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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린 카펫이 깔린 거실 · 2024년 이태원 쇼룸. 한쪽이 흘러내린 페르시안 카펫 뒤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과 스피커가 박힌 장식장이 섰다. ⓒ헤이팝(HEYPOP)
녹아내린 카펫이 깔린 거실2024년 이태원 쇼룸. 한쪽이 흘러내린 페르시안 카펫 뒤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과 스피커가 박힌 장식장이 섰다. ⓒ헤이팝(HEYPOP)
데일리 컬처

1만2천 원 코스터와 1,100만 원 자개장을 한 건물에서 판다 (세이투셰 서울 플래그십)

2026.09.16

노래하는 사람과 사진 찍는 사람이 함께 만든 리빙 브랜드가 9월 12일 남산 아래 3층 건물을 통째로 열었다. 1층에서 커피를 팔고, 2층에서 물건을 팔고, 3층에서 가구와 그림을 보여 준다. 이 브랜드 가격표의 맨 아래와 맨 위는 900배 넘게 벌어져 있다.

1.9월 12일, 서울 용산구 신흥로12길 1. 해방촌 비탈에 선 3층 건물 한 채를 리빙 브랜드 세이투셰(SAY TOUCHÉ)가 통째로 열었다. 1층은 카페 투셰, 2층은 옷·잡화·살림살이 200여 가지를 파는 매장, 3층은 브랜드가 모아 온 가구와 미술품을 보여 주는 방. 먹고, 둘러보고, 사고, 감상하는 일을 층마다 하나씩 맡겼다.
2.만든 사람은 둘.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사진가 임재린. 가수 이하이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로, 2021년 첫 컬렉션을 온라인에 올렸다. 이름은 펜싱에서 상대의 득점을 인정할 때 외치는 「투셰(touché)」에서 따왔고, 자기들이 만든 물건 앞에서 사람들이 그 말을 해 주길 바랐다고 한다. 첫 컬렉션은 세 가지. 맨드릴 원숭이 모양 액세서리 홀더, 페르시안 러그, 발자국이 찍힌 현관 매트.
그라피티로 쓴 이름 · 2021년 팝업 현장. 전시장 벽에 그라피티로 브랜드 이름을 썼다. ⓒ헤이팝(HEYPOP)
그라피티로 쓴 이름2021년 팝업 현장. 전시장 벽에 그라피티로 브랜드 이름을 썼다. ⓒ헤이팝(HEYPOP)
3.1층 카페 간판은 스테인드글라스이고, 선반에는 스피커가 박혀 있다. 커피를 먼저 손에 쥐여 주고 계단을 오르게 하는 순서. 2층에는 들고 갈 수 있는 물건이 있고, 3층은 파는 곳이라기보다 보여 주는 곳. 인스타그램 팔로워 11만7천 명에게 사진으로는 못 보여 주던 장면, 물건이 방 안에 놓였을 때의 모습을 3층이 맡는다.
4.2024년 2월 이태원 녹사평대로에 연 반지층 쇼룸은 문을 열면 신발부터 벗겼다. 벨벳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서면 발밑에는 한쪽이 녹아 흘러내린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고, 벽마다 필름 모양 거울과 페이스타임 화면 거울이 얼굴을 비춘다. 탁자 다리는 복슬복슬한 털로 감쌌다. 현장 기사는 친구 집에 놀러 온 기분이라고 적었다. 신발을 벗은 손님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오래 머문 손님은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다음 손님을 데려온다.
초록색 가게 앞 · 2024년 이태원 쇼룸 입구. 가게 앞면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필기체 로고를 올렸다. ⓒ헤이팝(HEYPOP)
초록색 가게 앞2024년 이태원 쇼룸 입구. 가게 앞면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필기체 로고를 올렸다. ⓒ헤이팝(HEYPOP)
책 더미 위의 침대 · 같은 쇼룸의 침실. 책을 쌓아 받친 침대 앞에 실내화가 놓였고, 왼쪽 위에 필름 모양 거울이 걸렸다. ⓒ헤이팝(HEYPOP)
책 더미 위의 침대같은 쇼룸의 침실. 책을 쌓아 받친 침대 앞에 실내화가 놓였고, 왼쪽 위에 필름 모양 거울이 걸렸다. ⓒ헤이팝(HEYPOP)
5.새 매장은 그 쇼룸에서 남산 쪽으로 언덕을 더 올라온 자리다. 해방촌은 1945년 광복 뒤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집을 잃고 돌아온 사람들이 남산 아래 비탈에 판잣집을 지으며 생긴 동네. 한때 붐비던 신흥시장은 오래 쇠락했다가 2018년 서울시 재생사업이 들어갔고, 2022년에는 낡은 지붕을 걷어 내고 개방형 캐노피를 씌웠다. 큰길이 아니라 비탈 골목이라,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을 받는다.
