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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지붕을 얹은 본관 · 1982년에 문을 연 호암미술관 본관. 석조 건물 위에 기와지붕을 올렸다. ⓒJocelyndurrey · CC BY-SA 4.0
기와지붕을 얹은 본관1982년에 문을 연 호암미술관 본관. 석조 건물 위에 기와지붕을 올렸다. ⓒJocelyndurrey · CC BY-SA 4.0
데일리 컬처

관람권 25,000원짜리 전시가 지도도 동선도 주지 않는다 (2026 아트스펙트럼)

2026.09.18

25년 동안 국내 신진작가를 뽑아 오던 전시가 올해 아시아 10개국 23명(팀)으로 늘었다. 장소도 서울 한남동에서 경기 용인의 옛 고미술 미술관으로 옮겼다. 파리의 기관과 함께 짠 명단이고, 63점 가운데 26점은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한다.

1.9월 1일에 열어 12월 27일에 닫는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의 2026 아트스펙트럼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는 전시실 두 곳과 야외에 작품 63점을 흩어 놓았다. 참여한 창작자는 아시아 10개국에서 온 23명(팀). 관람권은 25,000원이고, 다 보는 데 4~5시간이 걸린다는 게 미술관 안내다.
2.아트스펙트럼은 원래 신인을 찾는 자리였다. 리움미술관이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시작해 45세 이하 한국 작가를 격년으로 뽑았고, 2014년에는 작가상까지 만들어 1회 수상자로 이완을 골랐다. 참여 범위가 아시아로 넓어진 게 2024년. 올해는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공동으로 기획했다. 명단을 짠 사람은 그쪽 큐레이터 위고 비트라니(Hugo Vitrani)와 곽준영 리움미술관 현대미술연구실장, 전효경 큐레이터 셋.
3.작품은 매표소보다 먼저 나온다. 차를 대는 주차장에 사이드 코어의 「타임 게이트」가 섰는데, 일본 시간제 주차장에서 쓰는 노란 간판을 그대로 가져온 물건이다. 시동을 끄고 문을 열면 그 앞이 이미 전시장.
주차장의 노란 간판 · 사이드 코어의 「타임 게이트」. 일본 시간제 주차장 간판을 미술관 주차장에 옮겨 세웠다.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주차장의 노란 간판사이드 코어의 「타임 게이트」. 일본 시간제 주차장 간판을 미술관 주차장에 옮겨 세웠다.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4.앞뜰에서는 레이첼 윤의 「퍼레이드 파라디 II」가 돈다. 인공 야자수다. 본관 외벽에는 요코야마 유이치(横山裕一)의 만화 이미지 「플라자」가 붙었다. 화강암과 기와로 지은 1982년 건물이 열대 나무와 만화를 한꺼번에 뒤집어썼다.
앞뜰에서 도는 야자수 · 레이첼 윤의 「퍼레이드 파라디 II」. 회전하는 인공 야자수를 본관 앞 잔디에 세웠다. ⓒ김연제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앞뜰에서 도는 야자수레이첼 윤의 「퍼레이드 파라디 II」. 회전하는 인공 야자수를 본관 앞 잔디에 세웠다. ⓒ김연제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5.안내 데스크에서 받는 것은 없다. 지도도, 추천 동선도, 오디오가이드도 주지 않는다. 자기가 지금 몇 번째 방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문을 하나씩 여는 방식이고, 앞뜰과 주차장과 카페 위 정원에도 작품이 흩어져 있어 밖에 나왔다고 끝나지도 않는다. 4~5시간이 걸리는 까닭은 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 구조 때문.
매달린 달 · 야마다 스즈코(山田紗子)의 설치작품. 건축가가 만든 구조물이 전시실 안에 걸렸다. ⓒ이정형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매달린 달야마다 스즈코(山田紗子)의 설치작품. 건축가가 만든 구조물이 전시실 안에 걸렸다. ⓒ이정형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6.곽 실장은 이 전시를 두고 엄숙한 호암의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꿔 보고 싶었다고 했다. 큐레이터가 정한 주제 하나로 작가들의 작품을 억지스럽게 묶어 놓는 뻔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트라니 쪽은 미술관 안팎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볼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전 큐레이터가 관객에게 남긴 주문은 한 줄. 자유롭게 봐 달라.
