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틀던 관 하나가 석 달 동안 백만장자의 저택이 됐다. 롯데시네마 도곡 6층에서 10월 11일까지 오르는 이머시브 뮤지컬 「룰렛」에서는 관객이 칩을 걸어 결말을 바꾸고, 맥주를 들고 객석에 앉는다. 영화 한 편에 평균 1만 원이 안 되던 좌석이 여기서는 최고 7만7,000원이다.
1.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도곡 6층의 관 하나가 7월 9일부터 공연장으로 쓰인다. 이름은 아티스테이지 도곡, 올라간 작품은 이머시브 뮤지컬 「룰렛」.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가 제작사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꾸린 체험형 공연 브랜드 「인사이드 더 플레이(Inside the Play)」의 세 번째 작품. 막은 10월 11일에 내린다. 남은 공연은 보름 치.
2.원작은 네이버 웹툰 「오민혁 단편선」 가운데 한 편. 거리에서 사는 도일 앞에 쌍둥이 형제라고 주장하는 백만장자 포우가 나타나, 자기 재산과 도일의 목숨을 건 내기를 청한다. 2023년과 2024년 마포구 연남동의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에서 올린 초연과 재연은 평균 객석 점유율 95%를 냈다. 그 뒤 상하이로 건너가 200회 넘게 공연하고 돌아왔다.

3.좌석은 다섯 등급이고, 이름을 트럼프 카드에서 따왔다. 클로버석 3만3,000원에서 시작해 하트·스페이드·다이아를 거쳐 맨 위 이머시브석이 7만7,000원. 등급마다 1만1,000원씩 오른다. 등급을 가르는 게 시야만은 아니다. 칩 다섯 개를 받고 프리쇼 게임판에 앉을 수 있는 건 이머시브석 손님뿐.

4.막이 오르기 30분 전, 로비부터 파티장으로 바뀐다. 평소라면 팝콘 봉지를 들고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그 자리에서, 배우들이 손님을 맞듯 돌아다니고 칩을 쥔 관객은 배우와 마주 앉아 카드를 받는다. 칩이 손바닥에서 달그락거리는 동안 누가 배우고 누가 관객인지 흐려진다. 본공연이 시작되면 내기는 객석으로 옮겨 가고, 관객이 어느 쪽에 거느냐에 따라 그날의 결말이 갈린다. 배우 박상준의 말로는, 같은 대본을 똑같이 해도 관객 반응에 따라 공기가 전혀 달라진다고.


5.객석은 검정과 금색으로 꾸민 프리미엄 상영관. 연남장 때는 1층이 자유석이었고 2층 발코니만 고정석이었는데, 이번에는 전 좌석을 지정석으로 판다. 계단식이라 앞사람 머리에 시야가 막힐 일이 없고, 스크린에는 배우의 얼굴과 저택 배경이 크게 걸린다. 맥주와 팝콘을 들고 들어가도 된다. 연남장에서는 객석에 음식을 들일 수 없었다.


6.이 공연이 파는 건 결말을 바꿀 수 있다는 약속. 영화는 백 번을 틀어도 마지막 장면이 같다. 「룰렛」은 칩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그날의 끝이 달라지고, 다른 결말이 궁금한 사람은 표를 한 장 더 산다. 한 사람이 여러 번 보는 공연은 새 관객을 찾지 않고도 표가 팔린다.

7.이머시브 공연의 오래된 약점은 몸이 고되다는 것. 배우를 따라 서서 옮겨 다니거나 바닥에 앉아 앞사람 어깨 너머로 보는 형식이 많았고, 몰입은 좋아도 두 시간을 서 있기 싫은 사람은 표를 사지 않았다. 영화관은 그 약점을 거의 공짜로 메운다. 푹신한 의자와 계단식 객석, 영화용 음향과 대형 스크린이 이미 깔려 있다.
8.극장 쪽에도 사정이 있다. 개봉작만으로는 사람을 부르기 어려워진 뒤로, 멀티플렉스들은 집에서는 못 하는 경험을 팔아 왔다. 대형 화면 특별관, 스포츠 중계, 뜨개질 상영회에 CGV의 실내 클라이밍장까지 나왔다. 아티스테이지도 원래 팬미팅과 토크 콘서트를 하려고 2025년 10월 월드타워점과 도곡점에 먼저 연 관이다. 공연은 그 관에 사람을 앉히는 방법 가운데 표값이 가장 높은 쪽.

