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매가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영화를 튼다. 그런데 30년 동안 상영작이 두 배로 느는 사이 관객은 첫 회 수준에 머물렀고, 열흘짜리 행사 예산의 절반은 부산시가 댄다. 1만 원짜리 표 뒤에 있는 계산을 따라가 본다.
1.어제 오후 2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일반 상영작 예매가 열렸다. 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이고, 59개국에서 온 310여 편을 튼다. 2019년 이후 가장 큰 판. 그런데 관객 수는 30년 전 첫 회를 아직 넘지 못했다.
2.표는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한 곳에서만 판다. 일반 상영작이 1만 원, 개막식은 3만 원. 한 상영 코드에 2매까지만 잡히고, 같은 계정으로 여러 기기에서 들어오면 막힌다. 개막작은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로 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수요일에 열던 개막을 올해는 화요일로 하루 당겼는데, 관객이 개막일부터 주말까지 몰린다는 게 영화제의 설명이다.

3.본무대는 해운대 센텀시티의 영화의전당(Busan Cinema Center). 오스트리아 설계사무소 Coop Himmelb(l)au가 그렸고 2011년 문을 열었으며, 공사비로 1,678억 원이 들었다. 지붕 한쪽이 기둥 없이 85m를 허공으로 뻗는데, 캔틸레버 지붕으로는 기네스 세계기록이다.

4.해가 지면 지붕 밑면에 박힌 LED 2만 3,910개가 켜진다. 그 아래가 야외극장이고, 객석 4,000석이 지붕 아래로 계단처럼 내려간다. 가을 저녁이라 강바람이 객석 사이로 들고, 화면보다 머리 위 천장이 먼저 밝다. 실내에서 가장 큰 하늘연극장이 841석이니, 한 번에 4,000명을 앉힐 수 있는 자리는 이 야외극장 하나뿐. 개막식을 매년 이 객석에서 여는 이유.

5.영화제가 이 건물 하나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지난해에는 극장 7곳, 스크린 31개를 썼고 올해도 영화의전당과 센텀시티 멀티플렉스, 해운대, 그리고 첫 회가 열린 남포동까지 흩어져 상영한다. 관객과의 대화(GV)만 지난해 323회, 감독이나 배우가 하루 32번꼴로 관객 앞에 섰다는 이야기.

6.사람을 부산까지 부르는 건 영화보다 '처음'이다. 지난해 상영작 가운데 90편이 이 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을 했다. 몇 달 뒤면 극장이나 OTT에 걸릴 영화도 많지만, 만든 사람이 스크린 앞에 서서 질문을 받는 방은 그날 한 번뿐. 주말 멀티플렉스 일반 관람료가 1만 5천 원 선이니, 영화제 표는 더 싸면서 감독과의 대화까지 붙는다.
7.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매기 강(Maggie Kang) 감독이 처음 이 영화제를 찾았을 때, 영화의전당 야외 행사장 객석에서는 영화 캐릭터가 인쇄된 과자 봉지가 올라왔다. 이미 넷플릭스로 공개된 영화였는데도 객석은 비지 않았다. 화면은 집에 있어도, 그 화면을 만든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경험은 부산에만 있다.

8.지난해부터는 상도 생겼다. 30회를 맞아 경쟁 부문을 새로 만들었고, 올해도 아시아 영화 14편이 대상을 다툰다. 대상작은 미국 아카데미 출품 자격을 얻는다고 영화제는 밝혔다. 같은 기간 옆 전시장에서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이 열리는데, 지난해 54개국 1,222개사가 배지를 달았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옆 건물에서는 판권이 오간다.

9.이 열흘을 여는 데 드는 돈은 지난해 본행사 기준 132억 5천만 원. 절반인 66억 원을 부산시가 냈다. 국비는 5억 4,700만 원으로 전체의 4.1%, 2020년의 3분의 1 수준까지 내려왔다.
본행사 예산 132억 5천만 원은 어디서 오나 (2025년)
10.표로는 얼마나 메울까. 올해 가격 1만 원을 지난해 영화제 관객 16만 2,405명에 곱하면 16억 원 남짓, 본행사 예산의 12% 선이다(추정). 경로 할인과 초청 좌석이 섞이니 실제 입장 수입은 이보다 적다. 나머지 40억 원대를 협찬과 광고, 굿즈, 전년도 이월금으로 채워 맞춘 지난해 결산은 800만 원 적자였다. 한 해 전에는 2억 9,400만 원 흑자.
11.다른 나라 영화제와 나란히 놓으면 무게중심이 다르다. 토론토 영화제는 정부 지원이 11%이고, 베를린 영화제는 수입의 3분의 1을 표와 기업 협찬에서 번다. 칸은 필름 마켓을 따로 떼어 돈을 버는 사업으로 굴린다. 부산은 시 예산 절반에 기대고, 그 돈은 해마다 시의회 심사를 새로 받는다.
12.시가 절반을 대는 이유는 표가 아니라 도시에 떨어지는 돈. 지난해 배지를 받아 등록한 게스트만 7,036명, 그중 해외 게스트가 영화제와 마켓을 합쳐 2,739명이었다. 이들과 관객이 열흘 동안 해운대 일대 호텔에 묵고 밥을 사 먹는다. 영화제 장부는 적자여도 도시 장부는 흑자일 수 있는 구조.
13.첫 회는 1996년 9월 13일 남포동 극장가에서 열렸다. 31개국 173편에 관객 18만 4,071명.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영화제였고, 그 극장 골목이 지금의 비프광장. 올해도 커뮤니티 상영 일부는 이 골목으로 돌아온다.


14.30년 뒤인 지난해 상영작은 328편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공식 선정작을 본 관객은 17만 5,889명, 첫 회보다 8천 명쯤 적다. 집계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엔 무리가 있지만 방향까지 틀리지는 않는다. 그 사이 1,678억 원짜리 전용관이 생겼는데, 이 공사비는 본행사 예산 12년 치가 넘는다. 영화를 더 부르고 건물을 새로 지어도 관객이 늘지 않았다면, 막힌 곳은 좌석과 날짜다.
1996년 첫 회와 2025년 제30회
15.열흘이라는 기간과 하루에 돌릴 수 있는 상영 횟수가 관객 수의 천장을 만든다. 올해 영화제가 개막 초반 하루 상영을 4회에서 5회로 늘리고 개막을 하루 당긴 것도 그 천장을 조금이라도 밀어 올리려는 선택이다. 10월 9일 한글날이 금요일이라 개막 주에 사흘 연휴가 붙는다. 표값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 공적 보조금이 절반인 행사가 멀티플렉스보다 비싼 표를 팔기는 어렵고, 그래서 사람이 몰리는 회차는 가격 대신 한 사람 2매 제한과 대기 번호로 거른다.

16.열흘 동안 310여 편, 표 한 장에 1만 원. 부산국제영화제는 30년 사이 상영작을 두 배로 늘렸지만 관객은 첫 회 수준에 머물고, 본행사 예산 132억 원의 절반은 여전히 시에서 온다. 지역에서 영화제나 음악 축제를 새로 여는 쪽도 첫해 예산서부터 이 모양을 피하지 못한다. 지자체 보조금으로 첫해를 열기는 쉽지만 그 돈은 해마다 의회를 다시 통과해야 하고, 좌석과 날짜가 정해진 행사는 관객을 늘려 버는 데 한계가 있다. 마켓이나 협찬처럼 표 밖에서 버는 줄을 첫해부터 따로 세워 두지 않으면, 30년이 지나도 예산서 첫 줄에는 시청 이름이 적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