전시실 안의 설치 · 최리아의 설치 전경. 전시실 두 곳과 야외에 작품 63점이 흩어져 있다. ⓒ김연제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전시실 안의 설치최리아의 설치 전경. 전시실 두 곳과 야외에 작품 63점이 흩어져 있다. ⓒ김연제 / 호암미술관 · 한국경제
7.지도를 주지 않는 결정은 취향처럼 보이지만 관람 시간을 늘린다. 전시를 한 시간에 끝내는 사람과 다섯 시간을 쓰는 사람은 표값을 똑같이 내고도 다른 계산을 한다. 오래 머문 쪽이 25,000원을 덜 아까워하고, 카페와 아트숍을 한 번 더 지난다. 미술관이 로비 벽화까지 전시 구역에 넣은 것도 같은 계산.
8.아시아라는 묶음도 값을 만든다. 2024년 영국 터너상을 받은 자슬린 카우어(Jasleen Kaur)의 「소시오모빌」이 걸리고, 1980년대 뉴욕에서 그린 중국계 미국 화가 마틴 웡의 그림이 나온다. 국내 신인만 모은 명단으로 25,000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유럽 기관의 이름과 터너상 수상자가 그 가격을 떠받친다.
아트스펙트럼 25년
리움미술관이 2001년에 시작한 발굴전이 바뀌어 온 경로 2001년 · 호암갤러리 45세 이하 한국 작가를 격년으로 뽑는 발굴전 2014년 · 작가상 신설 1회 수상자 이완 · 2022년 차재민 2024년 · 리움 《드림 스크린》 참여 범위를 한국에서 아시아로 넓힘 2026년 · 호암미술관 파리 팔레 드 도쿄와 공동기획 · 10개국 23명(팀) 작품 63점 가운데 26점이 새로 만든 것 호암미술관에서 아트스펙트럼이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연도와 수치는 미술관 발표와 보도 기준이다.
9.25,000원에는 전시만 들어 있지 않다. 전통정원 희원과 옛돌정원, 묵시암이 같은 표에 묶여 있어, 미술관은 전시가 아니라 하루를 판다. 청년과 학생, 청소년, 65세 이상은 절반 값.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국제 거장전 관람료를 8,000원으로 올린 것과 견주면 세 배가 넘는 가격.
10.표가 얼마나 팔릴지는 지난 기록에서 어림잡을 수 있다. 2023년 재개관전이던 김환기 회고전이 유료 관람객 약 15만 명을 모아 이 미술관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 월요일 휴관을 빼고 세면 여는 날 하루에 1,500명꼴이었다. 아트스펙트럼이 실제로 문을 여는 날은 101일. 하루 600명이 들어오고 할인 관람객을 섞어 평균 20,000원을 받는다고 치면 표 수입은 12억 원쯤 된다(추정).
문 여는 101일 동안 들어올 표 수입 (추정)
평균 관람권 20,000원 가정 · 월요일과 추석 당일 휴관을 뺀 101일 하루 300명 3.0만 명 · 약 6억 원 하루 600명 6.1만 명 · 약 12억 원 하루 1,500명 (2023년 김환기전 속도) 15.2만 명 · 약 30억 원 2023년 김환기 회고전은 문 여는 100일 동안 유료 관람객 약 15만 명을 모았다. 일반 25,000원에 절반 값 관람객이 섞인다고 보고 평균 20,000원으로 계산했다. 미술관이 공개한 수치가 아니라 필자가 계산한 값이다.
세 줄 모두 가정이다. 실제 관람객 수는 미술관이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
11.정작 무거운 쪽은 표값이 아니라 표에 붙는 비용. 미술관 주소는 에버랜드로 562번길이고, 정문 옆이 놀이공원이다. 차로 가면 주차비가 하루 최대 15,000원 붙고, 대중교통을 쓰면 전대리나 에버랜드 정류장에서 셔틀로 갈아타야 한다. 서울 한남동에서 출발하는 셔틀은 하루 두 번뿐이라 표를 예매한 뒤 따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둘이 가면 표 5만 원에 반나절.
담장 너머의 이웃 · 호암미술관 주소는 에버랜드로 562번길이다. 사진은 같은 부지에 있는 에버랜드의 여름 행사. ⓒNagyman · CC BY-SA 2.0
담장 너머의 이웃호암미술관 주소는 에버랜드로 562번길이다. 사진은 같은 부지에 있는 에버랜드의 여름 행사. ⓒNagyman · CC BY-SA 2.0
12.호암미술관이 이렇게 쓰이는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2년에 문을 열고 40년 가까이 고미술을 걸던 곳이고, 2023년 재개관 뒤로 현대미술 쪽에 무게를 옮겼다.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이 서울 한남동에서 동시대 미술을 맡는 동안, 용인은 기와지붕과 전통정원을 지키는 자리였다. 그 건물 외벽에 지금 만화가 붙어 있다.
