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호텔다이닝드링크컬처스페이스카페브랜드
ArticlesTravel
경복궁 옆의 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외벽 사이니지. 옛 기무사 터에 2013년 문을 열었고 전시실 8개를 둔다. ⓒBonnielou2013 · CC BY-SA 4.0
경복궁 옆의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외벽 사이니지. 옛 기무사 터에 2013년 문을 열었고 전시실 8개를 둔다. ⓒBonnielou2013 · CC BY-SA 4.0
데일리 컬처

옆 전시실은 2,000원인데 이 방만 8,000원이다 (서도호)

2026.09.08

지난달 문을 연 전시가 2027년 2월까지 간다. 167일. 걸린 작품은 500점이고 재료는 대부분 얇은 천이다. 벽이 빛을 통과시키고, 관객은 그 벽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걸어서 지나간다.

1.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8월 27일 《서도호》를 열었다. 지하 1층 3·4·5전시실에 2층 MMCA 스튜디오까지 쓰고, 폐막은 2027년 2월 9일. 드로잉과 조각, 영상, 설치를 합쳐 500점가량이 나왔고, 작가가 30여 년 붙들어 온 작업을 한자리에 펴 놓은 회고전.
2.관람료는 8,000원. 같은 건물에서 같은 날 여는 다른 전시가 2,000원이니 네 배다. 누리집에서 예매하면 상시 10%가 빠지고, 개막 전 판 얼리버드는 20% 할인한 6,400원이었다. 입장은 1시간 단위 회차별 예약제로 받는다고 미술관은 안내한다.
3.재료부터 보자. 서도호(Do Ho Suh)의 방들을 세운 건 벽돌도 석고보드도 아닌 천이다. 1999년 〈서울집/L.A집〉은 성북동 한옥을 반투명한 옥색 천으로 떠서 로스앤젤레스에 세운 작업으로, 문틀과 경첩과 손잡이까지 실측해 1:1로 옮겼다.
건물 사이에 낀 한옥 · 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에 낸 〈Bridging Home〉. 영국 벽돌 건물 틈에 한옥을 밀어 넣었다.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건물 사이에 낀 한옥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에 낸 〈Bridging Home〉. 영국 벽돌 건물 틈에 한옥을 밀어 넣었다.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4.전시실 입구에 그 옥색 대문이 서 있다. 천으로 만든 벽은 빛을 막지 않고 통과시키므로 안쪽에 선 사람의 실루엣이 바깥에서 비쳐 보이고, 벽 너머의 다음 방도 함께 겹쳐 보인다. 관객은 벽 옆을 지나는 게 아니라 벽 안쪽을 걸어서 지난다. 〈둥지/들〉(2024)은 작가가 살았던 여러 집의 방과 복도와 문을 하나의 긴 통로로 이어 붙인 것.
같은 작품, 다른 각도 · 기와 처마와 나무 격자문을 한국 목조의 치수 그대로 만들어 영국 벽돌벽에 붙였다.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같은 작품, 다른 각도기와 처마와 나무 격자문을 한국 목조의 치수 그대로 만들어 영국 벽돌벽에 붙였다.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5.〈완벽한 집〉은 런던과 호셤(Horsham), 뉴욕에서 쓰던 문손잡이와 콘센트, 전등 스위치를 한 방에 모아 놓았다. 〈러빙/러빙〉 연작은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의 표면을 닥지로 탁본한 것들이고, 3전시실 하나는 드로잉 200여 점으로 채워졌다. 눈에 띄는 건 큰 설치지만 숫자를 세면 종이가 더 많다.
청사 벽을 덮은 작업 ·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Silver Spring)의 식품의약국 청사에 설치된 서도호 작품. 앞에 선 사람들과 견주면 크기가 가늠된다. ⓒCarol M. Highsmith · 퍼블릭 도메인
청사 벽을 덮은 작업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Silver Spring)의 식품의약국 청사에 설치된 서도호 작품. 앞에 선 사람들과 견주면 크기가 가늠된다. ⓒCarol M. Highsmith · 퍼블릭 도메인
6.이 나라에서 집은 보통 자산 아니면 향수인데, 이 작업은 둘 다 아니다. 그럼 무엇으로 다루나. 치수다. 몇 평이고 얼마인지가 아니라 문 폭이 몇 밀리미터고 스위치가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올라가 있는지. 도면을 그려 본 사람이면 이 태도가 어디서 나왔는지 안다.
