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런웨이에 첫 모델이 섰다. 6일까지 브랜드 31곳이 컬렉션을 올린다. 지난 2월 같은 행사는 바깥 무대를 전부 없애고 이 건물 하나에 스스로를 가뒀는데, 반년 만에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무대를 늘렸다. 표는 여전히 공짜고, 돈은 옆방에서 오간다.
1.2027 S/S 서울패션위크. 9월 1일 화요일에 열어 6일 일요일에 닫는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26년째 행사이며, 이번 회차 참가 브랜드는 31곳.
2.지난 2월 3일부터 8일까지 열린 직전 회차는 성격이 달랐다. 참가 브랜드 24곳, 장소는 DDP 한 곳. 한국적인 장소를 빌려 열던 바깥 쇼를 그때 전부 뺐다. 주최 측이 내건 말도 축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플랫폼.

3.이번엔 그 결정을 되물렸다. DDP에서 17곳이 런웨이를 올리고 8곳이 공간형 컬렉션을 세우며, 잠실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광장에서 3일부터 5일까지 6곳이 따로 쇼를 한다. 김해김·그리디어스·던스트·제너럴아이디어·EBM·마하그리드가 잠실 몫.

4.쇼가 도는 동안 같은 건물 안쪽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2일부터 4일까지 사흘, DDP 아트홀 2관과 이간수문전시장에 국내 브랜드 97곳이 행거를 걸고 해외 바이어를 1대1로 앉힌다. 조명도 음악도 없는 방. 여기가 이 행사의 본업이다.

5.런웨이 좌석은 좌우 두 줄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앞줄에 앉은 사람의 무릎 바로 앞이 모델이 밟는 선이고, 조명이 위에서 떨어져 옷의 주름과 밑단 흔들림만 남긴다. 소리는 음악에 덮여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10분 남짓이 끝나면 관객은 자리를 뜨고, 바이어는 옆방으로 옮겨 사흘을 앉는다.
한 도시에 무대를 두 개 놓았다
6.런웨이가 안고 있는 약점은 오래됐다. 9월에 올리는 건 이듬해 봄여름 옷이라 관객이 그 자리에서 살 수가 없고, 매장에 걸릴 때쯤이면 화제는 식어 있다. 쇼를 본 사람과 옷을 살 사람이 갈라져 있는 구조.

7.2월의 처방은 그 약점을 인정하고 관객을 줄이는 쪽이었다. 축제 프로그램을 걷어내면 예산이 상담 테이블로 간다. 다만 그렇게 하면 도시 쪽에 남는 게 없어진다. 시민이 볼 것도, 관광객이 들를 곳도, 사진이 퍼질 자리도 없으니까.
8.이번 회차는 그 둘을 떼어 놓았다. 상담은 DDP에 그대로 두고 축제만 백화점 건물로 옮겼다. 구경거리를 매대 옆에 갖다 붙이면 구경이 그 자리에서 결제로 바뀐다. 잠실 쇼에는 상품 정보를 QR로 띄워 바로 사게 하는 장치가 붙었고, 표는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공식 계정 추첨으로 뿌렸다. 한 사람에 두 장, 값은 0원.

9.직전 2월 회차 트레이드쇼에는 브랜드 102곳이 들어갔고, 23개국에서 온 바이어 99명과 1,772건을 상담해 수주 상담액 754만 달러를 찍었다. 한 시즌 앞이 745만 달러. 9만 달러가 늘었다.
10.브랜드 한 곳이 사흘 앉아서 가져가는 몫이 7만 4천 달러쯤 된다. 원화로 1억 원 안팎. 상담액이라 전부 계약으로 굳지는 않는데, 성사율을 박하게 절반으로 잡아도 한 곳당 5천만 원이 남는다. 이 숫자를 만드는 데 디자이너가 쓴 돈. 사실상 0원.

11.무대·조명·음향에 온라인 송출과 홍보, 바이어 초청까지 주최 측이 댄다. 타이틀 스폰서가 붙던 시절에는 화장품 브랜드 헤라(HERA)가 해마다 10억 원을 넣었는데, 2019 S/S 회차로 계약이 끝난 뒤 그 자리는 계속 비어 있다. 스폰서 한 곳이 대던 자리를 지금은 백화점이 공간으로 메운다.
쇼는 공짜인데 돈은 어디서 도나
12.백화점은 왜 이걸 받았나. 이유는 자기 매장에 있다. 잠실점 2층에 국내 브랜드를 모은 1,500평짜리 매장 키네틱그라운드를 열어 19곳을 넣었는데, 앞서 명동본점에서 550평으로 돌린 1호점이 1년 만에 영패션 매출을 130% 올리고 외국인 매출을 440%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본점 신규 고객의 20%가 그 매장을 거쳐 들어왔다고 회사는 밝힌다.

13.쇼에 세운 브랜드와 매대에 깔린 브랜드가 겹친다는 게 이 배치의 요령이다. 던스트도 제너럴아이디어도 마하그리드도 백화점이 이미 파는 이름이고, 쇼를 본 사람은 몇 걸음 옮겨 그 옷을 만질 수 있다. 잠실점 연매출이 3조 원을 넘긴 게 2024년, 지난해엔 명동본점과 합쳐 5조 원을 넘겼다.

14.파리와 밀라노는 협회가 열고 브랜드가 참가비를 낸다. 쇼 한 회에 억대가 들어 신진은 애초에 못 들어가고, 그래서 그 도시의 무대는 이미 큰 이름들의 것. 서울은 시가 열고 브랜드는 안 낸다. 26년 동안 367곳이 2,247회 런웨이를 돌 수 있었던 건 그 조건 덕이지만, 값을 안 내는 무대는 값을 매기지도 못한다. 6일이 끝나면 그 무대가 얼마짜리였는지 아무도 계산하지 않는다.

15.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잠실 잔디광장에서 NCT가 입던 무대의상 3,000벌이 팔린다. 수익은 기부로. 반년 전에 없앤 축제가 백화점 마당으로 돌아와 장터를 차렸다. 이런 구조를 다른 도시가 따라할 때 먼저 걸리는 건 예산이 아니라 짝이다. 무대를 대신 내줄 유통 회사가 그 도시에 있어야 하고, 그 회사가 파는 브랜드와 무대에 세울 브랜드가 겹쳐야 한다. 겹치지 않으면 백화점은 임대료를 요구하고, 그 순간 시가 대던 0원짜리 무대는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