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는 1966년에 투어를 끊었고 한국 무대에는 끝내 서지 않았다. 그 밴드의 티셔츠와 LP가 지금 현대백화점 세 곳을 차례로 돈다. 입장권은 없고 계산대만 있다.
1.여의도 더현대 서울 5층 에픽서울에서 「비틀스 서울 에디션」 팝업이 9월 13일까지 열린다.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지하 행사장에서 8월 말 일주일을 먼저 열었고, 여의도가 두 번째 자리다. 다음은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주최는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운영 파트너는 엔터테크 스타트업 빅크(BIGC). 입장권은 따로 팔지 않고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문을 연다.
2.보도자료가 나온 날은 8월 20일. 하루 전 영국의 Apple Corps와 Universal Music Group(이하 유니버설)이 장기 독점 계약을 발표했다. 비틀스 굿즈를 만들고 라이선스를 주고 온라인에서 파는 일을 전 세계에서 유니버설이 도맡는다. 그전까지 유니버설 계열 Bravado가 비틀스 굿즈를 맡은 곳은 2022년 9월부터 북미 한 곳뿐이었다. 계약 금액은 어느 쪽도 밝히지 않았다.
3.6월 25일은 「글로벌 비틀스 데이」다. 1967년 이날 비틀스는 첫 전 세계 위성 생중계 「Our World」에서 「All You Need Is Love」를 불렀고, 2009년 한 팬이 제안해 기념일로 굳었다. 올해는 강남 도산의 한 공간에서 하루짜리 비틀스 행사가 열렸다. 아카이브 사진과 메시지 월, LP 판매대를 차린 자리. 두 달 뒤에 선 건 하루짜리가 아니라 백화점 세 곳을 도는 순회.
4.에픽서울은 더현대 서울이 2024년 3월에 연 730제곱미터짜리 자리다. 그중 360제곱미터는 아무것도 팔지 않는 휴식 공간이고, 나머지를 기간제 팝업이 돌아가며 쓴다. 동선은 앨범과 연도 순서. 나무 탁자 위에 키링과 배지가 줄지어 누웠고, 옆 진열대에는 LP가 꽂혔고, 벽 쪽 행거에는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가 걸렸다. 한가운데 둥근 단에는 붉은 입체 글자로 ALL YOU NEED IS LOVE를 쌓아 올렸다. 기념일이 기리는 바로 그 노래.

5.무역센터점 청음존에는 Bowers & Wilkins가 애비 로드 스튜디오 이름을 단 스피커와 헤드폰을 내놓았다. 이 회사 스피커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 조정실에 오래 놓여 있던 물건이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쓰면 행사장 안내 방송과 계산대 소리가 한 겹 뒤로 물러나고, 귀에는 60년 전 녹음만 남는다. 백화점 한가운데에서 드물게 조용해지는 몇 분. 행사장은 왜 이 몇 분에 공을 들였을까. 오래 서 있는 사람이 옆 행거에도 손을 뻗기 때문.

6.서울 에디션의 얼굴은 포스터 한 장. 애비 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넷의 뒤로 가로수 길이 뻗고, 그 끝에 남산과 N서울타워가 서 있다. 1969년 앨범 재킷의 런던 길에 서울의 산을 박아 넣은 그림. 판매대에는 남산을 배경으로 그린 서울 한정 티셔츠가 걸렸고, 옆 나라에서 들여온 일본판 굿즈도 함께 놓였다. 서울 이름이 붙은 물건은 서울에서만 산다.


7.비틀스는 1966년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Candlestick Park) 공연을 끝으로 유료 공연을 접었고, 한국에는 끝내 오지 않았다. 멤버의 목소리를 이 나라에서 직접 들은 건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잠실 주경기장에 선 2015년 5월이 처음이다. 그날 모인 관객이 4만5천여 명. 반세기 가까이 기다린 사람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찾아갈 장소가 이 나라에 없었다. 이 팝업이 먼저 파는 건 티셔츠가 아니라 가 볼 곳이다.

