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사람과 사진 찍는 사람이 함께 만든 리빙 브랜드가 9월 12일 남산 아래 3층 건물을 통째로 열었다. 1층에서 커피를 팔고, 2층에서 물건을 팔고, 3층에서 가구와 그림을 보여 준다. 이 브랜드 가격표의 맨 아래와 맨 위는 900배 넘게 벌어져 있다.
1.9월 12일, 서울 용산구 신흥로12길 1. 해방촌 비탈에 선 3층 건물 한 채를 리빙 브랜드 세이투셰(SAY TOUCHÉ)가 통째로 열었다. 1층은 카페 투셰, 2층은 옷·잡화·살림살이 200여 가지를 파는 매장, 3층은 브랜드가 모아 온 가구와 미술품을 보여 주는 방. 먹고, 둘러보고, 사고, 감상하는 일을 층마다 하나씩 맡겼다.
2.만든 사람은 둘.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사진가 임재린. 가수 이하이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로, 2021년 첫 컬렉션을 온라인에 올렸다. 이름은 펜싱에서 상대의 득점을 인정할 때 외치는 「투셰(touché)」에서 따왔고, 자기들이 만든 물건 앞에서 사람들이 그 말을 해 주길 바랐다고 한다. 첫 컬렉션은 세 가지. 맨드릴 원숭이 모양 액세서리 홀더, 페르시안 러그, 발자국이 찍힌 현관 매트.

3.1층 카페 간판은 스테인드글라스이고, 선반에는 스피커가 박혀 있다. 커피를 먼저 손에 쥐여 주고 계단을 오르게 하는 순서. 2층에는 들고 갈 수 있는 물건이 있고, 3층은 파는 곳이라기보다 보여 주는 곳. 인스타그램 팔로워 11만7천 명에게 사진으로는 못 보여 주던 장면, 물건이 방 안에 놓였을 때의 모습을 3층이 맡는다.
4.2024년 2월 이태원 녹사평대로에 연 반지층 쇼룸은 문을 열면 신발부터 벗겼다. 벨벳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서면 발밑에는 한쪽이 녹아 흘러내린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고, 벽마다 필름 모양 거울과 페이스타임 화면 거울이 얼굴을 비춘다. 탁자 다리는 복슬복슬한 털로 감쌌다. 현장 기사는 친구 집에 놀러 온 기분이라고 적었다. 신발을 벗은 손님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오래 머문 손님은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다음 손님을 데려온다.


5.새 매장은 그 쇼룸에서 남산 쪽으로 언덕을 더 올라온 자리다. 해방촌은 1945년 광복 뒤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집을 잃고 돌아온 사람들이 남산 아래 비탈에 판잣집을 지으며 생긴 동네. 한때 붐비던 신흥시장은 오래 쇠락했다가 2018년 서울시 재생사업이 들어갔고, 2022년에는 낡은 지붕을 걷어 내고 개방형 캐노피를 씌웠다. 큰길이 아니라 비탈 골목이라,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을 받는다.


6.세이투셰 물건 앞에 서면 농담부터 알아듣는다. 반듯한 네모 페르시안 러그를 리퀴파이 기능으로 비틀어 녹아내린 모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공장에 도안을 넘기는 마지막 날에야 나왔다. 갤러리 미러는 미술관 전시실 그림 속에서 관람객들이 바라보는 액자 자리를 거울로 비워 뒀다. 그 앞에 서면 명화 자리에 걸리는 건 내 얼굴. 이게 잘 팔리자 신문, 전광판, 페이스타임 화면을 본뜬 거울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거울은 산 사람이 자기 얼굴을 넣어 광고 사진을 찍어 주는 물건이다.

7.농담 뒤에는 공예가 버티고 있다. 자개 스툴은 남양주의 장인이 손으로 만든다. 앉지 말라는 문구를 달아 놓고, 정작 180kg까지 견디게 설계했다. 장난감처럼 보고 샀다가 가구로 쓰게 되는 물건. 웃음으로 문턱을 낮추고, 막상 써 보니 멀쩡하면 다음에 또 산다.

8.브랜드가 내건 말은 「작품과 제품의 경계에 있는 디자인」. 그림 한 점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뭔가를 들고 나간다. 미술관 굿즈숍은 전시를 본 사람에게 엽서를 판다. 이 브랜드는 물건 자체가 전시라서, 녹은 카펫을 손바닥만 하게 줄인 코스터가 엽서 노릇을 한다.

9.가격표를 줄 세우면 맨 아래가 1만2천 원짜리 리퀴파이드 코스터, 맨 위가 1,100만 원짜리 자개장이다. 900배가 넘는 폭. 같은 무늬를 크기만 바꿔 여러 칸에 걸어 둔 점이 눈에 띈다. 녹아내린 페르시안 무늬는 코스터와 러그로, 갤러리 미러는 탁상 거울로 작아지면서 가격도 함께 내려온다.
코스터부터 자개장까지 900배
10.3층 건물 하나를 돌리는 데 드는 월 고정비를 2,000만 원으로 잡아 보자(가정). 코스터로만 채우려면 하루 56개를 팔아야 하고, 자개장이라면 한 달에 두 개로 끝난다. 아래 칸은 손님 수를 늘리고, 위 칸은 한 건으로 한 달을 버틴다. 그런데 가격표 맨 위의 자개장을 화면 속 사진 한 장만 보고 결제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에 놓인 걸 봐야 산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매장이 필요한 이유 하나.
월 2,000만 원을 채우려면(가정)

11.정가는 그사이 올랐다. 2021년 청담 팝업 때 25만 원이던 자개 스툴이 지금 공식몰에서는 32만 원. 14만 원이던 갤러리 미러도 16만 원이 됐다.
12.오픈 이틀 뒤 시작해 9월 27일까지 여는 「투셰 패밀리 위크」는 할인을 아래 칸에 몰았다. 코스터와 러그는 20~25% 내리고 단종 품목은 절반까지 깎지만, 자개장과 로만 테이블은 5%에 그친다. 입구는 넓히고 꼭대기는 지키는 가격표.
13.농담을 살림살이에 입혀 파는 길은 먼저 간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의 Seletti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 사진가와 함께 만드는 잡지 「Toiletpaper」의 사진을 접시와 쿠션에 찍어 팔았다. 미술가의 농담을 식기 가격에 파는 방식. 음악인이 차린 브랜드는 보통 공연 굿즈나 옷에서 출발하는데, 세이투셰 공식몰 첫 화면에는 러그와 램프, 지갑과 실내화가 걸려 있다.
14.매장을 키우는 브랜드는 보통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로 내려온다. 세이투셰는 거꾸로 언덕을 올랐다. 2021년 온라인 첫 컬렉션, 그해 가을 청담 팝업, 2024년 녹사평대로의 반지층 쇼룸, 그리고 해방촌 비탈의 건물 한 채. 지나가는 사람을 포기한 대신 찾아온 사람에게 방 세 개를 내준다.

15.해방촌 비탈의 건물 한 채에 세이투셰는 커피 한 잔부터 1,100만 원짜리 자개장까지를 한 동선으로 올렸다. 국내에서 주택을 이런 매장으로 바꾸려 하면 건축물 용도에서 먼저 막힌다. 1층에서 커피를 팔려면 그 층이 근린생활시설이어야 하고, 용도를 바꾸는 순간 주차장 기준을 다시 따진다. 비탈 골목일수록 주차 한 면을 내기 어렵고, 1,000만 원대 가구를 싣고 내릴 차를 댈 자리도 마땅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