천으로 옮기기 전 · 서울 북촌의 기와지붕. 작가가 실측해 천으로 옮긴 성북동 한옥도 이런 목조였다. ⓒStevenliuyi · CC BY-SA 4.0
천으로 옮기기 전서울 북촌의 기와지붕. 작가가 실측해 천으로 옮긴 성북동 한옥도 이런 목조였다. ⓒStevenliuyi · CC BY-SA 4.0
7.그래서 관객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림은 보고 나오면 끝이지만 이 방들은 통과해야 끝난다. 사진을 찍으면 작품 앞이 아니라 작품 안이 찍히고, 그 사진이 올라가면 다음 관객을 부르는 광고가 된다. 미술관이 홍보비를 쓰지 않고 관객의 카메라를 쓰는 구조.
미술관 앞 동네 · 삼청동 길. 미술관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흘러 나가는 방향이다. ⓒFoxy Who · CC BY-SA 3.0
미술관 앞 동네삼청동 길. 미술관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흘러 나가는 방향이다. ⓒFoxy Who · CC BY-SA 3.0
8.이주가 이 작업의 뿌리다. 지금 30~40대 한국인 대다수가 여러 번 이사했고, 어릴 때 살던 집은 이미 헐렸거나 남이 산다. 돌아갈 수 없는 주소를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 서도호는 그 주소를 접어서 들고 다닌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 미술관 계단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3·4·5전시실은 지하 1층에 있다. ⓒyeung ming · CC BY 2.0
지하로 내려가는 길미술관 계단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3·4·5전시실은 지하 1층에 있다. ⓒyeung ming · CC BY 2.0
9.8,000원이라는 숫자는 올해 새로 생겼다. 미술관이 기획전 관람료를 5,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리면서 「국제 거장전」이라는 칸을 따로 뒀고, 여러 전시를 함께 보는 통합권도 7,000원에서 1만 원이 됐다. 3월에 연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회고전이 그 첫 칸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같은 건물, 세 가지 가격
2026년에 바뀐 관람료 체계 일반 전시 1건 2,000원 기획전 (지난해까지) 5,000원 기획전 (올해부터) 8,000원 누리집 예매 7,200원 개막 전 얼리버드 6,400원 통합권 7,000원 10,000원 가격이 오른 건 기획전과 통합권뿐이고 일반 전시 2,000원은 그대로다.
같은 미술관 안에서 관람료가 다섯 배 차이로 벌어진다.
10.걷히는 돈을 잡아 보자. 167일 가운데 월요일 휴관 24일을 빼면 143일 문을 연다. 서울관 관람객은 2023년에 180만 명이었고 미술관 네 곳을 합한 지난해 방문객이 337만 명. 여기부터는 공개된 수치가 없어 잡은 값인데, 이 전시 유료 관람객을 하루 1,500명으로 보면 21만 명이고 온라인 할인을 반영한 실수령 7,200원을 곱하면 15억 원이 나온다.
11.표값 옆에 후원사가 있다. 제네시스(Genesis)가 이 전시의 주요 후원사이고, 지난해 5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연 같은 작가의 개인전 이름도 「The Genesis Exhibition」이었다. 런던에서 이름을 걸었던 자동차 회사가 서울에도 이름을 걸었다. 후원 금액은 양쪽 다 공개되지 않았다.
런던의 앞 회차 · 테이트 모던. 2025년 5월 1일부터 10월 19일까지 같은 작가의 개인전 《Walk the House》가 여기서 열렸다. 사진은 증축 공사가 한창이던 2012년. ⓒThe Car Spy · CC BY 2.0
런던의 앞 회차테이트 모던. 2025년 5월 1일부터 10월 19일까지 같은 작가의 개인전 《Walk the House》가 여기서 열렸다. 사진은 증축 공사가 한창이던 2012년. ⓒThe Car Spy · CC BY 2.0
12.런던 회기는 172일, 서울은 167일. 큰 천 구조물은 운송과 설치, 보험이 비싸서 짧게 걸면 회수가 안 되고, 그래서 회기가 먼저 정해진 다음 나머지가 맞춰진다. 미술관이 반년 가까이를 한 작가에게 내주면 그해 다른 전시가 들어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작품을 고르는 결정인 동시에 일정을 거는 결정.