8.도시 이름을 박은 티셔츠를 여행 기념품으로 만든 건 공연장이 아니라 식당이었다. Hard Rock Cafe는 지점마다 도시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팔았고, 그 티셔츠가 식당보다 멀리 퍼졌다. 서울 에디션은 이 공식을 거꾸로 돌렸다. 여행자가 남의 도시 이름을 사 가는 게 아니라 서울 사람이 자기 도시 이름이 박힌 비틀스를 산다. 비틀스가 한 번도 오지 않은 도시가 굿즈에서만큼은 런던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

9.비틀스로 돈을 버는 주인은 셋이다. 존 레논(John Lennon)과 매카트니가 쓴 곡의 저작권은 1969년에 멤버들 손을 떠나 몇 번 팔린 끝에 Sony Music Publishing이 관리하고, 녹음한 원반은 EMI를 거쳐 유니버설 차지가 됐다. 셋째가 이름과 얼굴, 그리고 로고. 이것만큼은 멤버들이 1968년에 세운 Apple Corps가 놓지 않았다. 판매대의 티셔츠는 셋째 몫, 옆 칸의 LP는 둘째 몫.

10.8월 19일 계약이 바꾼 건 셋째 몫의 창구다. Apple Corps는 이름과 얼굴을 계속 갖되, 그걸로 물건을 만들고 팔고 빌려주는 일을 유니버설에 통째로 맡겼다. 원반과 굿즈가 이제 한 회사에서 나온다. 유니버설의 굿즈 사업이 들어 있는 부문은 2025년 매출이 외신 환산으로 약 9억1,500만 달러였다. 서울 팝업에서 LP 진열대와 티셔츠 행거가 한 동선에 놓인 건 우연이 아니다.
비틀스의 세 주인
11.행사장에서 티셔츠 한 장이 팔리면 돈은 어떻게 갈릴까. 팝업 판매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내 온라인에서 파는 라이선스 비틀스 티셔츠 정가가 4만9천 원 선이다. 백화점 판매대에 오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백화점 평균 실질 수수료율 19.1%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부가세까지 빼면 공급자 손에 3만5천 원 남짓이 남는다. 그 안에서 제작과 물류, 운영사와 권리자가 다시 나눈다. 나누는 비율은 비공개.
4만9천 원짜리 티셔츠 한 장이 갈리는 길
12.백화점 쪽에서 보면 임대료 없이 여는 매장. 행사장 팝업은 보통 수수료 계약이라 백화점은 팔린 만큼 떼어 가고, 팔다 남은 재고는 공급자가 떠안는다. 더 큰 계산은 사람을 5층까지 오게 하는 데 있고, 해시태그를 달아 사진을 올리면 현대백화점 상품권 추첨에 넣어 주는 이벤트도 그 계산 안에 있다. 빅크는 지난해 180억 원 시리즈A를 받은 회사로 회원 380만 명을 두고 있다. 이 회사에 티셔츠보다 오래 남는 건 럭키드로우와 SNS 이벤트로 쌓이는 팬 반응.

13.투어를 접은 비틀스가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사무실 옥상이었다. 1969년 1월, 런던 새빌 로(Savile Row)의 Apple Corps 건물 꼭대기. 그 건물이 2027년 7개 층짜리 명소 「The Beatles at 3 Savile Row」로 다시 열린다. 자료 보관실과 기획 전시, 「Let It Be」 녹음실 재현이 들어가고 팬 상점도 붙는다. 마지막 무대 아래층에 계산대가 선다.

14.이 일정들이 향하는 곳은 전부 2028년 4월. 샘 멘데스(Sam Mendes)가 멤버 넷 각자의 시점으로 만드는 영화 네 편이 그달 한꺼번에 개봉한다. Apple Corps가 극영화에 멤버들의 생애와 음악 권리를 통째로 내준 건 이번이 처음이고, 배급은 Sony Pictures가 맡는다. 곡을 관리하는 쪽도 같은 소니 그룹이라 영화가 노래를 쓰는 사용료는 그룹 안에서 돈다. 그 사이 10월 2일에는 새 믹스를 입힌 《Rubber Soul》 특별판이 나온다. 서울 팝업은 1년 반 뒤 극장으로 몰릴 관심을 미리 재 보는 자리다.
15.투어를 끊은 지 60년 된 밴드가 무대 대신 행거를 세우고 백화점 세 곳을 돈다. 표 대신 판매수수료가 오가고, 입장객 수 대신 해시태그가 쌓인다. 국내에서 같은 일을 해 보려면 기획보다 권리 지도가 먼저다. 이름과 얼굴, 녹음, 곡이 각각 누구 손에 있는지 한 장에 적어 봐야 행사장 설계가 시작되는데, 오래된 음반일수록 그 한 장을 채우는 데 시간이 든다. 비틀스 쪽도 셋 가운데 둘을 올해 여름에야 한 창구로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