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부터 한 정치인이 살던 사직동 한옥이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작가 김동희는 이 집에 새 물건을 들이지 않고 다락, 연못, 마당 흙의 자리를 바꿨다. 1만 5천 원짜리 표가 이 오래된 집의 살림에서 차지하는 몫은 생각보다 작다.
1.서울 종로구 사직단 담장 옆, 인왕산로 7번지의 대문이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운경고택. 공간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김동희가 이 집 전체를 써서 개인전 《다시 도착한 집》을 10월 31일까지 연다. 들어가려면 네이버로 회차를 잡고 1만 5천 원을 내야 한다.
2.한 회차는 80분이고 월요일은 쉰다. 예약 없이 대문 앞에 서면 들어갈 방법이 없다. 연계 프로그램도 두 번. 9월 29일에는 건축가 황두진이 한옥을 설계해 온 이야기를 하고 10월 7일에는 건축가 조정구가 서촌 밤길을 함께 걷는다.

3.터의 내력이 길다. 조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이 살던 도정궁이 이 자리에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궁터는 200여 필지로 쪼개져 팔렸고, 지금 서 있는 건물은 1930년대에 지은 서울식 한옥.

4.1953년 이 집을 산 사람이 훗날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이고, 그는 199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여기 살았다. 사랑채가 정치인들의 사랑방으로 불린 까닭. 대지는 300여 평. 인왕산 비탈에 앉은 집이라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다른 높이에 놓여 있고, 대문을 지나면 계속 한 단씩 올라가게 된다.
비탈 위 세 채와 작가가 옮긴 것
5.사랑채 지붕 밑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다락이 있었다. 김동희는 그 다락의 모양을 떠내 뒤집은 뒤 마당으로 꺼냈다. 흰 상자 같은 덩어리가 가는 기둥 위에 올라앉았고, 관람객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에서 흐르는 건 김영선의 사운드 작업. 90년 가까이 지붕 밑에 숨어 있던 칸이 마당 한가운데로 나왔다.

6.안채 대청에는 마당의 작은 연못이 뒤집혀 올라왔다. 물이 고이던 오목한 모양이 볼록한 흰 덩어리가 되어 붉은 마루 위에 엎드려 있고, 그 위로 흑백 인물 사진 액자 넷이 걸렸다. 열린 창 너머는 장독대. 안채 앞 마당에서는 흙을 6톤쯤 파냈다. 마당에 서서 보던 안채를 이번에는 파낸 자리에 앉아 올려다보고, 처마 끝은 머리 위로 한 단 더 멀어진다.


7.사랑채 방 안에서 시작한 흰 선 하나가 문턱을 넘어 안채 쪽으로 이어진다. 판화를 전공한 김동희는 원래 있던 구조를 비틀어 사람이 움직이는 길을 바꾸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에도 새로 들여놓은 물건은 거의 없다. 이미 있던 다락·연못·땅의 높이를 옮겼을 뿐.

8.서울에서 사람이 살던 옛집 안으로 들어가 볼 기회는 드물다. 한옥이 가장 많이 모인 북촌은 오히려 문을 닫는 쪽을 택했다. 종로구는 북촌로11길 일대를 특별관리지역으로 묶어 지난해 3월부터 오후 5시 이후 관광객 통행을 막았고, 어기면 과태료 10만 원을 물린다. 사람이 사는 집이 허락하는 건 보통 대문 밖 골목까지.
9.운경고택은 반대로 간다. 사는 사람이 없는 대신 들어오는 사람 수를 묶는다. 2022년 봄 최정화 개인전 때는 하루 5회, 회당 16명까지만 받았고, 대지를 16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 앞에 19평쯤 돌아간다. 줄 대신 예약 창으로 사람 수를 맞추는 방식.

10.80분 동안 관람객이 보는 건 작품이 아니라 집. 작품이 집의 부품을 옮겨 놓았으니 다락이 있던 자리를 찾으려면 사랑채 지붕을 올려다보게 되고, 연못을 보려면 대청까지 올라가야 한다. 미술관의 흰 벽은 작품 뒤로 물러나 있지만 여기서는 마루와 처마가 앞에 선다. 같은 집을 두고 작가만 바꿔 몇 년에 한 번 열어도 매번 다른 집처럼 보이는 이유다.
11.1만 5천 원을 80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만 1천 원 남짓. 주말 멀티플렉스 영화 한 편과 비슷한 수준. 이 집이 처음 전시로 열린 2019년에는 1만 원에 관람 시간이 한 시간이었으니, 가격이 오른 만큼 머무는 시간도 늘었다.
12.올해 회당 정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2022년처럼 16명으로 잡고 80분 회차를 하루 6번 돌린다고 치면 하루 96명, 입장 수입은 144만 원. 월요일을 빼면 운영일은 52일이고, 매 회차가 다 차도 7,500만 원을 조금 밑돈다(추정). 절반만 차면 3,700만 원대.
입장료로 들어올 수 있는 최대치 (추정)
13.그 돈으로 이 전시를 다 치를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았고, 집을 가진 운경재단의 본업은 장학과 추모 사업이다. 고택을 지키는 돈은 대관에서도 들어온다. 재단은 "고택의 품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관을 받는데, 홈페이지에는 아모레퍼시픽 려, 방송 「서울메이트」, 잡지 화보, 아웃도어 브랜드 유튜브를 이 집에서 찍은 사례가 올라 있다. 대관료는 확인하지 못했다.
14.사람이 살던 집을 뜯어 작품을 만든 선례로는 1974년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의 「Splitting」이 먼저 떠오른다. 철거를 앞둔 미국 뉴저지의 목조주택을 톱으로 반으로 갈랐고, 그 집은 얼마 뒤 헐렸다. 김동희가 받은 조건은 정반대. 앞으로도 지켜야 할 집이라 자르는 대신 떠내고, 뒤집고, 옮겼다.
15.이 집에 들어온 작가는 매번 달랐다. 2019년에는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과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이 방마다 천과 가구를 놓았고, 2022년에는 최정화가 버려진 물건들로 집을 채웠다. 같은 대청이 2019년에는 초록 의자 두 개를 받았고 올해는 뒤집힌 연못을 받았다. 문을 여는 간격이 몇 년씩 벌어지니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고, 1만 5천 원은 그 기다림이 붙은 가격이다.


16.사직동의 300여 평 한옥이 두 달 동안 80분짜리 예약 회차로 열려 있고, 표는 1만 5천 원이다. 회당 16명으로 매 회차를 채워도 입장 수입은 7,500만 원을 밑돌아(추정), 오래된 집을 지키는 돈은 대관과 지원금이 함께 메운다. 개인이나 재단이 가진 옛집을 이렇게 열 때 먼저 걸리는 건 옆집. 북촌이 과태료로 관광객을 막는 동안 이 집이 문을 열 수 있는 건 사는 사람이 없고 회차마다 인원을 묶었기 때문. 정원을 늘려 입장 수입을 키우면 골목의 사정부터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