한남동의 본진 ·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로비. 같은 재단이 두 미술관을 함께 운영한다. ⓒtakato marui · CC BY-SA 2.0
한남동의 본진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로비. 같은 재단이 두 미술관을 함께 운영한다. ⓒtakato marui · CC BY-SA 2.0
나선 계단 · 리움미술관의 원형 계단을 위에서 본 장면. 창마다 빛이 갈라지는 필름이 붙어 있다. ⓒlumoplank · CC0
나선 계단리움미술관의 원형 계단을 위에서 본 장면. 창마다 빛이 갈라지는 필름이 붙어 있다. ⓒlumoplank · CC0
13.함께 기획한 팔레 드 도쿄는 성격이 정반대.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지은 석조 건물에 2002년 현대미술 공간으로 들어갔고, 내부는 마감하지 않은 콘크리트 그대로 쓴다. 건물 앞 계단과 광장은 오래전부터 스케이트보더가 점유해 왔다. 엄숙한 것을 흔들어 본 경험이 그쪽에는 20년 넘게 쌓여 있다.
파리의 공동기획자 ·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연못, 그 너머의 에펠탑. 1937년 만국박람회 건물이다. ⓒDiscoA340 · CC BY-SA 4.0
파리의 공동기획자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연못, 그 너머의 에펠탑. 1937년 만국박람회 건물이다. ⓒDiscoA340 · CC BY-SA 4.0
미술관 앞 돌바닥 · 팔레 드 도쿄 앞 광장. 오래전부터 스케이트보더가 이 바닥을 써 왔다. ⓒClément · CC BY-SA 2.0
미술관 앞 돌바닥팔레 드 도쿄 앞 광장. 오래전부터 스케이트보더가 이 바닥을 써 왔다. ⓒClément · CC BY-SA 2.0
14.이 전시에서 진짜로 바뀐 것은 명단이 아니라 가격표다. 신인을 찾아 보여 주는 일은 원래 미술관이 돈을 쓰는 쪽이었다. 발굴전에 국제 공동기획과 커미션 신작 26점을 얹는 순간 그 행사는 표를 팔아야 하는 전시가 되고, 표를 팔려면 검색되는 이름이 필요해진다. 터너상 수상자가 명단에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15.25년 동안 국내 신인을 뽑던 전시가 아시아 10개국으로 넓어져 놀이공원 옆 미술관에서 넉 달 동안 열리고, 관람권은 25,000원이다. 하루 600명이 들어오면 표 수입은 12억 원쯤 된다(추정). 같은 걸 국내에서 해 보려는 기관이 먼저 걸리는 건 이름값이다. 신인만 모은 명단으로는 2만 원대 표가 안 팔리고, 그렇다고 이름 있는 작가를 부르면 발굴전이라는 명분이 사라진다. 두 가지를 한 전시에 넣으려면 유럽 기관과 공동기획하는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 값은 어느 미술관도 공개하지 않는다.
데일리 컬처 #050 · 2026.09.18
출처 · 호암미술관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 전시·방문 안내 · 데일리아트(2026.08) · 한국경제 「앞뜰에 야자수, 한옥 옆엔 만화」(2026.09.13)·「고풍스런 호암미술관에 몰려든 청년 작가들」(2026.09.14) · 뉴시스 「리움·호암미술관, 하반기 전시 공개」(2026.07.07) · 파이낸셜투데이(2026.08) · 한국경제 「김환기의 힘, 호암미술관 전시 15만명 유료관객 동원」(2023.09.16) · 한국일보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에 이완씨」(2014.05.23) · 마리끌레르 코리아 국립현대미술관 관람료 인상 기사(2026.01) · Palais de Tokyo · Wikimedia Commons
표 수입은 공개된 관람권 가격에 가정한 관람객 수를 곱한 추정치다. 미술관은 이 전시의 관람객 수나 제작비를 공개하지 않았다. 평균 관람권 20,000원은 일반 25,000원에 절반 값 관람객이 섞인다고 보고 잡은 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