9.2025년 국내 극장 관객은 1억 609만 명, 한 명이 평균 9,870원을 냈다. 전국 극장 좌석은 2024년 기준 43만 7,975석. 하루 다섯 회만 돌려도 한 해 8억 석 가까이 나오는데 팔린 표는 1억 장 남짓이라, 추정으로는 좌석 일곱 개 중 여섯이 빈 채 영사기가 돌았다.
10.빈 좌석이 왜 무서울까. 임대료가 줄지 않아서. 멀티플렉스는 상당수가 남의 건물에 장기 임차로 들어가 있어, 관이 비어도 임대료와 관리비는 그대로 나간다. 롯데컬처웍스의 리스부채를 포함한 차입금은 2025년 3분기 말 6,018억 원이었고, 자기자본은 281억 원에 그쳤다. 그해 극장 관객은 2017~2019년 평균의 절반에 못 미쳤다.
11.공연용으로 바꾼 뒤의 좌석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영화관 시절 도곡점 6층 관은 302석. 무대와 배우 동선을 빼고 200석을 판다고 잡는다. 평균 표값을 가운데 등급인 5만5,000원, 점유율을 연남장 때와 비슷한 90%로 두면 한 회 매출은 약 990만 원이 나온다.
12.공연은 화요일만 쉬고 석 달 동안 약 110회 오른다. 한 회 990만 원이면 추정 매출은 11억 원 안팎. 같은 관에서 같은 기간 영화를 전국 평균 점유율로 틀었다면 2억 원이 안 된다.
좌석 하나가 한 번에 버는 돈
같은 관, 같은 95일의 추정 매출
13.이 차이가 전부 극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배우와 스태프 인건비는 공연이 지고, 롯데컬처웍스와 스포트라이트가 매출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극장이 확실히 챙기는 건 둘. 어차피 임대료를 내던 관에 석 달 동안 사람이 앉는다는 것, 그리고 프리쇼 30분과 본공연 90분 동안 로비와 객석에서 팔리는 맥주와 팝콘.
14.영화관 안에서 사람이 공연하는 게 새 일은 아니다. 1927년 뉴욕에 문을 연 록시 극장(Roxy Theatre)은 영화 사이사이 무용단 무대를 올렸고, 극장이 무대를 걷어내고 스크린만 남긴 건 그 뒤의 일이다. 이머시브 공연은 반대 방향에서 컸다. 영국 극단 Punchdrunk는 2011년 뉴욕 첼시의 창고 건물을 1930년대 호텔로 꾸며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올렸고, 관객은 가면을 쓴 채 층을 오르내리며 배우를 따라다녔다.
15.객석이 못 박힌 극장을 벗어나려고 창고와 호텔을 찾아다닌 장르가 이번에는 가장 단단히 고정된 객석으로 돌아왔다. 그 고정석을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운다. 롯데의 시리즈는 지점마다 관을 다르게 쓴다. 첫 작품 「샤롯데 더 플레이: 서바이벌」은 2025년 10월부터 신도림점에서 닫힌 극장을 무대로 한 생존 스릴러였고, 두 번째 「군체」는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롯데시네마 신대방에서 6만9,000원을 받았다.

16.관객이 코로나 이전의 절반으로 준 극장이 관 하나를 석 달 동안 공연장으로 돌렸고, 영화표 평균 9,870원이던 좌석을 3만3,000원에서 7만7,000원에 판다. 극장이든 다른 공간이든 이걸 따라 하려면 먼저 좌석 수에서 막힌다. 이머시브는 배우가 손님 하나하나에 닿아야 성립하는 형식이라 객석을 늘리는 순간 무너지고, 그래서 한 회 매출의 천장이 낮다. 이 계산은 임대료를 이미 내고 있는 빈 관, 의자부터 조명까지 이미 깔린 공간에서만 맞는다.
