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목요일부터 나흘간, 음악 앱 하나가 서울 성수의 가구 갤러리를 통째로 빌려 공연장으로 쓴다. 디플로부터 잔나비와 다이나믹 듀오까지 열네 팀이 서는데 입장료는 0원이다. 표를 안 파는 공연으로 이 회사가 무엇을 노리는지는 건물을 나눠 쓴 방식에 다 나와 있다.
1.스포티파이 하우스 서울(Spotify House Seoul)이 9월 10일 목요일에 문을 연다. 13일 일요일까지 나흘. 장소는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6길의 앤더슨씨(AndersonC)로, 성수역에서 걸어서 닿는 두 동짜리 건물이다. 지난해 사흘을 열었던 자리를 올해 하루 늘려 다시 쓴다.
2.라이브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이고, 하루에 장르 하나씩 붙는다. 첫날이 일렉트로닉과 K팝으로 디플로(Diplo)·라이즈(RIIZE)·리센느(RESCENE)·이브(Yves), 둘째 날이 인디 록으로 잔나비·혁오·실리카겔·카디·캔트비블루, 셋째 날이 힙합으로 다이나믹 듀오·더 콰이엇·하온·나우아임영·라프 산두. 마지막 날 순서는 공연이 아니라 설치 작품과 체험 프로그램.


3.낮과 밤의 입장 조건이 다르다. 낮 시간의 체험 공간은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되고, 저녁 라이브만 사전 등록을 받는다. 표값은 양쪽 다 0원.
4.건물부터 보자. 앤더슨씨는 공연장이 아니라 빈티지 가구를 파는 갤러리 겸 카페로, 2024년 4월에 열었다. 1960년대에 지은 구관과 새로 올린 신관이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 신관 1층이 카페 겸 레스토랑이고 2층이 가구 전시장이며, 구관은 아래층에 작은 카페를 두고 위층을 전시와 보관으로 쓴다.

5.지난해 첫 회에 이 건물을 어떻게 나눠 썼는지가 설계를 보여 준다. 1층은 데이리스트 카페. 하루 네 번 바뀌는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파는 음료와 디저트도 같이 바뀌었다. 위층에는 젠하이저(Sennheiser) 헤드폰으로 무손실 음원을 듣는 방, 플레이리스트를 편집해 보는 작업대, 굿즈를 파는 스포티파이 클로젯이 들어갔다.

6.앱 화면의 기능을 방으로 옮겨 놓은 셈이다. 손가락으로 누르던 버튼이 계단을 올라가야 닿는 자리가 되면, 한 사람이 거기 머무는 시간은 몇 초에서 몇 분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현장을 다녀온 기사에는 대학생과 직장인, 외국인 관광객이 섞여 있었다고 적혔다.

7.왜 이런 데 돈을 쓰는지는 이 업의 사정을 봐야 풀린다. 스트리밍 앱끼리는 파는 물건이 같다. 어느 앱을 켜도 같은 곡이 나오고 음질 차이도 크지 않으니, 남는 승부처가 값과 화면뿐.
8.한국 성적표부터. 2026년 6월 이용자 수가 622만 명으로 앱을 낸 이래 가장 많았고, 그달 처음으로 멜론을 앞질렀다. 위에 남은 건 유튜브 뮤직 하나뿐.
국내 음악 앱 월간 이용자 수
9.숫자가 뛴 시점은 뚜렷하다. 2024년 10월 광고를 붙인 무료 요금제가 국내에 나왔고, 그 전과 뒤로 곡선의 기울기가 달라졌다. 유료로 넘어가면 개인 요금은 월 11,990원.

10.그런데 이 나흘 동안 앱을 파는 장면은 없다. 무대에 세우는 건 아티스트고, 낮 프로그램도 가입을 권하기보다 기능을 만져 보게 하는 쪽에 가깝다. 이 건물이 진짜로 말을 거는 상대는 객석이 아니라 그 뒤에 선 레이블과 매니지먼트다.

11.이 회사가 해마다 로열티 지급액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2025년 음악 업계에 넘긴 돈이 110억 달러를 넘었고, 한국 아티스트가 받은 몫은 한 해 전보다 12% 늘었다는 게 회사 발표. 카탈로그로는 차이를 못 만드니 "우리가 당신을 해외에 팔아 준다"를 파는 것이고, 그 문장을 눈으로 보여 주는 게 이 무대다.

12.돈을 세어 보자. 이 일대 팝업 대관료는 160제곱미터 매장이 하루 300만 원대, 330제곱미터가 하루 1,000만 원대로 알려져 있고, 목 좋은 건은 2,000만 원까지 부른다. 앤더슨씨는 두 동을 합쳐 그보다 큰 데다 설치와 철거에 앞뒤로 며칠이 더 붙으니, 공간값만 1억 원 안팎으로 잡는 게 무리가 아니다. 대관 조건은 공개돼 있지 않으니 여기서부터가 추정.
13.표를 안 파니 이 나흘의 매출은 0원. 대신 그 1억을 구독료로 환산하면 성격이 보인다. 월 11,990원으로 나누면 8,340개월치이고, 한 사람이 1년을 결제한다고 치면 695명분이다. 이용자 622만 명을 가진 회사에 695명은 0.011%에 지나지 않는다.
나흘 공간값을 구독료로 바꾸면
14.브랜드가 남의 축제에 이름만 붙이는 대신 자기 무대를 여는 방식은 한국에서도 오래됐다. 현대카드가 2007년 슈퍼콘서트를 시작해 해외 아티스트를 직접 불렀고, 레드불(Red Bull)은 아예 녹음 스튜디오를 두고 아티스트를 키운다. 이쪽이 다른 점은 소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 공연장을 짓지도, 사지도 않고 나흘만 빌린다.

15.표를 안 팔면서 사전 등록은 받는다. 표값 대신 남는 것이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계정이다. 지난해 첫 회에는 더 키드 라로이(The Kid LAROI)와 센트럴 씨(Central Cee), 박재범과 자이언티가 사흘을 채웠고, 올해는 그 사흘이 나흘로 늘었다. 줄어드는 행사는 다음 해가 없다.

16.다음 주 목요일부터 나흘, 가구를 파는 두 동짜리 건물이 공연장이 된다. 입장료는 없고 열네 팀이 서며, 나흘 공간값 1억 원은 이 앱 이용자의 0.011%가 1년 낸 구독료와 같은 크기. 이런 걸 국내에서 따라 하려 하면 돈보다 건물이 먼저 걸린다. 층고와 하중, 무엇보다 밤에 어디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느냐가 후보지를 몇 곳으로 줄여 버리고, 그 몇 곳을 아는 사람이 이미 시세를 두 배로 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