1953 신흥시장 · 해방촌 신흥시장 입구. 낡은 지붕을 걷어 낸 자리에 개방형 캐노피를 씌웠다. ⓒLee Jeong Woo(이정우) / 문화체육관광부 · CC BY-SA 4.0
1953 신흥시장해방촌 신흥시장 입구. 낡은 지붕을 걷어 낸 자리에 개방형 캐노피를 씌웠다. ⓒLee Jeong Woo(이정우) / 문화체육관광부 · CC BY-SA 4.0
벚나무 너머의 타워 · 해방촌 언덕길. 벚나무 너머로 N서울타워가 보인다. ⓒLee Jeong Woo(이정우) / 문화체육관광부 · CC BY-SA 4.0
벚나무 너머의 타워해방촌 언덕길. 벚나무 너머로 N서울타워가 보인다. ⓒLee Jeong Woo(이정우) / 문화체육관광부 · CC BY-SA 4.0
6.세이투셰 물건 앞에 서면 농담부터 알아듣는다. 반듯한 네모 페르시안 러그를 리퀴파이 기능으로 비틀어 녹아내린 모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공장에 도안을 넘기는 마지막 날에야 나왔다. 갤러리 미러는 미술관 전시실 그림 속에서 관람객들이 바라보는 액자 자리를 거울로 비워 뒀다. 그 앞에 서면 명화 자리에 걸리는 건 내 얼굴. 이게 잘 팔리자 신문, 전광판, 페이스타임 화면을 본뜬 거울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거울은 산 사람이 자기 얼굴을 넣어 광고 사진을 찍어 주는 물건이다.
셀카를 권하는 거울 · 페이스타임 미러 01. 영상통화 화면 모양 거울 위 알림창에 「Wanna take a selfie?」라고 적었다. ⓒSAY TOUCHÉ
셀카를 권하는 거울페이스타임 미러 01. 영상통화 화면 모양 거울 위 알림창에 「Wanna take a selfie?」라고 적었다. ⓒSAY TOUCHÉ
7.농담 뒤에는 공예가 버티고 있다. 자개 스툴은 남양주의 장인이 손으로 만든다. 앉지 말라는 문구를 달아 놓고, 정작 180kg까지 견디게 설계했다. 장난감처럼 보고 샀다가 가구로 쓰게 되는 물건. 웃음으로 문턱을 낮추고, 막상 써 보니 멀쩡하면 다음에 또 산다.
자개 스툴 · 검은 좌판에 자개 조각을 소용돌이처럼 박았다. ⓒ헤이팝(HEYPOP)
자개 스툴검은 좌판에 자개 조각을 소용돌이처럼 박았다. ⓒ헤이팝(HEYPOP)
8.브랜드가 내건 말은 「작품과 제품의 경계에 있는 디자인」. 그림 한 점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뭔가를 들고 나간다. 미술관 굿즈숍은 전시를 본 사람에게 엽서를 판다. 이 브랜드는 물건 자체가 전시라서, 녹은 카펫을 손바닥만 하게 줄인 코스터가 엽서 노릇을 한다.
녹아내린 러그들 · 리퀴파이드 러그. 네모난 페르시안 문양을 녹이듯 비틀었다. ⓒSAY TOUCHÉ
녹아내린 러그들리퀴파이드 러그. 네모난 페르시안 문양을 녹이듯 비틀었다. ⓒSAY TOUCHÉ
9.가격표를 줄 세우면 맨 아래가 1만2천 원짜리 리퀴파이드 코스터, 맨 위가 1,100만 원짜리 자개장이다. 900배가 넘는 폭. 같은 무늬를 크기만 바꿔 여러 칸에 걸어 둔 점이 눈에 띈다. 녹아내린 페르시안 무늬는 코스터와 러그로, 갤러리 미러는 탁상 거울로 작아지면서 가격도 함께 내려온다.
코스터부터 자개장까지 900배
단위 원 · 2026년 9월 공식몰 정가 · 막대는 로그 눈금 리퀴파이드 코스터 12,000 갤러리 테이블 미러 48,000 리퀴파이드 러그 68,000 갤러리 미러 160,000 자개 스툴 320,000 도어 미러 920,000 테니스 라켓 거울 1,690,000 로만 테이블 7,300,000 자개장 01 11,000,000 할인 전 정가다. 로그 눈금이라 막대 길이 차이보다 실제 가격 차이가 훨씬 크다.
리퀴파이드 코스터와 러그, 갤러리 미러와 갤러리 테이블 미러는 같은 디자인을 크기만 달리해 판다.
