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을 연 전시가 2027년 2월까지 간다. 167일. 걸린 작품은 500점이고 재료는 대부분 얇은 천이다. 벽이 빛을 통과시키고, 관객은 그 벽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걸어서 지나간다.
1.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8월 27일 《서도호》를 열었다. 지하 1층 3·4·5전시실에 2층 MMCA 스튜디오까지 쓰고, 폐막은 2027년 2월 9일. 드로잉과 조각, 영상, 설치를 합쳐 500점가량이 나왔고, 작가가 30여 년 붙들어 온 작업을 한자리에 펴 놓은 회고전.
2.관람료는 8,000원. 같은 건물에서 같은 날 여는 다른 전시가 2,000원이니 네 배다. 누리집에서 예매하면 상시 10%가 빠지고, 개막 전 판 얼리버드는 20% 할인한 6,400원이었다. 입장은 1시간 단위 회차별 예약제로 받는다고 미술관은 안내한다.
3.재료부터 보자. 서도호(Do Ho Suh)의 방들을 세운 건 벽돌도 석고보드도 아닌 천이다. 1999년 〈서울집/L.A집〉은 성북동 한옥을 반투명한 옥색 천으로 떠서 로스앤젤레스에 세운 작업으로, 문틀과 경첩과 손잡이까지 실측해 1:1로 옮겼다.

4.전시실 입구에 그 옥색 대문이 서 있다. 천으로 만든 벽은 빛을 막지 않고 통과시키므로 안쪽에 선 사람의 실루엣이 바깥에서 비쳐 보이고, 벽 너머의 다음 방도 함께 겹쳐 보인다. 관객은 벽 옆을 지나는 게 아니라 벽 안쪽을 걸어서 지난다. 〈둥지/들〉(2024)은 작가가 살았던 여러 집의 방과 복도와 문을 하나의 긴 통로로 이어 붙인 것.

5.〈완벽한 집〉은 런던과 호셤(Horsham), 뉴욕에서 쓰던 문손잡이와 콘센트, 전등 스위치를 한 방에 모아 놓았다. 〈러빙/러빙〉 연작은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의 표면을 닥지로 탁본한 것들이고, 3전시실 하나는 드로잉 200여 점으로 채워졌다. 눈에 띄는 건 큰 설치지만 숫자를 세면 종이가 더 많다.

6.이 나라에서 집은 보통 자산 아니면 향수인데, 이 작업은 둘 다 아니다. 그럼 무엇으로 다루나. 치수다. 몇 평이고 얼마인지가 아니라 문 폭이 몇 밀리미터고 스위치가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올라가 있는지. 도면을 그려 본 사람이면 이 태도가 어디서 나왔는지 안다.

7.그래서 관객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림은 보고 나오면 끝이지만 이 방들은 통과해야 끝난다. 사진을 찍으면 작품 앞이 아니라 작품 안이 찍히고, 그 사진이 올라가면 다음 관객을 부르는 광고가 된다. 미술관이 홍보비를 쓰지 않고 관객의 카메라를 쓰는 구조.

8.이주가 이 작업의 뿌리다. 지금 30~40대 한국인 대다수가 여러 번 이사했고, 어릴 때 살던 집은 이미 헐렸거나 남이 산다. 돌아갈 수 없는 주소를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 서도호는 그 주소를 접어서 들고 다닌다.

9.8,000원이라는 숫자는 올해 새로 생겼다. 미술관이 기획전 관람료를 5,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리면서 「국제 거장전」이라는 칸을 따로 뒀고, 여러 전시를 함께 보는 통합권도 7,000원에서 1만 원이 됐다. 3월에 연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회고전이 그 첫 칸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같은 건물, 세 가지 가격
10.걷히는 돈을 잡아 보자. 167일 가운데 월요일 휴관 24일을 빼면 143일 문을 연다. 서울관 관람객은 2023년에 180만 명이었고 미술관 네 곳을 합한 지난해 방문객이 337만 명. 여기부터는 공개된 수치가 없어 잡은 값인데, 이 전시 유료 관람객을 하루 1,500명으로 보면 21만 명이고 온라인 할인을 반영한 실수령 7,200원을 곱하면 15억 원이 나온다.
11.표값 옆에 후원사가 있다. 제네시스(Genesis)가 이 전시의 주요 후원사이고, 지난해 5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연 같은 작가의 개인전 이름도 「The Genesis Exhibition」이었다. 런던에서 이름을 걸었던 자동차 회사가 서울에도 이름을 걸었다. 후원 금액은 양쪽 다 공개되지 않았다.

12.런던 회기는 172일, 서울은 167일. 큰 천 구조물은 운송과 설치, 보험이 비싸서 짧게 걸면 회수가 안 되고, 그래서 회기가 먼저 정해진 다음 나머지가 맞춰진다. 미술관이 반년 가까이를 한 작가에게 내주면 그해 다른 전시가 들어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작품을 고르는 결정인 동시에 일정을 거는 결정.
천으로 뜬 집이 지나온 도시
13.시장 쪽 숫자는 생각보다 작다. 경매 최고가가 2009년 런던에서 팔린 〈Some/One〉의 81만 4천 달러이고, 최근 1년 평균 낙찰가는 5만 달러 남짓. 천으로 만든 방은 미술관이 사서 걸기는 좋아도 개인이 집에 들이기는 어려운 물건. 이 작가의 돈은 경매장이 아니라 미술관 회기에서 돈다.

14.회차를 1시간 단위로 끊는 이유는 동선에 있다. 작품 안을 걸어 다니게 하는 전시에서 사람이 몰리면 관람이 아니라 정체가 되고, 천으로 만든 통로는 폭을 넓힐 수도 없다. 개관은 월·화·목·금·일 오후 6시까지, 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긴 날 기준으로 하루 11회차.

15.천으로 지은 방 500점이 콘크리트 미술관의 세 전시실을 167일 동안 채우고, 그 표는 같은 건물 다른 전시의 네 배인 8,000원에 팔린다. 국내에서 비슷한 걸 하려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작품값이 아니라 층고와 매다는 방식이다.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천 구조물은 위에서 매달아야 한다. 매달 곳이 없는 건물에서는 바닥에 기둥을 세우게 되고, 기둥이 서는 순간 그 방은 다시 벽이 있는 보통 방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