천으로 뜬 집이 지나온 도시
성북동 한옥 한 채에서 시작해 도시를 옮겨 다녔다 1999 로스앤젤레스 〈서울집/L.A집〉 옥색 천으로 뜬 한옥 2010 리버풀 〈Bridging Home〉 벽돌 건물 사이의 한옥 2013 서울·뉴욕 〈집 속의 집 속의 …〉 집을 집에 겹친다 2025 런던 테이트 모던 《Walk the House》 172일 2026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67일 · 500점
27년 동안 같은 한 채를 계속 다시 짓고 있다.
13.시장 쪽 숫자는 생각보다 작다. 경매 최고가가 2009년 런던에서 팔린 〈Some/One〉의 81만 4천 달러이고, 최근 1년 평균 낙찰가는 5만 달러 남짓. 천으로 만든 방은 미술관이 사서 걸기는 좋아도 개인이 집에 들이기는 어려운 물건. 이 작가의 돈은 경매장이 아니라 미술관 회기에서 돈다.
떠 있는 구조 · 이 작품은 바닥에 놓이지 않고 두 건물 사이에 끼워 걸렸다. 앞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떠 있는 구조이 작품은 바닥에 놓이지 않고 두 건물 사이에 끼워 걸렸다. 앞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Julian Stallabrass · CC BY 2.0
14.회차를 1시간 단위로 끊는 이유는 동선에 있다. 작품 안을 걸어 다니게 하는 전시에서 사람이 몰리면 관람이 아니라 정체가 되고, 천으로 만든 통로는 폭을 넓힐 수도 없다. 개관은 월·화·목·금·일 오후 6시까지, 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긴 날 기준으로 하루 11회차.
회차를 기다리는 자리 · 미술관 마당. 예약 시각 전에 관람객이 여기서 기다린다. 시간제 입장은 이런 여유 공간이 있어야 돌아간다. ⓒjens kuu · CC BY 2.0
회차를 기다리는 자리미술관 마당. 예약 시각 전에 관람객이 여기서 기다린다. 시간제 입장은 이런 여유 공간이 있어야 돌아간다. ⓒjens kuu · CC BY 2.0
15.천으로 지은 방 500점이 콘크리트 미술관의 세 전시실을 167일 동안 채우고, 그 표는 같은 건물 다른 전시의 네 배인 8,000원에 팔린다. 국내에서 비슷한 걸 하려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작품값이 아니라 층고와 매다는 방식이다.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천 구조물은 위에서 매달아야 한다. 매달 곳이 없는 건물에서는 바닥에 기둥을 세우게 되고, 기둥이 서는 순간 그 방은 다시 벽이 있는 보통 방으로 돌아간다.
데일리 컬처 #043 · 2026.09.08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 전시 안내 · 국립현대미술관 「관람시간 및 요금」 · 서울경제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거장전' 등 관람료 8000원 된다」 · 뉴스핌 「국립현대미술관, 17일 '서도호' 전시 얼리버드 예매 시작」 · 마리끌레르 코리아 「집을 떠나 세계를 떠돈 설치미술가 서도호, 이번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집을 짓는다」 · 경인일보 「[전시리뷰] '서도호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 제네시스 「아트 이니셔티브 MMCA 《서도호》」 · Tate 「The Genesis Exhibition: Do Ho Suh: Walk the House」 press release · 한국경제 「제네시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파트너십 체결」 · Artsy 「Market Brief: Do Ho Suh's Finely Crafted Sculptures Are Resurgent at Auction」 ·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 「2025 방문객 337만 명 돌파」
유료 관람객 하루 1,500명과 표 수입 15억 원은 공개 수치가 없어 필자가 잡은 값이다. 실제 회차별 정원과 유료·무료 관람객 구성은 공개돼 있지 않다. 개관일 143일은 167일에서 월요일 휴관을 뺀 값이며 명절 휴관은 반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