10.3층 건물 하나를 돌리는 데 드는 월 고정비를 2,000만 원으로 잡아 보자(가정). 코스터로만 채우려면 하루 56개를 팔아야 하고, 자개장이라면 한 달에 두 개로 끝난다. 아래 칸은 손님 수를 늘리고, 위 칸은 한 건으로 한 달을 버틴다. 그런데 가격표 맨 위의 자개장을 화면 속 사진 한 장만 보고 결제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에 놓인 걸 봐야 산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매장이 필요한 이유 하나.
월 2,000만 원을 채우려면(가정)
단위 개 · 한 품목 매출로만 채울 때 · 막대는 로그 눈금 리퀴파이드 코스터 (1만2천 원) 1,667 갤러리 미러 (16만 원) 125 자개 스툴 (32만 원) 63 도어 미러 (92만 원) 22 자개장 01 (1,100만 원) 2 월 고정비 2,000만 원은 가정한 값이고, 원가와 부가세를 빼지 않은 매출 기준이다. 코스터 1,667개는 하루 56개꼴이다.
코스터 1,667개와 자개장 2개가 같은 매출이다.
스피커를 품은 자개장 · 자개장 01. 폭 204cm 장에 스피커 여섯 개를 박았다. ⓒSAY TOUCHÉ
스피커를 품은 자개장자개장 01. 폭 204cm 장에 스피커 여섯 개를 박았다. ⓒSAY TOUCHÉ
11.정가는 그사이 올랐다. 2021년 청담 팝업 때 25만 원이던 자개 스툴이 지금 공식몰에서는 32만 원. 14만 원이던 갤러리 미러도 16만 원이 됐다.
12.오픈 이틀 뒤 시작해 9월 27일까지 여는 「투셰 패밀리 위크」는 할인을 아래 칸에 몰았다. 코스터와 러그는 20~25% 내리고 단종 품목은 절반까지 깎지만, 자개장과 로만 테이블은 5%에 그친다. 입구는 넓히고 꼭대기는 지키는 가격표.
13.농담을 살림살이에 입혀 파는 길은 먼저 간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의 Seletti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 사진가와 함께 만드는 잡지 「Toiletpaper」의 사진을 접시와 쿠션에 찍어 팔았다. 미술가의 농담을 식기 가격에 파는 방식. 음악인이 차린 브랜드는 보통 공연 굿즈나 옷에서 출발하는데, 세이투셰 공식몰 첫 화면에는 러그와 램프, 지갑과 실내화가 걸려 있다.
14.매장을 키우는 브랜드는 보통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로 내려온다. 세이투셰는 거꾸로 언덕을 올랐다. 2021년 온라인 첫 컬렉션, 그해 가을 청담 팝업, 2024년 녹사평대로의 반지층 쇼룸, 그리고 해방촌 비탈의 건물 한 채. 지나가는 사람을 포기한 대신 찾아온 사람에게 방 세 개를 내준다.
러그로 쓴 글자 · 2021년 가을 청담 팝업. 페르시안 문양 러그로 「I ♥ 투셰」를 오려 벽에 붙였다. ⓒ헤이팝(HEYPOP)
러그로 쓴 글자2021년 가을 청담 팝업. 페르시안 문양 러그로 「I ♥ 투셰」를 오려 벽에 붙였다. ⓒ헤이팝(HEYPOP)
15.해방촌 비탈의 건물 한 채에 세이투셰는 커피 한 잔부터 1,100만 원짜리 자개장까지를 한 동선으로 올렸다. 국내에서 주택을 이런 매장으로 바꾸려 하면 건축물 용도에서 먼저 막힌다. 1층에서 커피를 팔려면 그 층이 근린생활시설이어야 하고, 용도를 바꾸는 순간 주차장 기준을 다시 따진다. 비탈 골목일수록 주차 한 면을 내기 어렵고, 1,000만 원대 가구를 싣고 내릴 차를 댈 자리도 마땅치 않다.
데일리 컬처 #048 · 2026.09.16
출처 · PAP Magazine · KMJ · 헤이팝(HEYPOP) · 엘르 코리아 · 29CM 브랜드 코멘터리 · 시사매거진 · 세이투셰 공식몰(saytouche.kr) · 세이투셰 공식 인스타그램(@say_touche) · Wikipedia 「Haebangchon」 · Wikimedia Commons
매장 사진은 9월 12일 문을 연 서울 플래그십이 아니라 2021년 청담 팝업과 2024년 이태원 쇼룸, 제품 사진이다. 가격은 2026년 9월 공식몰의 할인 전 정가이며, 2021년 가격은 당시 팝업 보도 기준이다. 월 고정비 2,000만 원은 가정한 값이고 이 매장의 실제 임대료와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