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국내 신진작가를 뽑아 오던 전시가 올해 아시아 10개국 23명(팀)으로 늘었다. 장소도 서울 한남동에서 경기 용인의 옛 고미술 미술관으로 옮겼다. 파리의 기관과 함께 짠 명단이고, 63점 가운데 26점은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한다.
1.9월 1일에 열어 12월 27일에 닫는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의 2026 아트스펙트럼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는 전시실 두 곳과 야외에 작품 63점을 흩어 놓았다. 참여한 창작자는 아시아 10개국에서 온 23명(팀). 관람권은 25,000원이고, 다 보는 데 4~5시간이 걸린다는 게 미술관 안내다.
2.아트스펙트럼은 원래 신인을 찾는 자리였다. 리움미술관이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시작해 45세 이하 한국 작가를 격년으로 뽑았고, 2014년에는 작가상까지 만들어 1회 수상자로 이완을 골랐다. 참여 범위가 아시아로 넓어진 게 2024년. 올해는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공동으로 기획했다. 명단을 짠 사람은 그쪽 큐레이터 위고 비트라니(Hugo Vitrani)와 곽준영 리움미술관 현대미술연구실장, 전효경 큐레이터 셋.
3.작품은 매표소보다 먼저 나온다. 차를 대는 주차장에 사이드 코어의 「타임 게이트」가 섰는데, 일본 시간제 주차장에서 쓰는 노란 간판을 그대로 가져온 물건이다. 시동을 끄고 문을 열면 그 앞이 이미 전시장.

4.앞뜰에서는 레이첼 윤의 「퍼레이드 파라디 II」가 돈다. 인공 야자수다. 본관 외벽에는 요코야마 유이치(横山裕一)의 만화 이미지 「플라자」가 붙었다. 화강암과 기와로 지은 1982년 건물이 열대 나무와 만화를 한꺼번에 뒤집어썼다.

5.안내 데스크에서 받는 것은 없다. 지도도, 추천 동선도, 오디오가이드도 주지 않는다. 자기가 지금 몇 번째 방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문을 하나씩 여는 방식이고, 앞뜰과 주차장과 카페 위 정원에도 작품이 흩어져 있어 밖에 나왔다고 끝나지도 않는다. 4~5시간이 걸리는 까닭은 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 구조 때문.

6.곽 실장은 이 전시를 두고 엄숙한 호암의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꿔 보고 싶었다고 했다. 큐레이터가 정한 주제 하나로 작가들의 작품을 억지스럽게 묶어 놓는 뻔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트라니 쪽은 미술관 안팎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볼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전 큐레이터가 관객에게 남긴 주문은 한 줄. 자유롭게 봐 달라.

7.지도를 주지 않는 결정은 취향처럼 보이지만 관람 시간을 늘린다. 전시를 한 시간에 끝내는 사람과 다섯 시간을 쓰는 사람은 표값을 똑같이 내고도 다른 계산을 한다. 오래 머문 쪽이 25,000원을 덜 아까워하고, 카페와 아트숍을 한 번 더 지난다. 미술관이 로비 벽화까지 전시 구역에 넣은 것도 같은 계산.
8.아시아라는 묶음도 값을 만든다. 2024년 영국 터너상을 받은 자슬린 카우어(Jasleen Kaur)의 「소시오모빌」이 걸리고, 1980년대 뉴욕에서 그린 중국계 미국 화가 마틴 웡의 그림이 나온다. 국내 신인만 모은 명단으로 25,000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유럽 기관의 이름과 터너상 수상자가 그 가격을 떠받친다.
아트스펙트럼 25년
9.25,000원에는 전시만 들어 있지 않다. 전통정원 희원과 옛돌정원, 묵시암이 같은 표에 묶여 있어, 미술관은 전시가 아니라 하루를 판다. 청년과 학생, 청소년, 65세 이상은 절반 값.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국제 거장전 관람료를 8,000원으로 올린 것과 견주면 세 배가 넘는 가격.
10.표가 얼마나 팔릴지는 지난 기록에서 어림잡을 수 있다. 2023년 재개관전이던 김환기 회고전이 유료 관람객 약 15만 명을 모아 이 미술관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 월요일 휴관을 빼고 세면 여는 날 하루에 1,500명꼴이었다. 아트스펙트럼이 실제로 문을 여는 날은 101일. 하루 600명이 들어오고 할인 관람객을 섞어 평균 20,000원을 받는다고 치면 표 수입은 12억 원쯤 된다(추정).
문 여는 101일 동안 들어올 표 수입 (추정)
11.정작 무거운 쪽은 표값이 아니라 표에 붙는 비용. 미술관 주소는 에버랜드로 562번길이고, 정문 옆이 놀이공원이다. 차로 가면 주차비가 하루 최대 15,000원 붙고, 대중교통을 쓰면 전대리나 에버랜드 정류장에서 셔틀로 갈아타야 한다. 서울 한남동에서 출발하는 셔틀은 하루 두 번뿐이라 표를 예매한 뒤 따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둘이 가면 표 5만 원에 반나절.

12.호암미술관이 이렇게 쓰이는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2년에 문을 열고 40년 가까이 고미술을 걸던 곳이고, 2023년 재개관 뒤로 현대미술 쪽에 무게를 옮겼다.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이 서울 한남동에서 동시대 미술을 맡는 동안, 용인은 기와지붕과 전통정원을 지키는 자리였다. 그 건물 외벽에 지금 만화가 붙어 있다.


13.함께 기획한 팔레 드 도쿄는 성격이 정반대.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지은 석조 건물에 2002년 현대미술 공간으로 들어갔고, 내부는 마감하지 않은 콘크리트 그대로 쓴다. 건물 앞 계단과 광장은 오래전부터 스케이트보더가 점유해 왔다. 엄숙한 것을 흔들어 본 경험이 그쪽에는 20년 넘게 쌓여 있다.


14.이 전시에서 진짜로 바뀐 것은 명단이 아니라 가격표다. 신인을 찾아 보여 주는 일은 원래 미술관이 돈을 쓰는 쪽이었다. 발굴전에 국제 공동기획과 커미션 신작 26점을 얹는 순간 그 행사는 표를 팔아야 하는 전시가 되고, 표를 팔려면 검색되는 이름이 필요해진다. 터너상 수상자가 명단에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15.25년 동안 국내 신인을 뽑던 전시가 아시아 10개국으로 넓어져 놀이공원 옆 미술관에서 넉 달 동안 열리고, 관람권은 25,000원이다. 하루 600명이 들어오면 표 수입은 12억 원쯤 된다(추정). 같은 걸 국내에서 해 보려는 기관이 먼저 걸리는 건 이름값이다. 신인만 모은 명단으로는 2만 원대 표가 안 팔리고, 그렇다고 이름 있는 작가를 부르면 발굴전이라는 명분이 사라진다. 두 가지를 한 전시에 넣으려면 유럽 기관과 공동기획하는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 값은 어느 미술관도 공개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