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식 굿즈 74종이 오늘부터 2주 동안 코엑스몰 지하에 깔린다. 가장 많이 팔린 건 3,000원짜리 스티커 묶음이고, 가장 멀리 간 건 6만 3천 원짜리 모자다. 도시가 기념품 가게를 하는 이유는 매출표 밖에 있다.
1.이달 초 서울시가 모자 하나를 내놨다. 도시 브랜드 서울마이소울(SEOUL MY SOUL)과 전통 매듭 패션 브랜드 온고(ONGO)가 함께 만든 벨트캡, 가격은 6만 3천 원. 나흘 뒤 한 일본 이용자가 이 모자를 쓴 뒷모습 사진을 X에 올렸고, 그 게시물 하나가 조회 270만 회를 찍었다. 들인 광고비는 0원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
2.그 모자를 함께 만든 온고의 협업 상품도 오늘부터 코엑스몰 매대에 오른다. 서울관광재단이 여는 「Light Up Your SEOUL」 팝업이 스타필드 코엑스몰 지하 1층 라이브플라자에서 10월 7일까지 열린다. 입장료도 예약도 없다. 추석 당일만 정오에 문을 열고, 다른 날은 밤 10시까지 연다.

3.매대는 서울의 밤을 넷으로 나눴다. 밤 산책, 야식, 쉼,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풀무원·아모레퍼시픽·메디힐·풍심당·온고가 만든 협업 상품이 그 사이에 섞여 74종이 된다. 1만 원 넘게 사면 캐릭터 풍선을, 2만 원을 넘기면 한정판 토트백을 준다. 추석 연휴에 서울로 들어오는 관광객을 강남 한복판에서 받겠다는 계산.

4.벨트캡은 앞에서 보면 평범한 야구모자. 달라지는 건 뒤쪽. 조임끈 자리에 은빛 매듭 장식이 박혀 있고, 거기서 한복 옷고름 같은 긴 끈 두 가닥이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다. 쓰는 사람은 그 끈을 그냥 늘어뜨리거나 땋은 머리에 섞어 넣는다. 소라색과 검정 두 가지이고, 서울마이소울이라는 글자는 작은 자수로만 들어갔다.

5.팔리는 물량은 전혀 다른 쪽에서 나온다고 서울시 집계는 말한다. 올해 DDP 디자인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건 3,000원짜리 「서울 스티커 컬렉션 50종」이었다. 2위가 4대문·4대궁 엽서, 그 아래로 남산·광화문을 담은 즉석사진 자석 순. 서울마이소울샵 매장에서도 상위권은 1만 원이 안 되는 피규어·자석·볼펜이 차지했다.


6.온라인에서는 순위가 뒤집힌다. 1위는 2만 3,500원짜리 해치 트럼프카드였고, 백호 인형 키링과 원목 블록 쌓기가 뒤를 이었다. 비싼 물건은 어떨까. 9만 9천 원짜리 두루마기 우비는 다 팔렸고, 5만 9천 원짜리 자개 풍경함은 외국인 손님이 많은 서울갤러리 매장에서 꾸준히 팔린다.

서울굿즈 가격대별 대표 상품
7.매장과 온라인의 순위가 갈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행 중에는 방금 걸어 나온 광화문을 엽서로 사고, 집에 돌아간 뒤에는 정이 든 캐릭터를 주문한다. 앞의 것은 다녀왔다는 증거이고 뒤의 것은 다시 떠올리는 물건이라, 둘은 같은 사람이 다른 날 산다. 서울시 집계에서 두 경로의 핵심 구매층은 똑같이 20~30대.
8.벨트캡이 퍼진 까닭은 반대편에 있다. 도시 기념품은 보통 도시 이름을 크게 찍는데, 이 모자는 이름을 작게 줄이고 뒤통수에 매듭을 달았다. 사 간 사람은 서울에 다녀왔다고 적힌 모자가 아니라 한국에서만 나올 모양을 쓴다. 그 모양이 뒷모습 사진에 찍히는 자리에 있다는 점이 컸다. 3,000원짜리 스티커는 서랍에 들어가지만 모자는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
9.270만 조회가 공짜로 온 경로도 여기서 나온다. 좋아요가 3만 2천 건, 북마크가 9,300건 붙었는데, 북마크는 다시 보려고 따로 저장해 둔 횟수다. 같은 노출을 광고로 샀다면 얼마가 들었을까. 그런데 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서울시와 아무 계약도 없는 여행자였다.
10.서울시는 굿즈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다. 드러난 숫자는 판매량이다. 서울관광플라자 1층에 첫 서울마이소울샵이 문을 열고 1년 동안 매장을 찾은 사람이 18만 명, 팔린 굿즈가 5만여 개. 방문자 3.6명에 한 개꼴.
서울마이소울샵 첫 1년 매출 추정
11.한 개 평균을 1만~1만 5천 원으로 잡으면 첫해 매장 매출은 5억~7억 5천만 원 사이다(추정). 민간 소품 가게라면 이 매출로 도심 매장 여섯 곳의 임대료와 인건비를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 매장들이 들어선 곳은 서울관광플라자, 명동관광정보센터,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청. 전부 공공 시설이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가게 장사로 설계된 게 아니다.
12.돈이 더 크게 도는 곳은 협업 쪽. 서울라면은 19개국에 수출돼 166만 봉 넘게 팔렸고, 서울빵은 출시 한 달 만에 4만 개를 넘겼다. 둘 다 서울시 매장이 아니라 식품 회사의 유통망을 타고 나갔다.
13.올해 처음 연 입점 공모에는 119종이 몰렸고 20종이 뽑혔다. 서울시는 디자인을 사들이지 않고 이름과 선반을 빌려준다. 만들고 재고를 떠안는 건 민간 브랜드이고, 서울시 몫은 매장 운영과 브랜드 관리 정도.
14.서울시가 스스로 밝힌 목표는 뉴욕의 I♥NY다.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뉴욕주 관광 캠페인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그린 로고이고, 상표는 뉴욕주 경제개발청(Empire State Development)이 쥐고 있다. 2011년 보도 기준으로 이 로고를 단 공식 상품이 1년에 3천만 달러어치 팔렸고, 뉴욕주가 받는 라이선스료는 100만 달러 남짓.

15.매출의 3%쯤을 가져가는 장사를 뉴욕은 1977년부터 50년 가까이 이어 왔다. 로고의 값은 라이선스료가 아니라 관광객을 부르는 데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이 가는 길은 조금 다르다. I♥NY는 글자를 가슴에 크게 박아 파는 옷이었는데, 이번에 멀리 간 서울 모자는 글자를 작게 줄이고 모양을 앞세웠다. 로고를 팔려던 도시가 로고를 숨긴 물건으로 이름을 알렸다.


16.서울시 공식 굿즈가 추석 연휴를 끼고 코엑스몰 지하에 깔렸다.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스티커 묶음이지만, 서울이라는 이름을 바다 건너로 실어 나른 건 광고비 없이 조회 270만 회를 찍은 모자 하나였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굿즈를 만들 때 먼저 부딪히는 건 매출이 아니라 누가 모양을 정하느냐다. 모양을 민간 브랜드에 맡기지 않고 로고를 크게 박자는 내부 요구에 밀리면, 사진에 찍히는 물건은 나오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