한선.
한 회기를 다 팔아도 공사비의 10분의 1
9.회수 속도를 정하는 건 관람객 수가 아니다. 다음 전시가 얼마나 빨리 들어오느냐. 서울시가 상설 운영을 못 박고 케이팝 협업과 패션쇼, 브랜드 행사로 콘텐츠를 갈아 끼우겠다고 밝힌 이유가 여기 있다. 빈 기간이 길어지면 평당 830만 원은 그대로 매몰된다.
10.표 옆에 물건이 붙는다. 현장에서 20주년 응원봉과 2,020개 한정 홀로그램 티셔츠를 판다. 케이팝 전시의 굿즈 객단가는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 구매 비율은 절반쯤으로 잡힌다. 4만 2,000명에 이 값을 대면 6억에서 8억. 공개된 실적이 아니라 업계 기준으로 세운 추정.

11.평당으로 옮겨 보면 값이 세다. 만석 하루 매출 2,424만 원을 986평으로 나누면 평당 2만 4,600원, 한 달로 치면 74만 원이 된다. 서울 주요 팝업 상권의 평당 월 임차료가 30만 원에서 50만 원 선에서 오간다. 다만 이건 매출이지 임차료가 아니고, 연출비와 인건비를 아직 빼지 않았다.

12.시청역은 2025년 기준 하루 10만 349명이 오르내린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손님이 아니다. 전량 사전예약이고 워크인은 받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손님으로 세지 않겠다는 결정.

13.이유는 밀도. 335m에 100명이면 한 사람당 3.35m가 돌아가는데, 그 간격이 무너지면 60분짜리 연출도 함께 무너진다. 유동인구는 이 상품의 재료가 아니라 방해물. 그럼 왜 하필 지하철 아래인가. 답은 접근성이 아니라 임차료다. 도심에서 986평 선형 공간을 지상에서 빌리면 그 항목 하나로 계산이 깨지는데, 공공이 쥔 죽은 면적이라 값이 0에 가깝다.

14.운영을 맡은 크리에이티브멋은 지드래곤(G-DRAGON) 미디어 전시 위버멘쉬(Übermensch)를 만든 회사다. 2025년 3월 더현대 서울에서 열었고 입장은 무료였다. 이후 도쿄와 타이베이, 홍콩, 방콕까지 11개 도시를 돌아 누적 23만 명을 모았다.

15.백화점이 공짜로 열어 준 데는 이유가 있다. 거기서 전시는 파는 물건이 아니라 미끼였고, 회수는 같은 건물 매장이 했다. 지하 터널에는 회수할 매장이 없다. 같은 회사가 만든 같은 형식의 전시에 표가 붙은 건 콘텐츠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회수할 옆방이 사라져서다. 순회하던 쇼가 고정 무대를 얻은 대신, 미끼이던 것이 상품이 됐다.
16.40년 닫혀 있던 335m를 81억 8,000만 원에 열었고, 하루 최대 1,200명이 2만 200원짜리 60분을 산다. 한 회기를 다 팔아도 8억 5,000만 원이라 회수는 표가 아니라 콘텐츠를 갈아 끼우는 속도에서 나온다. 비슷한 지하 자리를 노리는 쪽은 임차료부터 계산한다. 사업을 주저앉히는 건 피난 계단. 지하 깊은 선형 공간은 피난 거리 하나로 인허가가 갈리고, 그 보강비가 마감비보다 크게 나온다. 죽은 면적이 싸 보이는 건 그 값을 아직 안 치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